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영구 결번/스포츠
덤프버전 :
상위 문서: 영구 결번
프로 스포츠에서의 영구 결번은 팀에 크게 기여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선수나 감독 및 관계자를 기리거나, 애도와 추모의 의미로 등번호, 혹은 상징적인 의미의 숫자를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고 팀 내에서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 것, 또는 그 번호를 말한다.
프로 스포츠 최초의 영구 결번은 1935년 미식축구 팀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의 1번이다. 그 후 4년 뒤 MLB 구단 뉴욕 양키스의 야구 스타 루 게릭의 4번이 영구 결번이 되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유명 선수가 은퇴한 이후 저지 판매 수익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상업적인 의미로 시작한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3]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의 의미가[4] 덧붙여지면서 현재는 거의 모든 스포츠에 걸쳐 행해지며, 초기 취지를 넘어선 명예로운 대우가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등번호 자체에도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은 영구 결번보다는 번호 세습이 많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에이스 투수의 18번 세습이라던가[5] 주니치의 20번 세습이 대표적.[6]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에서도 간간히 눈에 띄는 현상이다. 예를 들자면 팬들 사이에서 '좌완 에이스의 등번호'로 인식되는 롯데 자이언츠의 28번이나, 어느 구단을 막론하고 '유격수의 등번호'로 인식되는 7번 등. 전자는 90년대 좌완 에이스 주형광에서 2000년대 좌완 에이스 장원준으로 이어진 사례이고, 후자는 김재박 이후 이종범, 박진만, 김하성[7] 등 수많은 유격수들이 그의 플레이에 대한 동경으로 7번을 선택해왔다. 다만 일본처럼 엄격하게 따지진 않는 편이라 롯데의 28번은 장원준이 군 복무로 자리를 비운 2012년~2013년에는 1차 지명을 받은 신인 우완 투수 김원중이 빌려 쓰거나, 장원준이 두산으로 이적한 후에는 1년간 좌완 신예 김유영이 달았다가, 2016시즌 우완 고원준, 트레이드 대상이자 역시 우완인 노경은을 거쳐 노경은과 등번호를 맞바꾼 정대현에게 넘어가는 등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8] 7번의 경우도 이종범의 은퇴와 영구 결번을 기점으로 유격수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많이 약해진 편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번호 세습이 다른 것은 일본은 번호 자체로 의미하는 포지션이나 에이스 넘버(축구의 10번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고[9] 한국에서는 전설적인 선배가 사용한 번호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국의 경우 그 전설적인 선배의 번호가 영구결번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번호 세습 문화가 발전하기 어렵다. 물론 다른 팀이면 가능하지만 같은 팀의 레전드의 번호보다는 상징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번호를 물려받은 선수가 부진한 성적을 거두거나 경기 외적으로 사고를 치는 등[10] 선배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해당 번호의 위상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팬들의 미움을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번호 세습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팬들도 많다.
KBO 리그의 첫 영구 결번은 1986년도에 주전 경쟁에서 밀려 인생을 비관해 한강에 투신자살한 OB 베어스의 유망주 김영신 선수로서, 당시 OB 베어스는 선수 관리에 책임을 통감하고 김영신의 비극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영결식과 함께 그의 등번호 54번을 영구 결번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원래 영구 결번의 취지에 맞게 팀에 큰 공헌을 한 선수들의 번호가 영구 결번이 되었다. OB 베어스의 윤동균의 10번이 두 번째 영구 결번이었으나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영향으로 인해 해제되었고, 세 번째 영구 결번은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열의 18번이다.
축구는 야구에 비해 영구 결번 문화가 옅다. 등번호가 포지션과 팀 내 입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 따라서 동 포지션 내의 유명 선수들은 같은 등번호인 경우가 많고, 같은 클럽의 레전드이지만 활약한 시기가 다른 여러 선수가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11] 더해서 팀 내 입지가 낮았던 유망주 시절에는 높은 등번호를 달다가 주전급으로 성장하면 낮은 등번호를 다는 것은 당연한 수준이다. 이렇게 같은 등번호의 선수가 넘쳐나고 등번호의 변경도 비교적 잦은 축구의 특성상 영구 결번이 많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적이 활발해서 프랜차이즈 스타가 적다는 점 또한 적은 영구 결번의 원인 중 하나. 물론 하술할 목록처럼 영구 결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 번호가 갖는 의미가 약한 이탈리아의 경우 영구 결번이 비교적 많은 편.
축구는 영구 결번이 적은 대신 번호가 세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번~11번은 사실상 주전급이어야 달 수 있는 번호고 그 중 7번과 10번은 에이스에게만 주어지는 번호이기 때문에 굳이 세습을 신경쓰지 않아도 높은 수준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번호를 이어받게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7번 계보나 레알 마드리드 CF의 7번, 유벤투스 FC의 10번 계보처럼 팀의 주전급 선수를 넘어 월드클래스급인 선수들로 번호가 계속 이어지면 기존에 해당 번호를 달던 선수가 팀을 떠날 경우 그 번호를 누가 이어받을 것인지 언론에서 비중 있게 보도하는 등 특별히 더 관심을 받는다.
전세계 공통으로, 축구 클럽은 12번을 영구 결번으로 정해 놓는 경우가 꽤 있다. 이는 과거에 12번을 달고 뛴 선수가 큰 공헌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물론 그럴 경우도 있을 수 있긴 하지만) '우리 팀의 12번째 선수는 바로 팬 여러분들입니다.'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서포터즈들을 12번째 선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12] 단, 아래 하단의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보통 레전드가 없는 신생팀에서 언론 보도용, 혹은 상징적인 의미로 결번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 특히나 국내 프로축구단들의 경우 그렇다. 국내 프로 축구단 중에서 최초의 12번 영구 결번은 1998년 부천 SK이다. 수원 FC의 영구 결번은 특이하게도 2가지인데 1번은 수원 시민,[13] 12번은 수원 FC 서포터 리얼크루를 위한 결번이라고 하며, 그 밖에도 인천 유나이티드와 FC 안양도 12번을 팬들에게 헌정하는 번호로 지정했다.
