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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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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독소전쟁 당시 방어선 돌파를 목적으로 소련에서 개발된 중전차. 2차대전 종전 후에도 냉전이 끝나갈 때까지 세계 분쟁 곳곳에서 후속 기종인 IS-3와 마찬가지로 사용됐다.
ИС-2는 Иосиф Сталин-2(이오시프 스탈린 2형)의 약자로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의 이름을 따와서 명명된 것이다. 비슷한 예로 스탈린 전차의 직계 조상격인 보로실로프 전차 역시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니셜 КВ(Климент Ворошилов)를 따서 명명됐다.
명칭에 관해서 키릴문자 사용권을 제외한 대부분은 IS-2 또는 JS-2라 부른다. 동구권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키릴문자가 통용되어 ИС-2라고 표기했지만 서방권에서는 스탈린을 조지프 스탈린(Joseph Stalin)으로 직역했고, 이 영향으로 냉전기 서방의 문건이나 교범 영상에서 스탈린 전차를 보고 죄다 JS-2 아니면 JS-3로 표기했고,[1]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방권 영향이 짙어졌던 당시 일본에서 프라모델이나 서적 같은 곳에 JS-2라고 발매했다. 이렇게 소련이 망하고도 최근까지 JS-2라 불리다가 월드 오브 탱크나 워 썬더 등 동구권 게임에서 IS-2로 등장해 IS-2라 부르는 경우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JS-2가 통용되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서구식 발음표기에 의한 것이다. 자세한건 후술한 내용을 보자.
일단 러시아 정교회나 기독교나 가톨릭 모두 성경을 기반으로 한 종교이기 때문에 이오시프든 조셉이든 모두 성 요셉을 가리키며 발음상의 차이일뿐이다. 따라서 이오시프 스탈린이든 조세프 스탈린이든 상관없다는걸 알자. 고로 IS-2, JS-2 모두 틀린 표기는 아니므로 상관없고, 또한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이오시프 스탈린으로 표기한다.
2. 제원[편집]
3. 상세[편집]
IS-2는 KV-1 시리즈의 후계 전차로, 194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IS-2는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전선돌파라는 측면에서 IS-2는 독일군에게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중갑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IS-2는 독일 보병사단 예하 대전차포 대대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7,5cm PaK 40으로도 저지하기 쉽지 않았고, 저지에 실패할 경우 122mm 고폭탄의 위력은 독일군의 웬만한 야전 방어 구조물에도 구멍을 내기에 충분했으니 소련 특유의 물량으로 전선 각지에서 T-34-85 떼거지에 섞여서 몰려들어오는 IS-2 무리를 상대하는 독일군 보병 입장에선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물론 초기형 IS-2는 성과가 영 좋지 못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후술.
적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는 곳을 돌파한다는 중전차였으면서도 초기형 IS-2는 차체 전면에 약점이 있었다. 바로 조종수의 시야 확보를 위해 조종석 전면을 경사가 심하지 않게 하고 이 부분에 직시형 조종수 관측창을 설치한 것인데 이는 KV의 그것을 답습한 것이었다. 그 부위의 장갑이 얇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독일군은 그 두께도 관통할 수 있고 명중률 역시 뛰어난 강력한 대전차포인 7,5cm PaK 40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서 그 부분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경험 있는 대전차화기 운용병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러다 보니 IS-2는 2km 밖에서 56구경장 8,8cm FlaK 대공포나 티거의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에 상술한 약점을 맞아서 격파되는 사례도 많았다. 물론 그 당시의 부족한 광학 장비와 주포 수준에서 2km 이상에서 약점을 맞춘 것은 매우 운이 좋은 사례이며 가장 숙련된 전차병들 역시 2km에서 약점을 맞추는 것은 운이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대전차전에서는 특히 성과가 나빴는데, 대부분의 독일 전차보다 화력과 방어력이 우세함에도 연사력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독일의 판터나 티거에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독일 측은 방어자로서 은엄폐하고 유리한 타이밍에 공격하는 이점이 있었던 데다가, IS-2에게 대전차전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임무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5]
추가로, 소련군의 중전차의 손실율은 50%로 소련군의 중형전차나 경전차 손실률인 80% 비해 매우 낮았다.[6] IS-2는 나름대로 개량도 했던 만큼 상황에 따라서는 활약을 벌이기도 했다. IS-2의 활약이 유명한 전투 중 하나가 1944년 8월 산도미에쉬 인근 비스와 강의 교두보 확보 전투다. 여기서 IS-2는 티거 2와 전투를 벌였는데 8월 13일 제71근위독립중전차연대의 IS-2M 11량이 제105중전차연대 소속 티거 2 14량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4량의 티거 2가 격파되는 동안 소련군은 3량의 IS-2M을 잃었다. 이 밖에도 극소수의 몇몇 사례가 존재하긴 하지만 단점들이 그렇게 큰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던 방어전에서는 소련군이 IS-2M을 가지고 그럭저럭 괜찮은 교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전 후기의 주력 중전차로 꽤 많은 물량이 나타나 독일군 측에 위력적인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 상당한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초기형의 경우 차체 앞의 수직 형태의 관측창이 가장 약점으로 작용하여 스탈린 전차보다 체급이 아래인 4호 전차한테도 이 부분을 맞고 격파당한 일도 있었다.[7] 상대인 판터나 티거도 초창기 쿠르스크 전투 등에 투입될때는 체급이 낮은 T-34나 심지어 경전차에게 격파당한 사례가 많았던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펙이나 단점을 제치고서라도 이것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독일군 입장에서는 점점 버거운 상대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전술했듯이 IS-2의 역할 자체가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라서 방어력을 최대한 증강하는 방향으로 개량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마침내 IS-2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48구경장 7,5cm PaK 40 대전차포나 4호 전차의 7,5cm KwK 40 전차포로는 IS-2 후기형의 전면 장갑을 아예 뚫지도 못하고, 8,8cm FlaK 대공포나 36 티거 1의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는 물론 판터에 주로 실린 70구경장 7,5cm KwK 42 전차포 계통으로도 IS-2 후기형의 포탑이나 차체 하단을 맞춰야만 정면에서 격파가 가능했으며, 티거 II의 71구경장 8,8cm KwK 43 전차포 계통 같은 괴물같은 대전차포들을 데려와야만 IS-2를 정면에서 쉽게 관통할 수 있었는데 당시 독일군에는 IS-2 후기형을 뚫을 만한 포를 탑재한 차량들의 생산량도 부족한데다 적지 않은 숫자의 해당 차량들이 서방 연합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서부전선으로 끌려가는 판이라[8] 동부전선의 지휘관들 입장에선 그냥 막을 방법이라는 게 없어지게 되었다.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동부전선의 전황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셈이다.
