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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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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즈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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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그래미 시상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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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신인상
제12회
(1970년)
제13회
(1971년)
제14회
(1972년)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쉬카펜터즈칼리 사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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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5년 가장 위대한 듀오 20팀을 선정한 순위다.
1위2위3위4위5위
에벌리 브라더스아이크 & 티나 터너사이먼 앤 가펑클루빈 브라더스에릭 B & 라킴
6위7위8위9위10위
화이트 스트라입스아웃캐스트리차드 & 린다 톰슨리 헤이즐우드 & 낸시 시나트라카펜터즈
11위12위13위14위15위
오티스 레딩 & 칼라 토마스다프트 펑크수어사이드샘 & 데이브스틸리 댄
16위17위18위19위20위
라이처스 브라더스로버트 프립 & 브라이언 이노소니 & 셰어애쉬포드 & 심슨더 블랙 키스
출처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 1위 – 125위 ]

※ 2019년 빌보드에서 빌보드 창간 125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를 공개했다. 얼마나 많은 싱글과 앨범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오래 유지했는가를 누적치로 계산하여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영향력이나 음악성과 같은 평론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것은 아니며 순전히 상업적인 성공도가 기준이다.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롤링 스톤스엘튼 존머라이어 캐리마돈나
6위7위8위9위10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마이클 잭슨테일러 스위프트스티비 원더시카고
11위12위13위14위15위
휘트니 휴스턴폴 매카트니엘비스 프레슬리자넷 잭슨로드 스튜어트
16위17위18위19위20위
드레이크프린스리아나빌리 조엘가스 브룩스
21위22위23위24위25위
허브 앨퍼트에미넴어셔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닐 다이아몬드
26위27위28위29위30위
슈프림즈이글스비 지스비치 보이스플리트우드 맥
31위32위33위34위35위
산타나템테이션스셀린 디옹아레사 프랭클린홀 앤 오츠
36위37위38위39위40위
아델비욘세에릭 클랩튼라이오넬 리치레드 제플린
41위42위43위44위45위
브루노 마스존 덴버마룬 5올리비아 뉴튼 존본 조비
46위47위48위49위50위
필 콜린스다이애나 로스밥 딜런존 멜렌캠프JAY-Z
51위52위53위54위55위
도나 서머니켈백보이즈 투 멘카펜터즈저스틴 비버
56위57위58위59위60위
레이디 가가포리너브리트니 스피어스핑크앨리샤 키스
61위62위63위64위65위
케이티 페리마일리 사이러스잭슨 파이브어스 윈드 앤 파이어마빈 게이
66위67위68위69위70위
U2린다 론스태드밴 헤일런밥 시거에어로스미스
71위72위73위74위75위
블랙 아이드 피스넬리캐롤 킹저스틴 팀버레이크몽키즈
76위77위78위79위80위
케니 로저스하트팀 맥그로배리 매닐로R. 켈리
81위82위83위84위85위
저니사이먼 앤 가펑클마이클 볼튼에드 시런켈리 클락슨
86위87위88위89위90위
핑크 플로이드메리 제이 블라이즈카니예 웨스트쓰리 도그 나이트
91위92위93위94위95위
코모도스폴라 압둘브라이언 아담스크리스 브라운건즈 앤 로지스
96위97위98위99위100위
데프 레파드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린킨 파크제임스 테일러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101위102위103위104위105위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폴 사이먼백스트리트 보이즈릴 웨인캐리 언더우드
106위107위108위109위110위
앤디 윌리엄스스틱스조지 마이클셰어TLC
111위112위113위114위115위
샤니아 트웨인두비 브라더스포 시즌스피터 폴 앤 메리케니 체스니
116위117위118위119위120위
데스티니스 차일드50 센트레이 찰스제네시스더 폴리스
121위122위123위124위125위
래스컬 플래츠루다크리스글로리아 에스테판조지 해리슨앨런 잭슨
{{{-2 출처 같이 보기: 빌보드 차트 올타임 아티스트 -
앨범, 싱글, 남성(싱글), 여성(싱글)}}}