한국프로농구의 경우, 첫 영구 결번은 기아자동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센터 김유택의 14번이다. 2000년 은퇴와 동시에 영구 결번되었다. 안타깝게도 구단 운영 주체가 모비스로 변경되고 울산으로 연고이전 이후 기아 시절 색채를 적극적으로 지워버림에 따라서 크게 기념되지는 못 하고 있다. 여자프로농구의 경우, 첫 영구 결번은 현대산업개발의 전주원의 5번이다. 2004년 임신으로 첫 은퇴를 했을 때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이에 준하는 개념으로 임시 결번이 있는데 팀을 떠난 선수 공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다른 선수에게 주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원 소속팀으로 돌아오면 돌려주거나, 기한이 끝나면 새 주인을 찾아간다. 혹은 정재홍이나 김남춘 같은 현역 선수 신분일 때 사망하는 경우 추모의 의미로 사망 당시 소속 구단이 임시 결번을 헌정하기도 한다.
다만 모든 종목에서 영구 결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배구는 매 랠리 때마다 선수의 포지션 위치가 서버가 위치한 후위 오른쪽 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위 오른쪽 까지 지정되어 있으며, 서브권을 가져올 때마다 이 위치가 한 칸씩 회전한다. 서브를 넣는 순간에는 코트 안에 있는 6명의 선수가 자신의 포지션에 맞게 서 있어야 되며 이 순서가 바뀌게 서 있는 경우 포지션 폴트가 된다. 그 외에도 후위에 위치한 세 명은 어택 라인 안쪽 공간을 밟고 떠서 공격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이 때문에 심판과 기록석에서는 매 랠리 때마다 선수의 등번호를 가지고 위치를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만약 번호가 제각각이면 이 작업에 애로사항이 꽃피기에 번호를 1번부터 20번까지로 제한하므로 영구 결번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2016년 3월 3일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에서 시몬의 등번호 13번을, 또 2017년 10월 18일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배구단에서 김사니의 등번호 9번을 영구 결번을 했지만 이는 구단의 임의 조치일 뿐이다.[14] 다만 최근에는 20번을 넘어 쓰는 경우가 허다해서 사실상 영구 결번으로도 본다. 최근 영구 결번은 이효희의 5번. 그리고 22-23 시즌부터 번호 사용이 1번부터 99번까지 확대되면서 사실상 영구 결번 예우가 커질 것으로 보여진다.
매우 당연하지만, 번호 선택이 매우 자유로운 야구나 아이스하키를 제외하면 영구 결번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15] 특히 수신호와 선수 콜때문에 번호 자체에 제한을 두는 스포츠는 영구 결번을 하려면 선수 자리를 비워야 되는 방법밖에 없는데 국가대항전이 주인 국제룰 경기에서 그런걸 할 수 있을리가...[16]
아이스하키의 경우 안양 한라의 심의식이 영구 결번된 것이 최초다. 2006년 은퇴와 동시에 영구 결번되었다.
영구 결번된 번호는 당연히 다른 선수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은퇴한 선수가 지도자 교육을 받고 코치, 감독으로 자신의 팀에 복귀하게 될 경우 영구 결번 번호를 다시 사용하는 경우는 있다. 그 번호가 해당선수에게 '귀속'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장종훈, 송진우 같은 경우는 자신의 팀에서 코치생활을 할때 영구 결번된 번호를 재사용하였다. 다만, 이종범같은 경우는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서로 다른팀에서 하며 그러지 못했고, 선동열 기아 감독에 부임할때 영구 결번인 18번이 아닌 90번을 사용했다.
현실성으로 유명한 축구 게임 풋볼 매니저에서도 영구 결번이 구현되어 있다. 실제로 그 구단에서 영구 결번인 번호들로는 선수들의 등번호를 배정할 수 없고 플레이 도중 선수가 은퇴할 때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근데 이 조건이 굉장히 빡빡하다. 일단 구단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어야 하며 구단 소속으로 수백 경기를 뛰었어야 하고 그 중 긴 기간을 같은 번호를 단 채로 지냈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영구 결번으로 취급되려면 이 정도 활약은 해줬어야 하는 것이 맞다.
영구 결번은 팬들이 해당 선수를 기릴 수 있고, 선수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영구 결번이 너무 많아지면 현역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는 등번호가 없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17] 물론 KBO 리그 기준으로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약 몇백년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국 번호 부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뉴욕 양키스의 경우는 120년 가까이의 역사를 보유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선수가 많이 등장한 탓에 2022년 현재 영구 결번으로 인해 한 자리수 등번호가 0번 빼고 남아있지 않을 정도이다.[18] 물론 세자리수 등번호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19] , 아무래도 한자리수나 두자리수 등번호에 비해서는 읽기도 어렵고 지저분해 보이게 된다. 게다가 사실 선수에 대한 기억이나 동기부여라는 장점은 구단별 명예의 전당과 같은 제도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다만 KBO 리그와 같이 영구 결번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아 있는 리그에서는 단기간에 영구 결번 문화가 대체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래는 프로 스포츠에서 영구 결번 및 임시 결번된 번호와 해당 선수의 목록이다.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기간을 둔 결번도 여기에 들어간다.
기간이 지나 해제된 임시 결번 사례는 다음과 같다.
지정 당시 구단 이름은 부산 아이콘스였다. 해외 이적 후 국내 복귀 당시 부산이 아닌 수원으로 이적하면서 영구 결번이 취소됐다. 지정 당시도 뛴 기간이 짧은데도 결번 했다는 점에서 2002 월드컵과 관련된 특혜로 말이 있었던 결번이었다.
수원 kt 소닉붐[27] ,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28][29] , 창원 LG 세이커스[30] 의 경우 아직 구단 영구 결번이 없다.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는 영구 결번이 있긴 있었으나 데이원 시절 전신 구단의 유산을 없앴고, 소노도 복구는 커녕 새 선수에게 주면서 영구 결번이 해제되었다.
