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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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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베이시스트.
2. 상세[편집]
1988년 무렵부터 작곡가 및 세션 베이시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그 해 발매된 가수 김현식의 정규 4집 앨범 수록곡인 '여름밤의 꿈'을 작곡하여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2년 뒤인 1990년에 김광수의 눈에 띄어 GM기획 소속 가수로 데뷔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인다.[14]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때는 본인 특유의 감성적인 곡 스타일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 고운 미성과 함께 수많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동시에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와 같은 여러 히트곡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로도 탄탄하게 시작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실험적인 면모가 강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선구자 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0년대엔 일렉트로닉부터 아이돌 음악까지 섭렵하고 있다.
김현철, 손무현, 유정연 등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을 80년대까지의 트로트 위주의 전통가요 시대에서 90년대 이후의 현대음악 시대로 바꾸는데 상당한 공로를 한 뮤지션 중 하나다.
3. 생애[편집]
3.1. 데뷔 이전[편집]
1968년 서울특별시에서 사업가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15]
깔끔한 귀공자풍 외모 덕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어린 시절이 좀 어둡다.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해서 주위의 편견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매우 많았던 듯하다. 외갓집에 가면 친가 욕하고, 친가에 가면 외갓집 욕하는 상황을 어릴 때부터 겪으며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대립이 너무 싫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격도 예민해지고 눈칫밥 먹으며 살아야 했다고. 아버지 쪽에서 자신을 좀 부담스러워했다고 느꼈고, 자연스럽게 자라면서 아버지와의 접촉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 때문인지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도 잘 못 어울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린시절 부모가 이혼했단 것에 대한 상처가 정말 컸던지 윤상은 이후 인터뷰나 방송에서도 이 이야기 자주 한 편인데, <힐링캠프>#와 <꽃보다 청춘>#등의 프로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즈음해서 좀 적응을 못 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이 내 준 “곡 완성하기 숙제”를 해 가게 되었고, 이를 본 선생님이 “너 뭐 음악 따로 배운 적 있어? 없어? 그런데 이런 걸 하다니 대단한데”라고 칭찬을 들어 어렴풋하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듀란 듀란을 들으면서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를 동경해 삼촌을 통해 기타를 득템했다.
서울 충암고등학교 시절[16] 부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뮤지션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로 미술학원에서 벼락치기 입시 공부를 해 경희대학교 요업공예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공부하려 들어간 대학이 아닌지라 학교에 적만 걸어 놓고 밴드 하고 신촌블루스에서 알바하며 지냈다는 듯하다. 그 덕에 충암고등학교 시절부터 빠질을 했던 봄여름가을겨울과 친분이 생겼다. 나중에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자리를 제의받았다.[17] 연주 실력도 어느 정도 되었겠지만, 곱상한 외모 때문에 돈맛 좀 보여줄 것 같아서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까마득한 형님들이 너무 잘 해주는 게 무섭고 부담스러워서 도망갔다고 한다.
손무현과 함께 김완선 백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기도 했다.[18][19] 영상을 찾아보면 뒤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3.2. 데뷔[편집]
이를 시작으로 김민우, 강수지, 변진섭 등에게 히트곡을 제공하면서 프로듀서·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본인은 딱히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찮게 김민우 앨범 녹음 중, 김민우의 보컬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이드 보컬 식으로 불러줬다. 이걸 당시 EOS 사운드 프로덕션 김광수(코어 콘텐츠미디어사장)가 듣게 된다. 윤상에게 “너는 얼굴도 되고 분위기나 목소리도 좋으니 가수 한번 해봐라”라는 제의를 한다. 윤상은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당시 김광수 사장이 제시한 금액이 평소 가지고 싶었던 장비를 다 구입하고도 남는 금액[21] 이라 수락해서 1990년 GM기획 소속 가수로 데뷔했다. 요즘 어린 세대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탑 클래스 아이돌이었다. 당시 이승환, 신승훈, 신해철도 아이돌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연예인보다 전문 스튜디오 뮤지션이 꿈이었고,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듯하다.
모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얼떨결에 가수 데뷔를 했는데 거기에 딸려온 연예인이라는 짐을 벗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는.”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당시 방송을 안 하면서도 자기 음악을 하는 김현철이나 015B와 비교해 자신이 너무 속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판매량으로만 가치가 판단되는 것도 싫었던 듯하다. 그러다 세월도 흐르고 가족도 있으니 앞으로는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한다. 당시의 자신을 미쳤던 거지... 하고 배불렀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듯이 말하며. 하지만 여전히 음악에 관한 자세는 굉장히 엄격하다.
여담이지만, 원래 학창시절부터 인기가 있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던지라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아이돌로 통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본인은 그것을 굉장히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맨날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어린 팬들에게 자신을 왜 좋아하냐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3.3. 소속사와의 갈등과 군입대[편집]
1집의 엄청난 성공 후, 소속사 사이에 갈등이 꽤 심했다. 1집의 대중적인 성공 후, 소속사 GM 기획(와 광수 사장)은 계속해서 윤상을 아이돌+대중가요 노선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윤상은 이제 번 돈으로 장비도 다 구비했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 보고 싶다며 이견을 보였다. 신인 가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1등을 받는 게 뮤지션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출연을 거부해 괘씸죄로 방송 금지를 먹기도 했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와중에도 "난 스튜디오 뮤지션인데 왜 이런 걸[22] 하고 있나…" 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는 또 이런 생각이 바뀌어서 예능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2011년 인터뷰에서도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던 시기가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거에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라고 대답했다.
덕분에 2집은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1년 차이로 part 1, part 2라는 괴상한 형태로 나오기도 했다. 파트 1(100만 장)은 1집(90만장)처럼 인기가 좋았지만, 파트 2는 30만 장으로 상대적으로 부진했다.[23][24] 거기에 갑자기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등 고민이 많았다.
이후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를 계속해서 연기를 하던 윤상 앞으로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 그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며 병역 기피 논란으로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1993년 12월 현역으로 입대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자세한 건 아래서 후술.
그에게 군입대로 인한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원하는 악기를 맘대로 사지 못했다는 것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늘 절친인 작사가 박창학이 수고했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현재까지도 윤상이 그렇게 아끼는 미니무그.[25]
또 군복무 당시 알바트로스의 음악 감독을 맡아 OST를 작업을 하기도 했다.
3.4. 전역 후[편집]
전역한 후 1996년 복귀작으로 리메이크 앨범인 Renacimiento(레나시미엔토. 스페인어로 르네상스)를 발표했다.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윤상이 불렀던 신곡은 딸랑 2곡(벽, 배반)뿐이고, 2집 파트1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샘플링해온 것으로 보이는 1분 짜리 연주곡인 Eco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6개 트랙이 자신이 불렀거나 작곡했던 예전 히트곡들을 이탈리아/프렌치 팝/남미 음악 풍으로 재편곡한 후 해당 국가 보컬들에게 그 나라의 국어로 번안한 가사로 부르게 한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그때까지 계속 윤상에게 따라다니던 일본 음악 표절설에 대한 항변격으로 낸 것이다. 위의 작업을 통해 자기는 일본 음악이 아니라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26]
윤상은 월드뮤직, 특히 남아메리카 쪽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김형석, 성시경이 “윤상은 툭하면 ‘야 이거 이탈리아의 무명 뮤지션 b-side의 곡이랑 진행이 비슷한데?”라고 한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 나라 언어로 가사를 붙이면 어떨 지 궁금했던 것도 이 앨범의 기획 의도였다. 하지만 판매량은 10만 장 남짓에 그쳤다.[27]
같은 해에는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하고, <골든 힛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낸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테크노/전자음악 앨범인데, 이후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다. 훗날 S.E.S가 리메이크한 노래 <달리기>도 이 앨범에 실려있다.
