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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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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 헨리 2세
John William Henry II

출생
1949년 9월 13일 (74세)
일리노이주 퀸시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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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펜웨이 스포츠 그룹 설립자 겸 CEO
NESN 소유주
보스턴 글로브 발행인
경력
플로리다 말린스 구단주 (1999~2002)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 (2002~ )
RFK 레이싱 소유주 (2007~ )
리버풀 FC 구단주 (2010~ )
슈퍼 리그 부회장 (2021~ )
피츠버그 펭귄스 구단주 (2021~ )
재산
36억 달러(2021년 포브스 기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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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구단주 경력
4. 평가
4.1. 긍정적 평가
4.1.1. 보스턴 레드삭스
4.1.2. 리버풀 FC
4.2. 부정적 평가
4.2.1. 보스턴 레드삭스
4.2.2. 리버풀 FC
4.2.2.1. 이적위원회 구성
4.2.2.2. 소극적인 스쿼드 보강
4.2.2.2.1. 돈과 관련된 끊이지 않는 잡음
4.2.2.3. 부족한 레전드 대우
4.2.2.4. 지나친 언론 플레이
5. 우승 경력
6. 가족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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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지역을 근거지로 둔 미국의 거대 스포츠 기업인 펜웨이 스포츠 그룹(Fenway Sports Group, 이하 FSG)의 CEO. 또한 보스턴 레드삭스보스턴 브루인스 전담 케이블 방송국인 NESN(New England Sports Network)의 오너이자 보스턴 지역 신문인 보스턴 글로브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본인이 CEO로 있는 FSG가 소유한 스포츠 팀으로는 보스턴 레드삭스리버풀 FC, 피츠버그 펭귄스, 나스카 시리즈에 참가하는 러쉬 펜웨이 레이싱 팀이 있다. 보스턴 팬들에게는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리고 우승컵을 가져온 구단주로, 리버풀 팬들에게는 맘에 안차는 미국식 자본주의 경영으로 이윤 추구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1] 이중적인 평을 듣는 인물이다. 다만 이러나저러나 자신이 인수한 팀들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선 평가받을 점이 있는 구단주다.


2. 생애[편집]


헨리는 1949년 9월 13일 일리노이주의 퀸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콩을 재배하는 농부였고 그는 농가에서 15살까지 살다가 캘리포니아주의 애플 벨리로 이사갔다. 빅터 벨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헨리는 빅터 벨리 대학에 입학했고 거기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도중에 중퇴했다. 헨리는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는 기술을 학습했고 계절 변동 또는 토지 황폐화로 인한 가격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초 교육을 습득했다.

1976년, 레이놀드 증권회사의 상품 중개인이 다른 농부들을 도와주는 일을 맡아 달라고 제의했지만 헨리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그는 노르웨이에서 그의 첫번째 아내와 여름 신혼 여행을 갔다 온 후 미래 상품매매 손익계정을 관리하기 위해 추세추종전략(trend following)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경영 전략을 고안해냈고 1981년 존 W. 헨리 & 컴퍼니(약칭 JWH)를 설립했다. 그 후 헨리는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여 미국 최고의 갑부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그의 자산은 26억 달러(포브스 2017년 기준)로 추정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3. 구단주 경력[편집]


헨리는 어린 시절 스탠 뮤지얼의 팬이었고 그가 속한 야구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열렬히 응원했다. 그는 사업에서 성공한 뒤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데 뜻을 두고 1989년 미국 베이스볼 마이너리그에 속한 트리플 A 퍼시픽 코스트 리그 야구팀인 투산 토로스(Tucson Toros)를 인수했다. 또한 그는 은퇴한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겨울 야구 리그를 운영하는 시니어 프로야구협회를 공동 창립하기도 했다. 1990년, 그는 투산 토로스의 지분을 판 후 NBA 올랜도 매직의 지분 일부를 구입했고 NHL 탬파베이 라이트닝의 지분 일부를 사들였고 또한 1991년에는 뉴욕 양키스의 지분 일부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스포츠계를 찔러보던 헨리는 1999년 1억 58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플로리다 말린스의 구단주로 부임했다가 2002년 1월 제프리 로리아에게 구단주 자리를 넘겨줬다.[2]


3.1. 보스턴 레드삭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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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엡스타인과 존 헨리

2002년 7월, 헨리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인수하고 새 구단주로 부임했다. 그는 취임식 자리에서 "밤비노의 저주를 부숴버리겠다."라고 공언했다. 구단주 부임 후, 헨리는 레리 루치아노를 클럽 사장에 임명했고 세이버매트리션 야구 전문가 빌 제임스를 경영 자문에 전격 임명했다. 또한 헨리는 8년간 보스턴의 단장으로 활약했던 댄 듀켓을 경질하고[3] 마이클 포트를 임시 단장으로 고용해 2002 시즌을 마무리 한 후 테오 엡스타인을 새 단장에 임명했다. 사실 그는 '머니볼'을 현실에 구현해 명성이 자자했던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을 고용하려 했다. 그러나 빌리 빈이 장고 끝에 거절의 뜻을 밝히자[4], 헨리는 샌디에이고 대학 로스쿨 출신이자 래리 루치아노 사장과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일한 바 있는 서른 살 청년을 전격 단장에 임명했다.

