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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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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colbgcolor=#00428e><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DeNA 로고.svg ||
|| 일본시리즈 우승
★★ ||1960 · 1998 ||
|| 리그 우승
(2회)
||1960 · 1998 ||
||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6 · 2017 · 2019 · 2022 · 2023 ||
|| 시즌별 요약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2> 경기장 ||1군 요코하마 스타디움 · 2군 요코스카 스타디움 · 지방 홈구장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 ||
||과거 오사카 구장 · 카와사키 구장 ||
|| 홈 중계 채널 ||파일:tbs채널2 로고.png TBS 테레비2 ||
|| 주요 인물 ||감독 미우라 다이스케 · 선수회장 이마나가 쇼타 · 주장 사노 케이타 · 투수 주장 야마사키 야스아키 ||
||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 틀 문서 ||<bgcolor=#00428e>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 선수역대 감독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엠블럼.svg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1]
YOKOHAMA DeNA BAYSTARS
横浜(よこはまDeNAベイスターズ
구단 법인명㈜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株式会社横浜DeNAベイスターズ)
창단1949년 11월 22일(74주년)
연고지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연고지 이전1955년[2]
구단 연고지 변천야마구치현(1952)[3]
오사카부(1953~1954)
카나가와현 카와사키시(1955~1977)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1978~)
구단명 변천타이요 훼일즈 (1950~1952)
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953)
요쇼 로빈스 (1954)
타이요 훼일즈 (1955~1977)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978~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3~2011)
쇼난 시렉스 (2군: 2000~2010)[4]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2~)
홈 구장시모노세키 구장 (1950~1952)
오사카 구장 (1953~1954)
카와사키 구장 (1955~1977)
요코하마 스타디움 (1978~)
2군 구장요코스카 스타디움
모기업DeNA
감독81 미우라 다이스케 (三浦大輔)
주장7 사노 케이타 (佐野恵太)
19 야마사키 야스아키 (山﨑康晃)
킷 스폰서데상트
마스코트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마스코트.svg
DB 스타맨 & DB 키라라
구단기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구단기.svg
역대
한국인 선수
송재박[5] (1983~1987)
송광훈[6] (1985~1988, 1991)
박결[7] (1997~2000)
역대
한국계 선수
윤차랑[8] (1960~1964)
니우라 히사오(김일융, 新浦壽夫)[A] (1987~1991)
킨죠 타츠히코(金城龍彦)[A] (1994~2015)
터멜 슬레지[9] (2010~2011)
모리모토 히초리(이희철, 森本稀哲)[A] (2011~2013)
역대
한국인 코치
송광훈
홈 경기 중계 채널(CS)파일:tbs채널2 로고.png
링크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심볼.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라인 아이콘.svg
★★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60, 1998
센트럴리그 우승 (2회)
1960, 1998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17
교류전 우승 (1회)
2023
포스트시즌 진출 (7회)

1. 개요
2. 구단 역사
3.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
4. 유니폼
5. 응원가
6. 관중수 추이
7. 인기
8. 팀 특징
8.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9. 이야깃거리
10. 선수단
11. 역대 선수
12. 역대 감독
13. 역대 성적
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프로야구단. 연고지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센트럴리그를 대표하는 약체 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팀 역사만 보더라도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일본시리즈 우승 2회로 매우 초라한 편이고, 통산 승률도 4할 5푼조차 안되는(.448) 12개 구단 중 최하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0] 단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40년 동안 6할 승률을 거둔 적이 없고 파이널 시리즈 진출이 고작 4회인데[11] 이 구단은 무려 72년 역사에 6할 승률을 거둔 적이 없고 파이널 시리즈 진출이 3번이다. 이뿐만 아니라 2019시즌 전까지 총 69시즌동안 NPB 통산 4966패라는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12개 구단 통틀어서 최다패이다. 결국 2019년 6월 15일 교류전 기간에 만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패배하며 NPB 최초로 5000패를 달성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12]

그리고 현존하는 센트럴리그 팀 중 유일하게 홈구장에서 리그 우승을 단 한 번도 결정지은 경험이 없는 팀이다. 이 팀은 그나마 있는 2번의 리그 우승을 전부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결정지었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은 98년에 홈구장에서 결정지어서 홈 팬들 앞에서 헹가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팀명에 쓰는 마스코트는 오랫동안 훼일즈[13], 즉 고래를 써왔었는데 당시 모기업이 고래잡이를 했었기 때문. 하지만 고래잡이가 점점 논란거리가 되어서인지 1993년부터 베이스타즈라는 아주 일본스러운 영어로 바꾸었다. 말 그대로 요코하마 만(Bay)의 별들이라는 뜻이다.[14]

2011년 시즌까지 방송국인 TBS 테레비가 모기업으로서 운영해 왔으나, TBS조차도 꿈도 희망도 없는 요코하마보다 요미우리의 경기 중계에 더 힘을 쏟아왔다. 모기업도 버린 셈. 2010년 시즌 종료 후 구단 매각을 선언하여 유력 후보로 住生活グループ[15]이 거론되었으나, 교섭결렬로 2011년 시즌 까지는 TBS 테레비가 구단을 운영해 왔다[16].