WKBL은 KBL보다 더 낮은데 영구 결번이 유력했던 선수들이 트레이드 혹은 FA로 자발적 이적을 택하면서 가능성이 KBL보다 더 낮아졌다.[42] 현재 선수들 중 영구 결번 가능성이 높은 선수는 우리은행 박혜진, KB 스타즈 박지수 뿐이었지만 김정은이 2023년 FA로 하나원큐로 복귀하며 김정은의 영구 결번 가능성이 다시 열렸다.
은퇴 후 34번을 사용하는 선수가 없어서 사실상 준 영구결번이다.
개요에서 언급했듯이 배구는 완전한 영구 결번이 불가능했으며, 구단에서 영구 결번을 선언한 뒤 선수단 구성에 손해를 보면서 해당 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임의조치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2022년 KOVO컵부터 등번호 규정이 1번부터 99번까지로 확장됨에 따라 타 스포츠처럼 영구 결번 지정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FIVB 주관 대회에서도 동일하게 번호 제한이 해제되었다.
남자배구에서는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現 안산 OK금융그룹 읏맨)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이끈 외국인 선수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의 등번호 13번이 남자부 구단 통틀어 유일한 영구 결번이었지만, 지금은 해제되었다. 사실 이전의 남자배구를 대표하는 레전드가 많았는데도 그 선수들이 영구 결번이 된 경우는 없었는데, 이는 프로배구 자체의 역사도 짧고, 위에 나와있듯이 완전한 영구 결번을 불가능하게 만든 등번호 제한이 최근까지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44] 하지만 등번호 규정이 확대된 이후에는 시즌 후 몇몇 레전드의 영구 결번 영전 가능성이 생겼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45세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뛰며 2022-2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리베로 여오현의 5번이 영구 결번이 유력하다고 평가 받는 중이다. 같은 구단 문성민은 인기와 성적을 모두 가져다 준 원클럽맨이기에 문성민의 15번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현재 V리그 최고의 세터인 한선수의 2번도 가능성이 높다. 프로 시대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유일한 원팀맨으로 ‘한국전력의 혼’으로 불리는 서재덕의 1번 또한 영구 결번 가능성이 높은 선수이다.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現 안산 OK금융그룹 읏맨)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이끈 외국인 선수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의 등번호 13번이 남자부 구단 통틀어 유일한 영구 결번이었다. 6년 동안 영구 결번이 유지되다가 시몬이 자신의 등번호 13번을 구단에 넘겨줄 의향을 밝히면서 2022-2023 시즌 개막전에서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영구 결번 해제식을 진행하게 되었고,[45] 그 이후 레오나르도 레이바가 달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이 해제되게 되었다.
고유민은 김사니와 이효희와는 달리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김영신처럼 추모의 의미로 지정된 영구 결번이다. 하지만 지정 당시 구단 측의 의도에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유민 사망 사건 항목 참조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김연경이 해외에서 뛰다 복귀할 때까지 그녀의 등번호 10번을 임시 결번으로 비워놨었다가 20/21시즌에 복귀하면서 다시 달 수 있게 해줬다.[46] 이 번호는 김연경의 은퇴 후 위의 김사니와 이효희처럼 흥국생명의 영구 결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김연경이 흥국생명을 떠나더라도 구단에서 일방적으로 영구결번을 선언할 가능성조차 점쳐지고 있다.
FIVB의 번호제한 해제 이후, 2022년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서 10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전무후무한 스타였던 김연경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다만 국가대표는 모든 종목에서 대체적으로 영구 결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10번을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하는것이 최선이다.
여자배구의 영구 결번은 타 스포츠와는 달리 논란이 되는 영구 결번만이 존재하며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영구 결번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악평이 많다. 이러다 보니 여자배구 영구 결번은 제대로 된 영구 결번으로 취급해주지 않으며, 심지어 여자배구 팬들조차도 싫어한다.
이 외에도 맷 달튼(86), 김기성(1), 김상욱(19), 이돈구(61)등이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현재는 해체한 다른 팀들(대명 킬러웨일즈, 하이원[50] , 동원 드림스, 현대오일뱅크, 석탑건설 등)은 영구 결번 없이 팀을 해체했다.
그리고 재키 로빈슨 이외에 등번호 42번을 달고 뛴 선수 중 유명한 선수가 둘 있었는데 바로 브루스 수터와 마리아노 리베라다. 이 둘은 각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재키 로빈슨의 영구 결번과 함께 묶어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한편 1997년에 42번이 전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될 당시에 다저스를 제외한 팀에서[62] 이미 42번을 달고 있던 선수는 예외적으로 본인이 원할 경우 은퇴할 때까지 같은 번호를 계속 달 수 있도록 조치했는데, 이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선수는 몇년 안에 사라졌지만 리베라는 2013년까지 뛰었다. 그가 영구 결번 확정 및 은퇴를 한 뒤에는 현역에서 42번을 달고 뛸 수 있는 선수는 이제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42를 뒤집은 24번은 빅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번호 중 하나이다. 물론 이 이유보다는 윌리 메이스 번호라서 그런 것이 더 크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그 외에도 동양야구에 비해 영구 결번이 전체적으로 후한 편이다. 놀란 라이언이나 프랭크 로빈슨처럼 유명한 선수였으면 뛰었던 2~3개 팀에서 다 영구 결번이 되기도 하고, 영구 결번의 기준에 원 클럽 맨이 거의 당연시되다시피 하는 한국야구에 비해 오히려 영구 결번 선수 중 원클럽맨을 찾기가 더 힘든 지경. 해당 팀에서 고작 4~5년 뛰고 영구 결번되는 사례도 흔하며 아예 선수도 아닌 감독이나 구단주를 기념해서 영구 결번하기도 한다.
