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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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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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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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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엘사 렌슈미트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비아 노렌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미국 국기.svg 비아트릭스 로프렌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바 파릭
6회
1952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svg 텐리 올브라이트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svg 캐럴 하이스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레진 하이저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11회
1972 삿포로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디아네 드 리우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15회
1988 캘거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리자베스 맨리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일본 국기.svg 이토 미도리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미국 국기.svg 낸시 케리건
18회
1998 나가노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0회
2006 토리노
파일:미국 국기.svg 사샤 코헨
21회
2010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22회
2014 소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23회
2018 평창
파일:오륜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4회
2022 베이징
파일: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3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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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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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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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단체전





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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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도르시 그린호프 스미스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테레사 웰드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영국 국기.svg 에델 무켈트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비아트릭스 로렌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마리벨 빈슨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스웨덴 국기.svg 비비 안네 헐튼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6회
1952 오슬로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자케린 두 비에프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인그리드 웰든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바바라 롤스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페트라 버카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체코 국기.svg 한나 마스코바
11회
1972 삿포로
파일:미국 국기.svg 재닛 린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독일 국기.svg 다그마 럴츠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키라 이바노바
15회
1988 캘거리
파일:미국 국기.svg 데비 토머스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미국 국기.svg 낸시 케리건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18회
1998 나가노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20회
2006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1회
2010 밴쿠버
파일:캐나다 국기.svg 조아니 로셰트
22회
2014 소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23회
2018 평창
파일:캐나다 국기.svg 케이틀린 오스먼드
24회
2022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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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3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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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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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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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1906년) ~ 50회(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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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1906 다보스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12회
1907 빈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13회
1908 트로파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4회
1909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5회
1910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6회
1911 빈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7회
1912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8회
1913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9회
1914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20회
1915
취소WWI
21회
1916
취소WWI
22회
1917
취소WWI
23회
1918
취소WWI
24회
1919
취소WWI
25회
1920
취소WWI
26회
1921
취소WWI
27회
1922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8회
1923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9회
1924 맨체스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0회
1925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1회
1926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2회
1927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3회
1928 런던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4회
1929 부다페스트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5회
1930 뉴욕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6회
1931 베를린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7회
1932 몬트리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8회
1933 스톡홀름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9회
1934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0회
1935 빈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1회
1936 파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2회
1937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43회
1938 스톡홀름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4회
1939 프라하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5회
1940
취소WWII
46회
1941
취소WWII
47회
1942
취소WWII
48회
1943
취소WWII
49회
1944
취소WWII
50회
1945
취소WWII