그의 이러한 움직임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신임 단장 테오 엡스타인머니볼 이론과 세이버메트릭스에 따른 야구 스탯을 적절히 이용해 구단 개혁을 착실히 수행했고 마침내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에 86년만의 우승을 안겨주는 데 성공했다. 이후 보스턴은 2007년에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고 엡스타인이 떠난 후 몇 년 간 부침을 겪다가 2013년2018년에 또 다시 우승하며 21세기 명실상부한 명문팀으로 부활시켰다.[5]

한편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영원한 홈그라운드 펜웨이 파크의 리모델링에도 크게 기여했다. 1990년대 중반 메이저리그에 신축구장 붐이 불었을 때 레드삭스 구단과 보스턴 시 정부도 구장 신축안이었던 '뉴 펜웨이 파크' 프로젝트를 계획했고 1999년 5월 15일에 존 핼링턴 레드삭스 CEO가 신축구장 계획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레드삭스의 골수팬들은 신축 계획안을 반대했다. 오랜 세월 자신들과 함께 해온 구장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펜웨이 파크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낡을 대로 낡아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쓰기 어려웠고 리모델링을 하기에는 돈이 턱없이 많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2년 구단주로 부임한 헨리는 통 크게도 3억 달러를 들여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했다. 좌석 교체, 편의시설 확충은 물론 2002년에는 펜웨이 파크의 상징인 그린몬스터 위에 관중석을 새로 설치했다. 신축구장 짓는 돈과 맞먹을 정도의 돈이 들었지만 리뉴얼이 끝난 펜웨이 파크는 앞으로도 100년은 끄떡없는 구장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3.2. 리버풀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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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와 리버풀 FC 회장인 톰 워너

2010년 4월 16일, 리버풀의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 구단주는 리버풀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인수했던 금액의 3배의 가격으로 판매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가능하면 4배 가격으로 받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리버풀을 인수할 당시 들였던 돈은 2억 1890만 파운드였으니 매각 가격을 6억 파운드에서 8억 파운드로 매긴 셈이다. 그러나 리버풀이 아무리 명문 구단이라지만 어느 누구도 이 엄청난 가격을 들여가며 인수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리버풀 보드진은 질레트와 힉스가 구단을 부당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영국 법원에 두 사람의 구단주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힉스와 질레트는 그들을 "회사 자산 약탈자"라고 묘사하고 리버풀이 탐욕자들에 의해 진이 빠지고 있다고 비난했다.[6]

2010년 10월, 리버풀 보드진은 존 헨리의 FSG에게 구단을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톰 힉스 구단주는 보드진이 자신의 의향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인수자를 멋대로 정했다며 그들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리버풀 보드진은 즉각 해고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당시 리버풀은 톰 힉스, 조지 질레트의 엉성한 팀 운영으로 인해 빚이 천정부지로 쌓였고 제때에 인수자를 구하지 못하면 파산당할 지경에 처해 있었다. 다행히 10월 15일 법정이 리버풀 보드진의 손을 들어줬고 FSG는 3억 파운드 가량의 인수금을 들여 리버풀을 인수했다.

그후 존 헨리는 로이 호지슨의 다음으로 리버풀의 레전드 케니 달글리쉬를 임시 감독으로 고용했고 달글리쉬는 하위권에 처진 리버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해 2010-11 시즌을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마쳤다. 그렇게 달글리쉬는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1-12 시즌을 맞았으나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자[7] 헨리는 시즌이 끝난 후 달글리쉬를 경질하고 스완지 시티에서 훌륭한 지도력을 보여줬던 브랜던 로저스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로저스는 차츰 전력을 끌어올려 2013-14 시즌에 눈부신 성공을 거두는 듯 했지만 수비 불안을 극복하지 못해 막판에 우승을 놓치고 리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2014-15 시즌에 급격한 경기력 저하로 부진을 겪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고 2015-16 시즌에도 부진하자 결국 시즌 중반인 2015년 10월 4일에 경질되었다.

2015년 10월 8일, 존 헨리는 장기적인 비전으로 위르겐 클롭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클롭은 암흑기에 허덕이던 리버풀을 부활시키며 2016-17 시즌에는 리그 4위권 복귀, 17-18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행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18-19 시즌에는 14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을 유럽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냈고, 이듬해 19-20 시즌에는 UEFA 슈퍼컵FIFA 클럽 월드컵 우승에 이어, 클럽의 오랜 염원이었던 3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까지 달성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21년 슈퍼 리그에서 창립 팀들이 탈퇴하기 시작한 후 계획이 파토될 상황이 다가오자 구단주로는 유일하게 사과 영상을 올렸다. 당시 FSG 측에서 리버풀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구단주로 남아있어 단순 루머가 되었다.

그러다가 2022년 11월 7일, 동시다발적으로 FSG가 리버풀의 매각을 결정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FSG도 이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서 리버풀은 또 다른 역사적인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FSG와 리버풀의 동행은 끝이 나는 줄 알았으나 2023년 2월 돌연 매각 의사를 철회하고 일부 지분 매각으로 선회하며 일단 계속 동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팬들에게 욕먹고 미국 구단주중 누가 최악이냐는 얘기에 매번 존 헨리가 나오고는 하지만 매년 더한 최악의 빌런들이 나와 본의 아닌 재평가를 받고있다.[8]


4. 평가[편집]



4.1. 긍정적 평가[편집]



4.1.1. 보스턴 레드삭스[편집]


존 헨리가 구단주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거리가 멀고 양키스의 아성 앞에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헨리는 이 침체된 구단을 회생시키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기 위해 머니볼 이론과 세이버매트리션 개념에 통달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보스턴을 2000년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육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한낱 30대의 애송이로 평가받았던 테오 엡스타인을 단장으로 과감하게 기용하고 팀의 체질을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탠 것은 그의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남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4.1.2. 리버풀 FC[편집]