이렇게 영구 결번이 비교적 후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한국프로야구는 근본적으로 모기업 돈으로 운영되는 펫스포츠이지 팬의 돈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크게는 영구 결번같은 야구외적 스토리성, 상업성에 무심하며, 작게는 선수들 팬 서비스 태도 문제까지 차이가 나는 것.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메이저리그는 동양 야구에 비해 영구결번이 굉장히 후한 편이다. 물론 영구 결번 제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있는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경우 명예의 전당이라는 공식적인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각 구단별로 부여하는 영구 결번에 대해서는 각 구단의 재량에 자유롭게 따르고 있다. 꼭 야구 역사에 남는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지 않았더라도 그 구단에서 헌신하고 구단의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라면 그 팀의 영구 결번을 부여하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KBO 리그의 경우 명예의 전당과 같은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없기 때문에 영구 결번 제도를 명예의 전당과 비슷하게 인식하는 팬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타구단의 영구 결번 부여에 대해 자신의 팀이 아니더라도 많은 야구 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야구팬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영구 결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면 반대하는 경우가 메이저 리그에 비해 많은 편이다.
||1. 개요[편집]
프로 스포츠에서의 영구 결번은 팀에 크게 기여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선수나 감독 및 관계자를 기리거나, 애도와 추모의 의미로 등번호, 혹은 상징적인 의미의 숫자를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고 팀 내에서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 것, 또는 그 번호를 말한다.
프로 스포츠 최초의 영구 결번은 1935년 미식축구 팀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의 1번이다. 그 후 4년 뒤 MLB 구단 뉴욕 양키스의 야구 스타 루 게릭의 4번이 영구 결번이 되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유명 선수가 은퇴한 이후 저지 판매 수익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상업적인 의미로 시작한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3]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의 의미가[4] 덧붙여지면서 현재는 거의 모든 스포츠에 걸쳐 행해지며, 초기 취지를 넘어선 명예로운 대우가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등번호 자체에도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은 영구 결번보다는 번호 세습이 많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에이스 투수의 18번 세습이라던가[5] 주니치의 20번 세습이 대표적.[6]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에서도 간간히 눈에 띄는 현상이다. 예를 들자면 팬들 사이에서 '좌완 에이스의 등번호'로 인식되는 롯데 자이언츠의 28번이나, 어느 구단을 막론하고 '유격수의 등번호'로 인식되는 7번 등. 전자는 90년대 좌완 에이스 주형광에서 2000년대 좌완 에이스 장원준으로 이어진 사례이고, 후자는 김재박 이후 이종범, 박진만, 김하성[7] 등 수많은 유격수들이 그의 플레이에 대한 동경으로 7번을 선택해왔다. 다만 일본처럼 엄격하게 따지진 않는 편이라 롯데의 28번은 장원준이 군 복무로 자리를 비운 2012년~2013년에는 1차 지명을 받은 신인 우완 투수 김원중이 빌려 쓰거나, 장원준이 두산으로 이적한 후에는 1년간 좌완 신예 김유영이 달았다가, 2016시즌 우완 고원준, 트레이드 대상이자 역시 우완인 노경은을 거쳐 노경은과 등번호를 맞바꾼 정대현에게 넘어가는 등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8] 7번의 경우도 이종범의 은퇴와 영구 결번을 기점으로 유격수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많이 약해진 편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번호 세습이 다른 것은 일본은 번호 자체로 의미하는 포지션이나 에이스 넘버(축구의 10번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고[9] 한국에서는 전설적인 선배가 사용한 번호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국의 경우 그 전설적인 선배의 번호가 영구결번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번호 세습 문화가 발전하기 어렵다. 물론 다른 팀이면 가능하지만 같은 팀의 레전드의 번호보다는 상징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번호를 물려받은 선수가 부진한 성적을 거두거나 경기 외적으로 사고를 치는 등[10] 선배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해당 번호의 위상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팬들의 미움을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번호 세습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팬들도 많다.
KBO 리그의 첫 영구 결번은 1986년도에 주전 경쟁에서 밀려 인생을 비관해 한강에 투신자살한 OB 베어스의 유망주 김영신 선수로서, 당시 OB 베어스는 선수 관리에 책임을 통감하고 김영신의 비극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영결식과 함께 그의 등번호 54번을 영구 결번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원래 영구 결번의 취지에 맞게 팀에 큰 공헌을 한 선수들의 번호가 영구 결번이 되었다. OB 베어스의 윤동균의 10번이 두 번째 영구 결번이었으나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영향으로 인해 해제되었고, 세 번째 영구 결번은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열의 18번이다.
축구는 야구에 비해 영구 결번 문화가 옅다. 등번호가 포지션과 팀 내 입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 따라서 동 포지션 내의 유명 선수들은 같은 등번호인 경우가 많고, 같은 클럽의 레전드이지만 활약한 시기가 다른 여러 선수가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11] 더해서 팀 내 입지가 낮았던 유망주 시절에는 높은 등번호를 달다가 주전급으로 성장하면 낮은 등번호를 다는 것은 당연한 수준이다. 이렇게 같은 등번호의 선수가 넘쳐나고 등번호의 변경도 비교적 잦은 축구의 특성상 영구 결번이 많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적이 활발해서 프랜차이즈 스타가 적다는 점 또한 적은 영구 결번의 원인 중 하나. 물론 하술할 목록처럼 영구 결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 번호가 갖는 의미가 약한 이탈리아의 경우 영구 결번이 비교적 많은 편.
축구는 영구 결번이 적은 대신 번호가 세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번~11번은 사실상 주전급이어야 달 수 있는 번호고 그 중 7번과 10번은 에이스에게만 주어지는 번호이기 때문에 굳이 세습을 신경쓰지 않아도 높은 수준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번호를 이어받게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7번 계보나 레알 마드리드 CF의 7번, 유벤투스 FC의 10번 계보처럼 팀의 주전급 선수를 넘어 월드클래스급인 선수들로 번호가 계속 이어지면 기존에 해당 번호를 달던 선수가 팀을 떠날 경우 그 번호를 누가 이어받을 것인지 언론에서 비중 있게 보도하는 등 특별히 더 관심을 받는다.