51회(1946년) ~ 100회(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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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
1946
취소WWII
52회
1947 스톡홀름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3회
1948 다보스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4회
1949 파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5회
1950 웸블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6회
1951 밀라노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57회
1952 파리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자케린 두 비에프
58회
1953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59회
1954 오슬로
파일:독일 국기.svg 건디 부쉬
60회
1955 빈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61회
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2회
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3회
1958 파리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4회
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5회
1960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캐럴 하이스
66회
1961 프라하
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
67회
1962 프라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8회
1963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9회
1964 도르트문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0회
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페트라 버카
71회
1966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2회
1967 빈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3회
1968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4회
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5회
1970 류블랴나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6회
1971 리옹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7회
1972 캘거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8회
1973 브라티슬라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79회
1974 뮌헨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80회
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다이앤 더레이우
81회
1976 예테보리
파일:미국 국기.svg 도로시 해밀
82회
1977 도쿄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3회
1978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4회
1979 빈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5회
1980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6회
1981 하트퍼드
파일:스위스 국기.svg 데니스 비엘만
87회
1982 코펜하겐
파일:미국 국기.svg 일레인 자약
88회
1983 헬싱키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89회
1984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0회
1985 도쿄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1회
1986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데비 토머스
92회
1987 신시내티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3회
1988 부다페스트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4회
1989 파리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이토 미도리
95회
1990 핼리팩스
파일:미국 국기.svg 질 트레나리
96회
1991 뮌헨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7회
1992 오클랜드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8회
1993 프라하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옥사나 바이울
99회
1994 치바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사토 유카
100회
1995 버밍엄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101회(19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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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단체전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그랑프리 파이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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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1995-96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2회
1996-97 해밀턴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3회
1997-98 뮌헨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4회
1998-99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타티야나 말리니나
5회
1999-00 리옹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6회
2000-01 도쿄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7회
2001-02 키치너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8회
2002-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미국 국기.svg 사샤 코헨
9회
2003-0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스구리 후미에
10회
2004-05 베이징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회
2005-06 도쿄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2회
2006-07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3회
2007-08 토리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4회
2008-09 고양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5회
2009-10 도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6회
2010-11 베이징
파일:미국 국기.svg 알리사 시즈니
17회
2011-12 퀘벡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8회
2012-13 소치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9회
2013-14 후쿠오카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20회
2014-15 바르셀로나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
21회
2015-16 바르셀로나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2회
2016-17 마르세유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3회
2017-18 나고야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24회
2018-19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키히라 리카
25회
2019-20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료나 코스토르나야
26회
2020-21 베이징
취소COVID-19
27회
2021-22 오사카
취소COVID-19
28회
2022-23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미하라 마이
29회
2023-24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30회
2024-25 오를레앙
파일:국기.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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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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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976년) ~ 50회(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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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1976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수지 브래셔
2회
1977 므제브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롤린 스코젠
3회
1978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질 쇼어
4회
1979 아우크스부르크
파일:미국 국기.svg 일레인 자약
5회
1980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6회
1981 런던
파일:미국 국기.svg 티파니 친
7회
1982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동독 국기.svg 자니아 버스
8회
1983 사라예보
파일:동독 국기.svg 시몬 코흐
9회
1984 삿포로
파일:동독 국기.svg 카린 헨드슈케
10회
198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소련 국기.svg 타티아나 안드리바
11회
1986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나탈리아 고르벤코
12회
1987 키치너
파일:미국 국기.svg 신디 보츠
13회
1988 브리즈번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14회
1989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제시카 밀스
15회
1990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사토 유카
16회
1991 부다페스트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17회
1992 헐
파일:프랑스 국기.svg 라에티티아 허벌트
18회
1993 서울
파일:일본 국기.svg 코이와이 쿠미코
19회
199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20회
1995 부다페스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1회
1996 브리즈번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이바노바
22회
1997 서울
파일:미국 국기.svg 시드니 보겔
23회
1998 세인트 존
파일:러시아 국기.svg 율리아 솔다토바
24회
1999 자그레브
파일:러시아 국기.svg 다리아 티모셴코
25회
2000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제니퍼 커크
26회
2001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크리스티나 오블라소바
27회
2002 하마르
파일:미국 국기.svg 앤 패트리스 맥도너
28회
2003 오스트라바
파일:일본 국기.svg 오타 유키나
29회
2004 헤이그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30회
2005 키치너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31회
2006 류블랴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32회
2007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캐럴라인 장
33회
2008 소피아
파일:미국 국기.svg 레이첼 플랫
34회
2009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료나 레오노바
35회
2010 헤이그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카미 카나코
36회
2011 강릉
파일:러시아 국기.svg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37회
2012 민스크
파일:러시아 국기.svg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38회
2013 밀라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라디오노바
39회
2014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라디오노바
40회
2015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41회
2016 데브레첸
파일:일본 국기.svg 혼다 마린
42회
2017 타이베이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43회
2018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44회
2019 자그레브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45회
2020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카밀라 발리예바
46회
2021 하얼빈
취소COVID-19
47회
2022 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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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회
2023 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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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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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회
2025 데브레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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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20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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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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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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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914년) ~ 50회(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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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1914 뉴헤이븐
테레사 웰드
2회
1915
취소WWI
3회
1916
취소WWI
4회
1917
취소WWI
5회
1918 뉴욕시
로즈메리 베리스퍼드
6회
1919
미개최
7회
1920 뉴욕시
테레사 웰드
8회
1921 필라델피아
테레사 웰드
9회
1922 보스턴
테레사 웰드
10회
1923 뉴헤이븐
테레사 웰드
11회
1924 필라델피아
테레사 웰드
12회
1925 뉴욕시
비어트릭스 로크런
13회
1926 보스턴
비어트릭스 로크런
14회
1927 뉴욕시
비어트릭스 로크런
15회
1928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16회
1929 뉴욕시
메리벨 빈슨
17회
1930 프로비던스
메리벨 빈슨
18회
1931 보스턴
메리벨 빈슨
19회
1932 뉴욕시
메리벨 빈슨
20회
1933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21회
1934 필라델피아
수잰 데이비스
22회
1935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23회
1936 뉴욕시
메리벨 빈슨
24회
1937 시카고
메리벨 빈슨
25회
1938 필라델피아
조앤 토저
26회
1939 세인트 폴
조앤 토저
27회
1940 클리블랜드
조앤 토저
28회
1941 보스턴
제인 본
29회
1942 시카고
제인 본
30회
1943 뉴욕시
그레천 메릴
31회
1944 미니애폴리스
그레천 메릴
32회
1945 뉴욕시
그레천 메릴
33회
1946 시카고
그레천 메릴
34회
1947 버클리
그레천 메릴
35회
1948 콜로라도 스프링스
그레천 메릴
36회
1949 콜로라도 스프링스
이본 C. 셔먼
37회
1950 워싱턴 D.C.
이본 C. 셔먼
38회
1951 시애틀
소냐 크로퍼
39회
1952 콜로라도 스프링스
텐리 올브라이트
40회
1953 허시
텐리 올브라이트
41회
1954 로스앤젤레스
텐리 올브라이트
42회
1955 콜로라도 스프링스
텐리 올브라이트
43회
1956 필라델피아
텐리 올브라이트
44회
1957 버클리
캐럴 하이스
45회
1958 미니애폴리스
캐럴 하이스
46회
1959 로체스터
캐럴 하이스
47회
1960 시애틀
캐럴 하이스
48회
1961 콜로라도 스프링스
로런스 오언
49회
1962 보스턴
바버라 롤스 퍼즐리
50회
1963 롱비치
로레인 핸런

51회(1964년) ~ 100회(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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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
1964 클리블랜드
페기 플레밍
52회
1965 레이크플래시드
페기 플레밍
53회
1966 버클리
페기 플레밍
54회
1967 오마하
페기 플레밍
55회
1968 필라델피아
페기 플레밍
56회
1969 시애틀
재닛 린
57회
1970 털사
재닛 린
58회
1971 버팔로
재닛 린
59회
1972 롱비치
재닛 린
60회
1973 미니애폴리스
재닛 린
61회
1974 프로비던스
도로시 해밀
62회
1975 오클랜드
도로시 해밀
63회
1976 콜로라도 스프링스
도로시 해밀
64회
1977 하트퍼트
린다 프래티아니
65회
1978 포틀랜드
린다 프래티아니
66회
1979 신시내티
린다 프래티아니
67회
1980 애틀랜타
린다 프래티아니
68회
1981 샌디에이고
일레인 자약
69회
1982 인디애나폴리스
로잘린 섬너스
70회
1983 피츠버그
로잘린 섬너스
71회
1984 솔트레이크시티
로잘린 섬너스
72회
1985 캔자스시티
티파니 친
73회
1986 유니언데일
데비 토머스
74회
1987 타코마
질 트레나리
75회
1988 덴버
데비 토머스
76회
1989 볼티모어
질 트레나리
77회
1990 솔트레이크시티
질 트레나리
78회
1991 미니애폴리스
토냐 하딩
79회
1992 올랜도
크리스티 야마구치
80회
1993 피닉스
낸시 케리건
81회
1994 디트로이트
-
82회
1995 프로비던스
미셸 콴
83회
1996 산호세
타라 리핀스키
84회
1997 내슈빌
미셸 콴
85회
1998 필라델피아
미셸 콴
86회
1999 솔트레이크시티
미셸 콴
87회
2000 클리블랜드
미셸 콴
88회
2001 보스턴
미셸 콴
89회
2002 로스앤젤레스
미셸 콴
90회
2003 댈러스
미셸 콴
91회
2004 애틀랜타
미셸 콴
92회
2005 포틀랜드
미셸 콴
93회
2006 세인트루이스
사샤 코헨
94회
2007 스포캔
키미 마이즈너
95회
2008 세인트 폴
미라이 나가수
96회
2009 클리블랜드
알리사 시즈니
97회
2010 스포캔
레이첼 플랫
98회
2011 그린스보로
알리사 시즈니
99회
2012 산호세
애슐리 와그너
100회
2013 오마하
애슐리 와그너