본래 공동 구단주이던 질레트&힉스의 막장 경영으로 파산 직전이던 리버풀을 인수하여 빚을 갚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특히 2015년 클롭 감독 부임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리버풀을 보면, 돈을 과하게 쓰지 않고도 유럽 최상위권 축구팀이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재정적 건전성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 관리를 해 놨으며, 그러면서도 감독이 원하는 선수는 나름대로 수급을 해 주면서 리버풀 팬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프리미어리그 우승컵과 빅이어를 비롯한 모든 우승컵들을 들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물론 이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공이 가장 크긴 하겠지만, 어쨌든 팀을 잘 관리하고 감독을 지원한 존 헨리 및 fsg 그룹의 공도 큼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4.2. 부정적 평가[편집]



4.2.1. 보스턴 레드삭스[편집]


스포츠가 아무리 비즈니스적인 측면에 의해 돌아간다지만, 존 헨리 이후 보스턴의 행보는 선수들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무시하고 성과 우선주의에 치우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4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와 2007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 중 오랫동안 팀에 남아 활약했다고 할 수 있는 이는 데이비드 오티즈 외 일부에 불과하며 대다수는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다른 팀으로 보내지기 일쑤였다. 한국팬덤에서 일명 '보사구팽'이라 불리는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보스턴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나선 이마저 내치기도 했다. 브론슨 아로요는 2004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2005년에도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다. 이에 그의 에이전트는 3년간 20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아로요는 오히려 홈 디스카운트라며 레드삭스와 3년간 1125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계약기간 내에 자신을 트레이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레드삭스에 진심으로 남고 싶어했다. 그러나 보스턴 프론트는 2006년 스프링캠프 때 그를 신시내티 레즈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정작 아로요는 신시내티에서 이닝왕에 등극하는 등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던 반면 보스턴은 선발진이 붕괴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보낸 자코비 엘스버리뉴욕 양키스에서 훌륭한 먹튀가 되었다.

이러한 행보는 이후에도 이어졌고, 더스틴 페드로이아라는 팀의 상징을 비교적 싸게 잡은 이후로도 계속 짜게 부르다가 잰더 보가츠를 놓친 이후 라파엘 데버스와의 장기 연장계약처럼 진짜 쓸 때가 되면 거하게 쏘긴 한다.

물론 성적을 바로 내야 하는 빅클럽인데다 팬들과 언론의 극성이 심한 보스턴 레드삭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선수들에게 정을 주고 미적지근한 운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만이 아니라 팬들과 선수 간의 우정을 쌓는 것이기도 하다. 팬들의 사랑을 받고 팀에 애정을 품은 그들, 그리고 팀을 위해 헌신한 그들을 하루아침에 내친다면 당장 성적을 낼 수 있을지언정 남은 선수들이 팀에 충성을 바치려 할 지 의문이며 팬들도 팀에 애정을 갖기 힘들 것이다. 선수들과 팬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니 말이다.

또한 데이브 돔브로스키의 유망주 퍼붓기식 윈나우 행보도 성적 부진과 팜 황폐화라는 결과를 불러왔고 거기에 페이롤이 꽉 차버려 또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인 베츠를 다저스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으로 인해 2018년 우승했음에도 까이고 있다.


4.2.2. 리버풀 FC[편집]



4.2.2.1. 이적위원회 구성[편집]

존 헨리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인수한 이래 머니볼과 세이버매트리션을 적용해 빛나는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그는 이러한 방식이 축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여기고 리버풀을 인수한 이래 머니볼 이론을 리버풀에 적용하려 했다. 그는 야구에서 이기려면 타자가 일단 출루해야 한다는 머니볼의 원칙을 베껴 축구에서 이기려면 일단 공격을 퍼부어서 골을 넣을 확률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이 논리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존 헨리는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면서도 다른 보드진 인물들을 통해 적지 않은 간섭을 보인 게 문제였다. 대미언 코몰리, 이안 에어 등의 FSG 멤버들로 이루어진 이적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선수 영입을 단행한 것이 대표적.[9] 심지어 브랜던 로저스를 감독에 임명한 결정적인 이유들 중 하나도 로저스가 그 리버풀 이적위원회의 존재와 일처리 방식에 동의해서였다. 이렇게 영입된 선수들이 좋은 선수들이었다면 모를까, 로저스가 이적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던 데다가 상당수가 망한 영입이 됐기 때문에 큰 비판을 들었다.[10] 그나마 협상 당시 이적위원회의 개편을 강력히 요구한 위르겐 클롭 선임 후엔 이런 문제는 사라졌다.[11]


4.2.2.2. 소극적인 스쿼드 보강[편집]

FSG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문제는 그들이 이적료로 쓴 지출이 애초에 죄다 이적료 수익으로 번 돈이라는 것이다. 리버풀은 지난 5년 간 리그에서 넷스펜딩 14위이다. 클롭 감독은 정말로 기대치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 케빈 파머, #


나는 (리버풀이 앞으로 왕조를 건설할 거라고)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맨시티처럼 자금을 투자해줄 수 있는 부자 구단주를 두었다면 걱정했을 테지만, 그들의 현재 구단주는 맨시티만큼의 돈이 없다. 클롭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 게리 네빌, #


팬들 사이에서 이적시장에서의 투자에 대한 원성이 꾸준히 나오는 편이다. 사실상 리버풀의 선수 영입을 대하는 존 헨리의 스탠스는 ‘이적시장에서 알아서 버는 만큼 써라’이며, 헨리는 리버풀에게 무지막지한 수준의 이적자금을 지원해준 적이 별로 없다. 그보단 페르난도 토레스, 루이스 수아레스, 라힘 스털링, 필리페 쿠티뉴 같은 선수들이 거액에 팔림에 따라 번 수익이 크게 작용한 편. 실제로 2018년에 버질 판데이크알리송 베케르 등을 엄청난 거금에 영입하며 호평이 나오기도 했었으나 여기엔 천문학적인 가격을 기록한 쿠티뉴의 바르셀로나 이적료가 부담을 덜어준 덕이 결정적이었다. 위르겐 클롭 선임 이후 리버풀의 넷스펜딩 기록은 다른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과 비교해 봐도 중하위권에 속한다.