1998년에는 지금까지 윤상의 최고 역작이라 불리는 싱글 앨범 "Insensible"을 발표했으며, 이승환이 프로듀싱했다.
2000년 6월에는 윤상의 정규 앨범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81위에 랭크된 앨범인 3집 'Cliché'를 발표한다.
데뷔부터 제대까지, 초반에는 외국 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곡들과 오빠부대로 시작했으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로 오빠부대 아이돌 연예인에서 본좌 뮤지션으로 정체성이 확립된다. 그러면서 대중적 인기는 멀어져갔다.
3.5. 아내와의 동반 유학[편집]
약 2003년 미국 보스턴의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학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유학을 갔다. 당시 그냥 프로듀싱이나 작곡을 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는데, 신디사이저나 제작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서 정보를 구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도 하고, 더 이상 음악 작업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후에 밝히기를 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어렸을 적 '나는 나중에 이런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그 꿈을 이루어 버려서 더이상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어릴 때 데뷔해 성공, 남들이 받들어 주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어린 사람들과,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의 미국에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 것도 많은 듯하다. 그냥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왔다. 때문에 유학을 마친 후 피부고 뭐고 더 이상 예전의 연예인스러움이 많이 사라졌다. 근데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 윤상을 만나러 갔던 나경은을 포함한 여자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멋있다고 말하기도. 암튼 고생도 많이 했다. 처음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 건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봐야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베이스 연습을 다시 했으나 탈락. 나중엔 그래도 밤새가면서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을 좀 받았다 한다.
이때 부인과의 일화가 있다. 부인 심혜진 씨가 필수 교양과목 등 본인 전문분야가 아닌 쪽은 윤상이 맨날 “여보 숙제 해줘” 라고 해서 네 숙제를 왜 내가 하냐며 성질을 내면서 해 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물론 윤상은 그때마다 “네가 우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유학 가자고 했잖아.” 설득해서 결국 해줬으며 유학 중에 잠깐 나왔던 모 방송에서는 핼쑥해져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28]
원래는 학부만 마치고 올 예정이었지만 공부에 불이 붙어 졸업한 후 다시 NYU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를 졸업했다. 작곡 편곡이 아닌 사운드 메이킹을 배워 왔다고 할 수 있다. 멜로디가 아니라 소리 구성요소들의 디자인 같은 것. 유학 계획도 중간에 바뀌고, 아이도 둘이나 태어나고해서 학비와 생활비 관계로 공부하랴 일하랴 엄청 빡세게 살았던 것 같다. 이 와중에는 누들로드의 OST와 DMB 방송을 잠시 진행하기도 했다. 누들로드는 본인이 영상음악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승낙한 이유도 있다.[29]
유학 중에 잠깐 국내로 들어와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게스트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희열 씨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면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나가면 '와~ 가수다',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이리 오세요, 저리 가보세요 하지? 여긴 그런 거 없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거야."라고 유학생활의 소고를 밝힌 바가 있다.
유학 전 SM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SM의 이미지는 강렬한 춤과 용모로 승부하는 댄스가수를 양성하는 곳이었던 고로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다. '윤상이 이제 자기 음악을 못 하는 거냐'며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다고. 본인은 그런 건 모르고 그냥 계약 조건이 제일 좋아서 승낙[30] 했다고 언급했다. 저작권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10억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한다. 계약은 매니지먼트 계약이 아니라 정규앨범 4~5집 발매, 프로젝트 앨범 1장 등 일 관련 계약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윤상은 SM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고, SM은 이미지 쇄신 + 윤상의 프로듀싱과 곡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꽤 좋은 계약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계약이었던 것. 덕분에 윤상은 아직도 SM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보아와 동방신기 등의 소속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 중이다. 우연하게도 오랜 후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평양 공연에는 SM의 Red Velvet이 함께했다.[31] 또한 첫째 아들 앤톤이 SM에서 아이돌로 데뷔한다.
3.6. 유학 이후 근황[편집]
2010년이 되어서야 7년간의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과 동시에 상명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 서게 되었고, 이 후 성신여자대학교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직에 취임, 2017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8년부터는 용인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과장을 맡게 되었다.
아내, 두 아들은 미국에서 살던 그대로 계속 거주했기 때문에 기러기 아빠로 생활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업계에서 밀려난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노래 외에도 꾸준히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업계에서 인정받고, 왕성히 활동 중이다. 윤상이 SM으로 영입된 후에는, '다시 만난 세계'처럼 반주(instrumental version)까지 단독으로 선보일 수 있을만큼 더 공들여 내놓은 노래들이 앨범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까지는 East4A와 함께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HISTORY의 '난 너한테 뭐야',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순서대로 내놓았다. 최근은 1Piece 결성으로 합작이 좀 뜸해진졌다.
부인 심혜진씨와 같이 빅터 우튼이 쓴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2014년 9월엔 디지털 싱글 날 위로하려거든을 발표했으며, 이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올해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등 2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것은 물론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였다! 트로피를 집 안에 장식해둔 것은 물론, 수상내역을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윤상이 후일 무한도전에서도 정준하에게 이 상을 보여주며 '흔히 날 발라드 전문 작곡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성과도 거뒀다'고 자랑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음을 강조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2014년 11월 데뷔한, 자신의 작곡 팀인 1Piece로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인 러블리즈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 특히 데뷔 앨범 Girls' Invasion의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를 비롯한 총 5곡을 작곡, 편곡했다.[32] 더불어 2015년 10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함께 출연하였고 1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 녹화에 출연했을 때도 러블리즈 멤버들과 함께하는 등 방송에 동반 출연하여 아빠처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준다.[33] 덕분에 러블리즈 팬들이 윤상을 좋아한다.
특히나 희대의 명곡이자 여전히 인기 있는 러블리즈의 대표곡 'Ah-Choo'는 많은 이들이 윤상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안 뒤 윤상의 소녀감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34] 평론가들은 전반적으로 러블리즈라는 팀은 윤상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으며, 윤상 특유의 마이너한 감성으로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나, 곡의 완성도만큼은 최고에 이른다고 호평하였다.
2016년 러블리즈 미니 2집 <A New Trilogy> 기자 쇼케이스[35] 에서 윤상이 러블리즈와의 특별한 인연[36] 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것을 선언하였고, 러블리즈를 통하여 본인의 음악적 이상[37] 을 펼쳐나갈 것을 발표하였다.
다만 2017년에 새로 러블리즈와 작업한 정규 2집[38] 타이틀곡 'WoW!'는 가사와 노래 구성이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안 좋게 말하면 마이너해서 팬들과 대중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갈렸다.[39] 그럼에도, 후속으로 발표한 2017년 5월 2일 발표된 러블리즈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지금, 우리의 동명 타이틀 곡 '지금, 우리'가 5월 16일 SBS MTV THE SHOW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작곡가로는 오랜만에 음악 방송 1위 곡[40] 을 배출하며 이러한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었다.