[ 1위 – 100위 ]

※ 2019년 빌보드가 발표한 빌보드 Hot 1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순위다. 얼마나 많은 곡들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유지했는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싱글을 많이 낸 뮤지션들이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마돈나엘튼 존엘비스 프레슬리머라이어 캐리
6위7위8위9위10위
스티비 원더자넷 잭슨마이클 잭슨휘트니 휴스턴리아나
11위12위13위14위15위
드레이크롤링 스톤스폴 매카트니비 지스어셔
16위17위18위19위20위
시카고슈프림즈프린스홀 앤 오츠로드 스튜어트
21위22위23위24위25위
테일러 스위프트올리비아 뉴튼 존아레사 프랭클린마룬 5마빈 게이
26위27위28위29위30위
케이티 페리필 콜린스빌리 조엘브루노 마스다이애나 로스
31위32위33위34위35위
포 시즌스템테이션스도나 서머비치 보이스라이오넬 리치
36위37위38위39위40위
닐 다이아몬드카펜터즈저스틴 비버잭슨 파이브보이즈 투 멘
41위42위43위44위45위
코니 프랜시스브렌다 리더 위켄드비욘세크리스 브라운
46위47위48위49위50위
케니 로저스바브라 스트라이샌드브라이언 아담스셰어블랙 아이드 피스
51위52위53위54위55위
조지 마이클핑크바비 빈튼존 멜렌캠프레이디 가가
56위57위58위59위60위
쓰리 도그 나이트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글로리아 에스테판/마이애미 사운드 머신본 조비처비 체커
61위62위63위64위65위
레이 찰스포리너쿨 & 더 갱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리키 넬슨
66위67위68위69위70위
듀란 듀란저스틴 팀버레이크코모도스이글스TLC
71위72위73위74위75위
폴 앵카에미넴배리 매닐로디안 워윅넬리
76위77위78위79위80위
하트포스트 말론아리아나 그란데에벌리 브라더스카니예 웨스트
81위82위83위84위85위
바비 다린R. 켈리제임스 브라운폴라 압둘켈리 클락슨
86위87위88위89위90위
앨리샤 키스에드 시런린다 론스태드리처드 막스데스티니스 차일드
91위92위93위94위95위
셀린 디옹JAY-Z미라클스디온플리트우드 맥
96위97위98위99위100위
밥 시거/실버 불릿 밴드닐 세다카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포인터 시스터스존 덴버
{{{-2 출처 같이 보기: 빌보드 차트 올타임 아티스트 -
아티스트, 앨범, 남성(싱글), 여성(싱글), 2018년}}}




[ 1위 – 60위 ]

