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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말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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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68년 출생
- 1984년 데뷔
- 2009년 은퇴
- 밀라노 출신 인물
-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축구경영인
- 수비수
- 이탈리아의 테니스 선수
- AC 밀란/은퇴, 이적
- 원클럽맨/축구
-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이탈리아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8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6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축구 영구 결번 선수
- 축구 선수 자녀
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경영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레프트백이다.[8] 2015년부터 마이애미 FC 구단주를, 2018년부터 2023년까지 AC 밀란 스포츠 전략 개발 디렉터를 맡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꾸준하게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축구계의 산 증인. 그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수많은 선수들은 세월에 못 이겨 하나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오로지 말디니만은 20여 년의 세월동안 산 시로와 밀란을 굳건히 지켰다.[9]
1960년대 초중반 밀란의 주장이었던 체사레 말디니의 아들이기도 하며, 부자가 모두 밀란의 전설로 남았다. 이후 아들 다니엘 말디니도 밀란에서 경기를 치르며 3대가 AC 밀란에서 선수로 뛰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이어 2021년 9월 25일 스페치아전에서 다니엘 말디니가 득점을 기록하며 3대가 AC 밀란에서 득점을 한 대기록도 함께 작성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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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퇴 후[편집]
은퇴 이후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함께 첼시 FC로 간다는 루머가 있었고, 실제로 안첼로티가 말디니에게 코치직을 제의했었다. 그러나 말디니는 이를 거절했고, 밀란 유스팀의 코치를 맡는다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2015년 5월 20일 북미 축구리그(NASL)[10] 의 12번째 팀 마이애미 FC 구단주로 취임하였다. 해당 링크
2017년 6월, 프로 테니스 ATP 챌린저 투어 본선 무대에 진출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저 정도 운동신경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강골은 강골이다.
2018년 8월, 드디어 밀란에 복귀했다. 직책은 스포츠분야 전략 개발 담당자.
2019년 6월에는 팀의 향후 노선 문제를 두고 갈등을 벌이다 사임한 레오나르두 아라우주의 후임으로 스포츠디렉터가 되어 선수영입을 총괄하게 되었다. 스포츠 디렉터로써 첫 행보는 테오 에르난데스의 영입[11] , 또 아들 다니엘 말디니를 2군으로 넣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이탈리아 전역을 강타한 COVID-19 바이러스를 말디니 부자도 피해가지 못했다. 완치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해당링크
2021년 현재 디렉터로써의 평가를 보자면 그야말로 멱살잡고 팀을 끌어올린 수준이다. 지암파올로 감독을 선임한 것이 팀의 암흑기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최악의 성적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기존의 잘못된 스카우팅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엄청난 유망주지만 저평가를 받았거나 혹은 실력이 좋지만 팀에서 저평가 받은 선수들을 싸게 영입해서 포텐을 터트리는 방식으로 팀 성적을 끌어올렸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피올리 감독을 선임하면서 빠르게 팀을 재정비. 특히 겨울이적시장에 엘리엇을 설득해서 즐라탄을 영입했고, 2020년 코로나 휴식기 이후 2020년이 끝날때까지 리그에서 전경기 무패를 달성했다. 결국 부상 등으로 후반기 승점을 날리긴 했으나 2020-21시즌 리그 준우승을 이끌어내며 무려 8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낸다. 이에 대해 팬들의 지지는 상상초월이며, 말디니가 하는 거라면 다 믿는다는 반응. 특히 즐라탄, 키예르, 테오, 레앙, 살레마커스, 베나세르 등 우수한 선수들을 좋은 가격에 영입한 것은 역대급 거래라는 평가다. 게다가 임대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른 팀에서 잘 써먹지 못하는 잉여자원으로 스쿼드 뎁쓰를 채우는 능력도 있다. 특히 주전이 아닌 백업 선수들의 경우 임대로 데려와 쏠쏠하게 쓰는 편.