2017년 4월 말, 일렉트로닉 전문 레이블 '디지털리언 스튜디오'을 론칭했다. 5월 초 원피스의 신곡 ‘얼론’의 스템 파일을 공개하고 리믹스 컴피티션을 시작으로 매달 한 곡씩 일렉트로닉 장르의 유망한 신인을 소개하는 ‘디지털리언 나우’(Digitalian NOW)라는 레이블 음원 발매 프로젝트도 시작하는 등, 전문적이고 특화된 장르 레이블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았다. #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다.
4. 음악 특징 및 평가[편집]
이번 앨범만 해도 얼마나 팔릴 것인가를 생각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 `가요는 후지다, 가요는 팝에 비해 별로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딴 소리가 안 나오게 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된다. 이건 돈을 벌려는 사람에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오히려 판을 소비하지 않는 층을 상대로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요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러지 말고 이런 가요도 있으니까 들어봐라` 하는 입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똑똑한 게 아니니까. 나의 자존심의 문제이고, 욕심의 문제다. 나는 모든 에너지가 여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상업적인 가수와 작업할 때는 충분히 상업적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히트할지 누구보다 잘 안다. - ’09 매경 인터뷰
그를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말들이 뮤지션들의 뮤지션, 반음계의 왕자님, 살아있는 신디사이저(심지어 야마하 코리아 엔도서다)와 디지털 사운드 활용 매뉴얼.제가 월드 뮤직으로 넘어간 한 가지 이유는 수많은 보사노바가 대한민국에 있었지만 사실 그것을 듣고 겉핥기식 편곡으로 보사노바라고 하는 점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소한 보사노바 음악을 한다고 하면 원주민들이 쓴 악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오리지널에 가까운 장치들을 가지고 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의지였다.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한 쪽에는 악기에서 오는 뉘앙스를 내 식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예술적인 이유였다. 동경이라고 할까. 그 음악들을 가져 올 때는 최소한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했던 것보다 이해를 하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 '09 이즘 인터뷰
대중적 인기보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높은 편이다. 들으면 “어 윤상 꺼지?” 하고 알 수 있는 본인의 작곡 특징과 감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웬만한 엔지니어 쌈싸먹을 정도로 음향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히트 음악가들은 정점을 찍고는 대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들을 보인다. 적당히 베스트 앨범 좀 내 주고, 적당히 예전 히트곡 모아서 라이브 뛰고 가끔 방송 좀 나오고 하는 일이 많은데, 윤상이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현역으로 본인 작품은 물론이고 수많은 아이돌 가수 작업들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해서는 꼰대질이 없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전자음악가들과 끊임없이 교류는 물론 작업도 같이 해 나가고 있다. 음악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장르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닥치는대로 듣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JAY-Z, 제드, 데이비드 게타 등 요즘 시류의 음악들도 빠삭하게 알고 있으며 듣도보도 못한 남미, 유럽, 히말라야 월드뮤직까지 챙겨듣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냥 윤상 이름값으로 적당히 먹고 살아도 되는 타이밍에 다 때려치우고 유학을 가는 결단을 내렸다.
다만 윤상의 작업스타일은 굉장히 느린 편에 속하는데, 작사가 김이나는 그가 마치 스스로를 유배 시킨 양반같다며 평가하기도 했다. 작곡에 대한 재촉 아닌 재촉과 함께, 팔고초려 정도 해도 겨우 붓 하나 들고 몇자 썼다가 다시 내려놓는 정도라고... 그리고 이를 증명해주듯, 윤상이 작곡하며 김이나가 작사했던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곡의 '데모'를 받기까지 무려 1년이 걸렸다고 한다.(!) 특히 둘 다 가수로서는 같은 연도인 1990년도에 데뷔했던 윤종신과 비교해 본다면, 차이가 더 극심히 보이는데, 윤종신은 대략 15집+월간 윤종신 프로젝트까지 많지만, 윤상은 정규 앨범을 32년 간 단 6번 냈다. 윤상 본인도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하는 윤종신을 보며 존경한다고 한다. 본인은 <연간윤상>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기도 했다. 또, 2011년 20주년 기념앨범 발매 뒤에 같은 해에 7집이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묻혔으며, 5년후인 2016년엔 7집 선공개곡 '그게 난 슬프다'를 공개하며 2017년 상반기엔 7집이 발매될 것이라는 썰이 돌았으나 이 역시 엎어졌다. 2019년 인터뷰를 통해 녹음 준비 중 계획을 뒤엎었다 밝히며 다시금 확인사살. #. 2014년 발매된 The Duets PART1도, PART1이라 하는 것을 보아 처음엔 PART2나 혹은 그 이상을 계획하고 발매했던 것 같지만 이 역시 아직까지도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작법
대부분의 경우, 음악가들은 멜로디나 주 진행 코드를 잡은 후 편곡 작업을 진행한다. 개중에는 이 작업을 분업화해서 아예 리듬섹션 현악섹션 편곡 등은 세션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경우도 흔한데, 윤상은 이 작업을 거의 반대로 진행한다. 일단 전체적인 사운드 (주 멜로디의 반주)를 잡고, 그 뒤에 어울릴만한 주 멜로디를 작곡해 올리는 식이다. 물론 통기타나 피아노로 기본 멜로디를 잡고 만드는 보통의 방식을 사용할 때도 있다. 참 쉽죠?솔직히 말해도 돼요? 저는 윤상 씨 너무 섹시해요. 보니깐 우리가 들어갔을 때가 처음 연주한 거예요. 합주를. 근데 다 맞아. 엘리트들이 발산하는 지적인, 그런 느낌이 너무 나서...
- 윤도현
말은 쉽지만, 윤상이 이렇게 사운드를 만드는 수준은 그냥 여기에 현악을 넣고~ 여기에 베이스를 이렇게 치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기, 음향, 주파수 조절, 시간차, 서라운드, 각종 이펙트 등을 고려해 장인/엔지니어에 가까운 집요함을 보인다. 사운드 소스부터 자가제작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스테레오로 틀어 놓으면 편안하고 여백이 많은 발라드풍 가요로 들리지만, 헤드폰이나 좋은 음향장비로 들으면 '뭐 이런 미친 곡이 있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나온다. 신디/미디/이펙트로 할 수 있는 소리를 전부 뽑아내 곡 전체에 1000조각 퍼즐처럼 꽉꽉 채워 놓았다. 예를 들어 윤상의 “악몽” 같은 경우, 스테레오로 듣다가 헤드폰으로 들으면 가히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빌딩 건축을 음악 작업이라고 할 때, 보통 빌딩 하나를 만드는 데 설계, 자재조달, 인테리어, 전기배선, 시공 등이 전부 분업화되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진행한다. 그런데 윤상은 설계 자재조달 시공 인테리어 전기배선 죄다 혼자서 처음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서 빌딩을 짓는 셈. 사운드나 곡의 구조에 대해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작법이다.
이런 작법의 예로, 아래 두 곡을 들 수 있다.
- 사운드
사운드에 대한 집착과 예민함 역시 무시무시해서, 단순히 더 좋은 음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유행하는 사운드에 맞추기 위해서 전집 기념앨범도 리마스터링 했다. 실제로 많은 뮤지션들이 엔지니어나 믹싱 관련 윤상의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이렇게 사운드에 예민해서 세션보다는 자신이 완벽하게 컨트롤이 가능한 프로그래밍에 많이 무게를 두는 편이다. 유희열은 '윤상 음악은 일단 드럼에서 끝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를 프로그래밍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감탄할 정도. 세션들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믿고 세션에 심지어 곡의 주요 편곡방향을 맡겨버리는 요즈음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완벽하게 곡의 모든 부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요하게 밀고 나가는 윤상의 곡들은 훨씬 더 섬세하고 철저한 구상을 느낄 수 있다. 노래가 아닌 연주부분을 들어보면 이런 부분이 더 잘 드러난다. 이는 2018년 발매된 러블리즈의 Inst. 앨범인 Muse on Music에서 1Piece가 작곡한 곡들을 들으면 느낄 수 있다.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윤상 본인과 유희열의 작곡차이는 일단 윤상은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피가 마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당시 성시경에게 곡을 주기로 되어있었는데 이게 또 흥행이 안되면 어쩌나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고백하기도... 반면 유희열은 타인의 스타일을 배우고 잘 흡수하는 능력이 강하다고 한다. 본인의 색이 없는 것도 색이 될 수 있다고 조언을 해준 적도 있다고.
