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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덤프버전 :
분류
- 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 대한민국 국회의장
- 대한민국의 남성 기자
- 정읍시 출신 인물
- 1937년 출생
- 2008년 은퇴
- 대한민국의 장로회 신자
- 제10대 국회의원
- 제11대 국회의원
- 제13대 국회의원
- 제14대 국회의원
- 제16대 국회의원
- 제17대 국회의원
- 신민당(1967년) 국회의원
- 민주한국당 국회의원
- 평화민주당 국회의원
- 신민주연합당 국회의원
- 민주당(1991년) 국회의원
- 통합민주당(1995년) 국회의원
-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 무소속 국회의원
-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 통합민주당(2008년) 국회의원
- 참여정부/인사
- 국민의 정부/인사
- 열린우리당 의장
- 원내대표
- 기자 출신 정치인
- 도강 김씨
- 연세대학교 출신
- 전주고등학교 출신
- 정읍중학교 출신
- 더불어민주당 소속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2. 생애[편집]
1937년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 통석리 석정마을[2]#에서 김환국(金煥國)의 아들로 태어났다. 감곡국민학교,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32회),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동아일보에서 기자를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해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김제군-정읍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장경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고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진의종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민주한국당 대변인을,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민주한국당 훈련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돌풍의 여파로 민주정의당 전종천 후보와 신민주당 류갑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 후 정읍시 선거구에서 13대, 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3] , 13대 국회에서는 평화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여 DJ계가 무더기로 이동했을 때, 김대중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호남 지역 정치인 중에서 유일하게 이를 비판하며 민주당에 잔류했고, 그 대가로 이듬해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회의 윤철상 후보에게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통추에서 상대표를 맡다가, 이기택과의 반목으로 1996년 11월 25일부로 통합민주당에서 출당처리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해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원혜영, 유인태, 김정길 등을 비롯한 통추인사들과 함께 김대중 지지를 선언하고 국민회의에 합류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장관급 직책인 노사정위원장으로 중용되었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다시 정읍에서 당선되고[4] , 그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되어[5] 전반기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상임고문으로 재직 중이며, 이용희가 2022년 가을에 작고한 이후 사실상 최고 원로로 일컬어지고 있다.
2020년 8월 2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김부겸 전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3. 여담[편집]
- 정읍시장을 역임한 김생기가 김원기의 사촌동생이다. 국회의장을 역임하던 시절인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김생기는 김원기의 정무담당비서관으로 재직하였다.
- 노무현의 정치적 스승이다. 1991년부터 노무현과 행보를 같이하였기 때문이다.
- 김원기는 16개의 당적 역사를 기록한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철새로 불리지 않는 이유는 군사정권에 대항하고자 힘이 부족한 야당이 정계 개편을 자주 한 탓에 그렇다. 30년이 넘는 더불어민주당의 역사에 인사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제17대 국회의원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하고도 더불어민주당의 원로로 남은 덕분에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유지하는 중이다.
- 제17대 총선에 승리한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서 법제사법위원장을 한나라당에 내주고 합의를 유도하였다. 그러나 체계 자구권 등 국회 통과안을 무력화시킬 권한이 부여된 법제사법위원회 때문에 4대 개혁 법안은 상정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4대 개혁 입법은 국회의장인 김원기가 직권상정으로 처리하면 통과할 수 있었는데 김원기마저 직권상정을 거부하면서 4대 개혁 법안은 무산된다.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무기력한 여당으로 인식되면서 언론과 공무원들의 비협조에 시달리고 참여정부는 열린우리당을 배후에 두고도 지지층이 외면하면서 레임덕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 노무현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를 말하기 1년 전인 2005년에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일갈하였다. 하지만 노무현의 발언이 워낙 파급력이 커서 김원기의 일갈은 잊혀진다.
4. 선거 이력[편집]
5. 소속 정당[편집]
6. 둘러보기[편집]
[1] 음력 1937년 1월 6일[2] 도강 김씨 집성촌이다. 사촌동생으로 국회의장 시절 자신의 정무담당 비서관을 지낸 바 있는 김생기 전 정읍시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당적은 평화민주당, 민주당, 통합민주당 [4] 이 때 공천을 놓고 경쟁한 윤철상 의원은 당시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 직권으로 전국구(비례대표) 상위권에 공천되어 당선되면서 큰 갈등은 없었다.[5] 이 때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새천년민주당 윤철상 후보를 꺾는다.[6] 정읍군, 김제군[7] 민주공화당 장경순 후보와 동반 당선[8] 정읍군, 고창군[9] 민주정의당 진의종 후보와 동반 당선[10] 정주시, 정읍군, 고창군[11] 전반기 국회의장[12] 평화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13] 민주당과 신설 합당.[14]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15]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신한국당-통합민주당 합당 반대)[16]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7]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해 탈당.[18] 국회의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19]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20] 민주당과 신설 합당.[2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2]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
(신한국당-통합민주당 합당 반대)[16]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7]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해 탈당.[18] 국회의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19]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20] 민주당과 신설 합당.[2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2]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