101회(2014년) ~

* 토냐 하딩 사건으로 인해 1994 전미선수권 챔피언 토냐 하닝의 타이틀을 박탈함.

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3 : 남자 | 여자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파일:일본 국기.svg 전일본선수권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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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미셸 콴
Michelle Kwan


2003 세계선수권에서 통산 5번째 금메달 획득 당시
본명
미셸 윙산 콴
Gwaan1 Wing6 Saan1[1]
Michelle Wingshan Kwan
중국명
관 잉샨(關穎珊(Guān Yǐngshān)[2]
출생
1980년 7월 7일 (43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토런스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신체
157cm, 48kg
종목
피겨 스케이팅
소속
LA FSC
은퇴
2008년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2.2. 1992-93 시즌
2.3. 1993-94 시즌
2.4. 1994-95 시즌
2.5. 1995-96 시즌
2.6. 1996-97 시즌
2.7. 1997-98 시즌
2.8. 1998-99 시즌
2.9. 1999-00 시즌
2.10. 2000-01 시즌
2.11. 2001-02 시즌
2.12. 2002-03 시즌
2.13. 2003-04 시즌
2.14. 2004-05 시즌
2.15. 2005-06 시즌
2.16. 은퇴 이후
3. 평가
4. ISU 공인 최고점수
5. 프로그램
5.1. 목록
5.2. 비화
6. 커리어
7. 기타
8. 올림픽에서의 불운



1. 개요[편집]


중국계 미국인 前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만 5세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고, 다음 해부터 전문 수업을 받고 각종 지역 대회에서 우승했다. 8세 때 프랭크 캐롤 코치를 만났다. 이때 캐럴의 평가는 "기운만 세고 섬세하지도 않고 예술성도 없는 말괄량이"라고 평가했다.

그 성격을 증명이라도 하듯 콴은 빨리 시니어로 나가고 싶어했지만, 캐롤 코치는 기술성과 예술성을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질세라 콴은 훈련 시간을 2배로 늘려 학교를 다니면서 하루 3시간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콴은 하루 4시간을 훈련하게 해달라고 부모에게 졸랐지만, 성장기이던 콴의 몸을 걱정한 부모는 거절했다. 그리고 가정교사를 고용하여 공부도 뒤쳐지지 않게 만들었다.


2.2. 1992-93 시즌[편집]


불과 만 12세로 1993 전미선수권을 통해 시니어 데뷔하여 6위를 차지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대회인 가데나 스프링 트로피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하였다.[3]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미셸 콴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2.3. 1993-94 시즌[편집]


1993년 7월 만 13세가 된 콴은 올림픽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다. 이 대회에서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었던 데다 6개의 트리플 점프를 성공시켜 관중과 전문가들을 경악시킨다. 이때 떨리지 않냐고 물었던 한 인터뷰의 대답이 대단하다. "저의 기분이 어떻건, 관중이 많건 적건 저는 예정된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합니다." 과연 어렸을 때부터 기질이 보였다. 외에도 Goodwill Games 2위, 스케이트 아메리카[4]에서 7위를 하였다. 1993년 11월~12월에 걸쳐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만 13세 5개월이 조금 안 된 나이로 우승하였다.

파일:미셸 콴2.jpg
1994 전미선수권[5]
올림픽 선발전으로 치러진 1994 전미선수권에서 2위를 하였으나, 당시 우승자였던 토냐 하딩[6] 부상으로 내셔널에 나오지 못한 낸시 케리건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출전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1994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여[7] 쇼트에서 실수가 많아 11위, 프리에서는 6위를 기록하였고 종합 8위로 경기를 마감하였다.


2.4. 1994-95 시즌[편집]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은메달, 트로피 랄리크에서 동메달을 땄다. 전미선수권에서 2위, 1995 세계선수권 4위를 차지했다.


2.5. 1995-96 시즌[편집]


챔피언 시리즈 스케이트 아메리카, 스케이트 캐나다, 나치온스 컵에서 모두 우승했다.[8] 이어 1995-96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에서도 우승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의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전미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고, 1996 세계선수권에서도 첫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 스윕을 달성했는데, 이 때 나이는 만 15세였다.

그러나 이 대회가 캐나다가 아닌 다른 곳(아시아유럽)에서 열렸다면, 중국 심판이 없이도 예술점수 6.0점을 2개나 받은 천루가 금메달이었을거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일본 심판이 프리에서 의도적으로 예술점수 6.0점을 마지막 출전 선수인 콴에게 주었는데, 이 점만 아니었다면 전년도 우승자인 천루에게 금메달이 돌아갔을 것이다.[9]


2.6. 1996-97 시즌[편집]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트로피 랄리크에서 모두 우승하고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지만 타라 리핀스키에 밀려 파이널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1997 전미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도 타라 리핀스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7. 1997-98 시즌[편집]


Goodwill Games에서 우승하며 시즌을 시작하였다.
그랑프리 스케이트 아메리카,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러나 발에 스트레스 골절을 당해 1997-98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을 기권했다.