NYU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프로젝트로 만들었던 Play with Me에서는 3분 남짓한 시간동안 아기 옹알이 몇 개와 장난감 소리를 다양한 이펙트를 먹여 가공하고 배치했다. 여기 나오는 실로폰 소리는 당시 자택 근처 아이들 놀이터에 있던 실로폰 소리를 윤상이 이웃집에 민폐 끼칠까 소심해하며 새벽에 녹음기 들고 나가 직접 소스를 따 온 것이다. 곡은 3분이지만 옹알이를 이렇게 다양하게 가공하려면 엉덩이 부을 정도로 며칠 밤낮을 컴 앞에 앉아 있었을 거다.
- 멜로디
- 보컬
성량이 풍부하거나 감정적인 보컬은 아니지만,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잘 살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특히 완급 조절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나지막하고 담백해서 쉬운 것같지만, 막상 부르면 원곡 같지가 않다. 이승환은 윤상의 보컬에 대해서 느낌과 감정을 살리는 면에서는 윤상이 최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뮤지션 신해철 왈, "윤상은 노래를 잘 하는데 자기가 그걸 모른다."윤상씨 곡 중에 '사랑이란' 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걸 제가 스케치북에 나가서 부른 적이 있었어요. 근데 부르면서 "아, 윤상이라는 가수는 정말 진짜 가수다." 는 생각이 들었던게,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예를 들어 저는 거의 독립운동하듯이 (에너지 가득한) 스타일로 부를 수 밖에 없는... 이런 발라드가 고음으로 올라가면 힘을 줘서 터뜨릴 수 밖에 없어요. 근데, 상이형은 저음이나 고음이나 같은 힘으로 쭉 바르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제가 이 노래를 하기로 해놓고선 녹화를 하는 순간에도 계속 '아, 내가 왜 이 노래를 선택했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 노래를 들으시면 윤상이 얼마나 훌륭한 보컬리스트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실 수 있을겁니다.
- 이적
- 프로듀싱
하지만 제대 후인 1997년에 공동 제작한 혼성 듀오 알로(Halo)는 이전과 달리 흥행이 매우 부진한다. 알로는 과거 1730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였던 무아(김주훈)와 보컬 김지혜의 2인조로 구성된 유닛으로 지금까지도 윤상 팬을 빼고는 아는 사람이 적지만, 당시 알로가 불렀던 ‘랄랄라,’ ‘잠자는 숲속의 왕자’ 등은 지금 들어도 윤상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촘촘한 편곡이 돋보이는 귀여운 댄스 팝이다.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왜 제작을 안 하시냐는 질문에 과거에 이렇게까지 망할 줄 몰랐다며 당시에 큰 상처를 받아서 못 하고 있다고 회고할 정도. 유희열이나 주변 사람들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아깝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음악적인 면에 대한 평가고 앨범 재킷이나 음악 방송 활동 영상을 보면 97년 당시 기준으로도 촌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의상과 콘셉트로 인해 외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랄랄라'는 윤상 20주년 기념 앨범에서 소녀시대가 참여해 다시 불렀고, ‘잠자는 숲 속의 왕자’는 아이유 정규 2집 Last Fantasy에서 부활한다.
팀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과 데뷔곡 ‘사랑합니다’를 담당했다. 2집은 고마웠다고는 TV 방송 1위를 한다. 당시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던 SM 이적 이후에는 보아, 소녀시대, 동방신기,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등에게도 곡을 주었거나 지금도 주고 있다.
그 외 함께 작업한 가수들은 아래와 같다.
- 이수영 - 6.5집 꽃들은 지고 (TV방송 1위)
- 가인 - 탱고, 일렉트로니카를 섞은 ‘돌이킬 수 없는’을 이민수와 공동 작곡하여 가인이 오랜만에 지상파 1위를 차지하게 된다.
- 아이유 - Real+ 앨범 타이틀곡인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주었고, Last Fantasy에서도 '잠자는 숲 속의 왕자'를 리메이크해서 주었으며 후술하겠지만, 그 외에도 음악적 교류를 계속 하고 있는 듯.
- 박효신 - 정규 2집 'Second Story'의 3번 트랙 '먼 곳에서'와 10번 트랙 '편지'를 작곡했다. 두 곡 모두 작사는 박창학.
- 윤종신 -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2012년 10월호 '나쁜'을 작곡 및 편곡했다. 둘 다 뮤비에 출연한 건 덤.
- 유희열(토이) - 토이 정규 앨범에 4집부터 6집까지 총 3번 보컬로써 참여한 바 있다. 7집에는 없는 듯하다.
- 성시경 - 2011년 성시경 7집에 수록된 '아니면서'는 박창학 작사, 윤상 작곡이다. 성시경 자신이 맘에 들어하는 곡 중에 하나로 꼽기도 하다.
특히 아이유의 경우 음악 방송에서 피아노 반주를 해 주거나 뮤비 찬조출연 등 전폭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윤상이 그녀의 아버지랑 동갑이기 때문에 “아빠”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42] 근데 윤상은 아이유를 처음 만났을 때 오빠로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 뮤비엔 박보영의 연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아이유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아이유 3집 Modern Times에서는 가인과의 듀엣곡인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제공했고, 2014년에 발매된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서는 윤상이 김현식에게 주었던 '여름밤의 꿈'을 리메이크했다.
S.E.S.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5집에 수록된 히트곡 달리기도 원래 노땐스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 물론 리메이크 버전은 희망차고 발랄한 곡이지만, 원곡은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한 곡으로 좀 우울하다. 윤상 본인도 라디오에서 SES가 많은 곡들 중 왜 이걸 리메이크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4.1. 완벽주의[편집]
나는 오랜 시간, 그리고 노력을 통해 윤상을 알게 됐다. 그래서 윤상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등을 꽤 잘 알고 있다. 윤상은 참 고민이 많은 친구이다. 그 주위의 친구들이 대부분 어떻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낼지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이 친구는 좀 심한 편이다. 웬만하거나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마무리를 며칠밤을 새며 수십번 수정을 거듭한다. 완성도에 대한 그의 욕심에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쯤이면 1991년 데뷔해 10년이 넘도록 발표한 정규 음반이 세장 밖에 안되고, 이제서야 겨우 두번째 콘서트를 갖게 되는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남궁연: 윤상 씨는요, 약간의 신경쇠약이 있어요. 그래서 (드럼의) 하이햇 소리가 본인의 심기를 건드리면, 연습을 못해요. 그 소리가 리듬 머신보다 못 하면 옆에 가서도 안되고.
정재형: 아마 유일하게 리듬을 녹음실에서 연습해오면 다시 집에 가지고 가서 다시 편집을 하던 분이에요.