물론 구단주라 해서 꼭 엄청난 투자를 하라는 법은 없다. 구단주는 단순한 팀의 물주가 아니며 엄밀히 사업을 하는 투자자이다. 구단을 계산적으로 대하는 건 절대 이상한 점이 아니다. 그러나 FSG는 리버풀 팬들의, 그리고 FSG 자신들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클롭을 이적시장에서 꾸준히 지원해주지 않았고 이에 팬들이 완전히 폭발해버렸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로 리버풀이 재정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클롭이 원하던 티모 베르너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놓치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어떠한 영입도 불가능하다고 보도되자 전 세계 서포터들의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2019년부터 당시까지 데려온 선수라고는 저렴한 어린 유망주들자유계약으로 데려온 세컨 골키퍼,[12]그리고 £7.25m의 백업 선수[13]가 전부였는데, 대체 그동안의 우승 상금들은 다 어디 갔냐는 것이다. 코로나로 시즌이 잠시 중단되기 며칠 전까지도 최근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네, 수익이 유럽 구단들 중에서 몇등이네 하며 자축하고 언플하던 팀이 순식간에 돈이 없다고 하니 팬들이 상당히 분노했다. 코로나 사태로 수익이 줄어서 돈을 쓸 수 없다는 FSG 측의 입장에 팬들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도 꾸준히 지원 안 해준 주제에 무슨 소리냐며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코로나로 인한 재정 타격은 유럽의 모든 구단들에게 심각했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 존 헨리와 FSG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그리고 안필드 증축으로 인해 구단 자금의 지출이 제법 있기도 했다. 그러나 FSG의 버는 만큼 쓰라는 이 스탠스가 문제였던 것. 구단의 재정에 이런 차질이 간 상황에서 팬들은 구단주가 특별히 돈을 풀어서 구단을 지원해줬으면 하는데, 존 헨리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미 FIFA 측에서는 통상적이지 않은 시기이니 FFP룰에 대한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한다는 발표를 하여 구단주들의 지원금을 눈 감아주겠다고 시사했음에도 헨리는 지원금을 풀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리버풀의 제일 강력한 리그 우승 경쟁팀인 맨체스터 시티셰이크 만수르 구단주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에 오늘날까지 발전한 팀이고, 결정적으로 베르너를 뺏긴 팀 역시 마찬가지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를 등에 업은 첼시였기 때문에 리버풀 팬들의 헨리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치솟았다.

이후 2020년 여름 이적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데얀 로브렌을 판 돈으로 영입한 코스타스 치미카스 말고는 영입이 매우 지지부진하여 엄청난 비난을 받다가 FC 바이에른 뮌헨울버햄튼 원더러스 FC가 각각 할부로 티아고 알칸타라디오구 조타의 이적을 허락하면서 일단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시즌 초부터 주전 센터백들인 버질 판데이크조 고메즈가 심각한 시즌 아웃 급의 부상을 당함에 따라 누가 봐도 센터백 보강이 필요해지자[14] 클롭이 직접 1월 센터백 영입을 요구했음에도 FSG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돈을 쓸 생각이 없다며 클롭의 요청을 묵살했다. 클롭이 작심한 듯 아예 대놓고 공식석상에서 “센터백 보강이 된다면 무조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입을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다”라고 밝혔을 정도.[15] 그렇게 겨울 이적시장을 억지로 넘어가려고 하던 찰나에 마지막 남은 시니어 전문 센터백 조엘 마팁까지 1월 막바지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비상불이 켜지게 되었고, 결국 리버풀은 겨울 이적시장 마감을 약 이틀 남기고 뒤늦게 영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기였기 때문에 탑 타겟이던 두예 찰레타차르을 포함하여 여러 선수들을 찔러봤으나 놓칠 수 밖에 없었고, 결과는 2부리거이던 벤 데이비스와 당시 최악의 폼을 보이고 있던 오잔 카바크를 급하게 데려오게 되었다.[16] 2명의 센터백을 겨우 보강했으나, 누가 봐도 영입이 필요하던 상황에서 클롭의 요구를 무시하면서까지 보강을 거부하다가 결국 시니어 센터백이 완전히 전멸하고서야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어 시간만 잡아먹은 FSG의 스탠스에 대한 비판 여론은 전혀 잠재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에 리버풀은 시즌 중반에 리그 홈 6연패까지 기록했다.

한편 리버풀 측은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내부기자들을 통하여 2020-21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든 따내지 못하든 여름 이적시장 때 투자를 하여 스쿼드를 보강할 것이라 주장하였는데, 당연히 불신에 가득 찬 팬들 모두 이러한 소식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리버풀은 클롭과 선수들의 막판 뒷심으로 끝끝내 3위를 수성하여 2021-22 시즌 챔스 진출권을 얻었으나 여름에 기다리고 있던 건 이브라히마 코나테 단 한 명의 영입, 그리고 중원과 공격진 미보강이었다.