콴은 발가락 골절에도 불구하고 1998 전미선수권에서 완벽한 경기를 선보이며 타이틀을 탈환했고,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3-3 컴비네이션 점프 없는 안정적인 구성과,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인해, 프리 2위로 결국 타라 리핀스키에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다. 올림픽이 끝나고 세계선수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2.8. 1998-99 시즌[편집]


콴은 비록 그랑프리 시리즈를 건너뛰고 TV를 위해 만들어진 pro-am 시리즈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이 시즌에도 계속해서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다. 1999 전미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번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9 세계선수권에서는 마리아 부티르스카야에 이은 은메달을 땄다.


2.9. 1999-00 시즌[편집]


그랑프리 스케이트 아메리카,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모두 우승하여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1999-0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제치고 1위였으나, 1-2위 선수들끼리 프리 경기만으로 다시 겨루는 '슈퍼 파이널'에서 이리나에게 밀리는 바람에 최종 은메달을 땄다.

2000 전미선수권에서는 4번째 우승이자 3연패를 달성했다. 2000 세계선수권에서는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10. 2000-01 시즌[편집]


이 시즌부터 향후 6년 동안, 콴은 대회와 갈라 의상의 대부분을 디자인할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전직 피겨 선수이기도 한 베라 왕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는 낸시 케리건[10]에 이은 두번째 사례였다.

그랑프리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 스케이트 캐나다 2위를 하였고 2000-01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2위를 하였다.

2001 전미선수권에서는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9명의 심판들에게 만장일치 1위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5번째 우승이자 4연패를 달성했다.

2001 세계선수권에서는 2연패이자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대회 우승자는 3연속 점프(3-3-2 점프)까지 성공시킨 이리나 슬루츠카야였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유로 해설자는 콴의 우승이 말이 안된다고 생중계로 해설할 정도였고, 또 한번 국적빨 우승이라는 말이 많았다.[11]


2.11. 2001-02 시즌[편집]


Goodwill Games에서 2위를 하며 시즌을 시작하였다. 그랑프리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 스케이트 캐나다에선 동메달을 땄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3년 연속 은메달이자 4번째 은메달이다. 전미선수권에서는 5연패이자 6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었다.

올림픽 쇼트 경기에서 트리플 플립의 회전수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감점 없이 쇼트 1위를 기록했다.[12] 프리 경기에서는 2번의 실수로 인해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금메달은 동료 선수 사라 휴즈가 차지했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의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스캔들#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이로 인해 휴즈는 회전수 부족, 엣지 문제, 국적빨 점수로 평생 얻어먹을 욕을 그때 다 먹었다. 최근까지도 레전드 급으로 까였다. 그러나 이 분이 등장하며 드디어 저주가 풀렸다.

올림픽 이후에 열린 2002 세계선수권에서는 이리나 슬루츠카야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2.12. 2002-03 시즌[편집]


그랑프리는 스케이트 아메리카 한 대회만 출전하여 우승하였다. 전미선수권에서 7번째이자 우승이자 6연패를 달성했다.

2003 세계선수권에서 전무후무한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사샤 코헨이리나 슬루츠카야는 부상과 개인사정으로 부진했다.


2.13. 2003-04 시즌[편집]


그랑프리 시리즈를 스킵하였고, 구채점제로 치러진 전미선수권에서는 8번째 우승이자 7연패를 달성했다. 역시 구채점제로 치러진 2004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에서 한차례 더블링 실수가 나오며[13] 아라카와 시즈카[14]사샤 코헨에 이어 동메달을 땄다.


2.14. 2004-05 시즌[편집]


역시 그랑프리 시리즈는 참가하지 않았고 전미선수권에서 9번째이자 8연패를 달성하였다. 처음으로 신채점제로 열린 2005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에 머물렀다. 이로써 10년 연속 포디움 기록은 아쉽게 9년에서 멈추었지만 이미 대단한 기록이다.


2.15. 2005-06 시즌[편집]


2005 세계선수권 이후 부상으로 한 번도 대회에 나오지 않았던 콴은, 그나마 2005년 12월 TV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시즌 쇼트 프로그램을 선보였지만 그 직후 부상이 심하게 도져버려 결국 올림픽 선발전인 전미선수권에 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그동안의 업적을 인정해준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의 특별 혜택으로, 5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비공개로, 2006년 1월 27일 이전에 콴의 건강 상태와 프로그램 연기를 선보이는 것을 조건으로 올림픽 행을 미국 연맹은 승인했다. 콴은 쇼트와 프리 모두를 선보여 토리노 동계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재차 부상으로 결국 직전에 기권하게 되었다.[15] 운명의 장난처럼 미셸 콴이 불참한 자리에는 사라 휴즈의 여동생인 에밀리 휴즈가 들어가게 되었다.


