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가지가 구도심에 한정되어 있던 시절만 해도 이름 그대로 부산 시가지의 중심이었지만 점차 북쪽 해운대, 서면, 동래 쪽으로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의 중구는 상대적으로 남쪽이 되어 버렸다. 당연하지만 중구의 남쪽은 남해와 접하고 있으므로 애초에 시가지가 뻗어나가는 게 불가능했다.
에 위치한 자치구. 하지만 이 곳을 남부산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그냥 중부산이라고 부른다. 남동으로는 부산대교와 영도대교를 경계로 영도구, 서로는 서구, 북동으로는 동구와 접한다.
이다.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기초자치단체인 홍천군(1,820.52㎢)과는 면적이 무려 약 643.3배 차이가 난다. 명목상 최대 면적인 함경북도무산군과 비교하면 약 2200배 가깝다. 인구도 대한민국 자치구 중 꼴찌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양산시물금읍 전체도 아닌 범어리 단 1개의 인구가 부산 중구의 전체 인구 수보다 더 많다.[9]
이곳과 비슷한 처지인 지역으로 인천광역시 중구가 있는데 영종용유 지역을 제외한 본토의 인구만 따질 경우 약 4만명으로 부산 중구와 인구가 비슷하다. 인천 중구는 1989년 경기도 옹진군 영종면, 용유면을 편입하였고, 인천국제공항이 영종도에 개항되며 영종 용유지역의 인구가 본토 인구를 크게 초월한 상태이다.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이며 비록 면적은 매우 작았지만 설치 당시만 해도 인구가 12만을 넘을 정도로 과밀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교대상에 읍/면/동을 논해야 할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10]
행정동으로 비교하면 충청남도 아산시의 온양3동, 법정동으로 비교하면 아산시 옆 동네인 천안시의 청당동이랑 비슷하거나 큰 차이가 없다.
로 이 때문에 통폐합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자치구도 기초자치단체이므로 폐지가 극히 까다로운지라 실현되지 않고 있다.[11]
1943년 구제가 처음 시작된 이래 지금껏 자치구가 폐지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자치구도 엄연히 자치권이 있는 지자체이니 아무리 명분이 있다한들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이상 강제로 통폐합할 수는 없다.
{{{#000,#fff 부산 앞 바다의 찬란한 일출을 표현하여 부산 중구의 밝은 미래를 상징
원은 부산의 중심, 세계의 중심인 중구를 상징함과 동시에 주민과의 화합과 결집을 상징 하단의 힘 있는 붓 터치는 문화·경제의 중심도시로 도약하여 세계속으로 뻗어나가는 중구의 이미지를 형상화}}}
중구의 브랜드 슬로건
부산광역시 중구를 홍보하는 도시브랜드 이미지로서 중구의 산업, 문화, 관광자원 등을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도시 자체의 이미지를 형성하여 구민이 공유 하고 사랑하는 도시 Identity 역할 수행합니다. 영문 Nice를 통해 좋은, 훌륭한, 쾌적한, 아름다운, 유쾌하고, 기쁜, 인정많고 친절한 등의 의미를 가지며 New, Interesting, Creative, Enjoy의 이니셜을 조합한 중의 (이중)적 의미의 도시 브랜드 슬로건입니다.
중구의 마스코트
밝고 다정 다감한 이미지 표현으로 친근감을 갖게 하고 중구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친절한 중구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자갈치 아지매의 활기찬 표정과 동작은 자갈치 시장의 생동감 있는 풍경과 중구의 밝은 미래를 상징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바다였던 중앙동과 남포동 일대를 매립하였고 부산역, 부관연락선, 초량왜관이 가까이 있어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자리잡은 피난민들로 주민 구성원이 바뀌어 갔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구는 부산의 도심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MBC가 중앙동에서 수영구 민락동으로, 시청이 남포동에서 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하였으며 2000년대 이후로 해운산업이 중앙동에서 부산신항으로, 금융산업이 중앙동에서 문현금융단지로 이전하여 서면이 남포동을 누르고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상권으로 떠오르면서 도심으로서의 지위를 상당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은 중구뿐만 아니라 인접한 동구, 서구, 영도구를 한데 묶어서 '구(舊)도심(원도심)'이라고 불리는 실정. 사실 구도심이 이모양 이꼴이 된 건 1960년대~1970년대 부산시로 편입된 구 동래군 지역이 개발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포동, 광복동상권은 2000년대 중,후반 광복로의 간판정비와 보도정비 이후 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관련 기사 업소의 매출은 늘어났고 권리금과 토지가격도 뛰었다. 광복로 크리스마스트리축제 역시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고 영도대교 복원과 자갈치시장 현대화,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개점이 맞물리면서 전성기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유동인구가 증가하자 많은 요식업체들과 커피숍이 개점하였고 광복로에 주요 의류 브랜드들의 가두매장이 서면보다 더 먼저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광복로뿐 아니라 국제시장 인근의 지하상가와 재래시장까지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상권이 회복되면서 도시 재생의 모범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