2022년 여름에는 90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다르윈 누녜스를 영입하기는 했지만 이건 주축이었던 사디오 마네, 지난 시즌 컵대회 등에서 백업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쳐 준 미나미노 타쿠미등을 팔고 생긴 돈으로 산 거라 적극적인 투자를 보여줬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또한 팬들의 영입 요구가 가장 컸던 중원 같은 경우, 추아메니를 놓친 이후 다음 시즌에 주드 벨링엄만을 노린다고 하면서 동시에 이번 시즌에는 기존의 유망주 자원들을 믿는다는 언플을 하며 FSG는 중원 보강을 내년으로 또 미뤘다. 22-23 시즌이 시작되고 전체적인 스쿼드의 노쇠화가 오면서 리버풀은 현재 최악의 스타트를 끊고 있다. 2018-19 시즌 이후로 소극적인 투자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3R 맨유 원정에서 패배하고 부랴부랴 중원 매물을 찾기는 했지만 이적 시장이 2주 남은 시점이라 제대로 된 매물이 있을리가 없었고 있다하더라도 오버페이가 아니면 데려오기 힘든 시점이었다. 결국 유벤투스에서 아르투르 멜루를 임대해오기는 했으나 바르샤에서 쫓겨나듯이 유벤투스로 이적한 이후로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크게 부진한 케이스이라 그닥 리버풀에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이다. 그리고 UCL 원정 나폴리전 에서 교체로 몇 분 뛰고 근육 부상으로 3개월을 아웃 당하면서 이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적시장 기간마다 FSG 측에서는 ‘리버풀을 자생구단으로 만들려 한다’는 주장을 하며 미약한 투자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매우 모순적인데, 그 이유는 현재 같은 기조로 리버풀은 자생구단이 될 수가 없다. 자생구단이라 함은, 구단주의 투자가 없더라도 구단 자체의 막대한 브랜드 파워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고 이 돈으로 이적시장에서의 투자가 가능한 구단을 말하는데, 이게 가능한 팀은 이 세상에서 손에 꼽으며 리버풀은 그런 팀들과는 냉정하게 거리가 멀다.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자생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알렉스 퍼거슨 시절에 그랬듯, 리버풀이 자생구단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간 꾸준히 트로피를 들며 리버풀이라는 구단 이름을 더 키우고 막대한 스폰서 계약을 성사시키는 긴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꾸준한 우승을 위해 이적시장에서 적극적인 투자로 스쿼드를 강화해야 한다. 즉 리버풀을 정말 자생구단으로 만들길 원한다면 FSG의 변명과는 반대로 오히려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FSG는 자생구단이 되기 위한 모든 스텝들은 그냥 깡그리 무시하며 돈 안 쓰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자생구단이라고 우기는 중인 것일 뿐이다. 이건 자생이라 하지 않고 방임이라 한다. 지원도 없이 그냥 방임시킬 뿐이다.

2022년 11월 경에 팀을 매각시키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노쇠화 되고 초토화 된 중원[17]을 방치한 채 도망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황상 큰 돈을 벌 수 있을거라고 예상 되었던 슈퍼리그 계획이 박살나 버리자 그 이후부터 이적시장을 더욱 더 소극적으로 보내고 경기장 주변 인프라만 개선하면서 사실상 구단을 매각할 타이밍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팀 스쿼드의 노쇠화로 인해 리그 성적이 전반기 내내 중상위권에 머무르면서 수익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불투명해지자 결국 매각을 단행한 듯 하다. 물론 더 일이 커지기 전에 본인들의 자금 역량 한계를 인정하고 리버풀에서 손을 떼는 게 팬 입장에서는 얄밉기는 해도 어찌보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와중 2월 20일 매각 의사를 철회하며 리버풀 팬들이 뒷목을 잡고 있다. 이는 완전 매각에 40억 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요구한 존 헨리의 욕심과 더불어 완전 매각이 아닌 소수 지분의 매각으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알려져있다.[18]

2023년 1월 겨울 이적시장이 열렸지만 코디 각포 한명 영입해놓곤 돈없다며 이적시장이 다 끝나가는 와중에도 가장 급한 미드필더 보강은 여전히 0입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노쇠화된 중원의 세대교체를 미룬 대가로 꾸준히 언급되던 엔소 페르난데스는 프리미어 리그 레코드 이적료로 첼시 FC행이 결정되었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놓고 다투던 팀은 사라지고 2023년 2월 21일 기준 리그 8위 중위권 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3월 이후에는 클롭의 현실타협과 피드백 덕분에 5위까지 다시 순위를 끌어올린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

그렇지만 4월 중순인 현재 다시 순위는 8등으로 내려앉았으며 챔피언스리그도 16강에서 또 레알에게 참패하면 떨어지면서 사실상 무관+챔스진출 실패의 결과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암흑기로 되돌아갈지 안 갈지에 기로에 서있는 와중에 주요 언플 소재이던 주드 벨링엄 포기 기사가 와르르 쏟아지면서 팬들은 하나같이 분노하는 중이다. 그나마 이후 도미니크 소보슬러이 영입 사가 당시 이례적으로 차입을 통해서 영입에 관여했고, 3선에서 빌드업 관여를 도와줄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도 값싼 이적료에 데려오면서 리빌딩 의지를 늦게나마 드러낸 데다가 한 명의 빅 사이닝만으로는 전체적인 미드필더 뎁스에 개편이 이뤄지지 못할 스쿼드 문제가 밝혀졌다는 점으로 인해 벨링엄 사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 여론이 완화되긴 했다.