디렉터로써 말디니는 딱 한명의 타겟만 정해서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다. 각 포지션에 꼭 필요한 특성을 가진 선수를 검토하고 4~5명 정도의 영입을 동시 진행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영입을 이끌어낸다. 판매하는 팀이 가격을 예상한것 이상으로 요구할 경우 협상이 안되면 과감하게 포기한다. 그래서 최선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말디니가 디렉터를 맡기 전부터 밀란의 재정상황은 상당히 나빴으며 특히 쓸데없는 영입으로 주급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말디니는 이런 선수들을 빠르게 털어내면서 고주급자를 정리했고 터무니없는 고주급을 요구하는 선수들을 쳐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좋은 스카웃 시스템을 이용해 잘 채워넣었다. 이렇게 세이브한 주급은 팀의 주급 요구를 일정선으로 지켜내는 효과가 있다.[12] 특히 골키퍼로는 역대급 주급을 요구한 돈나룸마를 FA로 내보냈지만 리그앙의 넘버원 키퍼 메냥을 계약기간이 1년 남은 것을 이용해 값싸게 영입한 것은 매우 영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돈나룸마, 찰하놀루에 이어 케시에, 로마뇰리까지 FA로 보내며 이적시장 수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돈나룸마야 그렇다 치더라도 찰하놀루, 케시에는 진작 재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1년 남긴 시점에서 질질 끌려다니며 결국 선수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 젊은 주요 선수가 4명이나 FA로 나가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도저히 재계약이 어려워 보이면 싼 가격에라도 처분하고 다른 자원을 데려와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적자금의 부족에 시달리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찰하놀루나 케시에의 경우 계약기간을 1년 남긴 상태라도 판매했다면 이적자금을 꽤나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재정 문제로 팀의 연봉 한계를 낮춘 팀의 상황이나 코로나로 인해 팀간 이적이 코로나 이전보다 활발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현실적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확실히 선수 매각으로는 별 재미를 못 보고 있으며, 팀 내 잉여 자원을 밖으로 내돌리는 능력도 약간 부족하다. 확실히 선수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눈은 탁월하지만 디렉터는 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게 문제. 결국 밀란은 21-22 시즌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고질적인 자금 문제+보드진 재계약 문제가 발목을 잡아 유력한 영입 후보였던 스벤 보트만과 헤나투 산체스를 모조리 놓치고 만다. 그나마 샤를 더 케텔라러를 데려오는 것에 성공했고, 일단 영입한 유망주들은 대부분 감독인 피올리가 어떻게든 포텐을 터뜨려주고 있어서 전력 자체는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겪은 뒤 느낀 바가 있는지 2021년부터는 빠르게 재계약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밀란이 21-22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암흑기를 끝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런데 2023년 6월 6일에 시즌이 끝난 후 구단주로부터 리키 마사라와 함께 경질당하며 5년만에 밀란을 떠나게 되었다. 구단주와의 마찰과 말디니 픽이었던 샤를 더 케텔라러와 디보크 오리기가 폭망한 것이 경질된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고 경질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구단주 측의 매우 부족한 지원으로 인해 결국 폭발한 말디니가 구단주와 대판 싸웠고[13] 말디니의 비판을 이해하기는커녕 귓등으로 흘려 듣고 경질을 통보한 듯하다.
몇 차례 실수가 있긴 하였으나, 테오 에르난데스, 하파엘 레앙, 마이크 메냥 등 밀란의 부흥을 이끈 선수들을 싼 값에 적재적소에 영입하고, 무엇보다 AC밀란의 레전드 of 레전드인만큼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말디니였기에 팬들은 물론 선수단조차 말디니의 경질 소식에 분노하거나 놀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경질로 인해 그가 주도하던 루벤 로프터스치크와 카마다 다이치 관련 딜이 모두 파토가 났다.[14] 또한 마이크 메냥 역시 밀란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보도와 여러 밀란 선수들이 팀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며 자칫 이 판단은 밀란 최악의 오판이 될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말디니가 잘리자마자 토날리를 선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뉴캐슬에 파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가고 있다. [15]
하지만 시간이 지난 이후 말디니 경질에 대한 반응이 극과 극으로 달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말디니가 지금의 AC 밀란의 에이스인 하파엘 레앙을 시작으로 테오 에르난데스, 마이크 메냥, 이스마엘 베나세르, 산드로 토날리, 피카요 토모리, 말릭 치아우 등등 매우 유망한 선수들은 잘 사오며 키워왔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는 계륵이 되어버린 선수인 티에무에 바카요코 재임대, 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않고 깽판만 친다는 세르지뇨 데스트 임대 영입, 자신이 주도해서 데려 온
결국 AC밀란의 오랜만의 스쿠데토 획득엔 말디니의 공이 작다고 할 수 없고 경질 직전의 상황을 보면 구단주의 적은 지원을 비판하며 지원 더 해달라고 했다가 구단주가 일방적으로 말디니를 경질한 셈이기 때문. 심지어 함께 호흡을 맞춘 단장도 잘랐다. 구단주가 말디니가 AC밀란에서 어떤 존재인지, 또한 이때까지 남긴 공적이 어느정도였는지도 몰랐다는 보도가 나온 시점에서 구단주의 말디니 경질은 말디니의 비판과 별개로 좋은 행동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후 레드버드, 즉 카디널이 토날리까지 팔며 폭주하나 시작했으나 이 돈을 바탕으로 에레디비시 드리블 성공률 1위 미드필더 티자니 라인더스를 시작으로 안테 레비치의 걸맞는 후계자이기도 하며 스위스의 신성 노아 오카포 그리고 라리가 탑 5 윙어에 드는 사무엘 추쿠에제를 본 가격보다 더 싸게 사오는 등 말디니가 영입하려 했던 선수들하고 차원이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며 팬들은 오히려 말디니가 나간게 팀에 전력의 더 발전이 되었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팀의 레전드와 핵심 선수가 나갔지만 최대 약점이던 뎁스는 두껍게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 심지어 토날리는 도박 논란까지 터지며(...) 거상으로 재평가 받는 중이다...
