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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원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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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함원대군은 조선 익조의 셋째 아들이다. 봉호는 왕조의 발상지인 함흥에서 따왔다.
2. 생애[편집]
함원대군(咸原大君)은 조선 익조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이송(李松)이다. 고려 때 작위가 숭록대부(崇祿大夫)까지 올라갔다.
1392년, 태조에 의해 개국 직후 대군으로 추봉되었다.
전주 이씨 함원대군파의 파시조이다.
3. 묘소[편집]
묘소는 신흥군 서고천면 창동 손좌에 있다. 그러나 있는지는 미지수.
4. 가족관계[편집]
부인 : 정경부인 주씨 (貞敬夫人 朱氏, ? ~ ?)
장남 : 전평군 이상(全坪君 李尙, ? ~ ?)
차남 : 전창군 이보개(全昌君 李甫介, ? ~ ?)
함원대군은 2남을 두었다. 장남은 전평군(全坪君) 이상(李尙)이며, 차남은 전창군(全昌君) 이보개(李甫介)이다. 전평군 이상은 외아들 영녕군(永寧君) 이진을 낳았으며 다시 외아들인 완의군(完義君) 이귀순(李貴順)을 낳았다. 전창군 이보개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은 영완군(永完君) 이철(李哲)이며 차남은 영남군(永南君) 이부(李富)이다. 영완군 이철은 완신군(完信君) 이귀순(李貴順)이라는 외아들을 낳았으며, 영남군 이부도 역시 서성군(西城君) 이대중(李大中)이라는 독자를 낳았다.
함원대군의 증손자인 서성군은 1334년(고려 충숙왕 복위 3)에 출생하였고 정용랑(精勇郞) · 조선 원종공신 · 공조전서(工曹典書) · 병조판서 · 종부시 도제조 등의 벼슬을 하였으며, 정부인 신안주씨와 혼인하여 아들 천우(天祐)를 두었고 묘소는 창동 손좌에 있다. 서성군의 8세손에 철견(喆堅)과 철강(喆江)이 있으니, 철견은 신흥군파(訊興君派)의 중시조가 되고, 철강은 함흥주지파(咸興朱地派)의 중시조가 되었다.
5. 후손[편집]
이 파의 후손들은 함흥을 비롯하여 홍원(洪原) · 안변(安邊) 등지로 퍼져 나갔고 멀리는 평북 강계(江界)까지 이주하여 살았다. 다만 인구가 별로 없다.
한국전쟁 이후로 월남한 후손의 약 40세대가 모여 함원대군파 종친회를 결성하여 1988년 무진보를 편찬했다. 참고로 국립중앙도서관에 함원대군과 관련된 족보는 5종류가 있는데#, 기록이 파편화되어 아직 월남한 종친을 아우르는 족보는 없다.
[1] 주성강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