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시대에 인당수나 울돌목에 맞먹을 정도로 배가 다니기 위험했을 정도이며, 원래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렀으나 물길이 안전하기를 기원하고자 한때 이름을 안행량(安行梁)이라고 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 정도로 물길이 세니 조세로 걷은 쌀을 배로 실어올리는 데 태안반도 앞바다를 지나다 자꾸 가라앉는 문제가 생겼고, 결국 운하를 부설했다. 다만 안면도 판목운하는 통행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안면곶의 동서, 즉 천수만과 서해 사이의 바닷물 흐름을 원활하게 해 이 일대의 극심한 풍랑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운하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안흥량 주변 바다에 엄청난 양의 수중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