가요계 대표 완벽주의자중에서도 본좌급으로, 이는 주변의 동료 뮤지션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전술했지만, 그가 다작을 하지 않고, 발표한 정규 앨범이 적은 것 또한 이러한 성향도 한몫한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로 앨범 하나 작업하고 나면 건강이 바닥을 치기 때문. 밤낮 바뀌고 신경쓰느라 잠 안 와서 술먹고 자고 간 나빠지고 담배 늘고 스트레스 받고…우울증 치료제와 알코올의존증 증세까지 달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이후엔 금주 및 치료중이다.잠깐만, 말이 안되는게, 평소에 형 음악할때, 잡음 하나 가지고 이틀씩 고민해서 지우고 짜증내는 사람이 왜 이렇게 갑자기 유해진거야? [43]
- 유희열
하지만 이러한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은 그가 가수로서 데뷔하기 전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했을 때부터도 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90년대에는 녹음 후 음정 보정이 가능한 오디오 장치인 오토튠이 없었기에, 녹음한 그대로가 앨범에 넣어야 했던지라 완벽주의적인 면모가 지금보다 훨씬 이상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 그만큼 나이를 먹으니 유해진 지금과 달리, 굉장히 까칠하고 예민한 그의 성격과 합쳐져, 프로듀서 활동 초반엔 녹음하는 상대가수와 트러블이 발생하는 경우도 꽤나 잦았다.
- 강수지는 녹음하면서, 윤상때문에 2~3번 울었던 적이 있다. 사건인즉슨, 윤상이 작곡한 1집 보라빛 향기가 초대박이 나고 2집 흩어진 나날들 녹음 중,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음에도 윤상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녹음을 시키자 강수지는 "제대로 나왔잖아."라고 대꾸하였고, 이에 윤상은 "제대로 안 나왔잖아." 라고 받아쳤다고. 이어 윤상이, "이거 누구 노래야? 여기서 한 번 녹음하고 나온 이 노래, 평생 네 곡으로 남을텐데.. 이게 내 노래야?"라며 말을 덧붙이자, 이 말을 들은 강수지는 헤드폰을 벗고 녹음실을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윤상은 강수지가 얼마되면 다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해서 녹음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 기다리는데도 강수지가 안 들어오자 밖에 나가보니 그제야 울고있는 강수지의 모습을 보게되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며, 윤상은 그 사람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의 입장으로서, 두번째도 히트를 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입영열차 안에서를 부른 김민우 역시 윤상 때문에 녹음실에서 운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녹음본을 들려주고는 어떠냐고 묻는 윤상에게 김민우는 '괜찮은 것 같다'고 답했고, 이 말을 들은 윤상은 그에게 "집에 가라. 그냥." 이라 말했다고.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김민우가 울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꺼내며, 윤상 본인은 곡을 만든 작곡가 입장에서는 가수 본인이 녹음을 하다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할게요.' 라고 말하는 가수가 제일 좋다 밝히면서, 반대로 작곡가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네가 이런 녹음본을 설마 남겨서 음반 발매하고 싶다는거냐?'는 상태에서 '다 한 것 같은데요.'며 만족하는 듯한 태도를 갖고 있는 가수에게는 섭섭하다고 하는데, 김민우는 후자와 같은 케이스였기에 윤상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윤상은 지금에서야 그때 일을 생각해보면 김민우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4.2. 뮤지션들의 뮤지션[편집]
뮤지션들이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중의 한 명으로, 굉장한 완벽주의자에요. 정말 한땀 한땀을 점묘법으로 완성해가는데, 그것들이 주는 완성도에 많은 사람들이 압도되는.
1990년 내가 데뷔 했을때, 윤상은 이미 22살의 나이로 이미 우리 가요계를 한번 뒤집고 업그레이드 시켰다. 난 동료이기 전에 그의 팬이었고, 그는 김현철, 정석원 등과 함께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다. [45]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 윤종신
세상에서 형을 제일 좋아하는 팬 대회를 연다면 내가 1등할 자신있거든요, 그러니깐 나를 위해서라도 음악 좀 더 많이 만들어줘요. 더 듣고 싶어. 더 듣고 싶으니깐..
실제로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 중에 하나거든요. 제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게, "내가 여자로 태어났었으면, 난 윤상을 사귀었을거다."
~ 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절대 아니에요. 어깨 좁고 허리 긴 형!~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요. 정말 아이돌 음악부터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자양분이 많은 선배이자 최고의 뮤지션.
- 유희열
최고의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죠. 저는 윤상 씨 처음에 음원나올때, 그 테이프였어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어요. 일단 사운드가 기존에 쓰지 않았던 본인만의 독특한 사운드가 있고, 거기에 아날로그가 있어요. 예를 들어 첼로 소리가 들어간다거나, 동양적인 어떤 느낌이라던가.
저희가 공부할 때, 미디 공부를 하면, 항상 윤상씨가 대표적인 예였고, 비슷하게 흉내 내려고 많이 따라했었던.
윤상 선배님을 존경했어요.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가 컴퓨터 음악으로 시작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노영심 선배님이랑 같이 방바닥에 앉아서 찍은 음반있죠? 그 집에서 사진찍은건데 그것조차 너무 멋있었고, 그리고 그걸 갖다가 흑백화면을 보며 한음한음 제가 카피를 하며 음악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5. 음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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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음악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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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외 활동[편집]
6.1. 방송[편집]
2012년말 '1박 2일 시즌2'에 '가사도 음악회' 편에서 유희열, 윤종신과 함께 출연했다. 밴드명은 '유희열과 등대지기' 윤종신과 윤상의 '추대'에 의하여 유희열이 밴드 마스터를 맡았기 때문이다. 윤종신에 따르면 그의 리즈시절은 문민정부 전이었다고 하며 그리고 성시경은 깨알같이 "나 이사람 믿어주세요"라며 성대모사를 쳤다.
2012년 5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나와서 '방송에서 라이브로 이렇게 많은 노래를 부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말했으며 이후로 조금 뜸하다가 2014년 꽃보다 시리즈 후속 꽃보다 청춘에 출연하였다. 유희열, 이적과 함께 졸지에 페루로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떠났다. 윤상은 여타 출연자(유희열, 이적)들과 달리 잠자리, 화장실에 대해 불편해하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윤상의 불면증으로 인한 것이라한다. 20년 전부터 술을 꾸준히 마신 후 잠에 들었다고 할 만큼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으나 최근 몇달 전 부터 가족과 건강을 위해 끊었다며 심할 때는 약을 복용하며 견딘다고 한다.(꽃보다 청춘 2화 中) 약을 복용하면서 술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지만 부작용으로 소화기관에 이상이 생긴 듯. 이 사실을 들은 이적은 인터뷰 도중, 짜증을 낸 형에게 미안해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본인의 한계점에 부딪치며 넘어서려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다.
2014년 11월 157회 힐링캠프에 출연 했다.
2015년 5월 시작한 tvN의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에게 요리를 배우는 네 명의 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2015년 7월부터 2015 무한도전 가요제에 참가한다. 짝이 된 멤버는 정준하. 역시 7월부터 10주간 CGV의 무비 스토커라는 영화 토크쇼에 영화잡지 기자라는 컨셉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6년 원피스 팀의 일원인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함께 노래의 탄생의 참가 프로듀서로 출연하였다. 프로듀서로서 윤상이 면모를 드러내 방송 포맷에 어울리는 출연이었다면 호평을 받고 파일럿 프로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2016년 8월 11일 너의 목소리가 보여3에 출연하였다.
