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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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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유주의 정당
국민 생활이 제일일본 미래당생활당
감세일본 반TPP 탈원전을 실현하는 당
국민신당

파일:일본 미래당 로고.png
日本未来の党(にほんみらいのとう | 일본 미래당
영문 명칭Tomorrow Party of Japan: TPJ
약칭未来(미래)
한글 명칭일본 미래당
슬로건だれもが希望をもてる未来を。
누구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미래를.
창당일2012년 11월 28일
해산일2012년 12월 27일
전신국민 생활이 제일, 감세일본 반TPP 탈원전을 실현하는 당, 국민신당
후신생활당, 일본 미래당
이념녹색 정치, 탈원전, 반TPP, 소비세 동결
스펙트럼중도좌파
주소도쿄도 나카노구 나카노4초메 7-3
(東京都中野区中野四丁目7-3)
대표가다 유키코
대표대행이이다 테쓰나리
참의원8석 / 242석 (3.3%)
중의원9석 / 480석 (1.8%)
SNS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노선
3. 역사
3.1. 정당
4. 역대 대표
5. 기타
6. 둘러 보기



1. 개요[편집]


파일:오자와 이치로.svg오자와 이치로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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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S001090.jpg

일본정당. 2012년 당시 중원선을 앞두고 민주당 오자와 그룹가다 유키코 시가현지사가 만든 정당이다.


2. 노선[편집]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답게 노선이 일정하지 않다. 미래당 당시에는 제3지대를 주장했다. 원자력 발전소 폐기를 주장하고 생태주의를 주창하며 TPP 반대를 내보이는 등 진보 성향도 있지만, 당의 중심인 오자와 이치로자민당, 신진당, 자유당 때는 보수 인사이기도 했다.[1]


3. 역사[편집]





3.1. 정당[편집]


가다 유키코 시가현 지사가 창당한 정당이다.

2012년 11월 27일, 가다가 결성을 발표하고 아울러 당론으로 '비와코 선언'을 발표했다. 이듬해 11월 28일 8명의 국회의원으로 창당했다.

여기에 국민 생활이 제일(오자와 이치로 계파 의원) + 감세일본·반TPP·탈원전을 실현하는 당(감세일본[2]+민주당에서 탈당한 야마다 마사히코 전 농림상[3]+국민신당을 탈당한 가메이 시즈카) + 사민당을 탈당한 아베 도모코[4] + 녹색바람에서 탈당한 의원 일부가 합류하였다. 당시 이나모리 가즈오, 사카모토 류이치, 스가와라 분타 등의 인사들이 지지를 표명했다.#

우선 민주당에서 탈당한 이후 당을 급조했지만,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과 함께 쫄딱 망했다. 121명을 공천했으나 원래 62석이었던 중의원 의석이 9석으로 쪼그라드는 대참패. 물론 원판인 민주당도 231석에서 57석으로 줄어들었긴 했지만, 선거의 화신으로 불리던 오자와 이치로가 직접 만든 정당이 두자리도 못되는 의석으로 쪼그라드는 대참패를 당한 것. 오자와 이치로는 중의원에 이와테현 제4구에서 아슬아슬하게 당선은 됐지만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장나 버렸다는 평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민주당 계열이 뭉쳤어도 자민당에 대패할 것이 확실했던 상황에서 굳이 민주당과 미래당으로 쪼개지고 말았고 결국 대패함으로써(...) 민주당 정권의 처참한 인기를 다시 한번 못 박아 확인시켜준 셈.

선거 후 가다와 오자와의 사이는 나빠지면서 서서히 분열이 되었다. 가메이 시즈카녹색바람으로 탈당했고, 24일 가다는 시가현청에서 미래당을 분당하기로 결정, 오자와계 의원 15명이 생활당을 창당, 아베 도모코와 가다는 정치단체 일본 미래당을 설립하게 된다.

결국 오자와는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 사임 및 자진 탈당을 하였다.# 한편 2012년 12월 25일 민주당 대표로 가이에다 반리가 뽑히면서 민주당에 흡수합병 가능성이 상당히 올라갔다. 결국 12월 27일 해산했다.

4. 역대 대표[편집]


파일:일본 미래당 로고.png 일본 미래당 대표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width=50%> 1-2대
가다 유키코 || 3대
아베 도모코 ||
||<-3><bgcolor=#fff,#111> ||





5. 기타[편집]


여담으로 미래당에서 진행한 인터넷 투표에서 "원전의 추진에 찬성합니까?"와 "소비세 증세에 찬성합니까?"[5] 이 두 질문에 네티즌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일이 있었다[6].#


6. 둘러 보기[편집]


||
[ 임기 개시 ]

[ 임기 중기 ]
[ 임기 종료 ]


||
[ 임기 개시 ]
[ 임기 종료 ]

제2차 아베 신조 개조 내각
(2014)
연립여당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자유민주당

295석
파일:공명당 로고 (white).svg
공명당

31석
야당
파일:민주당(일본 1998년) 로고.svg
민주당

63석
파일:유신당_배경.png
유신당

42석
파일:차세대당_투명.png
차세대당
19석
파일:일본 공산당 흰색 로고.svg
일본공산당

8석
파일:생활당_투명.png[[파일:생활당_투명2.png
5석
파일:社民党ロゴwhite.svg
사회민주당

2석
무소속
15석
재적
480석
/ 공석
0석





[1] 신진당과 1998년 자유당은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 성향이었다.[2] 카와무라 타카시 나고야 시장에 의해 창당된 지역정당[3] 오자와 신당에는 합류하지 않았다.[4]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와의 갈등이 있었다.[5] 당연히 미래당의 입장은 둘 다 반대였다.[6] 투표의 전개 양상과 그에 대한 미래당의 대응까지 파맛 첵스 사건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