2.16. 은퇴 이후[편집]


2008년 현역 은퇴를 하고, 아이스 쇼로 돈을 벌며 프로 생활을 하기보단 학업에 정진했다. 학업을 완전히 마쳐 졸업하고는 아이스 쇼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김연아한국에서의 아이스 쇼는 그녀의 첫 복귀 이후로 매년 참가하고 있고, 덩달아 콴의 팬들도 방한 주기가 잦아지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도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16](그야말로 엄친딸), 고향인 토랜스 시가 있는 LA 지역의 UCLA에 1년 간 다니다가 훈련지인 콜로라도 주의 덴버 대학교로 편입학을 했다. 이유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은메달이 아쉬워 다음 올림픽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2008년 11월에 덴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학위를 받고 졸업하였으며, 보스턴의 명문 터프츠 대학교의 플레처 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이수하다가 2010년 2년제 사립대학인 사우스 버몬트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며 졸업하였다. 또한 이런 축사도 전했다. 상당히 감명이 깊은 연설로, 기회가 되면 한 번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스포츠계를 위한 일도 상당히 했다. 2006년 11월 미국 국무부장관으로부터 최초의 공공외교사절로 임명, 전세계를 누비며 젊은이들과 리더십에 대해 논하고 사회와 교육을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2009년 1월에는 일상 체육활동을 통한 미국인의 건강증진방안에 대해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체력단련 및 스포츠 자문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2012년 세계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선수 생활을 2006년에야 마감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빨리 헌액된 셈이다.[17]

2013년 1월 19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위원회에서 일하는 클레이 펠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2013년 11월 남편 클레이 펠이 로드아일랜드 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에 도전을 검토 중이란 뉴스가 떴다. 그러나 2017년 3월에 이혼 소송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올라왔고, 결국 둘은 이혼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판정 논란김연아의 경기에 대해 "Unbelievable"이라는 트윗을 했는데 국내에서는 "미셸 콴이 판정 결과를 믿을 수 없어한다" 라는 내용으로 와전되어 보도되었고, 같은 시기에 FOX의 인터뷰를 받고 한 말로 인해 김연아의 팬들 사이에서 논란된 일있었다. 링크된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트리플 점프의 개수로 인해 소트니코바가 이길 수 있었다고 콴이 인터뷰했고 나중에 콴이 말을 바꾼 것이다. 채점 시에는 트리플 점프의 기초점, 질, 그리고 비점프 요소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콴의 말에는 상당히 어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콴의 언행은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

2021년 12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남미의 벨리즈 대사에 임명,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3. 평가[편집]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근 10년 동안[18] 군림한 미국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의 최강자. 토냐 하딩 사건으로 미국에서 급속도로 식어가고 쓰러지던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를 되살린 주요 영웅 중 한 사람이다. 세계선수권 5회 우승, 전미선수권 9회 우승(8연패), 동계올림픽 2회 입상[19]을 포함, 무려 43회 우승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20]을 쥐고 있는 챔피언 중 챔피언이다.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전세계 선수들의 순위를 꼽으라고 하면 반드시 순위권에 지명되는 선수이다. 여자 싱글의 레전드라고 하면 꼭 카타리나 비트[21]와 미셸 콴, 이리나 슬루츠카야, 김연아를 거론한다.[22]

우아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녔지만 기술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특히나 유연성이 떨어져서, 스핀 구성과 스파이럴 포지션이 떨어졌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는 레이백 스핀 레벨4 구성을 위해 비엘만 스핀이 필수였는데, 비엘만 스핀을 연습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빠른 스피드, 더블 비엘만으로 대표되는 스핀 구성, 스케일이 큰 점프, 연기의 넓은 스펙트럼이 장점을 갖고 있었고 콴은 좋은 체력, 안정적인 컨시, 우아함, 카리스마(관중 장악력)가 장점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콴은 피겨 스케이터의 몸매치곤 굴곡이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8등신도 아닌, 속히 말해 예쁘지 못한 몸매이지만 그녀의 포스는 관객을 장악할 만한 압도력이 엄청나게 있다.

43회 우승이라는 먼치킨이기도 하지만, 구채점제 시대에서 만점이었던 6.0점을 국내대회를 포함하여 무려 57번을 받았고 이것은 구채점제 시대의 최다 만점 기록이다.[23] 1998 전미선수권 때는 18명의 심사위원 중 15명이 만점 6.0점을 주기도 했다.


4. ISU 공인 최고점수[편집]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61.22(2005 세계선수권)
프리
113.98(2005 세계선수권)
총점
175.20(2005 세계선수권)


5. 프로그램[편집]



5.1. 목록[편집]


시즌
쇼트(SP)
프리(FS)
갈라(EX)
2005-2006
죽음의 무도[24]
Prelude in C Sharp Minor Op. 18
A Song for You
2004-2005
아다지오
볼레로
You Raise Me Up
This Used To Be My Playbround
2003-2004
The Feeling Begins
토스카
Fallin
2002-2003
아랑훼즈
Field of Gold
2001-2002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세헤라자데
Fields of Gold
에덴의 동쪽
A csodálatos mandarin
2000-2001
O canto do cisne negro(블랙 스완 OST)
아름다운 세상
Rush
This time Around
1999-2000
A Day In The Life
The Red Violin
The World Is Not Enough
Hands
1998-1999
카르멘
Ariane
Kissing You
1997-1998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Lyra Angelica
On My Own
단테의 기도
1996-1997
관현악 모음곡 3번(Orchestral Suite No. 3)
Gyulistan Bayati Shiraz
윈터
1995-1996
Romanza
살로메
에덴의 동쪽
Just Around the Riverbend
1994-1995
황하협주곡(黃河協奏曲)
론도
푸른 옷소매 환상곡
에덴의 동쪽
1993-1994
송 오브 인디아
에덴의 동쪽
-
1992-1993
-
미스 사이공
1991-1992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by조지 거슈윈


5.2. 비화[편집]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 많다. 김연아의 2008-09 시즌 프리 프로그램인 세헤라자데는 콴의 세헤라자데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이다. 김연아초등학생 시절, 미셸 콴의 세헤라자데를 비디오로 녹화해두고 여러 번 돌려보았다고 한다. 김연아는 보통 프로그램에 쓸 음악을 데이비드 윌슨이 가져온 곡들 중에서 선곡하는 편이었는데, 세헤라자데 만큼은 그녀가 하고 싶다고 먼저 말한 곡이기도 하다.

