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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 피닉스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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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체육부대 산하 야구단. KBO 퓨처스리그에만 참가한다.
1953년 8월 육군 야구단으로 창단했고[5] 1978년 6월 9일, 육군 소속 체육 단체 이름을 정리하면서 육군 야구단은 경리단으로 이름을 변경했다.[6] 과거 실업야구가 있던 시절에는 육군 소속의 경리단, 공군 소속의 성무, 해군, 해병대 등의 구단이 있었다.
1984년 1월부터 각 군이 운영하던 스포츠단을 하나로 묶어 국군체육부대라는 이름의 통합 국직 부대를 창설했다. 그 과정에서 야구단도 하나로 합쳤는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육군 야구단(육군 경리단 야구단)이 공군 야구단(성무 야구단)을 합병해 상무 피닉스 야구단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했다.
한 때 실업 리그가 남아 있던 시절에는 실업 리그에 참가해 프로 선수를 안 받았던 적도 있다. 그때는 프로에 바로 가면 상무로 갈 수 없기에 상무 입대를 먼저 하고[8] 제대 후 프로로 가려는 선수들도 좀 있었다. 그러나 프로 선수 입장에서는 군 입대를 하게 될 경우 반 강제로 3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에 상무가 프로 선수들의 입대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9][10] 그나마 1996년 이전까지는 방위병 제도가 있어서 홈 경기에 한해 방위병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었으나 병역법이 바뀐 이후에는 그마저 막히고 만다.
그러다 1998년 말 프로 선수 5명의 입대를 허용[11] 하게 되었고, 그 사이 몇몇 프로 선수들의 병역비리가 구설수에 오르자[12] KBO의 요청으로 1년 후에는 프로 선수도 얼마든지 선발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2000년에는 실업 리그[13] 와 한국프로야구에 이중등록되어 연습경기를 가졌고, 2001년 정식으로 퓨처스리그 북부리그[14] 에 참여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프로 선수들의 지원율이 높다보니[15] 1군 레귤러가 많고, 2군 선수라도 구단 내에서는 이름난 유망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2군 리그의 최강자로 자리잡았다. 2군 리그에 참여한지 2년만인 2002년에 1위를 했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북부리그 1위를 석권해 왔으나 2011년 경찰 야구단에게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1위자리를 뺏겼다. 그러나 2012년 경찰 야구단과 다시 공동으로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상을 탈환했다.
2013년부터는 부대의 문경시 이전에 따라 퓨처스리그 남부리그로 편입되었으며 2015년에 KBO 퓨처스리그가 개편됨에 따라 옐로우리그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리그개편이 되면서 남부리그에 소속되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전광역시 소속으로 전국체전 일반부에 참여했다. 참여시 2년만 연고 계약을 맺을 수 있고, 연속 계약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에 결국 2018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실업, 금융, 대학 구단, 상무가 모두 참가하던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소속 선수가 대부분 1군 주전급이나 2군이라도 촉망 받는 유망주 선수다 보니 그야말로 2군에서는 양민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성적이 좋다.
비판점은 여기서 오는데 2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2군은 주로 성적보다는 육성을 목표로 하는 리그이고 프로 구단은 이를 감안해 2군 성적에 연연하지 않지만, 상무는 본래 군대다 보니 이런 프로 스포츠 2군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서 군대나 일반 기업처럼 코칭스태프와 감독의 업무 실적 평가에 성적을 반영해서 원 소속 구단에서는 곱게 쓰고 돌려보내 줬으면 하는 선수들을 성적을 위해 막 굴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많은 팬은 투수의 경우 상무 입대보다는 현역 일반병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가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자신이 몸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나 맞는 얘기다. 훌륭한 반면교사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은 상무전은 사실상 1군과의 시합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2군 선수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는 점 정도다.
||1. 개요[편집]
국군체육부대 산하 야구단. KBO 퓨처스리그에만 참가한다.
2. 역사[편집]
2.1. 국군체육부대 창설 이전[편집]
1953년 8월 육군 야구단으로 창단했고[5] 1978년 6월 9일, 육군 소속 체육 단체 이름을 정리하면서 육군 야구단은 경리단으로 이름을 변경했다.[6] 과거 실업야구가 있던 시절에는 육군 소속의 경리단, 공군 소속의 성무, 해군, 해병대 등의 구단이 있었다.
- 1953년 육군 야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창설했고 이후 1978년에 육군 경리단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육군 야구단 - 육군 경리단 야구단을 거쳐간 선수로 김양중,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서정환, 차영화, 신태중, 장효조, 김시진, 권용호, 김용철, 김일환, 신언호, 조종규 등이 있다. 1984년 국군체육부대를 신설하면서 상무 야구단으로 개칭했다. 한국실업야구 시절 대표적인 강팀의 하나로 명성을 떨쳤고 1977년 코리안시리즈 우승, 1978년 코리안시리즈 우승, 1980년 코리안시리즈 우승, 1981년 코리안시리즈 준우승 등을 이뤄냈다.