결국 2011년 11월 4일, 모바일 게임 사이트 '모바게(Mobage)'[17]를 운영 중인 DeNA(디엔에이)가 요코하마의 모기업인 TBS 홀딩스와의 매입 협상을 완료하고 구단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회사 재무 구조와 향후 사업계획 등의 실사를 마치고 12월 1일 구단주 회의에서 DeNA의 요코하마 구단 인수를 승인함에 따라 팀 명칭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약호도 요코하마의 横에서 DeNA의 De(혹은 ディ)로 바뀌고 표기도 요코하마 DeNA로 변경되었다. 근데 익숙한 것도 있고, 너무 길기도 해서 일본 언론에서조차 그냥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지역명 빼고 간단히 'DeNA'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2. 구단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편집]




4. 유니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응원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응원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관중수 추이[편집]


연도별총관중일일 평균
2009년1,246,967명17,319명
2010년1,209,618명16,800명
2011년1,102,192명15,308명
2012년1,165,933명16,194명
2013년1,425,728명19,802명
2014년1,564,528명21,730명
2015년1,813,800명25,546명
2016년1,939,146명 26,993명
2017년1,979,446명27,880명
2018년2,027,922명28,166명
2019년2,283,524명31,716명
2020년467,700명7,795명
2021년725,858명10,223명
2022년1,778,980명24,708명
2023년2,280,927명32,126명

스스로 강팀이 되려하기보다는 적당적당히 운영비 아껴가면서 요미우리전의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려는 심보로 구단을 운영한 다이요 어업이나 TBS 테레비와는 달리, DeNA는 어떻게든 요코하마와 팀에 애정을 가지고 제대로 구단을 경영해보려는 의지를 보이며 관중수를 눈에 띄게 불리고 있다. 정말로 DeNA가 모기업이 된 것이 천만다행. 요코하마 스타디움 항목에도 DeNA가 새 구단주가 되고나서 프로 구단으로서 자립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2016년 이후로는 마침내 관중도 잡고 성적도 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일본시리즈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다만 2018년 이후 성적 부진과 더불어 유벤투스 스폰서비 상승과 관련된 구단의 투자 비중 감소로 인해 다시 Baysball의 재림이 시작된다는 우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관중 상승 추이도 모기업의 부풀리기 의혹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모양이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하위권을 전전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관중증가는 확실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고 2019년 후반기 들어 요미우리, 히로시마와 치열한 3파전을 전개하는 양상이 되자 새로 증축한 관중석까지 관중이 들어차면서 창단 후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3만관중 동원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2018년 결산에서 모기업인 DeNA의 다른 사업분야는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18] 유일하게 야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사업만이 흑자를 기록하면서 모기업의 이익 감소분을 메웠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확실히 TBS 시절과 지금은 분위기도 팬들의 호응도도 다른 구단이 되었고 만년 하위팀을 이렇게까지 바꾼 것은 DeNA 구단측의 노력을 평가해야할 부분이라 하겠다.[19][20][21]

7. 인기[편집]


도쿄 인접지역인 요코하마를 연고지로 한다는 점과 전통적인 약체인 팀 특성상 센트럴리그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함께 인기가 없는 팀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DeNA사가 구단을 인수한 뒤로는 적극적인 자세로 구단 경영에 임한 결과 상술했듯이 관중수가 히로시마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구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1년 구단 팬클럽의 회원수가 1만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나간 가을야구인 2016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도쿄 돔 원정 응원석은 물론 3루측 중립석까지 메워버리는 화력을 보였으며, 팀이 19년 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던 2017년에는 8만 7천명 대로 크게 늘어나는 등 관중 뿐만이 아니라 팬덤수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이외에도 홈구장 리모델링을 통해 관중석 증축을 진행하는 등 관중 유치에 상당히 힘을 쏟고 있다. 매년 실시하는 스타나이트 데이, 2018년 실시했던 1998년 유니폼 복각 이벤트 등 다양한 마케팅을 실시하며 노력하고 있다.