그리고 현재 구단주가 바뀐 맨유측에서 말디니를 노리고 있다고 거론되었으나, 새 행선지로 파브리지오 로마노에 의해 알 이티하드 FC의 이사 직함 부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4. 평가[편집]
명실상부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풀백이자, AC 밀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다. 풀백이 아니라 수비수 전체로 한정해도 말디니보다 명백히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는 프란츠 베켄바워를 제외하고는 없다. 은퇴하기 직전인 2000년대 후반에도 월드클래스로 평가받았을 만큼 굉장히 롱런한 것이 특징인데, 특히 38세였던 06-07 시즌, 밀란의 UCL 우승을 이끌고 UEFA 올해의 수비수를 수상한 것은 놀라울 정도. 말디니가 얼마나 꾸준했는지는 가장 권위있는 상인 발롱도르 순위로도 알 수 있는데, Top 10에 무려 6번[17] 이나 들었으며 유효표를 받은 횟수도 11회에 달한다. 수비수들 중 이보다 더 많은 유효표를 받은 선수는 오직 12회의 베켄바워만 있을 뿐이다. 또한 FIFA 올해의 선수 순위에서도 Top 10에 무려 5번[18] 이나 들었다. 또한 옹즈도르도 1995년 3위에 선정되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우승만 못했을 뿐, 월드컵 준우승ㆍ3위, 유로 준우승 등 좋은 성과를 냈으며 월드컵 베스트 11에 1회, 유로 베스트 11에 3회 선정될 정도였으니 국대 경력도 뛰어난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로 프랑스 풋볼, 월드 사커 등 축구 유력 매체에서 역대 베스트 11을 뽑을 때, 4백에서 레프트백 자리는 사실상 말디니가 고정 멤버로 들어가는데 센터백 한 자리의 프란츠 베켄바워, 골키퍼 자리의 레프 야신과 비슷한 취급이다.
풀백 위치에서 말디니의 위상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선수로는 카푸, 호베르투 카를루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니우통 산투스, 자우마 산투스, 자친토 파케티, 베르티 포크츠, 파울 브라이트너, 다니 알베스, 필립 람 정도인데 이들 중 누구도 말디니와 동급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말디니의 위상은 풀백을 넘어 프란츠 베켄바워, 프랑코 바레시, 바비 무어와 함께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며, 더 나아가 '베켄바워의 아성에 그나마 가장 근접한 수비수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바로 말디니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AC 밀란 (1985~2009)
- 세리에 A: 1987-88, 1991-92, 1992-93, 1993-94, 1995-96, 1998-99, 2003-04
- 코파 이탈리아: 2002-03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2, 1993, 2004
- UEFA 챔피언스 리그: 1988-89, 1989-90, 1993-94, 2002-03, 2006-07
- UEFA 슈퍼컵: 1989, 1990, 1994, 2003
- 인터컨티넨탈컵: 1989, 1990
- FIFA 클럽 월드컵: 2007
5.2. 개인 수상[편집]
- 발롱도르 3위: 1994, 2003
- 발롱도르 드림팀: 2020[19]
- FIFA 올해의 선수 2위: 1995
- FIFA 100: 2004
- FIFA FIFPro 월드 XI: 2005
- UEFA 올해의 수비수: 2006-07
- UEFA 올해의 팀: 2003, 2005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4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88, 1996, 2000
- UEFA 유로 역대 베스트 XI: 2016
-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3
- UEFA 챔피언스 리그 공로상: 2009
-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2003-04
- 세리에 A 올타임 XI: 2017
- UEFA 회장상: 2003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2
- 이탈리아 스포츠 명예의 전당: 2018
- AC 밀란 명예의 전당: 2014
- FIFA 공로장: 2008
- 20세기 유럽팀: 1998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4
- 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2013
- 엘 파이스 유럽 올해의 선수: 1994
- 유니세프 유럽 올해의 축구 선수: 1993-94
- ESM 올해의 팀: 1994-95, 1995-96, 1999-2000, 2002-03
- FIFA XI: 2002
- 브라보 상: 1989
- 마르카 레전드: 2008
- 옹즈 드 옹즈: 1989,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2003