2016년 10월 엠넷의 '판스틸러'라는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2018년 3월 SBS 싱글와이프 시즌2 출연했다.
2018년 10월 7일 복면가왕 86차 경연부터 고정판정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6.1.1.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편집]
2011년 9월~12년 4월 방영된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2기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였다. 평소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감정적으로 화를 내진 않지만 무표정하고 냉정하게 짚을 것은 죄다 짚어 주는 편이라 독설 멘토로 위상을 날린다. 누군가가 말하길 다른 독설들은 그냥 기분 나쁘고 말거나 개인 취향으로 넘길 수 있지만, 윤상의 악평은 엑스레이로 스캔당하고 벌거벗겨져서 밑천이 탈탈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 한다.[47]
너무한 것 아니냐, 윤상이 저럴 줄 몰랐다, 반전이다 하는 말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윤상을 알아온 사람들에게는 크게 놀랄 것 없다. 보통 때는 소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완벽주의자 성향 때문에 본인 작품도 치열하고 진지하고 엄격하게 대하는 사람인데다가 작곡/제작 경력만 쳐도 20년이 넘어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함께 오래 활동했던 강수지는, 윤상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 일은 없지만 녹음시 정말 깐깐해서 같이 작업할 때는 항상 긴장했다고 한다.[48] 작업하던 여자 가수들 여럿 울렸으며 게다가 딱히 평 중에 억지춘향이거나 틀린 말을 한 것도 없다. 덕분에 방송 후 멘티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보니 멘티들이 다들 각잡고 초긴장 상태로 앉아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이승환, 윤하와 같이 고현정이 진행하는 Go Show에 출연했다. 여기에서 털어놓길, "악평을 한 참가자의 이유가 된 태도 등은 방송에 다 나오지 않고 자기가 악평하는 것만 나와서 자기만 나쁜 사람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집에서 간식 먹으면서 방송 보다가 목에 걸려서 쿨럭쿨럭...그리고 같이 출연하는 이승환에게 전화해서 2시간을 투덜거렸다고. 근데 녹화가 좀 길어지면 피곤해져서 배로 까칠해지는 경향이 있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같은 오디션 류 프로그램인 팬텀싱어에서는 그다지 독설가 포지션이 아니다. 독설은 뮤지컬 감독인 김문정과 오디션계의 베테랑(?)인 윤종신 쪽이 더 많이 날리는 편. 오히려 프로듀서들 중에서도 마이클 리와 더불어 심사기준이 독특하고 소수의견을 많이 낸다는 점이[49]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점과 단점을 굉장히 균형감 있게 조곤조곤 짚어주는 편이라 밑천이 털리는 경험을 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신예 뮤지컬 배우나 전문 성악가, 대학생들 중에서도 성악과나 실용음악과 등 음악 내공이 대중 오디션보다 높은 참가자들이 대거 참가하기에 윤상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말로 위대한 탄생이 악마의 편집을 해댄 것일 가능성도 있다. 본인은 그 당시엔 방송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서 필터링 자체를 생각에 두지 않고 다녔다고 한다. 팬텀싱어는 악마의 편집을 잘 안하는 편이다.
6.2. 라디오 DJ[편집]
이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MBC FM4U에서 오전 9시~11시에 “윤상의 음악살롱” 을 진행하며 윤마담이란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2010년 4월 19일부터 2013년 4월 30일까지 약 3년 동안 KBS 제2FM에서 오전 11시~12시에 '윤상의 팝스팝스' 진행을 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보다 록 중심이라면 윤상은 좀 더 소녀스러운 올드팝이나 월드 뮤직을 곧잘 틀어줬다.
이외에도 유희열이 진행하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성시경의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등에 게스트로 꽤 많이 오곤 했다. 특히 성시경은 유희열과 함께 그를 자주 초대했었다.[51] 특히 음악도시의 고정게스트 중 한명이었던 이준오는 성시경과 더불어 윤상 빠심을 인증한 바 있다. 라디오천국의 고정게스트였던 옥상달빛의 김윤주 역시 윤상에 대한 오랜 존경심과 빠심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2013년 12월 10일에는 두시탈출 컬투쇼에도 출연했다. 이 때 윤상은 초창기 음악을 하고 싶어 김현식에게 찾아갔던 일화라던가, 부인 심혜진과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때 "윤상 심혜진" 등이 인터넷 검색엔진에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뒤에, 음반 작업을 위해 버벌진트에게 자리를 넘겼다가 최다니엘의 진행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폐지.
2021년 7월 5일부터 2022년 12월 29일까지는 네이버 나우에서 오디오 쇼 '너에게 음악'을 진행하였다. 이는 윤상이 8년만에 다시 진행을 맡은 음악 프로그램으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바람.
6.3. 광고[편집]
- 2001년 리바트 (이현우, 김현철, 윤종신과 공동 출연)
- 2001년 랄프로렌 로맨스
- 2002년 LG텔레콤 파워요금제 (배용준과 공동 출연)
- 2003년 미로비젼 그녀에게
- 2003년 우정사업본부 우체국금융 (아내 심혜진과 공동 출연)
- 2011년 삼성전자 하우 투 리브 스마트 레슨 (아이유와 공동 출연)
- 2011년 월트디즈니특별전
- 2013년 삼성전자 갤럭시 S4
- 2014년 다음검색 (유희열, 이적과 공동 출연)
- 2014년 삼성화재 (유희열, 이적과 공동 출연)
- 2017년 사이게임즈 섀도우버스 (박나래, 개리, 윤건과 공동 출연)
- 2020년 뮤직카우
6.4. 서적[편집]
-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2009) - 윤상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의 일상생활을 담은 에세이이다.
- 음악 레슨:인생 연주 비법 - 빅터 우튼의 책을 부인인 심혜진 씨와 공동 번역했다.
6.5. 홍보대사[편집]
- 2016년 제1대 대구음악창작소 명예소장
7. 대인관계[편집]
7.1. 가족 관계[편집]
- 부인인 심혜진씨는 1975년생으로, 윤상의 7살 연하이다. 2002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는데, 윤상의 두번째 EP 앨범인 'Insensible'의 수록곡 '언제나 그랬듯이'의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심혜진씨와 뮤비를 촬영하며 배우와 가수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둘이 보자마자 서로 필이 꽂혔다는 것. 당시 소속사 사장이었던 이승환이 뮤비 촬영 기간 내내 회식을 주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윤상이 "앨범 나오면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으면서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도 했다고. 부인도 윤상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그때 전화번호도 주고, 윤상의 차가 고장 났을 때 본인 차로 태워다 줬다고 한다. 윤상의 직업적 특성이나 유학 시절 고생한 것 때문에 늘 부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언급하는 편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를 마쳤으며, 결혼 이후 연예계 활동은 접었다. 윤상이 아내의 연기활동에 대해 조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연기를 안 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며, 그렇기에 윤상은 지금에야 아내가 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면 적극 추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장남은 2004년생 이찬영 군으로 굉장한 훈남으로 성장하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부모님의 장점만 쏙 닮은 외모에 현재 미국 뉴저지주 주니어 수영선수를 하고 있어 피지컬도 좋은편이라 아이돌 뺨친다는 평을 듣는 중.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지라 한국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다. 방송에 공개 이후 수년간 꾸준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아이돌상’이라고 언급되며 외모로 주목받았다. 2021년 5월 tvN '곽씨네 LP바'에 출연한 윤상은 "아들이 원래 수영선수를 10년 동안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영선수를 못 하는 상황이 되자 '허락해주신다면 음악을 열심히 해보겠다'더라"고 아들이 음악으로 전향한 소식을 전했다.# 2023년 9월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신인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7.2. 인간 관계[편집]
같이 있으면 아빠와 아들을 연상케 하는 성시경이 라디오에서 술 마시면 아무나 붙잡고 뽀뽀를 해댄다며 폭로.