의외로 한국에서도 이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이승엽이 한창 요미우리에서 뛰던 시절 상대팀으로 종종 보이기도 했고 모기업이 게임회사인지라 이쪽 경로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있는 듯.

2019년에는 아직 시즌중이지만 6월까지 평균관중이 3만명을 넘어섰다. 양대 리그를 합쳐도 한신, 요미우리, 소프트뱅크 다음가는 관중수다. 관중석 증축효과와 마케팅의 성과가 결실을 맺은 결과. 이제 비인기 구단이라는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22]


8. 팀 특징[편집]



8.1. 팀 이름이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편집]


그나마 이 팀에서 뛰는 스타급 선수로는 오랫동안 팀 투수진을 떠받쳐온 '반초(대장)' 미우라 다이스케 정도였으나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미우라는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선수지만 팀이 그렇지가 못하고 있다.[23] 그 외에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는 재일교포 모리모토 히초리가 있었고 한국에서 활약한 카도쿠라 켄이 일본프로야구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낸 곳도 여기였다.

한 때 이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는 2007, 2008년 센트럴리그 홈런왕이자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거포 3루수 무라타 슈이치가 있었으나, 2012년 시즌에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해버렸다. 그리고 일본 턱돌이로 유명하며 고타율과 2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홈런을 쳐내어 우리나라를 울리기도 했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이 팀 소속이다.

이러다 보니 결국 팀에서 뛰는 주목받는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나카하타 감독 시절에는 담당 기자들도 선수보다는 감독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록으로 쓰일만한 뭐 한마디 안 나오나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오죽하면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은퇴 경기에서 "DeNA는 나카하타 감독이 가장 눈에 띈다. 선수가 주목받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여기에는 요코하마 프런트의 행보도 한몫 거드는데, 툭하면 구단의 레전드로 남을 선수를 제대로 못 지켜서 팬들의 원성이 매우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붙박이 유격수 이시이 타쿠로가 2009년에 히로시마로 이적하여 은퇴 후 히로시마 코치로 정착, 마찬가지로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야수 사에키 타카히로가 2011년에 주니치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주니치 코치로 정착, 미우라 다이스케와 함께 요코하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외야수 긴조 다쓰히코 역시 2015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요미우리의 코치로 정착하였다. 이 케이스의 공통점은 구단 측에서 빡빡하게 은퇴 권고와 전력외 통지를 날렸고 선수와 구단간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것인데,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인기 선수들을 좀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렇게 쉽게 내쳐버리는 선택이 팬 입장에서는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코하마 팬 입장에서는 이 선수들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지금 봐도 어색할 정도다.

이렇다보니 웃픈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상대팀 선수의 은퇴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준다. 상기된 이시이 타쿠로는 전날 히로시마에서 은퇴 경기 및 은퇴 행사를 진행한 뒤 다음날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의 원정 경기에서 진짜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특전 영상, 꽃다발 전달, 경기 후 구장 한 바퀴를 일순하며 팬들과 하이터치 등 마치 홈팀 선수가 은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24]정작 같은 날 은퇴 경기를 치룬 DeNA의 포수 니이누마 신지는 묻혔다. 뭐 물론 둘이 워낙 급이 다르긴 하지만 98년 우승 당시 요코하마의 주전 포수이면서, 주니치의 선수 겸 감독이던 다니시게 모토노부 또한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고 마지막 타격을 한 것이 요코하마 스타디움. 구장을 일순하며 다이요 시절부터 요코하마를 거쳐 주니치 시절까지 응원가 메들리, 다니시게의 자녀들의 꽃다발 전달식, 헹가래 등 홈구장에서 볼 법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 로테이션의 이노 쇼이치야마구치 슌이 주목할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다른 팀의 주축 선수보다 개성도 화제성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야마구치는 2016년 말 FA로 요미우리로 이적.[25] 그나마 2014년 시즌 들어와서 츠츠고 요시토모가 3할 22홈런으로 토종 4번타자로서 활약을 보이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 떠오르고 있고, 2015년 입단한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마무리로 혜성같이 등장,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2010년대 중반 리빌딩 이후 투수진에는 야마사키, 야수진에는 츠츠고가 팀을 대표하는 스타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츠츠고는 2019 시즌 종료 이후 메이저리그 포스팅에 참가할 것을 선언하였고 구단이 수락하여 또 스타선수가 빠지는 상황을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츠츠고가 빠져나간 이후로는 첫 시즌부터 3할에 20홈런을 기록한 마키 슈고, 요코하마의 좌완 에이스 이마나가 쇼타, 2020 시즌 이후 타격 센스가 만개한 사노 케이타 등이 스타선수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중 야마사키 야스아키는 2022시즌 종료 후 평소 갈망하던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접고 옵트아웃 조항도 없는 6년 장기계약을 체결하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 것이 확정되었다.

