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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번 W. 바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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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제35대 부통령
2. 생애[편집]
1877년 켄터키주에서 태어났다. 바클리에게는 7명의 남매들이 있었고, 부모는 농부였다. 그는 에모리 대학교와 버지니아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후 그는 법률가가 되어 검찰관과 재판관을 지냈다.
그 후 그는 1912년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7선을 하다가 1926년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며 상원 의원이 되었다. 그러다 1948년 바클리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 제의를 수락하였고 미국 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제 35대 미국 부통령이 되었다.
부통령 재임기간 그는 자신의 의회에서의 오래된 정치경력을 토대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갔다.[2] 그런 그는 트루먼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였으나[3] , 나이와 민주당 내 압박 등 여러 리스크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꿈을 포기하였다.
그 후 전직 부통령의 신분으로 1954년 미국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였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상원의원 취임 1년 후인 1956년 사망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4. 기타[편집]
- 첫 번째 부인이 사망하자 자신보다 30살 이상이 어린 제인 러커 해들리 바클리와 결혼하였다.
- 1912년부터 1954년까지 자신이 출마한 모든 선거에서 전승을 하였다.
- 바클리의 손자가 부통령 재임시절 Veep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이는 현재 미국 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6]
[1] 장로교회 집안에서 자랐고, 본인도 장로교회 신자였으나 감리교회로 개종하였다.[2] 사실 이 당시만해도 부통령이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부통령의 권한이 강해진 것은 월터 먼데일 이후[3] 사실 이때는 대통령의 3선 이상을 금하는 수정헌법 25조가 이미 나왔었다. 그러나 이는 트루먼의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나왔기 때문에 트루먼은 수정헌법에 영향을 받지 않고 3선이상 계속 출마할 수 있었다.[4] 1949년 미합중국 부통령 취임을 위해 사퇴[A] 대통령 후보는 해리 트루먼[5] 전직부통령 신분으로 당선, 1956년 사망[6] Veep이라는 미국 부통령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