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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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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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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 재단
주요 3대 이념의 분파 (사회주의 · 자유주의 · 보수주의)



1. 개요
2. 역사
2.1.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
2.2.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3. 중국의 보수주의 정당
4. 중국의 보수주의자
5. 본토 외 중화권의 보수주의
5.1. 대만(중화민국)
5.2. 싱가포르
5.3. 홍콩
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중국의 보수주의(中国保守主义 / 中國保守主義)[1]중국중화권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의 한 형태이다.

본 문서는 일반적인 중국과 중화권의 보수주의와 우파, 그리고 중국 공산당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까지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2. 역사[편집]



2.1.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편집]


중국의 보수주의는 중국에 현대적인 정치가 도입되면서 나타났다. 신해혁명 이후에는 친 왕당파 세력, 민국 전기의 위안스카이 지지 보수주의 세력이 대표적이였다. 당시 쑨원 쪽 중국국민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가까웠기 때문에 보수주의라고 보기 어렵다.[2]

중국 국민당 내에서 보수주의 계파는 당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았고, 당 내 우파를 형성했다. 국민당 보수주의는 친청 왕당파나 위안스카이 파벌과 달리 유교문화보수주의+공화주의+반공주의에 기반했다. 공산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 자유주의 세력[3]까지 모두 껴안을 수 있었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지닌 온건 사회주의자 쑨원의 사후, 보수주의 파벌이 당의 주류를 장악하게 되었고, 당 내 좌파였던 공산주의자들은 비주류로 밀려나거나 탄압당했다.

1920년대에는 중국의 보수주의는 후한민이 주도했는데, 당시 국민당 우파의 집결지였던 서산회의파의 중추인 셰츠, 쉬충즈 등이 이에 해당하였다. 장제스는 의외로 초기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중국 공산당에 다소 용공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지만, 이들은 아예 국공결렬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확고한 우파였다. 이후 장제스는 4.12 상하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민당 우파들의 지지를 끌어냈고, 후한민을 밀어내고 국민당 보수파의 거두가 되었다.

당시 국민당 우파나 국민당 좌파 같은 명칭은 자칭이 아닌, 코민테른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의 파벌을 구분하기 위해 붙인 것인데 실질적으로 좌우 구분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2.2.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편집]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뒤에 우파의 정치적 이념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반공주의자들은 국부천대를 따라 대만으로 건너가거나, 홍콩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후에 중국 본토에서는 반우파투쟁 등의 핍박이 있었고, 특히 문화대혁명 등으로 보수주의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중국의 보수주의가 부활하게 된 것은 개혁개방 이후부터이다. 중국 공산당은 소위 '중국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공식적인 정치 체제는 공산주의 일당독재라곤 하지만, 실질적으론 완전히 보수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로 급변하였고, 마오쩌둥 시절 탄압당했던 유교적 가치들을 중국의 미덕으로써 장려했으며,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를 지향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제대로된 마르크스주의와는 억만년은 떨어져 있는 것이고 오히려 문화적 보수주의(특히 신유교주의)나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자칭 사회주의 이념들이나 정책들이나 학자들은[4] 신권위주의(Neoauthoritarianism),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5] 새보수주의(New Conservatism)라는 별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운운하면서 실질적으로 추구하는 중국식 보수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 가치와 충돌하는 고전적 보수주의에 가깝다고 평가받는다.[6]

적의 적은 아군이란 개념 때문인지 캐나다, 미국 등에 정착한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 중에는 극우 보수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까오창칭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3. 중국의 보수주의 정당[편집]



3.1. 과거의 정당[편집]



3.1.1. 중화민국 시대[편집]



3.2. 중화인민공화국 시대[편집]


  • 중국 공산당 일부[7]
  • 중국 민주당 일부[8]

3.2.1. 마카오[편집]



3.2.2. 홍콩[편집]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건제파
, 본토파
, 홍콩의 보수주의
,
,
,



4. 중국의 보수주의자[편집]




5. 본토 외 중화권의 보수주의[편집]



5.1. 대만(중화민국)[편집]


대만으로 건너간 중국 국민당은 여전히 보수우파 위치에 서 있으나, 본성인들 사이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 민주진보당이 반중 포지션을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 공산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친공으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중국 국민당이 국공내전으로 싸우던 시절의 기억이 강한 탓인지 여전히 반공우파 정당으로 기억하는 경우도 여전히 있기도 하다.


5.2. 싱가포르[편집]


싱가포르에서는 인민행동당이 건국 이래 계속 정권을 차지하여 보수우파의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


5.3. 홍콩[편집]


홍콩의 우파,보수주의 진영 역시 대만과 비슷하게 중국 공산당에 우호적인 세력으로 바뀌었다. 홍콩 반환 이전에는 홍콩의 좌익 세력들이 영국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공산당과 연대하던 것과 달리,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정치적인 조건이 달라진 탓이다. 현재 홍콩에선 좌익 세력을 주축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이뤄지고 있는 편이다. 홍콩의 우파 정당으로는 민주건항협진연맹, 홍콩 경제민생연맹, 신민당(홍콩) 등이 있다.


6. 같이 보기[편집]





[1] 간체 / 정체[2] 물론 쑨원은 (좁은 의미의) 자유주의자도 아니다. 국내에서 쑨원이 자유주의자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그는 자유주의에 열정적이지 않았다. 쑨원의 삼민주의는 그보다는 온건한 형태의 민주사회주의에 가깝다는 서구 학계의 평가가 많다. 즉, 당시 국민당 중도파들의 주류는 자유주의자들보다 비공산 사회주의자들이 더 주축이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국민당 주류가 서구 제국주의에 반대한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문화적으로 더 좌파였으나 서구세력이 중국의 문화적 보수주의를 깨뜨릴 영향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제국주의에 크게 저항적이지는 않았다.[3] 후스 등이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다. 다만 이러한 리버럴들은 제국주의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등 우파적인 면모도 보였지만 쑨원 같은 온건 사회주의자들보다 정치,문화적으로는 더 좌파였기 때문에 국민당 내 우파라고 평가받지는 않는다.[4] 사회주의를 겉표면에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 보수주의로 나아가는[5] 여기서 말하는 신보수주의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와는 연관이 없다.[6]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도 불리는 중국식 집산주의자본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며, 중상주의와 봉건적 자본주의와의 유사성이 있다. 유교적 보수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평민 대중들에게 주권을 내줄 수 없다고 귀족들(중국에선 공산당원들과 자본가들) 이익만 챙기고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성격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고전적 보수주의랑 비슷하다.[7] 신유교주의, 신보수주의(신권위주의)[8]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