2023시즌 종료 후 이마나가가 MLB 포스팅을 신청했는데, 아예 구단차원에서 국내에 남는걸 만류하면서 포스팅을 권유했다고 한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비슷한 행보인데, 어차피 FA가 되는 순간 선수들을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기에 특급 자원들은 미국에 팔아서 돈도 벌고 상대 팀의 전력에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며, MLB 포스팅에 우호적이고 적극적라는 이미지를 심어 특급 유망주를 수급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8.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편집]


아래는 요코하마 팬으로 사는 십계명이라고 한다.[26]KBO의 어느 팀을 보는 듯 하다 그래도 이 팀은 그 팀보다도 우승 횟수는 많다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2. 경기 도중 단 1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1998 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최근 몇 년간 센트럴리그 꼴찌를 도맡아해온 베이스타즈의 상황을 비꼬는 유행어로 베리그가 있다. 매년 다른 팀과 엄청난 차를 벌리면 꼴등으로 가라앉은 채 그대로 시즌이 끝나버리는 거의 독립적인 위치라는 점 때문에 베이스타즈가 사실은 다른 리그였다! 라는 뜻으로 센트럴리그를 줄여서 세리그, 퍼시픽리그를 파리그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어, 베이스타즈에서 「베」를 따 베리그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베이스타즈 혼자 소속된 리그이지만 자국리그나 타국 리그에서 헤매는 팀들을 여기로 승격시켜서 순위를 가리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파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MLB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가 여기 단골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결국 매년 수위는 베이스타즈가 차지한다. 물론 패가 많을수록 순위가 높은 베리그 기준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는 'ベイスボール[27]'이라는 표현도 곧잘 쓰이는 모양. 굳이 한국에서 쓰이는 비슷한 표현이라면 '유사야구' 또는 '코구' 정도다.

물론 2016년부터는 십계명이 모두 뒤집혀졌다고 할 수 있다.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 이기는 날이 더 많아졌다.
2. 경기 도중 단 한 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 이제는 희망과 좋은 점이 많이 보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 성적이 오르자 해탈했던 팬들이 다시 일희일비 모드가 되었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 이젠 즐겁게 야구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 2015년에 입단한 용병 호세 로페즈가 2017년에 세리그 안타-타점 2관왕으로 우뚝 섰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 상대가 그렇게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에이스들이 등장했고, 타선이 상대 에이스를 박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과거엔 신인들이 최후의 밧줄이라는 느낌이였다면, 이제는 연이은 루키들의 성장 덕분에 진정한 의미로 즐거워졌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1998 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 이제는 2017년 일본시리즈 진출 순간이나 일본시리즈 4차전 영상을 돌려봐도 될 듯 싶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 이제는 이기는 야구를 기대할 수 있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2022년, 2023년 요미우리는 중하위권을 전전하다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시즌 연속으로 요미우리의 시즌을 끝내 버린 팀은 요코하마였다.

2018년 이후로는 옛날 십계명을 찾아 쓰는 상황이 찾아올듯 말듯한 줄타기가 이어졌지만 2020년 들어서는 일부 주축 선수의 이탈[28]과 무관중 경기로 리그를 치뤄야하는 상황이 오면서 이전처럼 되돌아가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며 출발했던 2021년, 6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이전의 십계명대로 팀이 귀신같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해에 2위로 올라서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활했다.

9. 이야깃거리[편집]