옥상달빛의 김윤주는 소문난 윤상 빠. 메이비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윤상이 출연하자 결혼하고 싶었다며 빠 인증.
캐스커의 이준오 역시 소문난 윤상 빠. 아이돌 관련 웹진인 아이돌로지에 이준오가 추천하는 아이돌 음악 편이 게시되었는데,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추천한 이유에 "윤상이십니다"라고 적었다. 근데 또 이 곡에 대해서 윤상 본인은 자기가 생각했던 의도와 크게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놀랐다고 한다. 원래는 시크하고 도시적인 발랄한 곡을 만들려고 했고, 보컬 디렉팅도 그렇게 했는데 음원이 나오고 뮤비가 공개되자 영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음악도시에서는 성시경과 이준오가 윤상 무한 찬양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성시경은 윤상이 기침도 멋있게 한다고 찬양하기도 했다.
하라는 방송은 안 하고 윤상 보컬 덕질하는 유희열, 김동률, 이상순.
015B의 정석원은 우리 시대의 음악인들 중 윤상에게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석원과 윤상은 같은 1968년생. 윤상 - 5월 11일생, 정석원 - 12월 23일생이다.
이승환은 윤상의 보컬에 대해서 느낌과 감정을 살리는 면에서는 윤상이 최고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윤상은 이승환의 대표곡들 중 하나인 당부의 편곡과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두 사람이 함께 이소은을 가요계에 데뷔시키는 것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7.3. 러블리즈의 아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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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분에 윤상은 멤버들의 개개인의 별명과 취향까지 잘 알 정도로 친밀해졌고, 러블리즈 멤버들 또한 항상 윤상에 대한 고마움과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5월 15일 SBS 인기가요 스승의 날 특집에서 MC들의 가장 러블리즈의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으로 윤상이란 대답으로 각별함을 보여줬고[54] , 후술할 복면가왕에 출연해 판정석에 있던 윤상을 만났던 베이비소울도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최근 들어서는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곡을 주셨음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윤상이 판정단으로 참여한 뒤, 러블리즈의 멤버들도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정체를 공개할 때마다 아빠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판정단으로 처음 참여했던 날엔 마침 베이비소울이 출연했는데,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벱솔의 보컬 특징[55] 을 설명했지만 확신을 갖지는 못 하는 모습이었다가, 베이비소울이 가면을 벗은 뒤 뒤늦게 "벱솔이 넌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다 김성주와 김구라, 그리고 베이비소울에게 반격을 당하며 맥을 못 췄다. 이때 "가능하면 남인 척하는 창법을 쓰지 않았....니?"하는 윤상의 회심의 질문에 라고 묻는 윤상의 질문에 "평소에 부르던 대로 했는데...ㅎ"라고 답하는 벱솔의 답변에 시무룩해하는 윤상의 표정이 백미. 그래도 약 3달 뒤 류수정이 나왔을 땐 수정의 보컬 특징을 정확히 설명[56] 하면서 추리에 성공했다.
윤상과 러블리즈의 돈독한 관계 때문에 '미리 좀 알려주지'하는 원성도 듣지만, 노래 잘 한다는 평도 항상 따라온다. 거기에 매우 흐뭇해하는 윤상의 아빠미소는 덤.
2022년 11월 23일 너에게 음악 러블리즈 데뷔 8주년 방송에서 밝히기를 2014년 여름에 러블리즈 멤버들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믿게 하려는 생각으로 '너희들은 날 모르겠지만 너희 부모님은 날 잘 알 거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멤버들 중에 실제로 부모님에게 물어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8. 여담[편집]
- 1990년대 초반에는 오빠부대 아이돌이었지만 의외로 스캔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유인즉슨 학생 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받았던 선물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난 공부 잘하는 애가 좋지 기타 잘 치는 애는 별로야” 라고 해서, 차였다는 것 보다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음악가를 꿈꿨는데 그게 폄하된 것에 충격을 받아 여자에게 거의 맘 닫고 살았다 카더라...라는 건 본인 얘기고, 그 외모에 연애를 안 했을 리가 있나. 신해철은 윤상의 호스트스테이션이라는 드립을 쳤으며 윤종신은 “윤상이 초식남? 유희열과 더불어 초육식남이다” 라고 폭로했다.
- 윤상은 90년대 초에 자신이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것에 지쳐서 예능에 거리감을 두다가 2000년대부터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예능에 발을 다시 담그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본인의 의사가 강했다. 조용하고 잔잔한 이미지를 탈피해 "나도 좀 웃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앞서 서술되었듯, 당시 시트콤 연기를 도전하고 모 토크쇼에도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등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한다. 다만 본인은 흑역사로 생각하는듯하다. 이후 윤종신이 본격적으로 예능을 하는 걸 보고 좀 안쓰러웠다는데, 생각보다 훨씬 대박이 터져 윤종신의 본업을 모르고 개그맨인줄 아는 세대가 등장할 정도가 되었으니 참고로 윤종신은 윤상과 달리 원래부터 예능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유희열에겐 "내가 그러는 걸 봐서 니가 손 안 대고 코푼 거다"라고 말했었는데 유희열은 그 이전에 뮤직비디오나 라디오에서 충분히 망가져왔었고 윤종신처럼은 아니지만 예능계에 나름 안착한 셈이다.
- 원피스를 좋아한다. 실제로 본인이 짰던 작곡팀의 이름이 1Piece(원피스)기도 하며, 그 모티브를 만화에서 따온 것이 맞다고 인정하기 까지 했다. 자신이 여기서 루피 역할이라고 한다. 무한도전에서 파트너 정준하와의 만남 도중 그의 작업실에 몽키 D. 루피 피규어, 퍼스트 건담의 건담헤드 등이 진열되어있는 것으로 모자라 집밥 백선생에서 숙제로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주방 수납장에는 밀짚모자 해적단 마크가 있고 거실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졸리 로져가 걸려 있다.
- 무한도전에서 비판을 받으면 희열을 느낀다며 심지어는 더 거칠게 다뤄달라고도 했다. 곽씨네 LP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주는 감정 또한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 사용하는 베이스 기타는 초기엔 뮤직맨 스팅레이와 '큐비키(Kubicki)'社의 'Ex-Factor'를 사용했으나, 이후엔 Moollon의 Jazz Bass를 사용한다. 위의 해골 스티커가 붙은 베이스다.
- 2014년 12월 19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당시, 신민아가 혼자만의 겨울을 부를때 건반 연주를 하다가 노래가 끝날 즈음에 코피를 흘렸다.(?!)[58]
- 입맛이 상당한 초딩 입맛이다. 떡볶이를 좋아한다. 수요미식회 떡볶이편에 나오기도 했다.
- 생각보다 뉴스 시그널 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2017년 2월 19일부터 사용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의 오프닝 타이틀 곡을 작곡한 것은 물론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기도 했다. #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다.
- 본명은 예명으로 '윤상'을 택한 이유는 주영형 유괴 살인 사건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윤상은 피해자 이윤상과 나이도 비슷했기에[59] 더욱 이름을 피할 이유가 있던 것.