- 프레미오 인테르나치오날레 자친토 파케티: 2008
- 원 클럽 맨 상: 2016
- 가제타 스포츠 상 - 레전드: 2018
- 프레미오 나치오날레 캐리에라 에셈플라레 가에타노 시레아: 2002
- 돈 발롱 21세기 드림팀: 2010
- IFFHS 올타임 월드 드림팀: 2021
- IFFHS 올타임 유럽 드림팀: 2021
- IFFHS 올타임 이탈리아 드림팀: 2021
- 글로브 사커 워워즈 올해의 스포츠 디렉터: 2022
5.3. 수훈[편집]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00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1991
5.4. 출전 기록[편집]
6. 여담[편집]
- 선수 생활을 오로지 이탈리아에서만, 그것도 AC 밀란에서 원클럽맨으로 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구사력이 수준급이다. #
케인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는 댓글이 킬포영어 이외에도 스페인어도 수준급으로 2023년 한국에 왔을 때 후술할 이천수와도 스페인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축구잡지 포포투에 실렸던 안드리 셰브첸코의 인터뷰에 의하면 걸어다닐 때마다 멋이 뚝뚝 흘러 넘치는 패셔니스타들이 즐비한 밀란에서도 말디니의 패션감각은 군계일학 수준으로 단연 최고였다고 한다. 실제로 키도 크고 잘생겼다보니 더더욱 그런 편이다. 현재 50대가 넘다 보니 흰머리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외모는 미중년에 속하는 편이다. 사실 AC 밀란을 거쳐간 선수 중 미남이 워낙 많아서[20] 그렇지 말디니도 굉장히 잘생긴 선수였다.
-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이 은퇴 이후엔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단정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봐서 탈모는 아니며 은퇴 후 딱히 헤어스타일에 신경 쓸 이유가 없던게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선수들이 머리를 자르는 것도 이게 사실 제일 큰 이유이다.[21]
- 아인트호벤과의 2004-05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에서 얀 페네호르오프헤셀링크에게 발로 후두부를 가격 당했다. 공중으로 떠오른 볼을 헤셀링크가 바이시클킥을 시도했고 말디니가 헤더로 걷어내려다 맞은 것. 이로 인해 전반 중반이 되기도 전에 카카 칼라제와 교체를 했다. 이 경기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선발로 나온 경기라 공중파에서 생중계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천수의 헤드킥을 떠올렸으며 해설 역시 그 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연관지었다.
- 여담으로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와 함께 부자가 같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다름 아닌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아버지는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아들은 아주리 군단 주장으로 참가한 것. 알다시피 아주리 군단은 당시 16강에서 한국에게 패배해 짐을 싸야만 했고 파라과이 또한 16강에서 독일에게 패배해 탈락한다.[22]
- 대표팀 후배 키엘리니의 멱살을 잡은 적이 있다. 당시 유벤투스와 AC 밀란의 경기였는데 키엘리니가 카카와의 경합 과정에서 카카를 손으로 쳤고 말디니가 그걸 보고 분노하여 키엘리니의 멱살을 잡은 것. 키엘리니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소연했고 다른 유벤투스 선수들도 일단 말디니를 말리기 바빴다. 말디니가 우상이었던 키엘리니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고[27] 경기가 끝난 뒤 펑펑 울었다고 한다. 말디니가 분노한 이유는 당시 밀란의 어린 에이스 선수 카카에 대한 견제가 심해 팀의 고참이었던 그는 이에 대해 예민했었는데, 키엘리니로 인해 쌓였던 감정이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키엘리니는 정말 고의가 아니었고 말디니는 이를 알고 나중에 키엘리니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 말디니는 호나우두가 밀란으로 이적할 때 "호나우두는 여지껏 내가 마크했던 공격수 중 두 번째로 막기 힘든 선수"라며 극찬했다. 첫 번째는 디에고 마라도나. 처음 디에고 마라도나와 붙었을 때 "에이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뭐 다를 게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마라도나와 경기에서 부딪혔고 당연히 그 경기에서 몇 번의 신체적인 충돌이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허벅지가 쑤셔서 보니 멍이 나 있었다고...