그러나 이후 로메오 라비아와의 협상에서 £50m을 요구하자 난색을 표하며 협상을 질질 끌다가 뜬금없이 첼시 FC와 협상이 길어지는 모이세스 카이세도한테 £110m을 비드하는 짓을 저질렀는데 카이세도는 리버풀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첼시만 바라보면서 하이재킹은 실패했고[19] 역으로 첼시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첼시가 보복성으로 라비아를 £55m을 비드하자 아차싶었는지 부랴부랴 £60m을 비드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버리면서 라비아가 최종적으로 첼시를 선택했다고 보도하면서 하이재킹 시도 한 번으로 영입할 수 있는 선수 2명을 한 번에 놓쳐버리는 가히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판단을 하면서 리버풀 팬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돈이 없다는 핑계도 이번 사가로 쌓아둔 총알은 많이 있는데 그냥 안 쓰면서 허송세월 보낸 것이란 사실이 탄로나며 거짓으로 밝혀졌기에 더더욱 그렇다.


4.2.2.2.1. 돈과 관련된 끊이지 않는 잡음[편집]

단순히 이적시장에서의 행보만이 아니라 클롭 감독은 리버풀에 부임한 후로 계속해서 리버풀 시민들을 생각하는 면모를 보이는 반면, FSG는 경기 티켓값을 올리거나 코로나 19 사태 후 손해를 줄이겠답시고 직원들을 임시해고 하는 등의 결정을 내려 팬들의 큰 분노와 반발을 산 뒤 두 결정을 철회하는 논란을 만들었다. 여기에 돈을 보고 유러피언 슈퍼 리그 사태에까지 매우 주도적으로 가담하여 대다수의 현지 팬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이 슈퍼 리그마저 엎어짐에 따라 존 헨리는 또 다시 팬들에게 꼬리를 내리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4.2.2.3. 부족한 레전드 대우[편집]

여기에 FSG는 클럽 레전드 대우가 매우 형편없다는 의견도 많다. 스티븐 제라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FSG가 자신에게 재계약을 제시한 내용과 자신이 이적을 결심하게 된 때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이에 많은 리버풀 팬들이 FSG에게 분노하였다. 제라드의 자서전에 따르면, 자신은 리버풀에서 선수 은퇴 후 자연스레 코치로 합류하는 그림을 원했으며 브랜던 로저스 감독 역시 자신과의 대화에서 “넌 여전히 핵심 선수고 나의 플랜 안에 있다. 평소에 적절한 휴식을 주고 중요한 경기에 쓰겠다”라고 말해줬으나, 정작 보드진이 한참 시간을 끈 뒤 제라드 측에 제시한 재계약 오퍼는[20] 계약기간 1년 연장에 기본 주급을 40% 삭감, 그리고 선발출장과 공격 포인트 횟수에 따른 보너스였다고 한다. 주급 삭감은 제라드 역시 각오했던 부분이었으나 매우 적은 계약기간과 인센티브 장난질을 치자 마음이 상하여 팀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기 된 것.

비단 제라드 뿐만 아니라 다니엘 아게르, 페페 레이나 등의 선수들이 그들에게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여 결국 선수 말년에 쓸쓸히 리버풀을 떠나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2021년 여름에는 조던 헨더슨에게마저 그의 가치를 낮게 보는 재계약 오퍼를 내밀었고 이에 헨더슨 측이 거절하자 헨더슨을 팔아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기까지 했다. 그나마 위르겐 클롭 감독이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하며 겨우 헨더슨과의 재계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이가 적지 않은 선수들과 재계약을 하는 데에 있어서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건 잘못된 방식이 아니다. 당장 오늘 잘한다 해도 내일부터 폼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게 30대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런 계산적인 접근도 접근하는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FSG는 오랫동안 팀을 위해 헌신하였고 그에 걸맞는 미래 대우를 받아 마땅한 선수들에게 이런 추태를 부려서 문제인 것.[21]


4.2.2.4. 지나친 언론 플레이[편집]

FSG는 이미지메이킹에 매우 큰 공을 들이는 집단이다. 때문에 그들은 항상 내부 어용 기자들을 풀어 자신들을 찬양하는 기사를 쓰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모든 걸 정당화하려고 하는데, 매우 다양한 요소를 언플용으로 이용해먹는다.

대표적으로 2020년 UEFA가 맨체스터 시티에게 FFP룰을 어겼다는 혐의로 2년간 유럽대항전 진출을 금지시키자 내부기자들은 발 빠르게 “FSG는 진작부터 FFP룰을 고려한 적절한 방식으로 구단을 운영해왔다”라며 뜬금없이 FSG를 찬양하는 기사들을 써내렸다.

내부기자들이 말하는 리버풀이 적극적으로 스쿼드를 보강할 때는 계속해서 달라진다. 2019년 여름엔 2020년 여름에 영입한다 했고, 2020년 여름과 겨울엔 2021년 여름에 영입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여름 이적시장에 접어들자 내부기자들은 역시나 많은 영입은 2022년 여름에 있을 거라며 ‘리버풀은 이번 이적시장을 기존 선수들과의 재계약에 집중하는 데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에 1년 365일 내내 가능한 게 바로 선수 재계약임에도 이걸 이적시장에 몰아넣어서 미천한 스쿼드 보강을 정당화시키려 한 것. 그 결과, 리버풀은 2021년 여름에 고작 센터백 한 명만을 영입하는 역대급 행보를 보였고, 이로 인해 전 세계 팬들한테 거센 비난을 받자 위에 언급된 것처럼 재계약에 난항을 겪었던 조던 헨더슨과의 재계약을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공식발표하여[22] 이러한 비판들을 덮으려는 시도도 하였다.