전세계 공통으로, 축구 클럽은 12번을 영구 결번으로 정해 놓는 경우가 꽤 있다. 이는 과거에 12번을 달고 뛴 선수가 큰 공헌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물론 그럴 경우도 있을 수 있긴 하지만) '우리 팀의 12번째 선수는 바로 팬 여러분들입니다.'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서포터즈들을 12번째 선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12] 단, 아래 하단의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보통 레전드가 없는 신생팀에서 언론 보도용, 혹은 상징적인 의미로 결번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 특히나 국내 프로축구단들의 경우 그렇다. 국내 프로 축구단 중에서 최초의 12번 영구 결번은 1998년 부천 SK이다. 수원 FC의 영구 결번은 특이하게도 2가지인데 1번은 수원 시민,[13] 12번은 수원 FC 서포터 리얼크루를 위한 결번이라고 하며, 그 밖에도 인천 유나이티드와 FC 안양도 12번을 팬들에게 헌정하는 번호로 지정했다.
한국프로농구의 경우, 첫 영구 결번은 기아자동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센터 김유택의 14번이다. 2000년 은퇴와 동시에 영구 결번되었다. 안타깝게도 구단 운영 주체가 모비스로 변경되고 울산으로 연고이전 이후 기아 시절 색채를 적극적으로 지워버림에 따라서 크게 기념되지는 못 하고 있다. 여자프로농구의 경우, 첫 영구 결번은 현대산업개발의 전주원의 5번이다. 2004년 임신으로 첫 은퇴를 했을 때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이에 준하는 개념으로 임시 결번이 있는데 팀을 떠난 선수 공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다른 선수에게 주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원 소속팀으로 돌아오면 돌려주거나, 기한이 끝나면 새 주인을 찾아간다. 혹은 정재홍이나 김남춘 같은 현역 선수 신분일 때 사망하는 경우 추모의 의미로 사망 당시 소속 구단이 임시 결번을 헌정하기도 한다.
다만 모든 종목에서 영구 결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배구는 매 랠리 때마다 선수의 포지션 위치가 서버가 위치한 후위 오른쪽 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위 오른쪽 까지 지정되어 있으며, 서브권을 가져올 때마다 이 위치가 한 칸씩 회전한다. 서브를 넣는 순간에는 코트 안에 있는 6명의 선수가 자신의 포지션에 맞게 서 있어야 되며 이 순서가 바뀌게 서 있는 경우 포지션 폴트가 된다. 그 외에도 후위에 위치한 세 명은 어택 라인 안쪽 공간을 밟고 떠서 공격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이 때문에 심판과 기록석에서는 매 랠리 때마다 선수의 등번호를 가지고 위치를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만약 번호가 제각각이면 이 작업에 애로사항이 꽃피기에 번호를 1번부터 20번까지로 제한하므로 영구 결번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2016년 3월 3일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에서 시몬의 등번호 13번을, 또 2017년 10월 18일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배구단에서 김사니의 등번호 9번을 영구 결번을 했지만 이는 구단의 임의 조치일 뿐이다.[14] 다만 최근에는 20번을 넘어 쓰는 경우가 허다해서 사실상 영구 결번으로도 본다. 최근 영구 결번은 이효희의 5번. 그리고 22-23 시즌부터 번호 사용이 1번부터 99번까지 확대되면서 사실상 영구 결번 예우가 커질 것으로 보여진다.
매우 당연하지만, 번호 선택이 매우 자유로운 야구나 아이스하키를 제외하면 영구 결번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15] 특히 수신호와 선수 콜때문에 번호 자체에 제한을 두는 스포츠는 영구 결번을 하려면 선수 자리를 비워야 되는 방법밖에 없는데 국가대항전이 주인 국제룰 경기에서 그런걸 할 수 있을리가...[16]
아이스하키의 경우 안양 한라의 심의식이 영구 결번된 것이 최초다. 2006년 은퇴와 동시에 영구 결번되었다.
영구 결번된 번호는 당연히 다른 선수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은퇴한 선수가 지도자 교육을 받고 코치, 감독으로 자신의 팀에 복귀하게 될 경우 영구 결번 번호를 다시 사용하는 경우는 있다. 그 번호가 해당선수에게 '귀속'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장종훈, 송진우 같은 경우는 자신의 팀에서 코치생활을 할때 영구 결번된 번호를 재사용하였다. 다만, 이종범같은 경우는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서로 다른팀에서 하며 그러지 못했고, 선동열 기아 감독에 부임할때 영구 결번인 18번이 아닌 90번을 사용했다.
현실성으로 유명한 축구 게임 풋볼 매니저에서도 영구 결번이 구현되어 있다. 실제로 그 구단에서 영구 결번인 번호들로는 선수들의 등번호를 배정할 수 없고 플레이 도중 선수가 은퇴할 때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근데 이 조건이 굉장히 빡빡하다. 일단 구단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어야 하며 구단 소속으로 수백 경기를 뛰었어야 하고 그 중 긴 기간을 같은 번호를 단 채로 지냈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영구 결번으로 취급되려면 이 정도 활약은 해줬어야 하는 것이 맞다.
영구 결번은 팬들이 해당 선수를 기릴 수 있고, 선수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영구 결번이 너무 많아지면 현역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는 등번호가 없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17] 물론 KBO 리그 기준으로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약 몇백년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국 번호 부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뉴욕 양키스의 경우는 120년 가까이의 역사를 보유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선수가 많이 등장한 탓에 2022년 현재 영구 결번으로 인해 한 자리수 등번호가 0번 빼고 남아있지 않을 정도이다.[18] 물론 세자리수 등번호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19] , 아무래도 한자리수나 두자리수 등번호에 비해서는 읽기도 어렵고 지저분해 보이게 된다. 게다가 사실 선수에 대한 기억이나 동기부여라는 장점은 구단별 명예의 전당과 같은 제도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다만 KBO 리그와 같이 영구 결번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아 있는 리그에서는 단기간에 영구 결번 문화가 대체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래는 프로 스포츠에서 영구 결번 및 임시 결번된 번호와 해당 선수의 목록이다.