- 성무 야구단(1954~1984)
- 원래 공군 야구단으로 육군보다 몇 개월 늦게 창단했다. 1978년 성무로 이름을 바꿨고[7] 1984년 상무에 합병했다. 1978년에 이선희가 입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선희 외에도 김재박, 이광은, 김유동, 김인식, 천보성, 김성관, 김진우, 김한근 등이 뛰었다.
2.2. 국군체육부대 창설 이후[편집]
1984년 1월부터 각 군이 운영하던 스포츠단을 하나로 묶어 국군체육부대라는 이름의 통합 국직 부대를 창설했다. 그 과정에서 야구단도 하나로 합쳤는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육군 야구단(육군 경리단 야구단)이 공군 야구단(성무 야구단)을 합병해 상무 피닉스 야구단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했다.
한 때 실업 리그가 남아 있던 시절에는 실업 리그에 참가해 프로 선수를 안 받았던 적도 있다. 그때는 프로에 바로 가면 상무로 갈 수 없기에 상무 입대를 먼저 하고[8] 제대 후 프로로 가려는 선수들도 좀 있었다. 그러나 프로 선수 입장에서는 군 입대를 하게 될 경우 반 강제로 3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에 상무가 프로 선수들의 입대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9][10] 그나마 1996년 이전까지는 방위병 제도가 있어서 홈 경기에 한해 방위병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었으나 병역법이 바뀐 이후에는 그마저 막히고 만다.
그러다 1998년 말 프로 선수 5명의 입대를 허용[11] 하게 되었고, 그 사이 몇몇 프로 선수들의 병역비리가 구설수에 오르자[12] KBO의 요청으로 1년 후에는 프로 선수도 얼마든지 선발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2000년에는 실업 리그[13] 와 한국프로야구에 이중등록되어 연습경기를 가졌고, 2001년 정식으로 퓨처스리그 북부리그[14] 에 참여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프로 선수들의 지원율이 높다보니[15] 1군 레귤러가 많고, 2군 선수라도 구단 내에서는 이름난 유망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2군 리그의 최강자로 자리잡았다. 2군 리그에 참여한지 2년만인 2002년에 1위를 했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북부리그 1위를 석권해 왔으나 2011년 경찰 야구단에게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1위자리를 뺏겼다. 그러나 2012년 경찰 야구단과 다시 공동으로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상을 탈환했다.
2013년부터는 부대의 문경시 이전에 따라 퓨처스리그 남부리그로 편입되었으며 2015년에 KBO 퓨처스리그가 개편됨에 따라 옐로우리그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리그개편이 되면서 남부리그에 소속되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전광역시 소속으로 전국체전 일반부에 참여했다. 참여시 2년만 연고 계약을 맺을 수 있고, 연속 계약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에 결국 2018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실업, 금융, 대학 구단, 상무가 모두 참가하던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2.3. 역대 성적[편집]
소속 선수가 대부분 1군 주전급이나 2군이라도 촉망 받는 유망주 선수다 보니 그야말로 2군에서는 양민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성적이 좋다.
비판점은 여기서 오는데 2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2군은 주로 성적보다는 육성을 목표로 하는 리그이고 프로 구단은 이를 감안해 2군 성적에 연연하지 않지만, 상무는 본래 군대다 보니 이런 프로 스포츠 2군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서 군대나 일반 기업처럼 코칭스태프와 감독의 업무 실적 평가에 성적을 반영해서 원 소속 구단에서는 곱게 쓰고 돌려보내 줬으면 하는 선수들을 성적을 위해 막 굴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많은 팬은 투수의 경우 상무 입대보다는 현역 일반병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가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자신이 몸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나 맞는 얘기다. 훌륭한 반면교사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은 상무전은 사실상 1군과의 시합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2군 선수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는 점 정도다.
2.4. 역대 감독[편집]
상무 피닉스 야구단으로 이름을 변경한 후의 초대 감독은 김정택 감독. 고교 때까지 야구를 했다가 가정 형편으로 단기사관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야구선수 경험이 있어 1982년 대위 시절에 국군중앙경리단감독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1983년 육군 체육지도대 감독을 이어 1984년부터 상무 감독을 맡았다. 30년간 상무의 감독을 맡았다가[17] 2011년 3월에 명예직인 총감독으로 승진된 후 그 해 6월 공식 퇴임했다.
박치왕 코치가 2011년 3월 감독으로 승격, 상무의 2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박치왕 감독은 성남고등학교와 인천체육전문대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복무한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모교인 성남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 겸 야구부 코치로 일하던 중 김정택 감독의 부름을 받고 1994년 코치로 부임했다.
참고로 김정택 감독이 30년이나 감독으로 있어 감독직을 공무원처럼 계속 역임하는 자리로 오해하곤 하지만 1989년 소령으로 예편한 이후 1990년부터 2년마다 재계약하는 계약직 대한민국 군무원(4급) 신분이었다. 단 한 번도 못한 적이 없었기에 계속 상무 감독직을 맡아올 수 있었던 것. 이건 박치왕 현 감독도 동일하다.
3. 역대 시즌[편집]
3.1. 202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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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대 유니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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