광복로와 남포동 상권이 살아남과 동시에 이 일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깔끔해진 거리에 보수동 책방거리, 부평시장, 국제시장 등 부산만의 특색있는 공간과 씨앗호떡, 완당 등 유명 요리들의 명성이 더해져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수 없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에 비하면 많이 초라해지긴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남포동 상권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특히 옛 부산광역시청 부지에 롯데백화점 광복점, 롯데마트, 롯데시네마가 있는 롯데몰 광복점을 세웠고 제2롯데월드 고층건물을 세우려고 하여 상권 부흥을 꾀하고 있다. 구도심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여담으로 다대포에 사는 사람이 쇼핑을 나가면 20분 걸리는 남포동보다 1시간 걸리는 서면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서면은 주로 유흥 위주, 남포동은 가두 의류 매장 위주의 상권으로 그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구도심권 대부분이 그렇듯이 낡은 단독주택이 많아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열악한 편. 면적이 좁고 평지가 적어 대로에 접한 보수동이나 대청동 일부를 제외하면 산복도로를 끼고 주택들이 형성된 모습이다. 남포동, 광복동 등 평지의 도심에 있는 건물이라고 해서 또 결코 사정이 나은 편도 아니다. 대개 1960 ~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많은데다 일본식 적산가옥도 상당수 남아 있는 실정이다. 다만 중앙동 일대는 직장인들을 위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상당수 들어섰고 광복로 일대 역시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고 신축건물이 들어서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 면적의 대부분이 상업지인데다 자갈치, 남포동-광복동 상권, 부산타워 등 매우 좁은 면적에 부산 관광명소는 다 들어가 있어 주거지 비중은 적은 편이다. 영주동, 보수동 일대 주택가에 주민들이 모여 살며 보수동 인근은 경사진 계단과 산복도로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부산의 산동네다.
1동짜리 소규모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을 제외하면, 90년대에 재건축한 영주동 금호아파트와 동아아파트 이후로 신축아파트 공급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부산시 전역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는 와중에도 기장군과 함께 규제지역에서 벗어났다.
, 교육여건이 불편한 관계로 젊은층의 유입이 적어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도시에서 보기 드문 초고령사회라는 오명을 얻었다.
부산 최초의 아파트가 이 곳 중구에 있다. 남포동에 위치한 청풍장은 부산 최초의 아파트로 기록이 되어 있으며 1941년에 완공하였다. 바로 옆에 건설된 소화장 아파트는 1944년에 완공하였으며 각각 4층 규모의 아파트다. 이 외에도 오래된 아파트가 많은데, 영주동에 위치한 영주아파트는 부산 최초의 그리고 최대규모의 시민아파트로 기록이 되어 있으며 1968년에 완공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영주아파트의 절반은 동아아파트, 금호아파트로 재개발되어 1997년~1998년에 완공하였다. 보수동에 위치한 보수아파트는 1969년에 완공하였다. 자세한 건 공동주택/목록/중구(부산) 문서로.
중구의 면적이 워낙에 좁고 인구 역시 매우 적은만큼 인접한 동구, 서구, 영도구와 상부상조하는 관계이다. 중, 동, 서, 영도 4개구는 동래부에서 부산부가 분리될 때 같이 부산부 소속으로 분리되어 역사성과 동질성이 매우 강하며 교통이나 학군, 상권 등 여러 면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다만 원도심 4구가 도심공동화 및 노후화의 영향으로 모두 인구감소세가 뚜렷하여 중구와의 통합론이 점점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20대 총선에서 중구와 동구의 선거구가 쪼개지게 되자 중구와 동구의 통합이 거론되고 있다. 관련 기사 중구와 동구 모두 분류상 부산 원도심에 속하며, 동래부에서 부산부가 분리될 때부터 함께한 만큼 역사적 당위성은 충분하다. 중구의 인구는 2020년 1월 현재 약 41,000명이고 동구의 인구는 약 88,000명이라 과소 자치구 통합이라는 명분도 있으며, 현재 중구와 동구는 북항재개발 지역 경계 문제로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서 관련 기사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경계 분쟁이 자연스럽게 무마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중구와 동구 모두 부산의 유명 관광지를 대거 포함하고 있어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관광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하지만 중구 내에서는 통합에 극히 부정적인데, 이미 시청과 그 유관기관들이 이전하면서 직격타를 맞아 전성기에 비해 크게 몰락한 적이 있던 중구인만큼 인구가 2배 가까이 차이나는 동구와 통합하게 된다면 구청[15]
중구청은 연식이 오래된 노후건물이고 대청동 산중턱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 못한 반면, 동구청은 신축건물인데다 부산진역에서 도보 1분 내로 접근가능할 정도로 교통이 편리하다.