파일:external/0.tqn.com/michelle_kwan_51961830.jpg
2001-02 시즌 프리 프로그램 '세헤라자데'
실제로 김연아의 세헤라자데가 처음으로 발표되자, 복장과 피니쉬 포즈 등이 어느 정도 콴의 세헤라자데를 떠올리게 하여 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었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콴의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이 세헤라자데를 김연아2009 세계선수권에서 그 누구도 아닌 콴의 눈앞에서 연기를 펼쳤다.[25]

아사다 마오의 2009-10 시즌이자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프리 프로그램이던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의 종을 미셸 콴도 탈 뻔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 프로그램 주제곡이었고 당시의 안무가가 바로 아사다 마오의 2009-10 시즌 코치이자 안무가이던 타티야나 타라소바였다![26]

그러나 결국 콴은 부상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27] 2005-06 시즌 쇼트 프로그램인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는 그나마 2005년 12월 TV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였었지만 그 직후 부상이 악화되어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전인 2006 전미선수권에 나오지 못했다.

아사다 마오의 종을 본 콴의 팬들은 '미셸이 안하길 잘했다.'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저 선수가 저랬을 뿐이지 우리 미셸이 했다면 상황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6. 커리어[편집]


대회



올림픽
0
1
1
세계선수권
5
3
1
그랑프리 파이널
1
4
0
주니어 세계선수권
1
1
0
합계
7
8
2

올림픽
은메달
1998 나가노
여자 싱글
동메달
2002 솔트레이크시티
여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6 에드먼턴
여자 싱글
금메달
1998 미니애폴리스
여자 싱글
금메달
2000 니스
여자 싱글
금메달
2001 밴쿠버
여자 싱글
금메달
2003 워싱턴 D.C.
여자 싱글
은메달
1997 로잔
여자 싱글
은메달
1999 헬싱키
여자 싱글
은메달
2002 나가노
여자 싱글
동메달
2004 도르트문드
여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1995-96 파리
여자 싱글
은메달
1996-97 해밀턴
여자 싱글
은메달
1999-00 리옹
여자 싱글
은메달
2000-01 도쿄
여자 싱글
은메달
2001-02 키치너
여자 싱글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4 콜로라도 스프링스
여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91–92
92–93
93–94
94–95
95–96
96–97
97–98
98–99
99–00
00–01
01–02
02–03
03–04
04–05
05–06
올림픽


Alt



2nd



3rd



WD
세계선수권


8th
4th
1st
2nd
1st
2nd
1st
1st
2nd
1st
3rd
4th

GP 파이널




1st
2nd


2nd
2nd
2nd




GP 프랑스





1st









GP 네이션스 컵




1st










GP 스케이트 캐나다




1st

1st

1st
2nd
3rd




GP 스케이트 아메리카




1st
1st
1st

1st
1st
1st
1st



트로피 프랑스



3rd











스케이트 아메리카


7th
2nd











굿윌 게임


2nd



1st



2nd




국제대회:주니어
주니어 세계선수권


1st












가데나

1st J













국내대회
전미선수권
9th J
6th
2nd
2nd
1st
2nd
1st
1st
1st
1st
1st
1st
1st
1st

GP=그랑프리, J=주니어, Alt=대기, WD=기권

  • 1998년 여성 스포츠재단 선정 여성 스포츠 선수상
  • 2001년 셜리번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운동 선수상
  • 2002 틴(Teen) 초이스 최고의 여성 스포츠 선수상
  • 2002년 올해의 코스모스 걸 상
  • 2002년 피플지 선청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 입상
  • 2002~3년 키즈 초이스 최고의 여성선수상
  • 2003년 미국올림픽위원회 선정 올해의 여성 스포츠 선수상
  • 2003년 7번째의 올해의 피겨 스케이터 상 수상자이자 2번 복수 수상[28]
(이중 꽤 다수가 김연아가 수상한 상들이기도 하다.)


7. 기타[편집]


  • 축구선수 출신 홍콩 이민자 대니 콴(Danny Kwan)과 그의 아내 에스텔라 콴(Estella Kwan)의 셋째로 태어났다. 오빠는 아이스하키를 하고, 2살 위의 언니 캐런과 같이 만 5세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 부모가 착실하게 공부도 시켰지만 잘 가르쳐서 정신력이 무척 강인하다. 콴의 아버지가 말하길, 콴이 운 것은 1991 전미 주니어선수권에서 9위를 했을 때 뿐이라고 한다.
  • 피겨 스케이팅이 유명해진 지 겨우 3~4년(2011년 기준) 정도밖에 되지 않은 한국의 대부분 신규 팬들에게는 김연아 선수의 우상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물론 김연아 이전에도 대표적인 여자 싱글 선수로써 이름 정도는 알려져 있었다.[29]
  • 2010년에 명예 박사 학위를 받으며 졸업했고, 은퇴한 지 3년 만인 2009년 한국에서의 아이스 쇼를 통해 다시 복귀했다. 김연아가 세계선수권에서의 활약으로 빙상의 여왕으로 인정받은 직후라, 사람들의 반응은 前 피겨여왕과 現 피겨여왕이 만난다고 두근거리는 상황이었다. 물 건너 옆나라 빼고
  • 돈이 지독하게 들기로 유명한 피겨 스케이팅을 했기 때문에 가족이 희생을 많이 했다. 1993년에 콴과 카렌의 피겨 스케이팅 교습비로만 5만 달러였다고 한다.[30] 자금 마련을 위해 아버지는 살던 집을 팔고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족 전부가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미셸의 아버지는 전혀 그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딸들에게 피겨 스케이팅을 선물해줘서 자신은 기뻤다 한다. 언니인 카렌도 같이 피겨 스케이팅을 했다.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했으며, 보스턴 대학교를 졸업한 후 콴 가족 소유의 링크장에서 안무가로 진로를 바꿨다. 또한 디자이너 베라 왕에게 인턴을 한 탓에 피겨 스케이팅 의상 디자인도 담당했다.[31] 이후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페어 동메달리스트와 결혼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브라이언 오서 다음으로 김연아의 2010-11 시즌 코치였던 피터 오피가드였다.
  • 콴의 팬들은 흰 부츠를 선호하는데, 이유는 콴이 선수 시절 흰 부츠를 내놓았기 때문이다.[32]
  • 한국에서 열린 아이스 쇼에 방문했을 때, 한국인들이 자신을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게에서 자신을 김연아 선수가 존경하던 모델이라고 알아봤다고 얼떨결에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었다며 엄청 놀라워했다.
  • 훌륭한 삶과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아름답고도 예술적 스케이팅 스타일으로 인하여 많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다. 김연아도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미셸 콴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하며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캠프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선거 유세를 도왔다. 선거 캠프에 합류한 이후 종종 본인의 SNS에 바이든의 지지를 호소하는 게시글들을 많이 올렸다. 사실 콴은 이전의 2016 미국 대통령 선거때도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합류했던 적이 있었다. 콴의 인종과 출신 지역을 봤을 때 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33]