파일:46cd59SD.png

파일:r8AH4af.png

파일:external/www.baystars.co.jp/160205_03_01.jpg

10. 선수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선수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역대 선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역대 선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역대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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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7f7f7,#191919>
1949년 ~ 현재
||
||<width=20%> 1대
와타나베
파일:일본 국기.svg
(1950) ||<width=20%> 2대
나카지마
파일:일본 국기.svg
(1951) ||<width=20%> 3대
아리마
파일:일본 국기.svg
(1951) ||<width=20%> 4대
고니시
파일:일본 국기.svg
(1952~1953) ||<width=20%> 5대
나가사와
파일:일본 국기.svg
(1954) ||
||<width=20%> 6대
후지이
파일:일본 국기.svg
(1955) ||<width=20%> 7대
사코하타
파일:일본 국기.svg
(1956~1958) ||<width=20%> 8대
S. 모리
파일:일본 국기.svg
(1959) ||<width=20%> 9대
미하라
파일:일본 국기.svg
(1960~1967)
||<width=20%> 10대
벳토
파일:일본 국기.svg
(1968~1972) ||
||<width=20%> 11대
아오타
파일:일본 국기.svg
(1973) ||<width=20%> 12대
미야자키
파일:일본 국기.svg
(1974) ||<width=20%> 13대
아키야마
파일:일본 국기.svg
(1975~1976) ||<width=20%> 14대
벳토
파일:일본 국기.svg
(1977~1979) ||<width=20%> 15대
도이
파일:일본 국기.svg
(1980~1981) ||
||<width=20%> 16대
세키네
파일:일본 국기.svg
(1982~1984) ||<width=20%> 17대
S. 곤도
파일:일본 국기.svg
(1985~1986) ||<width=20%> 18대
고바
파일:일본 국기.svg
(1987~1989) ||<width=20%> 19대
스도
파일:일본 국기.svg
(1990~1992) ||<width=20%> 20대
에지리
파일:일본 국기.svg
(1992) ||
||<width=20%> 21대
A. 곤도
파일:일본 국기.svg
(1993~1995) ||<width=20%> 22대
오야
파일:일본 국기.svg
(1996~1997) ||<width=20%> 23대
H. 곤도
파일:일본 국기.svg
(1998~2000)
||<width=20%> 24대
M. 모리
파일:일본 국기.svg
(2001~2002) ||<width=20%> 25대
야마시타
파일:일본 국기.svg
(2003~2004) ||
||<width=20%> 26대
우시지마
파일:일본 국기.svg
(2005~2006) ||<width=20%> 27대
오야
파일:일본 국기.svg
(2007~2009) ||<width=20%> 28대
오바나
파일:일본 국기.svg
(2010~2011) ||<width=20%> 29대
나카하타
파일:일본 국기.svg
(2012~2015) ||<width=20%> 30대
라미레스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2016~2020)
||
||<bgcolor=#e0ffdb,#073300> 31대
미우라
파일:일본 국기.svg
(2021~) ||<width=20%> ||<width=20%> ||<width=20%> ||<width=20%> ||




선수 시절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명포수로 활약한 인물로, 1기 감독으로썬 팀의 비밀번호를 끊어냈지만, 2기 감독으로썬 좋지 못한 성적만 거뒀다. 결국 2기 감독을 맡던 2009년 시즌 도중 해임당했다.

13. 역대 성적[편집]


­리그 우승[45]
­2위
­3위
B클래스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포스트시즌
19505위/8팀5위다이요 훼일즈14069683.504
19516위/7팀6위10840644.385
19524위/7팀4위12058620.483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포스트시즌
19535위/6팀5위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3052771.403
19546위/6팀6위13032962.250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포스트시즌
19556위/6팀6위다이요 훼일즈1303199[46]0.238
19566위/6팀6위13043870.331
19576위/6팀6위13052744.415
19586위/6팀6위13051736.415
19596위/6팀6위13049774.392
19601위/6팀우승13070564.554일본시리즈 (4-0 vs 다이마이)
19616위/6팀6위13050755.404
19622위/6팀2위13471594.546
19635위/6팀5위14059792.428
19642위/6팀2위14080582.580
19654위/6팀4위14068702.493
19665위/6팀5위13052780.400
19674위/6팀4위13559715.454
19685위/6팀5위13359713.454
19693위/6팀3위13061618.500
19703위/6팀3위13069574.548
19713위/6팀3위130615910.508[47]
19725위/6팀5위13057694.452
19735위/6팀5위13060646.484
19745위/6팀5위13055696.444
19755위/6팀5위130516910.425
19766위/6팀6위13045787.366
19776위/6팀6위130516811.429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포스트시즌
19784위/6팀4위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
13064579.529
19792위/6팀2위130595417.522
19804위/6팀4위13059629.488
19816위/6팀6위13042808.344
19825위/6팀5위130536512.449
19833위/6팀3위13061618.500
19846위/6팀6위13046777.374
19854위/6팀4위130576112.483
19864위/6팀4위13056695.448
19875위/6팀5위13056686.452
19884위/6팀4위13059674.468
19896위/6팀6위13047803.370
19903위/6팀3위13364663.492
19915위/6팀5위13164661.492
19925위/6팀5위13161691.469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포스트시즌[48]
19935위/6팀5위요코하마 베이스타즈13057730.438
19946위/6팀6위13061690.469
19954위/6팀4위13066640.508
19965위/6팀5위13055750.423
19972위/6팀2위13572630.533
19981위/6팀우승13679561.585일본시리즈 (4-2 vs 세이부)
19993위/6팀3위13571640.526
20003위/6팀3위13669661.511
20013위/6팀3위14069674.507[49]
20026위/6팀6위14049865.363
20036위/6팀6위14045941.324
20046위/6팀6위13859763.437
20053위/6팀3위14669707.496
20066위/6팀6위14658844.408
20074위/6팀4위14471721.497
20086위/6팀6위14448942.338
20096위/6팀6위14451930.354
20106위/6팀6위14448951.336
20116위/6팀6위144478611.353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포스트시즌
20126위/6팀6위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1444685130.351
20135위/6팀5위14464791.448
20145위/6팀5위14467752.472
20156위/6팀6위14362801.437
20163위/6팀3위14369713.493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요미우리)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히로시마)
20173위/6팀3위14373655.529퍼스트 스테이지 (2-1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4-2 vs 히로시마)
일본시리즈 (2-4 vs 소프트뱅크)
20184위/6팀4위14367742.475
20192위/6팀2위14371693.507퍼스트 스테이지 (1-2 vs 한신)
20204위/6팀4위12056586.491
20216위/6팀6위143547316.425
20222위/6팀2위14373682.518퍼스트 스테이지 (1-2 vs 한신)
NPB 통산 73시즌리그우승 2회980042495234317.448일본시리즈 우승 2회