※ 2019년 빌보드에서 빌보드 창간 125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아티스트를 공개했다. 얼마나 많은 싱글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오래 유지했는가를 누적치로 계산하여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영향력이나 음악성과 같은 평론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것은 아니며 순전히 상업적인 성공도가 기준이다.
1위2위3위4위5위
마돈나머라이어 캐리자넷 잭슨휘트니 휴스턴리아나
6위7위8위9위10위
슈프림즈올리비아 뉴튼 존아레사 프랭클린케이티 페리테일러 스위프트
11위12위13위14위15위
다이애나 로스도나 서머카펜터즈코니 프랜시스비욘세
16위17위18위19위20위
브렌다 리바브라 스트라이샌드셰어핑크글로리아 에스테판
21위22위23위24위25위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레이디 가가TLC디안 워윅하트
26위27위28위29위30위
폴라 압둘앨리샤 키스켈리 클락슨린다 론스태드데스티니스 차일드
31위32위33위34위35위
셀린 디옹포인터 시스터스캡틴 앤 테닐브리트니 스피어스토니 브랙스턴
36위37위38위39위40위
제니퍼 로페즈크리스티나 아길레라아델모니카헬렌 레디
41위42위43위44위45위
신디 로퍼로버타 플랙테일러 데인니키 미나즈메리 제이 블라이즈
46위47위48위49위50위
티나 터너데비 깁슨시나 이스턴케샤칼리 사이먼
51위52위53위54위55위
브랜디마일리 사이러스페툴라 클라크퍼기나탈리 콜
56위57위58위59위60위
알리야베트 미들러아샨티앤 머레이펫 베네타
{{{-2 출처 같이 보기: 빌보드 차트 올타임 아티스트 -
아티스트, 앨범, 싱글, 남성(싱글), 20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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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카펜터즈
The Carpenters
분야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음악 심볼.jpg 음악
입성날짜1983년 10월 12일
위치6931 Hollywood Blvd.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파일:카펜터즈 로고.png카펜터즈
The Carpenters
||
파일:카펜터즈.jpg
▲왼쪽부터 캐런 카펜터, 리처드 카펜터
국적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결성
1966년
미국 파일:캘리포니아 주기.svg캘리포니아 주 다우니
데뷔1969년
데뷔 싱글 Looking for Love
데뷔 앨범
활동 기간1969년1983년
멤버
캐런 카펜터 (보컬, 드럼)
리처드 카펜터 (피아노)
장르, 소프트 록
레이블
링크파일:카펜터즈 로고.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앨범
4. 싱글
4.2. 빌보드 핫 100 2위
4.3. 빌보드 핫 100 3위~10위
4.4. 빌보드 핫 100 11위~20위
5. 여담



1. 개요[편집]


파일:카펜터즈 라이브.jpg
리처드 카펜터와 캐런 카펜터 남매로 구성된 미국의 팝 그룹.


2. 상세[편집]


1970년대를 장악한 세 개의 가족 그룹 중 하나이다.[1] 1969년Ticket to Ride#[2]로 데뷔했다. 오빠 리처드가 피아노, 백업 보컬, 작곡, 편곡을 맡았고[3] 여동생 캐런이 보컬과 드럼을 맡았다. 이후 캐런은 솔로로 정규 앨범을 내려고 했으나 생전에는 발매가 거절당했고, 결국 사후에야 발매되었다.[4]

파일:karenbby.jpg
파일:karenmyluv.jpg
캐런 카펜터의 솔로 앨범 컨셉샷

이지리스닝 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ABBA[5]와 함께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그룹 중 하나. 쉽게 귀에 들어오는[6] 편안하고 서정적인 컨트리 선율이 특징적이다. 서정적이고 호소력이 강한 캐런 카펜터의 보컬이 매력적인 그룹이다. 맑고 청량한 캐런 카펜터의 알토 보이스는 카펜터즈를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캐런 카펜터가 소프라노 음역을 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역시 자타공인 매력적인 알토 보이스.

캐런은 드러머로도 활동했으며 때문에 방송 영상을 보면 콘서트 등에서 종종 드럼을 치는 경우가 가끔 있고, TV 쇼에서 솔로 드럼 연주도 한 적이 있다. 보컬의 이미지에 묻혀 많이 간과되지만 카렌 카펜터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이었으며, 역대 최고의 여성 드러머를 뽑을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엄청난 드럼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재즈에 기반한 탄탄한 기본기와 복잡한 변박에 강점이 있는 연주자였다. 캐런 본인도 자신을 "노래하는 드러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다만 카펜터즈의 음악 자체가 재즈적인 즉흥 연주나 난해한 박자와는 거리가 멀었고, 캐런 본인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본격적인 연주에는 한계가 있었다.[7] 그래서 일부는 "캐런 카펜터의 진정한 재능은 드럼에 있다"고 할 정도의 실력자였음에도 그녀의 연주자로서의 실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캐런의 실력과 연주를 즐기는 모습이 담긴 1976년 콘서트 클립 1968년 18세 때의 드럼 연주

