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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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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3. 사례
3.1. 가상의 사례


1. 개요[편집]


신격화(, Deification[1])는 사람을 신처럼 절대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2. 설명[편집]


국가적 차원의 신격화는 현대에선 주로 독재 국가에서 발생하며, 독재자의 권위를 절대시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특정 위인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왕정국가에서도 왕의 권위를 절대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격화가 이루어지곤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그 사례를 보기 힘든데 요구가 다원화되어 개인에 대한 숭배가 절대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주로 문화적인 부분에서 특정분야에 한해 신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대중음악에서의 비틀즈, 마이클 잭슨,[2] 축구에서의 펠레,[3]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등이 있다.

개인적 차원의 신격화는 주로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발생하나 드물게 카리스마가 높은 특정 개인에 대한 신격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특히 민간 신앙의 경우 어떤 분야에서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거나 자신의 재주를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원통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을 무속의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로 (신으로 모셔지는) 당사자의 능력에 대한 동경과 경외를 넘어 그 능력을 자신도 나누어 받고자 하는 욕구[4] 또는 그들이 최후를 맞으면서 세상에 남긴 강렬한 원한이 인간 세상에 끼치는 악영향을 줄이고자 하는 염원에서 나온 것으로, 이런 경로로 신으로 모셔지는 경우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5]일본[6]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무속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신을 인격신이라고 하며, 대표적인 인력신으로 고려 말기의 최영, 조선 초기의 남이장군이나 사도세자(뒤주대왕)를 들 수 있다. 또한 여수 지역에서 용장군으로 모셔지는 이순신이나[7] 태백산산신령으로 모셔진 단종[8] 역시 넓은 의미의 인력신이라고 할 수 있다. 후삼국시대 순천 지역에서 성황신으로 모셔졌던 박영규김총처럼 지방 호족이 그가 다스리던 지역에서 신으로 모셔진 경우도 존재했다.


3. 사례[편집]


  • 모든 종교의 교주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아타나시우스계 그리스도교에서는 가리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론을 기반으로 두고있다. 이들은 이를 거부한 이들인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나람신의 이름은 쐐기문자로 𒀭𒈾𒊏𒄠𒀭𒍪라 쓰이는데 여기서 쐐기문자 𒀭는 신(神)을 뜻하는 문자로 학계에선 이를 나람신이 일종의 현인신으로 숭배된 증거로 보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람신은 문헌상에서 최초로 자신을 신격화한 군주가 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후 신으로 대접받아 신전까지 세워졌다. 아우구스투스는 사후에 'Divus Augustus'(神皇 아우구스투스)로 불렸다. 단 티베리우스처럼 황제 본인이 생전에 신격화를 거부하거나 칼리굴라, 네로, 도미티아누스처럼 후대에 폭군으로 낙인찍힌 황제들은 신격화되지 않았다. 테오도시우스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화된 이후에는 황제가 신격화되지 않았다.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처하고 장남과 차남을 각각 관음보살아미타불이라 하였다. 그러고서는 그 두 아들들을 철퇴로 때려죽였다.

일본인들은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천황을 "살아있는 신, 즉 現人神(아라히토가미)"으로 믿어왔다. 본래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거의 700년 동안 단지 상징적인 존재일 뿐 권력자로서는 잊혀 있었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을 유럽의 절대군주와 같이 만들려 했던 근대화 추진 인사들이 대대적인 선전과 세뇌로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윤색했다. 그러던 것이 1945년 8월 15일 옥음방송인간선언을 계기로, 일본인들은 "천황은 살아있는 신이 아니고 일개 인간"이라는 뚜렷한 인식을 비로소 갖게 되었다. 현재도 일부 극우세력은 지금도 천황이 살아있는 신이라고 우기고 있다.

21세기 현재에도 태국 은 '생불(生佛)', 즉 '살아있는 부처'라 불린다. 거리 곳곳과 집집마다 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형법 112조에 따르면 국왕과 왕비, 왕세자 등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사람은 최대 징역 15년에 처해진다. 한 예로 태국 검찰은 국왕을 조롱하는 페이스북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혐의로 한 20대 남성에게 징역 32년형을 구형하기도 했다. 그리고 화폐에도 국왕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기 때문에, 화폐를 던지거나 밟으면 국왕 모독죄가 적용된다.


중국과 조선[9]에선 오랫동안 관우신으로 제사를 지내는 이들이 많았으며 현재도 중국에 관우신 숭배가 일부 남아있다.

파라오는 호루스 혹은 라(이집트 신화)와 동일시되었다. 또한 죽은 전대 파라오는 오시리스, 어린 파라오는 즐거움의 신 이히와 동일시되었다.

파라오가 아님에도 고대 이집트에서 신격화된 유일한 인물.

아문의 아들이자 파라오로서 신격화되었다. 스파르타인 다미스는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자신을 신으로 대하라는 명령문을 내리자 '그가 신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그를 신으로 여길 수밖에'라며 체념한 모습을 보였다.







사후 동조대권현(東照大権現)이라는 신호를 받고 닛코 동조궁에 안장되었다.



  • 불교부처[10]




3.1. 가상의 사례[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성전 당시 신앙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온갖 감정들을 양분으로 삼는 카오스 신들을 굶겨 죽이기 위해 모든 종류의 신앙을 금지하고 논리와 이성을 추구하는 '제국의 진리'를 반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호루스 헤러시 이후 종교를 그렇게 혐오하던 자기 자신이 국교의 숭배 대상이 되고 말았다.



[1]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화(神化, 테오시스(Theosis). 인간하느님처럼 거룩하게 변화된다는 개념.)를 일컫는 단어인데, 영어에서는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신격화라는 개념 역시 이 단어로 지칭한다.[2] 실제로 90년대 초반에 언론들은 마이클 잭슨을 신격화된 아티스트라고 수식했다.[3] 이쪽은 축구 황제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4] 후술할 현대사회에서 문화적인 부분에서 특정 분야의 일가를 이룬 사람을 신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5] 대표적인 예로 관우가 있다.[6] 대표적으로 헤이안 시대의 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호겐의 난으로 실권을 잃고 사누키로 유배되어 죽은 스토쿠인.[7] 이순신은 심지어 적이었던 일본 군인들에게조차 군신(軍神)으로 숭상받았다는 카더라가 존재할 정도다. 여담으로 이순신은 바다에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신으로 모셔지게 된 점도 어느 정도 있는데, 전근대에서 물에서 죽는다는 것은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죽음의 형태였기에 그만큼 망자의 한도 깊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8] 어떤 실정도 없었고 정통성은 삼종의 혈맥을 이어 조선 왕들을 통틀어 가장 완벽했음에도 어린 나이에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그에게 죽임까지 당했다.[9]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지원군들을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참고로 숙종이 관우의 빅팬이어서 관우한테 자주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10]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부처는 신이라기보다는 최고 수준의 깨달음을 얻은 인간에 가깝지만 현실에서는 기복신앙 위주에서 신격화로 숭앙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