등 공공기관들이 빠져나갈 우려가 있어 반대의 목소리가 큰 것으로 보인다. 중구는 서구나 영도구 등 타 지자체와의 통합논의에도 일관된 입장을 보이는 중인데, 통합 구의 명칭은 중구로 하며, 구청도 중구에 소재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중이라 가까운 시일 내에 통합은 어려워 보인다.
동구 입장에서도 초량동이나 수정동 등 남부는 중구와 인접해있고 교류가 활발하나, 좌천동이나 범일동 등 북부는 오히려 부산진구, 남구와 인접해 있다보니 부산진구, 남구와 같은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어 통합 논의에 신중한 모습이다.
다만 중구와 동구의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세를 보이는 중이고, 특히 중구는 2020년 10월부로 인구 4만명대가 붕괴될 정도로 인구 감소가 심각한지라 통합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17]
사실 영도구를 제외한 원도심 3개 구를 다 합쳐도 면적이 부산진구 수준이며, 인구도 20만이 안된다. 역사성을 감안하더라도 비효율적인 구조인 것은 맞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지나며 중앙역·남포역·자갈치역이 중구에 있다. 부산광역시 시내버스 노선 또한 많아서 대중교통 하나는 부산시내 어디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 관내 유일의 마을버스 노선으로는 중구1번이 있다. 더군다나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체증이 거의 없는 편이다! 예전 시청과 상공회의소, 방송국이 있던 시절에는 가변차로를 해야 할 정도로 극심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부산의 기본 스펙만큼의 체증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다. 최근에는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개점하면서 영도대교 일대를 포함해 체증이 심해졌다. 영주동 쪽은 지대가 높고 고저차가 심해 비교적 교통이 불편했는데 시범적으로 설치한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이 실적이 나름대로 좋은 모양인지 비슷한 모노레일을 다른 곳에서도 설치해보려고 하고 있다.
과거 일제시대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그리고 광복 이후 부산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창선동먹자골목
부산영화체험박물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개최될 때만 하더라도 중구 남포동이 영화제 무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규모가 커지게 되자, 장소의 협소함을 이유로 그 중심축이 해운대구로 옮겨가게 됐다. 영상문화의 메카였던 BIFF광장은 문화거리로 조성되어 남포동-광복동 일대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다. 영화제의 대부분이 해운대에서 진행하는 까닭에 남포동과 해운대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이유로 영화의전당이 완공됨과 동시에 모든 행사를 해운대로 옮겨갔다. 그러나 남포동, 광복동 상인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일부 행사를 남포동으로 돌려놓고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개관 등으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는 관내 유일한 중학교이다. 참고로 남자중학교여서 여중생들은 190번을 타고 인접 구인 서구나 동구, 영도구까지 가야 한다.. 사실 과거에는 중구의 유일한 여중인 남성여자중학교가 있었으나, 2004년에 폐교되었고 그 이전에는 동주여자중학교도 있었고 남중으로 혜광중학교와 건국중학교도 있었지만, 동주여자중학교는 1974년에 사하구괴정동동주대학교가 있는 부근으로 이전하였고, 혜광중학교는 1976년에 폐교되었으며, 건국중학교도 1983년에 사하구하단동으로 이전하였다.
초등학교는 다음과 같다.
광일초등학교 (대청동4가 95): 1998년 남일초등학교와 동광초등학교가 서로 통합해 광일초등학교로 개명되었다. 현재 광일초등학교 부지가 옛 남일초등학교 부지, 용두산공영주차장이 옛 동광초등학교 부지였다. 남일초 1912년 개교, 동광초 1921년 개교
남성초등학교 (대청동1가 10): 관내의 유일한 사립초등학교다.
보수초등학교 (보수동1가 50): 1953년 개교
봉래초등학교 (영주동 582-2): 1896년 개교
부산에서 가장 작은 초등학교로 기록된 부산삼육초등학교가 영주동에 있었으나 청룡동으로 확장이전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경제 중심지였다. 각종 해운회사, 금융회사, 언론사, 인쇄업체 등 대부분 기업이 이 곳에 몰려있었으나 1990년대 부산문화방송 이전, 부산광역시청 이전, 2000년대 부산항이 부산신항으로 이전, 2010년대 이후에는 금융업의 문현금융단지 이전, 은행 지점 통폐합 등으로 인해 관련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이전하여 현재는 공실 건물이 많은 상황이다.