14. 둘러보기[편집]


파일:logo_denasports.png
계열 스포츠단


파일:요코하마시 문장_White.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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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2] 일본프로야구는 보호지역(연고지)을 도도부현 단위로 설정하고, 카와사키랑 요코하마는 같은 카나가와현에 있기 때문에 1955년부터 계속 같은 연고지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연고지 내에서 1군 홈구장만 이동했다고 보는 셈.[3] NPB에 공식적인 연고지 개념이 들어선 것은 1952년으로, 그 이전엔 단일리그 시절인 1948년 잠깐 도시연고제를 도입하려다 구장의 부족으로 유명무실화된 것이 전부.[4] 2000년부터 2010년까지 2군 팀만 이름을 달리해서 쇼난 시렉스(湘南シーレックス, Shonan Searex)라고 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넥센 히어로즈(1군)와 화성 히어로즈(2군), 2019년부터의 키움 히어로즈(1군, 앞의 넥센 히어로즈와 같은 팀)와 고양 히어로즈(2군, 뒤의 고양 다이노스와는 다른 팀), 또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NC 다이노스(1군)과 고양 다이노스(2군)의 관계와 같다.[5] 일본식 이름은 요시모토 히로시(吉本博). 재일교포.[6] 일본식 이름은 타케다 미츠쿠니(竹田光訓). 재일교포. 무려 1라운더 출신으로 우투우타 불펜투수였다. 타이요 퇴단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1989~1990년 2시즌 뛰고 방출. 이후 1991년에는 타이요에 복귀하였으나 1군 등판 없이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NPB 통산 1군 3시즌 40경기 60⅔이닝 1승 2패 ERA 4.01, KBO 리그 통산 2시즌 16경기 32⅔이닝 1승 3패 ERA 9.92. 은퇴 후 요코하마 코치를 거쳐 현재도 요코하마 프런트에 재직중이다.[7] 일본식 이름은 아라이 키요시(新井潔). 재일교포.[8] 일본식 이름은 하야마 지로(波山次郎)로 북한 국적의 재일교포. 1941년 4월 5일생 우완 투수로 재일교포는 맞으나 한국 국적을 소유한 적이 없는 북한 국적의 선수라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대한민국 기준으로 봐도) 한국인이라 할 순 없다. 토호쿠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야구부를 2년 연속 하계 코시엔 진출로 이끌었고 지역예선에선 2번이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유망주였지만, 프로에선 5년간 통산 24경기 2승 4패에 그치며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1964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직후인 1965년 5월 가족들과 함께 북한으로 영주귀국하면서 조선적에서 북한으로 국적을 바꿨고, 북한으로 간 이후엔 평양철도체육단에서 뛰면서 국가대표에도 선출되어 같은 공산국가인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에 출장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이후엔 청진시의 철공소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1979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작업 도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고, 근무 중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건설애국자 칭호를 추서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으로 간 조선적 프로야구 선수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서 '코시엔과 평양의 에이스'라는 제목의 전기도 출판되었다.[A] A B C 재일교포 출신의 한국계 일본인. 출생 당시엔 일본 국적을 가지지 않았으나 이후 귀화.[9] (Turrmel Sledge). 한국계 미국인.[10] 이게 얼마나 막장이냐면 2015년부터 3년 연속 3할대 승률로 시작한 kt wiz보다도 통산 승률이 낮다. 각 리그별 최저 승률 팀은 MLB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464), KBO는 kt wiz(.461). kt는 3년 연속 3할 승률으로 시작했지만 2021년 우승했다. 