밝고 편안한 노래로 잘 알려진 그룹이지만, 보컬인 캐런 카펜터의 비극적인 죽음으로도 유명하다. 십대 때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진행하기 시작하며 결국 남은 평생을 거식증으로 고생하게 되었으며 결국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8] 전성기 때(1969~1974)에도 살이 찌고 빠지는 게 반복되었고 1977~1978년 사이 거식증이 심해지며 전체적으로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80년에 결혼을 했다가 1년도 안돼 남편과 사이가 악화되고[9], 증세는 더 심해졌다. 1981년 마지막 공개활동 때의 모습을 보면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2022년 10월 9일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기사

리처드 역시 약물중독을 겪었고, 이 때문에 카펜터즈가 약 1년 동안 활동 중지를 선언한 적도 있다. 1983년 캐런의 죽음으로 카펜터즈의 공식적인 활동은 종료된다.[10]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난 뒤 같은 보컬을 들으면 편하지만 그만큼 우울함이 배어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카펜터즈의 대표곡 중 하나인 Top Of The World의 밝은 가사에 착각하기 쉽지만 이들의 노래 중에서는 우울한 가사의 노래도 한두개가 아니다. 특히 4집의 수록곡 Goodbye To Love는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끝도 한도 없이 우울한 노래.

스탠더드 팝/어덜트 컨템퍼러리 계열에서 이들의 위상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수많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뽑아낸 리처드 카펜터의 작곡 실력과 캐런 카펜터의 뛰어난 보컬은 아직까지도 칭송을 받고 있다. 폴 매카트니는 캐런을 "세계 최고의 여성 보컬"이라고 평했으며, 존 레논은 캐런 카펜터를 마주쳤을 때 정말 예쁜 목소리를 가졌다고 칭찬했고[11], 엘튼 존은 "우리 시대 최고의 목소리"라 평했다. 배철수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카펜터즈의 음악을 띄울 때마다 그 누구도 캐런 카펜터처럼 편안하게 노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칭송한다.

활동 당시, 차트 장악력은 상당했지만 너무 말랑말랑하고 듣기 편한 음악만을 지향한다고 하여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수많은 록 그룹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소속 레코드사에서 폭 넓은 계층을 공략하기 위해 건전하고 건실한 보수적 젊은이 이미지를 강조했었고, 카펜터스는 인터뷰도 마음대로 못 했다.[12] 이런 이미지 때문에 젊은 층에서는 카펜터즈 노래를 좋아한다고 밝히는 것이 늙은이들이 바라는 이상향 틀딱 같은 이미지로 비춰져서 좋아한다고 밝히길 꺼렸고, 각종 언론과 평론지에서도 이미지와 스탠스 때문에 공격당하기도 했다.[13] 훗날 리처드 카펜터가 음악과는 별개로 회사에서 강요한 이미지 때문에 평가절하됐던 일들, 방송이나 언론에 자기 의견도 소신껏 말하지 못했던 일들이 화나고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카펜터스는 이러한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으며, 앞서 언급되었던 캐런의 솔로 앨범과 공연에서 영화 그리스의 OST를 불렀던 것 등이 있다.

파일:weeee.jpg
파일:cutieeie.jpg
공연을 위해 분장한 캐런 카펜터

파일:Carpenters2.jpg
1976년 11월 2일의 관련 신문 기사

90년대 초중반에 접어들며 많은 록밴드들이 "사실 겉으로는 욕했지만, 우리는 카펜터즈의 열성팬이었다."라고 커밍아웃(?)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런 츤데레들. 실제로 1994년에 발표된 트리뷰트 앨범에 크랜베리스소닉 유스 등 여러 유명 록밴드가 참여했다. 소닉 유스는 자타공인 카펜터즈 빠. 1990년 캐런 카펜터의 추모곡으로 Tunic이란 곡을 작곡한 적이 있다. 소닉 유스의 노이즈 / 익스페리멘탈 / 펑크 성향의 음악과 카펜터즈의 음악은 정반대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독특한 경우. Kim Gordon's open letter to Karen Carpenter[14] 이후 트리뷰트 앨범에서는 Superstar를 불렀는데, 정반대 성향의 음악이 묘하게 절충된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작 리처드 카펜터는 이 커버를 싫어했다고 한다.