2. 대한민국[편집]
2.1. KBO 리그[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2.2. K리그[편집]
- 서포터즈, 시도민 등 팬에게 헌정하는 영구 결번은 따로 묶어 서술한다.
2.2.1. 임시 결번[편집]
기간을 둔 결번도 여기에 들어간다.
기간이 지나 해제된 임시 결번 사례는 다음과 같다.
- FC 서울의 김남춘이 2020시즌 도중 사망해, FC 서울이 원래 계약기간인 2022시즌까지 추모의 의미로 김남춘의 번호인 4번을 임시 결번으로 지정하였다. 이후 2023년에 그의 등번호 4번은 후배 이한범에게 넘어갔다.
-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유연수가 2022 시즌 도중 음주운전자가 몬 차에 치여 재활을 거듭했지만 복귀를 실패한 채 계약이 만료되었다. 그럼에도 구단 차원에서 유연수의 쾌차를 빈다는 의도로 계약이 종료된 2023 시즌에도 1년간 그의 번호 31번을 임시 결번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유연수가 꾸준한 치료 끝에도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였고, 구단을 통해 2023년 11월 8일 정식 은퇴 선언을 하였다. 또한, 구단에서도 2023년 11월 11일에 은퇴식을 열어줬다.#
2.2.2. 해제 결번[편집]
지정 당시 구단 이름은 부산 아이콘스였다. 해외 이적 후 국내 복귀 당시 부산이 아닌 수원으로 이적하면서 영구 결번이 취소됐다. 지정 당시도 뛴 기간이 짧은데도 결번 했다는 점에서 2002 월드컵과 관련된 특혜로 말이 있었던 결번이었다.
2.3. 농구[편집]
2.3.1. 한국프로농구[편집]
수원 kt 소닉붐[27] ,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28][29] , 창원 LG 세이커스[30] 의 경우 아직 구단 영구 결번이 없다.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는 영구 결번이 있긴 있었으나 데이원 시절 전신 구단의 유산을 없앴고, 소노도 복구는 커녕 새 선수에게 주면서 영구 결번이 해제되었다.
2.3.1.1. 임시 결번[편집]
2.3.1.2. 해제 결번[편집]
2.3.2. 한국여자프로농구[편집]
WKBL은 KBL보다 더 낮은데 영구 결번이 유력했던 선수들이 트레이드 혹은 FA로 자발적 이적을 택하면서 가능성이 KBL보다 더 낮아졌다.[42] 현재 선수들 중 영구 결번 가능성이 높은 선수는 우리은행 박혜진, KB 스타즈 박지수 뿐이었지만 김정은이 2023년 FA로 하나원큐로 복귀하며 김정은의 영구 결번 가능성이 다시 열렸다.
2.3.2.1. 임시 결번[편집]
김단비 이적 후에도 13번을 주지 않고 있다.
은퇴 후 34번을 사용하는 선수가 없어서 사실상 준 영구결번이다.
2.4. V-리그[편집]
개요에서 언급했듯이 배구는 완전한 영구 결번이 불가능했으며, 구단에서 영구 결번을 선언한 뒤 선수단 구성에 손해를 보면서 해당 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임의조치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2022년 KOVO컵부터 등번호 규정이 1번부터 99번까지로 확장됨에 따라 타 스포츠처럼 영구 결번 지정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FIVB 주관 대회에서도 동일하게 번호 제한이 해제되었다.
2.4.1. 남자부[편집]
남자배구에서는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現 안산 OK금융그룹 읏맨)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이끈 외국인 선수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의 등번호 13번이 남자부 구단 통틀어 유일한 영구 결번이었지만, 지금은 해제되었다. 사실 이전의 남자배구를 대표하는 레전드가 많았는데도 그 선수들이 영구 결번이 된 경우는 없었는데, 이는 프로배구 자체의 역사도 짧고, 위에 나와있듯이 완전한 영구 결번을 불가능하게 만든 등번호 제한이 최근까지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44] 하지만 등번호 규정이 확대된 이후에는 시즌 후 몇몇 레전드의 영구 결번 영전 가능성이 생겼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45세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뛰며 2022-2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리베로 여오현의 5번이 영구 결번이 유력하다고 평가 받는 중이다. 같은 구단 문성민은 인기와 성적을 모두 가져다 준 원클럽맨이기에 문성민의 15번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현재 V리그 최고의 세터인 한선수의 2번도 가능성이 높다. 프로 시대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유일한 원팀맨으로 ‘한국전력의 혼’으로 불리는 서재덕의 1번 또한 영구 결번 가능성이 높은 선수이다.
2.4.1.1. 해제 결번[편집]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現 안산 OK금융그룹 읏맨)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이끈 외국인 선수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의 등번호 13번이 남자부 구단 통틀어 유일한 영구 결번이었다. 6년 동안 영구 결번이 유지되다가 시몬이 자신의 등번호 13번을 구단에 넘겨줄 의향을 밝히면서 2022-2023 시즌 개막전에서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영구 결번 해제식을 진행하게 되었고,[45] 그 이후 레오나르도 레이바가 달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이 해제되게 되었다.
2.4.2. 여자부[편집]
고유민은 김사니와 이효희와는 달리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김영신처럼 추모의 의미로 지정된 영구 결번이다. 하지만 지정 당시 구단 측의 의도에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유민 사망 사건 항목 참조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김연경이 해외에서 뛰다 복귀할 때까지 그녀의 등번호 10번을 임시 결번으로 비워놨었다가 20/21시즌에 복귀하면서 다시 달 수 있게 해줬다.[46] 이 번호는 김연경의 은퇴 후 위의 김사니와 이효희처럼 흥국생명의 영구 결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김연경이 흥국생명을 떠나더라도 구단에서 일방적으로 영구결번을 선언할 가능성조차 점쳐지고 있다.