2021-22 시즌의 리버풀은 리그컵, FA컵 우승에 성공하며 쿼트러블을 노렸지만 FSG의 소극적인 투자로 인한 얇은 뎁스 탓에 결국 프리미어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겪고 말았다. 그런데 지원은 부족하게 해주고서는 자신들이 챔스 준우승으로 인해 수익에서 손해를 봤다는 등의 적반하장 식의 기사가 떠서 콥들이 뒷목을 잡게 만들기도 했다. 그 후 2022년 여름이 되었고 팬들은 노쇠화된 중원의 보강 필요성을 느끼고 미드필더 영입을 원했다. 보드진 역시 중원 보강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추아메니를 노렸으나 선수는 레알 마드리드로 가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현지 기자들은 구단이 또 다른 메인 타깃인 주드 벨링엄을 노리기 위해 돈을 아껴야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드진 보강을 또다시 내년으로 미룸과 동시에 하비 엘리엇, 파비우 카르발류 같은 어린 유망주 자원들을 믿는 걸로 선회한다고 기사를 썼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비티냐, 후벵 네베스, 마테우스 누네스 등의 추아메니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좋은 매물들이 상당히 존재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23] 그 이후로 기자들은 하비 엘리엇, 유스에서 콜업된 스테판 바세티치를 찬양하는 기사들을 쓰면서 팬들의 중원 보강 요구를 억누르려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스티븐 제라드가 팀을 떠나던 때도 내부기자들은 당시 감독이던 브랜던 로저스를 원흉 취급하며 몰아갔고 FSG의 재계약 오퍼에 관한 내용은 전혀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제라드의 자서전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사실은 그냥 묻혔을 것이다.

이렇듯 내부기자들은 FSG가 하는 일은 다 맞다며 이 악물고 쉴드를 치고 비판은 절대 수용하지 않으며, 이 과정에서 반발하는 팬들을 무작정 차단하거나 조롱하기까지 한다. 이게 바로 FSG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는 결정적인 이유.

사실 이 내부기자라는 사람들도 머리는 달려있으니 가끔 시즌 중간에 리버풀이 돈을 써서 스쿼드 보강을 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기도 한다.[24] 다시 문제는 정작 이적시장 때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시 FSG 쉴드를 치며 보드진의 충실한 개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당장 리버풀 지역 언론지인 리버풀 에코도 원래는 여러 면에서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언론사였으나 이제는 그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그저 FSG만 무작정 찬양하는 꼭두각시 단체에 불과해졌다. 정말 중국 공산당을 보는 듯한 언론통제이다.

단 한 번, 내부기자들이 FSG를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2021년 슈퍼리그 사태이다. 워낙 컨셉 자체가 현지 팬들의 이념과 사상에 반대되는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내부기자들도 FSG를 매우 거세게 비판했다. 그런데 존 헨리가 2분짜리 사과영상 하나를 뚝하고 발표하자 그들은 바로 돌변하여 슈퍼리그에 가담한 다른 구단의 구단주들과는 달리 고작 글이 아닌 무려 영상으로 사과했다며 입 싹 씻고 존 헨리를 찬양했다. 도대체가 생각이라는 게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

반면 보스턴 레드삭스를 다루는 존 헨리 소유 보스턴글로브의 경우 미국에서도 강성 야구팬덤이 모이는 도시답게 기자들이 소신껏 보스턴을 대차게 까고 있어 구단 수뇌부 옹호에 영혼을 바친 리버풀 에코 등과 크게 비교되고 있다.


5. 우승 경력[편집]





6. 가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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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마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나 얼마 안 가 이혼했다. 그리고 1993년에 두 번째 결혼했지만 2007년에 이혼했고 2009년에 29세 연하의 1978년생 린다 피주티(Linda Pizzuti)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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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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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골의학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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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제스 반덴 오웰레
Frigyes Vanden Auweele
1군 피트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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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널 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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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피트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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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페어클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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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8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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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브릿지윌킨슨
Marc Bridge-Wilkinson
틀 정보
출처: 리버풀 FC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9월 03일
[A] Chief Commercial Officer, 최고 상업 관리자[B] Chief Operating Officer, 최고 운영 관리자