  • 2022년 1월.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딸을 출산했다는 근황을 알렸다. 참고로 정자를 기증 받아 임신을 하였다고 한다.

8. 올림픽에서의 불운[편집]


유난히도 올림픽 금메달과는 지독히도 인연이 없다. 다만 놓친 건 올림픽 금메달 뿐이라서 콩라인이라 하기엔 무리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미셸 콴이 거둔 다른 대회에서의 성적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올림픽과의 악연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대표 선발전이기도 한 1994년 전미선수권으로부터 시작한다.[34] 프리 스케이팅에서 2위를 해서 결과적으론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될 수는 있었지만, 미국 빙상 연맹의 규정 중 하나던 "연맹은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를 선발할 수도 있다"가 적용되어, 당시 우승자이던 토냐 하딩과 연맹 국제위원회 투표에 따라 그 당시 최고의 선수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출전하지 못했던 낸시 케리건이 출전하게 되었다. 이렇기에 콴은 대기 선수로 지정되었고 노르웨이까지 날아가 경기 시작일이던 2월 23까지 대기 상태에 있게 된다. 사실 이때 콴은 거의 참가가 가능했다. 하지만 상황이 꼬일 대로 꼬여서 마치 될 듯 말 듯 싶었다. 2월 1일 토냐 하딩이 유죄를 시인했고, 그에 따라 연맹은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10일 하딩 측이 미국 연맹에 2천만 달러 손해 배상 소송을 접수하고, 막후 협상 끝에 12일 연맹은 토냐가 올림픽에 가는 것을 승인하며 올림픽 후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론 못 나가게 되었다. 또 노르웨이에서 토냐는 발목을 접질렀지만 의사가 OK 사인을 내버려서 결국 진짜 헛고생을 하였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드디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는데, 이 대회에서는 타라 리핀스키피겨 스케이팅 역대 최연소[35] 3-3 컴비네이선 점프 2번이라는 승부수를 성공시키며,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콴은 안전한 경기운영으로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다.[36] 쇼트에서 단독 점프가 상위권 중 가장 난이도가 낮았다.[37]

홈그라운드인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콴, 그리고 이번이 2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38] 점을 의식한 듯 엄청난 부담감에 억눌리던 콴은, 결국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프리에서 2번의 실수를 했고, 같은 미국 동료 선수인 사라 휴즈가 금메달을 차지한 가운데 콴은 결국 동메달에 그쳤다. 자세한 내용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스캔들 문서에 설명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참가할 수도 있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할 계획이었으나, 2005 세계선수권 이후의 부상이 악화되어 결국엔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오랜 전부터 앓고 있던 고관절염증이 심해졌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까지 가서 개회식에 참석했으나, 그것이 무리가 되어 다음날 연습에서 여러 번 넘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올림픽 프레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밝혔다.