- 말디니의 이름은 분명히 파올로 말디니이지만, 여러 기사 및 축구팬들이 파울로 말디니로 잘못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파울로는 흔한 편이지만 파올로는 드문 편이어서 그런 듯 하다.
- 피파 온라인 3에서 월드 레전드로 나왔으며, 평가는 가히 루드 굴리트의 수비수 버전. 피지컬도 무진장 센데다 오버롤도 93으로 매우 높아 얼티메이트 레전드로도 뚫기가 어렵다. 다만 보직이 센터백으로 나와서 영 안맞는다는 느낌이나 레프트백으로 놔도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 FC 온라인에서는 NHD, TC, HOT, LH, EBS, BTB, CAP, LN, ICON,HG,CC,ICON TM 클래스로 출시되었다. 본 포지션인 레프트백이 아닌 센터백으로 주로 기용되며 라파엘 바란, 버질 반 다이크, 리오 퍼디난드 등과 함께 적폐 센터백으로 꼽힌다.[28] 사실 플레이스타일에서 언급되었듯이 선수경력 중후반에는 대부분 센터백으로 뛰었으므로 고증오류는 아니다. 왼발 약발 4로 양발이 아닌 것이 더 고증오류에 가깝다.
- 피파 모바일(넥슨)에서 사용하는 유저들이 많다.
- PES 시리즈에도 수록되어있다. 레전드와 아이코닉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아이코닉버전 만랩은 95이며 팀버프를 받을시 97까지 올라가는 역대급 수비수로 나온다. 왼쪽 오른쪽 중앙 수비를 모두 볼수있으며 수비력과 공격력 모두 적폐급 센터백이다. 기술추가로 고난도 걷어내기 기술을 붙인다면 대체불가 선수로 평가받는다.
- 2020년 3월 21일, 둘째 아들인 다니엘 말디니와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완치 판정은 받았으나 후유증으로 인해 아직 운동 복귀는 어렵다고 전했다. #
- 2020년 4월 24일 한국의 승리를 비꼬았다는 기사가 나와 축구팬들이 조소를 했으나, 세리에매니아에서 대화 해석본이 나오자 생각보다 빠르게 논란이 종결됐다. 기자
기레기를 욕하는 건 덤. 아래는 한일월드컵 관련 대화 번역본. 22분부터 시청하면 된다.
【 말디니와 비에리의 인스타그램 대화 번역본 】 ||<table align=center>||
말디니 : 25년의 커리어동안 우승 많이 했고, 밀란을 떠날 생각 없었다. 나는 밀라니스타다. 트로피 들어올린 것? 나는 역사적으로 많이 패배했던 선수다. 우승도 많이 했지만, 3번의 챔스 결승에서 패배했고, 슈퍼컵에서 한차례 패배했고, 3번의 인터콘티넨탈컵에서 패배했고, 월드컵 결승에서 한번, 유로 결승에서 한번 패했고, 월드컵 4강에서도 한번 패했다. 운좋게 우승도 많이했지만, 결승에서 패배도 많이 했다. 그것들은 경기에 일부분이다. 받아들인다. 아마도 최악의 순간은 마르세유와의 경기였다. 우리는 이길만 했고, 그렇게 된 것은 공정하지 않다. 대표팀에서 나는 훌륭한 팀에 있었고, 기회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승부차기에서 계속 패배했다. 반면 2006년 대표팀은 승부차기에서 우승했다. 리피가 2006년에 불렀지만, 트랍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거절했다. 이탈리아가 베를린에서 프랑스를 꺾고 우승한 순간 기뻤지만, 한편으로 '나는 운이 없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에 4번 참가했고, 출전 시간 기록도 세웠지만,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인생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비에리 : 우리는 98 월드컵에서 아버지와 함께 했을 때 승부차기에서 패했고, 2002년에 한국에게 패했다.
말디니 : 나의 마지막 월드컵은 2002년 한국에서였다. 많은 기억들이 있는데...(갑자기 뭔가 생각난듯이) 경기장 못들어간 적이 있었다. 너는 기억 못할테지만
비에리 : 응? 기억안나는데?
말디니 : 패스(출입증)를 안가지고 와서 경비원들이 막아서 못들어갔었다. ㅋㅋㅋㅋㅋ
비에리 : ㅋㅋㅋㅋㅋ 난 큰 줄기말고는 기억 안난다.