주요 시설로 부산본부세관, 부산중부경찰서, 부산중부소방서, 부산지방보훈청, 부산출입국외국인청, 부산항만공사 본사, 부산항연안여객선터미널,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있다. 아직 해운산업 관련 기관이나 기업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근처에 많이 사는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무실도 많이 있다.
행정동 남포동은 전국의 행정동 중 재개발로 인해 일시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동을 제외하고 가장 인구가 적은 동이다. 뒤에서 2위는 하필이면 같은 구의 광복동이다. 아이러니하게 두 동네는 부산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낮과 주말에는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지만 주거지역이 거의 없어서 상주인구가 1,0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중심지였으며 남포동-광복동 상권의 한 축을 차지하는 곳. 남포동비프광장, 신동아시장, 자갈치시장이 있다.
[1] 41개 법정동, 9개 행정동[2] 2023년 1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3] 전국 광역시의 기초지자체 가운데 처음 4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4] 중구 가선거구 (중앙동, 대청동, 영주제1동, 영주제2동): 이인구 , 이길희 중구 나선거구 (동광동, 보수동, 부평동, 광복동, 남포동): 강주희 비례대표: 한지원[5] 중구 가선거구 (중앙동, 대청동, 영주제1동, 영주제2동): 강희은 중구 나선거구 (동광동, 보수동, 부평동, 광복동, 남포동): 강인규, 최학철[6] 부산 시가지가 구도심에 한정되어 있던 시절만 해도 이름 그대로 부산 시가지의 중심이었지만 점차 북쪽 해운대, 서면, 동래 쪽으로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의 중구는 상대적으로 남쪽이 되어 버렸다. 당연하지만 중구의 남쪽은 남해와 접하고 있으므로 애초에 시가지가 뻗어나가는 게 불가능했다.[7] 부산 중구 전체 면적이 서울 종로구종로1.2.3.4가동(2.36㎢)보다 약간 넓은 정도이다.[8] 분구되면서 갈라진게 아니라 중구 설치 당시부터 이 면적 그대로이다.[9] 이곳과 비슷한 처지인 지역으로 인천광역시중구가 있는데 영종용유 지역을 제외한 본토의 인구만 따질 경우 약 4만명으로 부산 중구와 인구가 비슷하다. 인천 중구는 1989년 경기도 옹진군 영종면, 용유면을 편입하였고, 인천국제공항이 영종도에 개항되며 영종 용유지역의 인구가 본토 인구를 크게 초월한 상태이다.[10] 행정동으로 비교하면 충청남도 아산시의 온양3동, 법정동으로 비교하면 아산시 옆 동네인 천안시의 청당동이랑 비슷하거나 큰 차이가 없다.[11] 1943년 구제가 처음 시작된 이래 지금껏 자치구가 폐지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자치구도 엄연히 자치권이 있는 지자체이니 아무리 명분이 있다한들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이상 강제로 통폐합할 수는 없다.[12] 반면 동구는 서구와 선거구가 통합되었다.[13] 주한대만대표부 부산사무처[14] 1동짜리 소규모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을 제외하면, 90년대에 재건축한 영주동 금호아파트와 동아아파트 이후로 신축아파트 공급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부산시 전역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는 와중에도 기장군과 함께 규제지역에서 벗어났다.[15] 중구청은 연식이 오래된 노후건물이고 대청동 산중턱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 못한 반면, 동구청은 신축건물인데다 부산진역에서 도보 1분 내로 접근가능할 정도로 교통이 편리하다.[16] 중구에 소재한 중부산세무서는 오래되고 노후화된 벽돌건물이지만 동구에 소재한 부산진세무서는 완전신축건물이다.[17] 사실 영도구를 제외한 원도심 3개 구를 다 합쳐도 면적이 부산진구 수준이며, 인구도 20만이 안된다. 역사성을 감안하더라도 비효율적인 구조인 것은 맞다.[18] 부산역은 1965년동구로 이전, 부산잔교역은 1945년 광복과 함께 폐역되었다.[괄호] AB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9] 여기서 외국은행은 대한민국 영토 내에 지점 또는 사무소 형태로 진입한 경우로만 한정되며,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의 경우에는, 한국내의 법인형태로 운영중이며 시중은행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곳에 넣지 않는다.[20] 과거 일제시대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그리고 광복 이후 부산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된 건물이다.[21]대구광역시에도 동명의 학교가 있지만, 거기는 남녀공학이다.[P] ABCDEFGHI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22] 개혁주의 개신교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