[1] 광둥어식 월어병음. 콴의 집안은 홍콩 출신 이민자 집안이었기 때문에 중국식 보통화보다는 광둥어에 더 익숙한 집안이다. 미들네임인 Wingshan 또한 穎珊의 광둥어식 월어병음이며, 따라서 이쪽이 더 정확한 중국식 이름이라고 봐도 된다. 실제로 콴은 집안에서 영어광둥어 둘 다 써오면서 자라왔다고 한다.[2] 번체자이며, 간체자로는 关颖珊이다.[3] 참고로 이 때 프리 프로그램은 미스 사이공이었다.[4] 이 시기에는 그랑프리 시리즈가 아닌, 그냥 국제대회들 중 하나였다. 그랑프리 시리즈라는 포맷은 1995-96 시즌부터 생겼다.[5] 왼쪽부터 차례로 4위목메달 엘레인 자약, 동메달리스트 니콜 보벡, 금메달리스트 토냐 하딩, 은메달리스트 미셸 콴.[6] 그러나 이 대회에서의 토냐 하딩의 우승 기록은 삭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토냐 하딩 사건 문서 참조.[7] 토냐 하딩은 예정된 대로 올림픽 이후에 징계를 먹었고, 낸시 케리건은 부상 때문에 결국 은퇴하였다.[8] 당시에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세번까지 출전할 수 있었다.[9] 프리에서 예술점 6.0점 2개 이상이 나와야, 콴이 우승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예술점 6.0점(만점)은 받기 힘든 점수이며, 시니어 2년 차에 받을 수 있는 점수는 더욱 아니다.[10]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다.[11] 콴은 기술답보라고 불릴 정도로, 3-3 컴비네이션 점프 성공률이 낮았으며 스핀 구성도 낮았다.[12] 이 콴 밀어주기 밑밥 때문에 이리나가 금메달을 놓치게 된다.[13] 당시 콴의 순서 직전에 한 관중이 빙판 위로 난입해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다. 난입 관중을 제지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그동안 콴은 빙판에서 웜업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14] 프리에서 3-3 컴비네이션 점프(3S+3T)와 3연속 점프(3Lz+3T+2Lo)를 성공시켰다.[15] 원래 출전권은 에밀리 휴즈에게 있었지만, 내셔널 출전 없이 콴이 연맹측에서 출전권을 따낸거라 말이 많았다.[16] 미국 대학이라고 한국 대학이랑 많이 다른 것이 아니다.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 유명인과 그 자제들을 일류대학에서 거의 모셔가려는 것은 도리어 한국보다 심하기도 하다.[17] 예를 들어 선수 생활을 2003년에 마감한 알렉세이 야구딘이 아직도 헌액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18] 피겨 스케이팅 항목에 써 있지만, 피겨 스케이팅은 결코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19] 은메달과 동메달 각 1회씩인데 아쉽게도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무관의 제왕이란 별명이 붙었다.[20] 미국피겨 스케이팅 역사 100년간 남녀 선수를 통틀어 이처럼 많은 세계선수권 타이틀과 전미선수권 타이틀, 동계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없다.[21]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여자 싱글에서 단 두명 뿐인 올림픽 2연패의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다. 나머지 한명은 소냐 헤니로 3연패 기록을 갖고 있다.[22] 물론 카타리나 비트, 이리나 슬루츠카야는 미국에서 저평가를 받고, 미셸 콴은 유럽에서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23] 지금은 채점 제도가 바뀌었지만, 대단한 기록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24] 재미있게도 이때 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 역시 같은 곡을 사용했는데,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죽음의 무도(Totentanz)였다. 김연아카미유 생상스 작곡 <죽음의 무도>와는 다른 곡이다.[25] 이때 이 경기를 중계했던 NBC는, 메인 스포츠 아나운서인 밥 코스타스와 남자 싱글 올림픽 2연패를 이룬 미국 피겨 스케이팅의 원로 딕 버튼이 함께 한 별도 중계석에 미셸 콴을 초대했다. 프리 프로그램 마지막 그룹의 웜업 도중 당시 컴백설이 돌고 있었던 미셸 콴을 두고 다른 2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컴백설의 진위를 물었는데 이때 미셸 콴은 트리플 점프도 연습 중이라며 나름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다가, 프리 프로그램이 끝나고 답변을 하겠다고 미뤘다. 프리 프로그램 종료 후 김연아의 칭찬을 자자하게 늘어놓던 미셸 콴에게 다시 컴백설에 관해 물으니 미셸 콴의 대답은 "김연아의 경기를 보고 나니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라고 답하였다. 이 때 딕 버튼은 콴의 컴백의 관건은 자기와 함께 페어로 컴백하느냐 아이스 댄싱으로 컴백하느냐라고 농담을 했다.컴백 기대는 하지 마세요 Mr. 코스타스 대회가 끝난 후 김연아와 마주쳤을 때, 김연아가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있었다고 하였다. 콴이 "Hi Yuna, Nice to meet you!" 라고 인사를 건네도 아무 소리도 못했다고 한다.[26] 타라소바의 "빙상의 신은 아사다 마오를 사랑하신다" 라는 대사는 원래 "God loves Michelle(빙상의 신은 미셸을 선택하셨다)" 라는 미셸에 대한 칭찬이었다.[27] 정확히는 2005 세계선수권 4위 이후 한 번도 대회에 나오지 않았다.[28] 이 때문에 트로피 이름이 "미셸 콴 트로피" 로 바뀌었다.[29] "남나리가 1999년 전미선수권 2위를 했을 때 1위가 미셸 콴이었고, 이것이 한국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경기 결과는 맞지만 남나리가 2위를 해서 1위인 미셸 콴이 알려졌다기보다는 그 미셸 콴에 이어서 2위를 한 대단한 선수로 남나리가 알려졌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30] 그 당시 최고 수준의 대학을 졸업한 MBA가 받는 연봉이다![31] 베라 왕은 콴이 현역 시절 프로그램 의상을 자주 맡았다.[32] 이건 일종의 취향이며 몇몇은 콴처럼 부츠를 내놓는 데 반해, 몇몇은 스타킹으로 부츠를 전부 덮는다. 물론 반만 덮는 선수들도 있다.[33] 실제로 미국에서 아시아계 여성이거나 캘리포니아 출신이면 거의 전형적인 민주당 지지자일 때가 많다.[34] 1996년부터는 ISU가 정한 연령 제한 규정에 따라 시즌이 시작되는 해의 7월 1일을 기준으로 만 15세가 넘어야 시니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콴은 1980년 7월 7일 생이니, 1994 동계올림픽이 열린 1993-94 시즌에는 만 15세를 넘기지 못하므로 현재 규정으로는 나갈 수 없다. 참고로 현 규정대로 하면 6일 차이로 노비스 레벨이다. 그렇지만 이때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어서 출전은 가능했다.[35] 국제빙상경기연맹에서 1996년부터 연령 하한선을 설정했다. 시즌 개막일인 7월 1일 기준으로 만 15세 이상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출전이 가능하다. 리핀스키의 경우는 연령 제한을 겨우 20일 넘겨서 출전했다.[36] 평소보다 아주 느리게 스케이팅을 했다. 상위권 중 유일하게 3-3 점프, 3-3 시컨스 조차도 없었다.(타라 리핀스키:3-3 컴비네이션, 3-3 시퀀스, 미셸 콴: 3-2 컴비네이션 점프, 천루:3-3 컴비네이선 점프,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3-3 시퀀스, 이리나 슬루츠카야:3-3 컴비네이션 점프)[37] 리핀스키는 플립, 부티르스카야와 이리나는 룹, 콴과 천루는 토룹을 뛰었다. 그럼에도 쇼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38]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여자 싱글 종목은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대부분 여자 선수들에게 올림픽에 2번 참가하면 그것이 많은 거고, 3번을 참가하면 메달은 기대도 안하고 마무리 기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