[1] 물론 쓸 땐 쓰는 스타일이지만, 클럽의 명성이나 기타 구단 씀씀이에 비해 짜긴 하다.[2] 훗날 두산 베어스단장이 말린스를 리빌딩 롤모델로 하려고 하다가 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사태가 일어났다.[3] 이전 직장이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NL 동부 상위권 팀으로 만든 바 있어 보스턴으로서는 이 부분을 높이 사 선수단 체질 개선을 맡겼다. 경질 전까지는 보스턴을 AL 동부 2위를 꾸준히 찍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가을야구에서 뉴욕 양키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번번히 밀렸다.[4] 그리고 오클랜드는 2020년 이후 지나친 비용삭감 행보로 욕을 먹고 있다.[5] 2000년 이후 근 20년간 벌어진 21번의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은 상기 언급한 4회 우승을 일궈냈다. 그 다음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3회 우승(2010, 2012, 2014). 보스턴의 철천지웬수 양키스는 생각보다 적은 2회 우승(2000, 2009)을 했다.[6] 이에 텍사스 레인저스, 댈러스 스타즈,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 팬들은 한 마음으로 힉스와 질레트를 깠다.[7] 그래도 리그컵 우승은 거머쥐며 무관을 끊어내긴 했다.[8] 이 분야 GOAT는 말할것도 없이 맨유의 글레이저 가문이 있고 떠오르고 있는 신성 AC 밀란의 제리 카디널도 거론된다. 그에 못지않은 구단주로 조 루이스도 있긴 하지만 이쪽은 미국 구단주는 아니니까 제외.[9] 쉽게 말하면 타 구단과는 다르게, 감독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구조에서부터 리버풀의 이적위원회 구조에 굉장히 하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미언 코몰리와 이안 에어는 이 당시에 리버풀 구단의 여러 부서의 업무를 동시에 같이 수행해야했을 정도로 굉장히 구단의 시스템이 열악했기 때문에 업무가 과중되는 문제가 발생해서 디렉터 업무를 온전히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리버풀 이적위원회는 선수에 대한 스카우팅이 거의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 당시의 리버풀 이적위원회가 영입 성공률이 높기가 힘들었던 것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클롭 부임 이후엔 이 구조가 개편되면서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10] 물론 로저스 감독의 능력 문제도 있었고, 이 당시 이적위원회는 감독에게 최종 결재권 등이 없었기 때문에 이적위원회의 선수 영입 픽과 로저스가 원하는 픽이 계속해서 겹치지 않아서 로저스가 이적위원회에 불만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었다.[11] 이 과정에서 마이클 에드워즈가 CEO로 자리를 잡고, 위르겐 클롭 감독도 이적위원회에 참석을 하며 위르겐 클롭에게 이적위원회의 최종 결재권이 주어지는 형식으로 이적위원회가 바뀌었다. 즉 여느 구단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방식인, 감독까지 참여해서 감독에게 최종 결재권이 주어지는 만장일치제 구성으로 바꾼 것. 다만 모하메드 살라 이적 사가 때처럼, CEO를 포함한 이사회 인원이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영입을 설득하고 최종 결재를 받아내기도 하는 식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구조라고 한다.[12] 결과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팀의 19-20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거하게 사고를 쳐서 팀의 16강 광탈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말았다.[13] 그나마 이것도 겨울 이적시장때 영입이었다.[14] 남은 전문 1군 센터백은 유리몸으로 악명 높은 조엘 마팁이 전부고 이 외엔 프리미어리그 레벨에서 검증도 되지 않았던 리스 윌리엄스나다니엘 필립스 뿐이었다. 이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인 파비뉴가 시즌 내내 센터백 땜빵을 봐야 했고 마팁의 부상, 윌리엄스와 필립스의 안정감 부족으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인 조던 헨더슨도 때때로 파비뉴의 센터백 파트너로 출전해야 했다.[15] 클롭은 원래 보드진과의 관계를 최우선시하며 영입에 관해 이 정도로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편이다.[16] 그나마 스포팅 디렉터인 마이클 에드워즈의 신들인 흥정 실력으로 협상은 리버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은 채 센터백 2명을 보강할 수 있었다.[17] 절대 과장된 말이 아니다. 케이타와 체임벌린, 존스는 부상 때문에 경기 나오는 꼴을 보기가 힘들고 헨더슨과 파비뉴는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잦은 혹사로 인해 폼이 완전히 박살 났으며 유망주 듀오인 엘리엇과 카르발류는 아직 주전으로 뛰기에는 아쉬운 장면이 많고 기복도 심하다. 밀너는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이며 그나마 티아고가 중원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1인분을 해주고는 있지만 문제는 이 선수는 또 유리몸이라 언제 들어누워도 이상하지가 않다. 즉 안정적으로 중원에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없다시피 하다.[18] FSG가 질레트-힉스로부터 리버풀을 인수할 때 쓴 금액이 3억 파운드로 대충 계산해도 1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한 셈. 한 때 리버풀 인수에 관심이 있었던 카타르도 헨리의 욕심에 학을 떼며 맨유 인수로 선회한 바 있다.[19]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갑작스레 카이세도를 하이재킹하려던 리버풀과 달리 첼시는 무려 3개월 동안이나 카이세도 영입에 공을 들이며 선수와 에이전트의 마음을 자신들 쪽으로 돌려놨기 때문이다. 리버풀의 비드가 들어오자 카이세도 측은 첼시와의 의리를 위해 리버풀의 메디컬 테스트를 거절했고, 이 과정에서 마음이 상한 라비아도 첼시 이적으로 돌아서고 만다.[20] 심지어 협상을 시작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최종 제안, 즉 통보였다.[21] 사실 이 문제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 일치한다. 보사구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바로 존 헨리가 구단주가 된 뒤에 테오 엡스타인이 단장으로 부임하면서였던 것. 즉 이 말은 보사구팽의 시작점도 존 헨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22] 헨더슨의 재계약 협상이 무사히 완료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이적시장 마지막 날보다도 몇 주 전에 기사화가 다 된 상태였다.[23] 보통 구단이라면 플랜 A가 뺏겼다면 플랜 B, C를 찾아야 정상인데 돈 쓰기 싫다고 그냥 챔피언십에서 건져온 값싼 유망주를 믿고 중원보강을 또 뒤로 미루어 버리는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도 현지기자들은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24] 클롭 부임 후 최악의 스타트를 끊은 22-23 시즌 초에는 현지기자들도 소극적인 이적시장에 대한 비판이 평소보다 많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마안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