말디니 : 어쨌든 깜빡했었지만 경기했었고, 그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비에리 : 어느 경우든, 항상 좋은 경험이 된다. 심지어 패배한 경기들에서도. 항상 필드에서 뛰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말디니 : 보보, 진실되게 축구는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만들어줬다.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그래서 아이들을 축구를 하도록 했다. 여러명이서 조직을 이루고 활동하는 것은 사회적 능력 형성에도 좋기 때문이다. 규칙을 지키고 목표를 향하면서 희생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운좋게 최상위 레벨까지 올라갔다. 나는 두 아들들에게 항상 모든 프로페셔널들은 자기 인생에서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캄피오네와 중간 레벨 선수의 차이는 더 많은 희생이다.
- 2023년 대한민국-이탈리아-브라질 레전드 올스타전을 1달 앞두고 한국에 와서 9월 22일에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기자들이 이천수 사커킥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잘 기억이 안난다며 웃으며 말했고 축구를 하다보면 여러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천수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30] 기자회견 이후 인터넷 방송인 감스트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 그리고 EA 스포츠 FC 온라인의 특별 컨텐츠를 통해 이천수와 직접 대면했다. 사과를 받아주는 말다니의 대인배적인 면모에 이 영상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다시 한번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여기서 만약 시간을 돌려 AC 밀란이 아닌 다른 팀을 선택한다면 팀의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아마도 레알 마드리드로 가지 않았을까.. 라고 코멘트 하기도 했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수비수들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 1988년에 군 복무를 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징병제라 얄짤없이 군대에 가야했기 때문. 다만 프로 선수들은 부상 때문에 커리어가 망가질 수 있어서 군대 측에서 그렇게 굴리지 않았다고 한다. [31]
6.1. 부전자전[편집]
자신의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와 함께 AC 밀란 최고의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 사실 파올로 말디니의 우상은 미셸 플라티니로 그를 동경하여 유벤투스 FC에 가고 싶어했지만, 부친 체사레 말디니는 아들이 라이벌 팀에서 뛰는걸 탐탁치 않게 생각하여 결국 AC 밀란에서 활약한다.
그의 등번호인 3번은 영구 결번 되었으며, 말디니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이 나중에 성인 팀에 데뷔를 할때 그 번호를 물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파올로(말디니)의 등 번호 3번 역시 아버지였던 체사레 말디니의 3번을 물려받은 것이니[32] , 어쩌면 등 번호마저 3대가 이어서 달게 될 지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꼭 영입하고 싶었던 선수라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를 경기장에서 만나 자신이 얼마나 그를 영입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자 체사레 말디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제 할아버지도, 제 아버지도, 저도 AC 밀란에서 뛰었습니다. 제 아들도 그리 해야지요." 라고 대답했고 퍼거슨 감독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33]
아무튼 크면 얼마나 잘해줄지 기대가 되는 선수... 라고 생각했는데, 유스 레벨에서도 파올로의 두 아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명성을 잇기엔 너무도 평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큰 아들이 20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때에는 1군에 올라와서 훈련 기회를 받고, 2014-15 시즌부터 프리마베라의 주전 자리를 얻었나 결국 일말의 성장도 보여주지 못하고 3, 4부 리그에서 뛰고 있다. 일부의 말에 의하면 축구선수를 은퇴하고 다른 진로를 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2016년 현재 둘쨰인 다니엘 말디니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다만 포지션이 다르기에 3번을 그대로 물려받을지는 미지수다.
2020년 현재는 다니엘 말디니가 잘 성장하여 AC 밀란 1군에 데뷔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값이 부담이 된다면서 곧바로 3번을 달지는 않고 98번을 달았다. 그리고, 스페지아로 임대된 상황이다.
7. 이모저모[편집]
- FIFA 100에 선정
- 월드 사커에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바 있다. 이는 월드 사커 사상 수비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 통산 성인 경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한 선수이다. [34]
- 20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말디니의 골로 2개의 기록이 갱신되었다. 하나는 결승전 최단 시간 골 기록, 또 하나는 결승전 최고령 득점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이... - AC 밀란에서는 902번의 경기를 가졌다.
- 인터콘티넨털컵에 5회 진출. 이는 코스타쿠르타와 같은 기록이다.
-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선 8번의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최다 우승 기록자인 프란시스코 헨토(레알 마드리드)와 동일한 기록이다.
- 부자가 챔스 우승을 경험하였다.[35] 파올로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는 주장으로서 처음으로 밀란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바 있다.[36] 현재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장식한 알파가 체사레라면 오메가는 파올로라고 볼 수 있다. 만약에 훗날 다니엘까지 챔스 우승을 경험한다면 전무후무한 3대가 챔스를 우승하는 기록을 가지게 된다.
-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역대 모든 축구선수, 감독을 통틀어서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팀의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기록한 유이한 인물이다.