FIVB의 번호제한 해제 이후, 2022년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서 10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전무후무한 스타였던 김연경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다만 국가대표는 모든 종목에서 대체적으로 영구 결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10번을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하는것이 최선이다.
2.4.2.1. 해제된 결번[편집]
2.4.2.2. 문제점[편집]
여자배구의 영구 결번은 타 스포츠와는 달리 논란이 되는 영구 결번만이 존재하며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영구 결번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악평이 많다. 이러다 보니 여자배구 영구 결번은 제대로 된 영구 결번으로 취급해주지 않으며, 심지어 여자배구 팬들조차도 싫어한다.
- 먼저 고유민의 경우를 살펴보면, 구단이 고유민 선수를 임의탈퇴시키고 아무 데도 못 가게 했으면서 정작 등번호 7번은 타 선수에게 넘겨준 것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되었음을 유족들이 주장하자 구단 측이 뜬금없이 타 선수에게 부여된 7번을 회수하고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는 것으로 대응하면서 팬과 유족을 기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 김사니는 선수 본인이 기업은행에서 은퇴하기는 했지만 소속팀을 보면 저니맨에 가까운데다, 기업은행에서 항명 파동의 주범이라는 흑역사를 남긴 이후에는 그 어떤 팬들한테도 인정을 못 받고 있다.
- 그리고 도로공사에서 꽤 오래 있었고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지만[47] 전체 커리어를 볼 때 팀을 세 번이나 옮긴 이효희도 영구 결번이 적절하냐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추후 이효희가 별다른 사건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코치와 감독으로 팀을 이끌어 우승 등의 공로를 인정받은 농구 SK의 문경은이나 전희철 처럼 여론을 뒤집지 않는 이상[48]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 도로공사 코치로 우승에 성공했으니 도로공사 감독으로 우승하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되니 영구 결번은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2.5.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편집]
- 91. 심의식: 한국의 웨인 그레츠키로 불리면서 한국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군림한 선수이다. 은퇴 후에는 감독을 역임한 적도 있었으나 흑역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상무 아이스하키단 최후의 감독자리를 지켰고, 안양 한라 자체중계 해설위원을 지내기도 했었다. 영구 결번 지정은 2006년.
- 43. 패트릭 마르티넥: 체코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로 안양 한라에서 6년간 뛰면서 팀을 두 차례 아시아 리그 정상에 올린 선수.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외국인 영구 결번 선수다. 선수 은퇴 후에는 안양 한라의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맡았으며 감독으로도 아시아리그 기준 3번(공동우승 1회 포함)을 우승한 명장으로 남아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최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2021년 3월을 끝으로 감독직을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앰버서더 역할을 역임하기도 했다. 영구 결번 지정은 2010년.
- 87. 조민호: 2022년 10월 23일 지정. 2008년에서 2022년까지 상무 복무를 제외하면 원클럽맨으로 6번의 아시아리그 우승(공동우승 2회 포함)을 이끈 캡틴이었다. 안타깝게도 은퇴하기 전인 2022년 6월 15일 폐암으로 별세하여 사후, 그리고 사명 변경 후(안양 한라→HL 안양) 영구 결번이 지정되었으며, HL 안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이자[49] 최초의 고인인 영구 결번 선수다.
이 외에도 맷 달튼(86), 김기성(1), 김상욱(19), 이돈구(61)등이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현재는 해체한 다른 팀들(대명 킬러웨일즈, 하이원[50] , 동원 드림스, 현대오일뱅크, 석탑건설 등)은 영구 결번 없이 팀을 해체했다.
2.6. 한국 모터스포츠[편집]
- 엔트리 33번은 2000년 10월 21일 제주 코리아랠리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이기철 드라이버[51] 의 당시 출전 번호이었다. 한국 모터스포츠 사상 첫 드라이버 사망 사고로 기록되었으며[52][53] , 그래서 공식적으로 한국자동차경주협회[54] 의 결정하에 영구 결번되었다.
2.6.1. 준영구 결번[편집]
- 엔트리 14번은 2017년에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55] 서승범 드라이버가 2017년 시즌 슈퍼레이스 슈퍼 6000에서 사용하던 출전 번호였다. 2020년 시즌 슈퍼레이스에 참전하는 엑스타 레이싱팀의 노동기 선수가 당초 14번으로 참전할 예정이었으나 고인의 유족들과 서승범 레이서 기념 사업회[56] 측의 요청을 엑스타 팀에서 장고 끝에 수락해, 19번으로 교체하면서 고인의 이름이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대한자동차경주협회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유족측의 요청도 있고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 경기에는 14번을 쓰는 드라이버가 없으니 사실상 영구 결번에 가까운 셈.
3. 국외 및 국제[편집]
3.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편집]
- MLB 각 구단별로 수많은 영구 결번이 있다. 뉴욕 양키스의 경우에는 영구 결번이 23+1(42번 재키 로빈슨)개로 가장 많고[57][58] , 놀란 라이언과 프랭크 로빈슨의 경우에는 3개팀에서 영구 결번이 있다.[59]
- 또한 메이저리그에는 전 구단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번호가 있는데, 그 번호의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인 42번 재키 로빈슨.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그가 데뷔전을 치른 4월 15일은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42번을 달고 경기를 하며, 그의 편견을 없애는데 일조한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의 주장인 피 위 리즈는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팀에서도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60]
- 전구단 영구 결번 선수인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고 영구 결번이 없는 마지막 구단은 마이애미 말린스다. 2016년 호세 페르난데스가 비극적인 보트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를 추모하며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려고 했으나 호세 페르난데스의 보트 사고의 원인이 그의 마약 복용으로 밝혀지자 이 영구 결번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나왔으며, 결국 현재까지는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재키 로빈슨 이외에 등번호 42번을 달고 뛴 선수 중 유명한 선수가 둘 있었는데 바로 브루스 수터와 마리아노 리베라다. 이 둘은 각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재키 로빈슨의 영구 결번과 함께 묶어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한편 1997년에 42번이 전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될 당시에 다저스를 제외한 팀에서[62] 이미 42번을 달고 있던 선수는 예외적으로 본인이 원할 경우 은퇴할 때까지 같은 번호를 계속 달 수 있도록 조치했는데, 이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선수는 몇년 안에 사라졌지만 리베라는 2013년까지 뛰었다. 그가 영구 결번 확정 및 은퇴를 한 뒤에는 현역에서 42번을 달고 뛸 수 있는 선수는 이제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42를 뒤집은 24번은 빅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번호 중 하나이다. 물론 이 이유보다는 윌리 메이스 번호라서 그런 것이 더 크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그 외에도 동양야구에 비해 영구 결번이 전체적으로 후한 편이다. 놀란 라이언이나 프랭크 로빈슨처럼 유명한 선수였으면 뛰었던 2~3개 팀에서 다 영구 결번이 되기도 하고, 영구 결번의 기준에 원 클럽 맨이 거의 당연시되다시피 하는 한국야구에 비해 오히려 영구 결번 선수 중 원클럽맨을 찾기가 더 힘든 지경. 해당 팀에서 고작 4~5년 뛰고 영구 결번되는 사례도 흔하며 아예 선수도 아닌 감독이나 구단주를 기념해서 영구 결번하기도 한다.
