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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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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992년 8월 20일 텍사스 휴스턴의 애스트로돔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2,166표를 얻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댄 퀘일 부통령 역시 별 문제 없이 부통령 후보로 재지명되었다.Don't Change the Team in the Middle of the Stream
강을 건너는 도중에 말을 바꿔타지 말자
1992 부시-퀘일 티켓 슬로건
1992년 7월 16일 뉴욕시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빌 클린턴은 총 투표의 79%인 3,372를 득표하여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빌 클린턴은 앨 고어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유력 정치인 앨버트 고어 시니어의 아들이자, 1988년 대선 경선에서 3위를 한 바 있는 고어 의원은 워싱턴 경력이 부족한 클린턴의 단점을 보완해줄 좋은 정치인이었다.It's the economy, stupid!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1992 클린턴-고어 티켓 슬로건[15]
1992년 대선에서는 유례 없는 제3지대 후보자 로스 페로의 열풍이 불었다. 로스 페로는 텍사스 출신의 사업가로,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억류된 2명의 직원을 구출하기 위해 용병을 고용한 일화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텍사스 주 정계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로 공화당의 마약과의 전쟁 텍사스 지부 위원장을 맡았고 민주당 주정 하에서는 공교육 담당자를 맡기도 했다. 로스 페로는 베트남 전쟁, 마약과의 전쟁을 지지하는 등 본래 친공화당 계열 인사였으며,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하고 그의 기념 도서관 사업에도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이란-콘트라 사건이 드러나자 레이건과 부시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이후에도 부시 대통령이 증세 정책을 펴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로스 페로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를 비판하는 제3지대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Ross for Boss
로스를 대장으로
1992 페로-스톡데일 티켓 슬로건
로스 페로는 30분에서 1시간에 달하는 광고를 내보내는데 3,500만 달러의 기금을 투자하였다. 그의 첫번째 광고를 시청한 유권자의 수는 무려 1,500만명이 넘었다. 이 광고에서 로스 페로는 24개의 차트와 번쩍이는 금속 포인터를 사용해 부시와 레이건의 "낙수 효과"가 미국 노동자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으며, 민주당은 그런 레이거노믹스의 피해를 복구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 정쟁에만 사용한다고 양비론을 시전했다. 또 로스 페로는 Giant sucking sound라는 표현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NAFTA가 체결되면 미국 대기업은 값싼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멕시코로 공장을 모두 옮겨 결국 미국의 제조업이 모두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에서 이를 "빨려간다"라고 표현한 것이다.While the Cold War is ending another war is upon us. In this new war, the enemy is not the red flag of Communism, but the red ink of our national debt, the red tape of our government bureaucracy. The casualties of this war are counted in lost jobs and lost dreams.
냉전은 끝났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쟁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전쟁에서, 미국의 적은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붉은 잉크로 적힌 국가의 채무이자, 빨간 테이프에 묶인 관료주의입니다.[26] 이 전쟁의 피해는 실업과 잃어버린 꿈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