하다못해 NPB 유일의 단일시즌 100패를 달성하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사라졌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통산 승률도 .467이다.[11] 다만 우승과 준우승을 더한 횟수는 5회이다. 1985년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인해서 한국시리즈 자체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12] 이 기록이 더욱 놀라운 점은 1930년대에 창단한 팀들을 모조리 제치고 가장 먼저 달성했다는 점. 위의 표에도 나와있지만 이 팀이 창단하고 리그에 참여한 해는 1950년이다. 여담으로 한신과 오릭스도 2019시즌에 요코하마의 뒤를 이어 통산 5000패를 달성했는데 이 두 팀은 그래도 각각 1935년, 1936년에 창단하고, 1936시즌부터 참여했으며, 통산 승률이 5할은 넘는다.[13] 한글로 웨일즈나 웨일스로 표기하기도 한다. 현대 영어의 많은 화자들이 Whales의 wh 부분을 /hw/(정확히는 [ʍ])로 발음하지 않고 /w/로 발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14] 전형적인 일본식 영어라서 미국 매체들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탬파베이 레이스처럼 지명 자체에 '베이'가 붙고 팀명에도 그걸 사용하는 케이스들처럼 착각해서 요코하마 + 베이스타즈가 아니라 요코하마베이 + 스타즈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금은 요코하마 뒤에 DeNA가 붙었으니 오해의 가능성이 줄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코하마 DeNA 베이' + '스타즈'로 오해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요코하마 베이 + 스타즈라고 지었다가는 치바 롯데 마린즈가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자신이 흡수한 구단 중 다이에이 유니온즈가 있는데, 그 팀의 예전 이름이 바로 "스타즈"다.[15] 쥬세이카츠 그룹 - 건축 관련 기업의 합동기업.[16] 이 때문에 해당 방송국에서는 이 구단의 정보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다.[17] 모바일 게임의 일본식 표기인 モバイルゲーム를 줄인 モバゲー를 그대로 로마자로 적어서 Mobage라고 쓴 것이다.[18] 문어발 같은 계열사 운영들과 과다한 IP 팔이로 인해 생긴 일이다.[19] 다만 최근에 일어난 유벤투스&호날두 이슈와 겹쳐 모기업 계열사는 유벤투스에 큰 돈을 쓰면서 모기업 야구단에 대한 투자가 마케팅,경영 부분에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지에서의 비판은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다.[20] 심지어 관중 동원을 위해 게임사 이벤트를 이용하여 DeNA, Cygames 등의 자회사들과 콜라보를 하여 숫자 자체로는 관중동원력을 늘린 것에 비해 경기가 어느정도 진행되면 관중 수가 훅 감소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KBO의 NC도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21] 추가로 2020년 코로나19 이슈로 인한 무관중경기로 리그를 진행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와 여태 한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존재했으나, 이건 다른 구단도 똑같은 사정이고 제대로 관중을 다시 모집하기 시작한 2022 시즌 총 관중수는 12개 구단 중에서 6위를 차지했으며 2023년에는 4위를 기록했다.[22] 불과 10년 전인 2009년의 요코하마 평균관중수가 17000명대였다. 이는 당시 평균관중수 전체 1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으며 그 관중없다던 오릭스와 지바 롯데보다도 관중동원력이 형편없었다.[23] 실제로 2015년 시즌 이후로 주니치 드래곤즈의 대대적인 세대교체 움직임으로 팀에 재적했던 수많은 베테랑들이 옷을 벗으면서 2016년 시즌 현역 투수중에서 최연장자가 됐다.[24] 거기다 이시이가 1993년부터 써 왔던 응원가가 히로시마 이적 후에도 계속해서 쓰인 덕분에 양 팀 팬들 모두가 이시이의 응원가를 같이 부르는 광경이 펼쳐졌다. 요코하마 팬들이 반복해서 응원가를 부르면 반대편 히로시마 팬들이 스쿼트 응원으로 이시이의 이름을 연호하는 진풍경이 경기 내내 펼쳐졌고 마지막 타석때는 양 팀 팬들의 응원가 열창에 이시이도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25] 그리고 이노 쇼이치 마저 카지타니 타카유키와 함께 FA로 요미우리로 이적했다.[26] 출처 리라하우스.[27] 일본어로 '베이스볼'을 본래는 가타카나로 ベースボール이라 표기하는데, 베이스타즈를 조롱할 때의 '베이스볼'은 '베이스타즈(ベイスターズ)'의 ベイス를 따서 ベイスボール이라 적는 것. 