참고로 Goodbye To Love의 기타 솔로는 수많은 카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Goodbye to love

황당하게도 할로윈 시리즈 1편 한국 비디오 표지는 당당하게 70년대를 풍미했던 카펜터즈의 존 카펜터????가 감독이라고 엉터리로 적어놨다. 증거인 비디오 표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부당한 사례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카펜터즈의 음악이 록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이유로 꼽히곤 하지만,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사실상 대중음악 명예의 전당과 마찬가지이고 록 뮤지션이 아닌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빌리 홀리데이, 로네츠, ABBA 등도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카펜터즈가 제외된 것이 석연치 않다.[15]

2021년에 작가 길스 페일리 필립스가 트위터에 17살인 캐런 카펜터의 드럼 영상을 올렸는데, 보컬과 함께한 드럼임에도 여유로운데다 연주 실력이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3. 앨범[편집]


연도제목
1969Ticket to Ride
1970Close to You
1971Carpenters
1972A Song for You
1973Now & Then
1975Horizon
1976A Kind of Hush
1977Passage
1978Christmas Portrait
1981Made in America
1983Voice of the Heart
1985An Old-Fashioned Christmas
1989Lovelines
2001As Time Goes By


4. 싱글[편집]



4.1. 빌보드 핫 100 1위[편집]


  • (They Long to Be) Close to You[16] (1970)
  • Top of the World[17] (1973)
  • Please Mr. Postman[18] (1974)


4.2. 빌보드 핫 100 2위[편집]


  • We've Only Just Begun[19] (1970)
  • Rainy Days and Mondays[20] (1971)
  • Superstar (1971)
  • Hurting Each Other (1972)
  • Yesterday Once More[21][22](1973)


4.3. 빌보드 핫 100 3위~10위[편집]


  • For All We Know (1971)
  • Goodbye to Love[23] (1972)
  • Sing[24] (1973)
  • Only Yesterday (1975)


4.4. 빌보드 핫 100 11위~20위[편집]




5. 여담[편집]


파일:onj.jpg
  • 캐런 카펜터는 올리비아 뉴튼 존과 절친이었다. 훗날 올리비아 뉴튼 존도 2022년 8월 8일에 암으로 운명했다.

  • 1975년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최고의 드러머'를 선정하는 투표를 진행했는데, 당시에 쟁쟁한 드러머들이 많았음에도 캐런 카펜터가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플레이보이 잡지의 남성 구독자가 많은 것을 감안해도 상당히 대단한 성과인데, 이를 두고 언짢아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이었다. 존 본햄은 소위 록 드럼의 신으로 종종 불리고, 본인도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이러한 결과를 두고 불평하는 투로 "캐런은 레드 제플린 노래 10분도 연주 못 할 것 같다.(She couldn’t last ten minutes with a Zeppelin number)"라고 평했다. 당시에는 존의 불평이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고, 현재는 존의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반응이 많다.참조 이에 대해 캐런 카펜터는 "너무나도 감사한 결과이다. 존 본햄 씨가 언짢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한테 화가 난 것은 아니길 바란다. 난 그 투표와 일절 관계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참조

  • 대한민국의 '현이덕이'가 당대 기준으로는 널리 알려졌던 카펜터즈와 엮이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현이와 덕이'와 '카펜터즈'가 남매 듀엣이었던 데다가 장덕과 카렌 카펜터 둘 다 여동생에 오빠보다 먼저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했던 것도 연관되는 듯하다.