- A매치에서 무려 150경기, 그 중 월드컵에서만 23경기를 뛰었다. [37][38]
- 월드컵에서 뛰었던 23경기는 모두 풀 타임 출장이다.
- 월드컵에서 무려 2217분을 뛰면서 역대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세리에 A에서 58경기 무패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1991년 ~ 1993년)
- 22세의 나이에 벌써 26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 월드 사커에서 1999년에 선정한 20세기 역대 최고의 선수 21위(말디니 이상의 순위에서 이름을 올린 수비수는 베켄바워와 무어, 그리고 바레시. 각각 순위는 베켄바워는 4위, 무어는 14위, 바레시는 19위). 해당 링크
- 월드 사커에서 2013년에 선정한 역대 베스트 11에서 당당히 왼쪽 풀백을 차지했다. 참고로 월드 사커에서 뽑은 역대 베스트 11 수비 라인은 말디니-베켄바워-바비 무어-카푸. 말디니는 이 수비 라인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지만 당당하게 왼쪽을 차지한 것을 보면 말디니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 풋볼지 선정 지난 60년간 최고의 선수, 수비수부문 1위에 선정되었다. 이건 꽤나 괄목할 것인데 어떤 조사기관을 찾아봐도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뽑히는 베켄바워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된 것이다. [39]
8. 말디니에 대한 언사[편집]
파일:말디니 밀란과의 작별.jpg
현 시대를 생각해 봤을 때 리오넬 메시가 최고 레벨이다. 내 숨을 멎게 할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카카도 인상적이었고, 지단도 정말 뛰어났다. 하지만 나에게 누가 최고냐고 묻는다면 난 파올로 말디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엄청난 존재감, 투쟁심 있는 영혼,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기술적으로 세계 최고가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밀란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준 남자이다.
- 알렉스 퍼거슨
클럽에서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훌륭한 수비수.
- 프란츠 베켄바워
말디니는 내 우상이자 롤 모델이다. 어린 시절 세비야에서 살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말디니의 비디오를 보여 주며 배우라고 했었다. 말디니는 아마 모든 축구 선수들의 귀감일 것이다. 그는 전설이다. 내 이름도 말디니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세르히오 라모스
말디니는 39살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다. 그만큼 그는 뛰어난 운동 선수이고,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선수와 월드클래스 선수와의 차이는 말디니에서 볼 수 있다.
- 프랑코 바레시
말디니는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이다. 당연히 나의 우상이기도 하다.
- 카를레스 푸욜
안첼로티에게 몇 번이나 파올로 말디니에 대해,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였는지, 어떻게 하였는지, 그리고 선수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했는지 물어봤다.
- 존 테리
내가 본 선수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노력하던 선수였다. 그가 수비에 있을 때는 정말 믿음직스러웠고, 공격에 있어서는 창의적이었다. 말디니는 진정한 리더십을 갖춘 훌륭한 올라운드 축구 선수이다.
우리 팀이 이스탄불에서 패하지 않았더라면 말디니가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됐을 것이다.
- 안드리 셰브첸코
말디니는 축구에서 좋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대표하고 있다.
- 다비드 비야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뛰면서 말디니와 몇 차례 맞붙었다. 나는 그가 상대 윙어에게 따돌려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테디 셰링엄
그는 스타일리쉬한 센터백과 풀백이었다. 말디니의 경기를 읽는 능력, 태클 타이밍, 그리고 경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그를 다른 선수들과 구분시켜 줬다.
- 데니스 어윈
말디니는 내가 상대한 수비수들 중 가장 까다로운 수비수였다. 그는 강했고, 똑똑했고, 훌륭한 맨마커였다. 그는 완벽한 수비수이다.
파올로가 내게 남으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2021-22 시즌에도 AC 밀란에 남을 생각이다.[40]
그는 챔피언스 리그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수비수이다. 그에 대해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그가 공을 가졌을 때는 수비수가 아닌 정말 클래스 있는 미드필더와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것이다.
- 호나우지뉴
바레시 옆에 서 있던 말디니는 내 선수 생활에서 본 수비수들 중 최고였다. 흔히 1980년대 후반 AC 밀란을 굴리트와 반 바스텐의 공격을 중심으로 한 팀으로 기억하는데, 그 팀은 말디니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수비로 구성된 팀이었다.
- 마르셀 드사이
말디니는 밀란의 상징이다. 그는 구 세대와 현 세대를 모두 대표하기도 하며 두 시대의 연속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브라질이 펠레를 잃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말디니를 잃어야 한다.