영어로 표현하면 Baysball쯤 되는 표현이다. '베이스'와 '볼' 사이에 '베이스타즈'의 별을 집어넣어 'ベイス★ボール'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별은 흰색으로 넣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검은 색인데, 일본 야구 매체에서 보통 승리를 '흰 별'(○, 시로보시), 패배를 '검은 별'(●, 쿠로보시)라 표현하기 때문이다.[28] 츠츠고 요시토모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아즈마 카츠키토미존 서저리.[29] 의외로 교류전이 처음 시행된 2005년에는 19승 17패로 선전하였다. 뭐 이때는 A클래스를 찍은 해였다고는 쳐도 꼴찌로 곤두박질친 2006년에도 15승 21패라는 그렇게 막장스러운 성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교류전 최약체로 전락한 이유는 2007년 14승 1무 9패를 찍은 이후 2008~2013년까지의 교류전 성적이 워낙 개판이었기 때문. 2014년엔 13승 11패로 선전하기도 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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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홋시, 왼쪽이 홋시나, 오른쪽이 홋시조. 참고로 2004년에 모 예능과 연계하여서 온갖 기행을 일삼는 스페셜 마스코트 '블랙 홋시'가 등장한 적이 있다. 충혈된 눈 위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며, 이른바 '유성 점프'라는 근본없는 다이빙으로 상대팀 마스코트와 팬들을 약올리는 역할을 했었다.
[31] 물론 스타맨 본인은 너구리라고 부르면 몹시 화낸다.#[32] 당시 롯데의 팀명은 롯데 오리온즈.[33] 우치카와 본인은 그런뜻으로 했던 말은 아니었다고 후에 부정했지만, 그럼 위의 발언은 원래는 뭔뜻이었냐는말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34] 중간에 격투기 선수로 전향해 경기를 가진 적이 있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 프로 시절에는 장타력은 있는데 선구안과 컨택이 막장인 2군 본즈로도 유명했다. 커리어 하이는 22홈런을 친 2003년인데, 타율은 .208, 37타점에 그쳤다.[35] 현 요코하마 2군 배터리코치. 한신에 있을 땐 오승환의 전담 포수로 나름 한국 팬들에게도 이름을 알린 적이 있었다.[36] 닛폰햄 소속의 고스케 카토와는 다른 선수. 지바 롯데에 이어 두 번째 방출, 한신에 완전히 정착했으나 2015년을 마지막으로 또 방출.[37] 발디리스는 오릭스에서 연봉문제로 재계약이 결렬된 후 요코하마로 옮겼는데 요코하마에서도 반쯤 먹튀였던 상황이었다. 교세라 돔에서 꾸준히 15~18홈런씩 쳐줬으니 타자친화구장인 요코하마로 가면 20홈런은 거뜬히 넘길 줄 알았는데 홈런 갯수는 그대로고 다른 타격스탯과 수비까지 하락. 물론 먹튀였다고 하지만 오릭스 시절에는 별 말 없이 잘 지냈던 걸 보면 암흑기 시절 요코하마는 그 오릭스보다도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38] 오죽했으면 요코하마에서 떠난 선수들의 코멘트 모음도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는 그 중의 아주 일부분만 발췌해서 적는다.[39] 요코하마 외에는 그나마 야쿠르트가 많은 편이긴 한데 어쨌든 이쪽도 도쿄 연고를 유지하고 있고 팀명도 '아톰즈'로 잠깐 바꿨다가 창단 당시의 '스왈로즈'로 돌아갔다.[40] 센트럴 리그 팀 중 유일하게 연고지 이전한 구단이다.[41] 다시 말해 히로시마는 헤이세이 연간 동안에도 우승을 못했다는 얘기다.[42] 퍼시픽 리그 팀 중 일본시리즈 우승한 지 가장 오래된 팀은 사이타마 세이부이며, 2008년이 마지막 우승이다.[43] 퍼시픽리그 유일의 20세기 우승팀이었던 오릭스 버팔로스2022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해 탈출함으로서 히로시마와 요코하마만이 남게 되었다.[44] 참고로 일본시리즈 우승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킨테츠의 통산 승률은 .467이다.[45]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46] 센트럴리그 겸 구단 사상 시즌 최다패 기록 1위[47] 히로시마와 승률 0.0003 차이로 3위[48] 2006년까지는 리그 플레이오프 없음.[49]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승률에서 4리 차로 밀렸으나, 이해 센트럴리그가 승리수로 순위를 결정지은 관계로 승수가 1승 더 높았던 요코하마가 3위를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