[1] 다른 두 그룹은 비 지스, 잭슨 5.[2] 비틀즈의 1965년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었다.[3] 다만 곡을 받아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비틀즈 외에도 버트 바카락, 로저 니콜스 같은 유명 작곡자들이 참여해서 퀄리티는 발군.[4] 캐런의 솔로 앨범은 카펜터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디스코 + 섹시 컨셉 + 고음으로 요약할 수 있을듯. 이러한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1980년에 제작을 모두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발매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매 거절은 본인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됐다고. 그의 오빠인 리차드 카펜터가 디스코 음악을 굉장히 싫어했던 것도 발매 거절의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5] 물론 ABBA 의 노래들은 이지리스닝이라고 하기에는 좀 파워풀하다고 볼 수 있긴 하지만...[6] 사실 이건 캐런 카펜터가 그만큼 훌륭한 보컬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가수들이 카펜터스의 노래를 부른 것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수가 노래의 감정 표현에 너무 치중하면 할수록 듣기 편한 노래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캐런 카펜터는 그 방면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7] 그래서 라이브 공연 등에선 커비 오 브라이언(Cubby O brien, 1946~) 이라는 드러머가 캐런의 보조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드러머도 9살 때부터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뛰어난 드럼 실력을 선보였을 만큼 두각을 보였으나 딱히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8] 정확히는 거식증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영양실조로 인해 쇠약해진 심장이 견디지 못하면서 심부전을 일으키는 영양재개증후군이 원인이었다.[9] 사실 결혼하기 바로 전날에 사이가 안 좋아졌다. 카렌은 언제나 아이를 가지길 원했는데 약혼자가 정관수술을 한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 큰 실망을 하고 파혼을 하려 했으나 카렌의 어머니가 결혼식이 코앞이니 숨기고 나중에 해결하자는 식으로 밀어붙였고 안타깝게도 몇년 후 최종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될 날 아침에 사망하여 기혼자로 남게 되었다.[10]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1983년 1월 그래미 25주년 시상식이다. 그리고 딱 19일이 지난 뒤 캐런은 사망한다.[11] 그러나 실제로 캐런은 대학교 합창단에서 활동하기 전까지 본인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주변 사람들의 칭찬은 모두 빈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수 활동을 시작하고 존 레논을 만난 이후에도 캐런은 친구들에게 존 레논이 한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12] 실제 카펜터스는 마리화나가 합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던 등 굉장히 좌파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13] 많은 인터뷰에서 카펜터스의 goody-goody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하였다.[14] 사실 카펜터즈를 비롯한 6-70년대 스탠더드 팝/이지 리스닝 뮤지션들은 알게 모르게 8-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세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당시엔 LP를 사지 않는 이상 라디오에 음악 수용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자연히 라디오에서 자주 틀어주던 AOR 뮤지션들에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들이 음악계에 뛰어들면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영향을 드러냈다. 이런 경향은 미국에서도 깡촌 출신 뮤지션들로 갈수록 강해지는데, 너바나 같은 경우 대놓고 베이 시티 롤러즈를 언급하기도 했다.[15] 로큰롤 명전은 원래 상업적인 뮤지션들이나, 컨트리 뮤지션들에 대한 헌액이 상당히 늦는 편이다. 예시로 든 ABBA가 헌액된 것도 입성 자격이 주어지고 10년이 지나서고, 22년에 와서야 돌리 파튼이 헌액된 것을 생각하면 카펜터즈가 입성되는 것을 보려면 아직 조금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물론 헌액은 될 것이다.[16] 버트 배커랙 작곡. 스페이스 카우보이라는 뮤지션이 이 음악을 리메이크 한 적도 있다.[17] 한국에서도 사랑받아 임형주, 박인희, 이성애, 조형기 등이 리메이크하였다.[18] 1961년 여성 그룹 마블레츠(The Marvelettes)의 데뷔곡으로, 마블레츠 원곡 역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었다. 그 후 1963년 비틀즈도 이 곡을 리메이크하여 With The Beatles 앨범에 수록하기도 하였다.[19] 미국에선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리는 곡 존 쿠삭 주연의 1408 영화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본격 악몽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으로서의 역할을 한다.[20] 국내에선 이소라가 리메이크 했다.[21] 해피투게더 프렌즈BGM으로 쓰였으며 딱 들으면 대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 '에브리 샬랄랄라 에브리 워우워어~' 이게 이 노래다.[22] 크레용 신짱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의 적 측 조직의 이름이 여기서 따왔다.[23] 전반부를 거의 1분 가량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조곤조곤 노래한다.[24]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 4장의 엔딩곡으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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