- 잔니 리베라
파올로 말디니는 축구의 상징이다. 그가 앞으로도 축구계에 머물길 바라고 우리들은 모두 그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는 우리의 새로운 플라티니가 될 수 있다. 그가 앞으로 회장직에 대해 공부하길 바란다. 그는 언제나 충성심, 공정함, 투명함의 대명사와 같았던 인물이다.
- 루이지 리바
내가 상대해 본 최고의 수비수는 파올로 말디니였다.
- 라울 곤살레스
내가 밀란에 도착했을 때 그는 30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클래스와 평정심은 여전했다. 지능적인 수비수였고 누구보다 게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났다.
- 히바우두
말디니는 공격, 수비 둘 다 월드 클래스였다. 그는 18세 때의 기량을 39세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루드 굴리트
1994년, AC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기억하나? 프랑코 바레시와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가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했을 때, 센터백으로 출전한 말디니는 일생 동안 거기서 뛴 것마냥 우월했다.
- 로날드 쿠만
밀란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말디니의 커리어 일부분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선수, 위대한 캡틴, 위대한 남자다. 전에는 그와 상대편으로만 만났지만, 6개월간 그의 곁에서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멋졌다.
- 데이비드 베컴
말디니는 밀란의 역사이자 상징 그 자체다. 이탈리아 밖에서도 밀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반드시 말디니가 언급될 것이다. 파올로를 밀란으로 복귀시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 카카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경지를 뛰어넘는 지배자가 있다. 말디니가 그 예다. 그는 밀란의 상징이다.
파올로 말디니는 내가 상대했던 수비수들 중 단연 최고이다.
- 호나우두
말디니는 내게 있어서 아이돌이다. 그를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머리가 매우 좋은 선수이며, 팀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것은 말디니밖에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내 꿈 중 하나는 그를 추월하는 것이었다.
수비수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아이들은 말디니의 비디오를 봐야 한다.
- 잔루이지 부폰
그보다 더 뛰어난 풀백이 있었던가?
- 데니스 베르캄프
그는 모든 스포츠 스타들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 릴리앙 튀랑
나에게 있어서 말디니는 본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였다.
그가 그 나이에 이룬 것들은 정말 엄청난 것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선수이고, 그의 분야에서 최고다. 그는 5개의 유러피언 컵을 포함해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이룬 남자다. 그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제이미 캐러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밀란의 위대한 힘이며, 모범이 되는 선수이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수비수. 그와 맞대결을 해 봤는데 정말 환상적인 선수다.
- 스티브 맥마나만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 위대한 충성심과 진정성. 밀라노 더비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 하비에르 사네티
아마도 존 테리와 말디니가 상대하기 가장 어려웠던 수비수 같다.
- 웨인 루니
이탈리아의 수비 전통이 배출한 놀라운 능력의 선수다. 경기장에서 대단히 우아하게 경기를 펼쳤다. 요즘 수비수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선수다.
- 게오르게 하지
순수하게 기술적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호나우두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수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파올로 말디니가 최고다. 진정한 수비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비수, 앞으로도 최고일 수비수.
- 안드레아 피를로
말디니는 20년 이상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나는 그에게 정중히 모자를 벗으며 정말 잘 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를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들고 두려웠다. 그는 최고이자 완벽한 수비수고, 모든 것을 갖춘 수비수였다.
- 다비드 트레제게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 AC 밀란과 이탈리아의 영웅.
- 치아구 시우바
어린 시절 우상? 쉬운 질문이군. 파올로 말디니, 그를 존경해서 등번호 3번을 쓰고 있다.
- 조르조 키엘리니
어린 시절 우상? 말디니와 리트바트스키.
- 필립 람
말디니는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말디니의 경력을 잘 알고 있고, 언제나 최고라고 인정한다.
- 마테오 다르미안
내가 만나 본 가장 뛰어난 선수는 파올로 말디니다. 우리는 AC 밀란과 1995년 유러피안 슈퍼컵에서 만났는데 말디니는 나를 마크했고, 나는 경기 내내 공 한 번도 차 보지 못했다. 그는 그저 믿을 수 없었다.
- 폴 머슨
말디니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박수를 보내길 바란다. 그는 이탈리아와 세계 축구의 얼굴이다. 그는 발롱도르를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나라면 100개라도 주겠다.
- 필립 멕세
풀백으로 뛰면서 그는 왼쪽 측면을 아예 자기 소유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그는 모든 것을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쉽게 해냈다.
- 필리포 갈리
내가 밀란으로 이적한 이유는 말디니의 연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 테오 에르난데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수비수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파올로 말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