- 나이에 비해 동안인 편이고 사실 데뷔 때랑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근데 하필이면 윤상의 주변 인물들에 이승환, 김정민, 신승훈 등을 비롯한 초동안 연예인들이 있어 묻혀 노안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보면 알듯이 윤상 또한 50대의 나이로는 안 보이는 동안 외모의 소유자이다. 윤상 본인도 평소에는 실제 나이보다는 어리다는 말을 듣지만 다른 이들 옆에만 있으면 노안 소리를 들으며 억울해하기도 했다. 특히나 이승환과 윤상은 3살차이로, 이승환이 윤상보다 형이지만, 외모만 보고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윤상이 이승환을 보며 호칭을 '형'이라 하자 이를 몰랐던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했고, 이에 윤상이 충격받기도 했다. 위대한 탄생때는 주변에서 하도 이승환과 외모 비교를 한 것도 모자라, 윤상의 팬들마저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피부만 어떻게 해달라며 부탁하자, 윤상 본인도 부끄럽다며 처음으로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 팬텀싱어 전 시즌의 심사위원을 맡았으나 정작 그 참가자들이 복면가왕에 나오면 알아보는 경우가 적다.[60] 오히려 서울대 참가자들 선배인 카이와 팬텀싱어와 연관없는 김현철이 맞췄다.[61] 170차 경연에 백형훈이 참가했을 때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보였다.[62] 이는 슈퍼밴드도 마찬가지며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방송만 여러 개라 그런 듯.
- 펭수를 좋아하는 '펭클럽'의 회원인듯하다. 펭수가 크리스마스 캐롤송 프로젝트에서 음악의 프로듀서, 즉 음악대의 단장 역을 제안하자 이를 흔쾌히 승락하기도 했으며, 프로젝트 내내 펭수를 칭찬, 격려하고 콩깍지 제대로 씌인 모습을 보이며 덕질을 하였다. 이후 비하인드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20년 초부터 펭수 빵과 우유만 골라먹었을 정도라고 한다.. 동물음악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펭수가 엣헴송을 부르자, 직접 들었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이후 펭수는 윤상이 진행하는 너에게 음악에 초대되어 다시 한번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다.
- 성격은 대체로 소심 만렙. 본인의 작업 스타일에 걸맞게 사소한 것에 신경질을 잘 부리는 듯하다. 왕년엔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앞차 옆차 운전을 열을 올리며 욕했다고 한다. 정작 운전자는 가만히 있는데도. 심지어 부인과 연애 중 기사가 터지자 패기돋게 장인 장모 인사를 가기는 커녕 "어...어떡하지;;" 하다가 1년이 흘러 빡친 부인이 미국으로 가버린 적도 있다. 물론 이후엔 나이도 먹고 가정도 있어서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한다. 이런 소심함 덕에 1박 2일에서 귀여움 터지는 아저씨 면모를 보여주었다. 조근조근 단호박 돋게 할 말 다 하는 편. "내가 다시는 너랑 '테레비' 안한다"
- 활동명이 윤상이라서 성을 윤씨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들인 앤톤의 데뷔 이후 아들의 한국이름(이찬영)으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은 편으로 방송인 송은이와 김숙도 본인들의 팟캐스트에서 앤톤의 데뷔와 한국이름을 이야기하다 윤상의 본명이 '이윤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윤상 오빠한테 속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68년생임에도 180cm라는 (그 시대상) 굉장히 큰 키를 가졌다. 아들 둘 다 이러한 윤상의 유전자 덕분인지 굉장히 장신이다.[63] 장남인 앤톤은 184cm, 차남은 2009년생임에도 불구하고 2023년 기준 179cm이다.
9. 수상 경력[편집]
- 2011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특별상
- 2012 제2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올해의 작곡가상
- 2015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상
- 2018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 2019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10.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10.1. 표절 판정[편집]
“이별의 그늘”은 공개 당시부터 히사이시 조의 “천공의 성 라퓨타”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언론에도 거론되었으나# 이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64]
하지만 윤상이 변진섭에게 작곡해 준 "로라"는 명백하게 일본 아이돌 사이토 유키의 "정열"이라는 곡과 매우 유사해, 결국 1993년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서 사이토 유키의 정열(情熱)을 표절 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65] 이때문에 모 방송에서 변진섭 다큐를 방영할때 MBC 방송국 자료실에서 변진섭 2집 씨디를 꺼내서 뒷면을 보여주는데, ‘로라’에 <금지곡>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윤상은 "정열"의 싸비 맨 끝 부분 멜로디(愛が燃えてる)를 자신의 3집 곡 '우연히 파리에서'의 싸비 맨 끝 멜로디(너도 깜짝 놀랐을 테니까)에 똑같이 썼다. 이쯤 되면 실수가 아닌 고의임이 명백하다. 변진섭 역시 로라를 재편곡해서 다른 앨범에 싣거나 콘서트나 방송에서 부르는 등 아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무한도전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상주나 (feat. 효린)" 명의로 발표한 곡 "My Life"가 일본 globe의 곡 still growin' up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 멜로디를 베꼈다기보다는 전반적인 구성이나 악기 편성이 유사하다.
10.2. 병역 논란[편집]
표절 논란과 더불어 그의 또다른 흑역사 중 하나. 1987년 신검을 받고 1급 판정을 받았는데,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 연기를 해 오다가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왔다. 문제는 이 무렵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해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것. 이에 따라 이민으로 처리되었는데도, 계속 국내 활동을 하는 바람에 추적을 받았다. 당시 DJ로 진행 중이었던 '디스크 쇼'에서 하차하고 잠적 후 도피하기도 했지만, 결국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 육군 현역으로 입대하여 만기 전역했다. 검찰은 1993년 10월 윤상을 병역기피 혐의로 수배했으나 12월 말 대한민국 육군보충대에 입대한 사실을 확인해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관련 기사)
이런 과거 때문에 "입대 전 서류까지 위조하면서 병역기피를 시도한 인물을 굳이 2018년 평양 공연의 단장으로 임명했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
10.3. 방자경의 종북몰이[편집]
2018년 4월에 대한민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3월에 공동경비구역(JSA·판문점) 북한 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실무 접촉을 했다. 이때 윤상은 대한민국 예술단 음악 감독 자격으로 박형일 통일부 국장, 박진원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함께 실무 접촉 회담에 참석했다. 그러자 3월 18일 방자경 나라사랑바른학부모실천모임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라는 글을 작성하였고, 윤상을 종북 이미지와 연관지으려 시도해 논란이 되었다. #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손석희가 언급하기도 하였다. #"문보궐정권은 반 대한민국 세력들과 한편 먹는데 남북실무접촉 남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 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간첩 윤이상, 5.18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금 받고 월북한 대동고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18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66]
하지만, 윤상의 본명은 제일 위의 표에도 적혀 있듯, '이윤상'으로 윤씨가 아니다. 그가 윤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여담 항목에 따로 후술하겠다만,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는 정보를 조사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까내리기를 시전한 것. 그리고 애초에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는 김종률로 윤이상과는 관련이 없다.
이에 방자경은 19일 "주적 북한에 가서 공연하겠다는 윤상 씨에 대해 올린 글 중 정정할 부분이 있습니다"라면서 "윤상 씨는 본명이 윤상이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잘못을 인정하였다. 또한 19일과 20일 2번에 걸쳐 SNS에 "윤상 씨를 종북으로 글 쓴 사람처럼 허위기사들로 도배됐다"라고 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