이렇게 영구 결번이 비교적 후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역사: 리그 역사가 100년이 넘으며, 그러다보니 메이저 리그 초창기부터 역사가 이어져온 구단들은 당연히 역사에 남을만한 선수들이 많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팀이라도 90년대 신생팀이 아닌 이상 KBO 구단들보다 긴 역사를 지닌 팀이 대부분이며, NPB 구단들보다도 오래된 팀이 널려있다.
- 로스터 구성: 보통 등번호는 3자릿수는 자간이 좁아 모양이 안 살아 2자릿수 숫자를 선호하는데, 동양야구에서는 2군 선수단과 코칭스태프까지 등번호를 공유하다 보니 선수단 규모가 크다. 이러다 보니 스태프나 불펜 포수, 육성 선수는 세 자릿수 등번호를 달아야 할 정도로 등번호 갯수가 빡빡하며, 자연스레 영구 결번에도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다. 반면 메이저 리그는 40인 로스터로 선수단을 관리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은 등번호가 지정되지 않기 때문에 등번호 갯수에 꽤 여유가 있고, 그러다보니 영구 결번을 후하게 줘도 두 자릿수 등번호가 많이 남는다.[63]
- 문화 차이: NPB의 경우 영구 결번보다 번호 세습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으며, KBO는 리그 차원의 명예의 전당이 없어서 각 구단별 영구 결번이 명예의 전당을 어느정도 대신 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하다보니 기준이 상당히 높다.[64] 반면 MLB는 각 구단별 명예의 전당이 있고,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있어서 어느정도 클래스가 구분된다. 그래서 리그 전체에서 손꼽히는 초특급 선수들은 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고, 거기에 조금 못미치는 선수들은 각 팀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식으로 허들이 있으며 각 팀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준의 선수들부터는 영구 결번이 유력해지는 정도의 구분이 있다. 그래서 지미 윈, 마이클 영처럼 성적은 명예의 전당급이 아니었어도 구단에서 오래 헌신했거나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 점을 들어 영구 결번을 주거나, 텍사스 레인저스의 놀란 라이언이나 뉴욕 양키스의 레지 잭슨처럼 그 팀에서 짧게 활약했어도 크나큰 임팩트를 남겨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경우도 많다.[65] 여기에 동양야구, 특히나 KBO와 달리 FA 등 자발적 이유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에 대한 영구 결번도 비교적 후한 편이며, 이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음에도 주는 경우를 꽤 자주 볼 수 있다. KBO에서는 구단에서 레전드급 성적을 냈어도 안 좋게 이별한 선수들에게는 영구 결번이 잘 주어지지 않는데 비해, MLB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웨이드 보그스가 말년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음에도 보삭스에서 영구 결번을 받는 등 이러한 인식이 덜한 편이다.[66] 아무튼 여러모로 동양야구에 비하면 커트라인이 낮은 것.
- 상업성: KBO 리그는 모기업의 돈으로 사실상 펫스포츠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그러한 한국프로야구 구단과는 달리 미국 구단들은 자생을 하기 때문에, 티켓 한 장, 상품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데 영구 결번은 좋은 사업 아이템이기도 하다. 영구 결번식으로 관객을 더 끌어모을 수 있으며, 팀의 역사에 스토리를 한 줄 더 추가해 팬의 흥밋거리를 늘릴 수 있으며, 저지나 야구카드 등 관련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에 영구 결번을 많이 해 주는 것. 영구 결번으로 선수를 구단역사의 일부로 남기면 선수의 팬은 선수가 은퇴해도 해당 구단에 흥미를 잃지 않고 상품을 구매해 주는 고객으로 남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미국야구에서 영구 결번의 기준은 이 선수의 이름으로 저지를 많이 팔 수 있는 인기와도 연결된다.
한국프로야구는 근본적으로 모기업 돈으로 운영되는 펫스포츠이지 팬의 돈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크게는 영구 결번같은 야구외적 스토리성, 상업성에 무심하며, 작게는 선수들 팬 서비스 태도 문제까지 차이가 나는 것.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메이저리그는 동양 야구에 비해 영구결번이 굉장히 후한 편이다. 물론 영구 결번 제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있는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경우 명예의 전당이라는 공식적인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각 구단별로 부여하는 영구 결번에 대해서는 각 구단의 재량에 자유롭게 따르고 있다. 꼭 야구 역사에 남는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지 않았더라도 그 구단에서 헌신하고 구단의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라면 그 팀의 영구 결번을 부여하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KBO 리그의 경우 명예의 전당과 같은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없기 때문에 영구 결번 제도를 명예의 전당과 비슷하게 인식하는 팬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타구단의 영구 결번 부여에 대해 자신의 팀이 아니더라도 많은 야구 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야구팬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영구 결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면 반대하는 경우가 메이저 리그에 비해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