0900시에 적이 신형 초중전차를 앞세워 공격해오자 티거가 소방수로 나섰다. ...(중략)... 티거는 스탈린 전차를 향해 먼저 선공을 가해 차체 전면에 정확하게 명중시켰으나 포탄은 튕겨나갔다. 우린 이전까지 8,8cm 포탄을 튕겨내는 차량을 본 적이 없었고 다들 당황했다. 적도 공격을 가해왔으나 사격은 부정확했고 포탄은 멀리 다른곳에 떨어졌다. 티거는 적 전차의 궤도를 향해 2탄을 날렸고 스탈린 전차의 궤도와 보기륜을 부쉈다. 움직임을 멈춘 전차의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달아났다. (출저 : Operation Bagration 1944)
전차의 포수가 전방 1500m 거리에서 다가오는 적 전차 2대를 발견했다. 숲에 매복한 아군 4호 전차가 약 1200m 거리에서 초탄을 날렸다. 그 차량 2대는 152mm 돌격포[9]
와 스탈린 초중전차였다. 돌격포는 금세 화염을 내뿜으며 주저앉았지만[10] 적의 초중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놈이 후진하는 것을 본 전차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출저 Panzer IV 1939~1945
이러한 수기를 보면, 독일군은 IS-2를 중전차가 아닌, KV-1 중전차와 구분하기 위해 "초중전차"라고 호칭했던 모양이다.
4. 개발사[편집]
1942년 9월에 KV-85(오비옉트 239)와 IS-1(오비옉트 237)이 채택되었다. 85mm D-5T를 주포로 장착해 기존 KV-1보다 화력을 강화됐지만, 이미 개량형 D-5S를 단 SU-85 자주포가 양산되어 전선에 배치된 상황에다가 추가적으로 같은 포를 사용하는 T-34-85[11] 중형전차도 곧 채택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많이 생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1943년 10월부터 1944년 1월까지 각각 148대와 108대만 소량 생산되는데 그쳤다.
후속형인 IS-122(오비옉트 240)가 보안상의 이유로 명칭이 IS-2로 변경되면서 이전에 생산된 IS-85도 명칭이 IS-1으로 변경된다. 이때 IS-85BM(오비옉트 244)이나 IS-100(오비옉트 245/248) 같은 파생형들도 각각 IS-3, IS-4, IS-5의 명칭을 받게 되는데 이 파생형들 역시 IS-2에 밀려 탈락하면서 실제로 양산된 IS-3(오비옉트 703)과 IS-4(오비옉트 701), IS-5(오비옉트 730, 후에 T-10으로 개명되어 채택)가 명칭을 물려받는다.
IS-1이 개발되고도 거의 생산되지 않은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화력이 동등한 SU-85와 T-34-85의 양산 계획이 잡힌 것과 소련군이 재대로 된 교리도 없이 대충 튼튼한 KV-1을 보병들이나 T-34와 함께 투입하던 시절은 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3년 말에는 이미 소련군 내에서 종심 전투 교리 하의 충격 집단 운용 교리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122mm의 IS-2를 양산하기로 한다. 미국의 랜드리스로 받은 압도적인 물량의 트럭과 열차 및 철도 설비들로 확실한 기동력까지 갖춘데다 무전기까지 대량으로 받아 부대의 협동의 미비 및 지휘체계의 미비까지 해결되어 독소전쟁에도 이미 충분히 유리해져 소련이 전략적으로 확고한 공격자 입장에 서게 되었기에 붉은 군대 내에서 중전차의 역할은 적 전차를 막기 위해 중전차를 사용한 독일과는 달리, 마치 냉병기 시대의 중기병처럼 예비대로 빠져있다가 한순간 적의 취약점에 압도적인 충격을 줘서 방어선을 깨부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85mm포는 기존의 KV-1의 역할이었던 '더 튼튼해지고 느려진 T-34' 정도의 포지션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변경된 교리 하에서 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좀 더 큰 포가 필요했다. 이에 새 주포 선정을 위해 KV-85를 이용하여 이런저런 포를 달아보고 앞서 설명한 IS-85를 유용한 여러 파생형 차량들이 개발되었으며, 이 중 대전차 능력은 가장 떨어지지만 막강한 고폭탄의 화력 덕분에 순간적인 전선돌파 목적에는 가장 적합한 54구경장 A-19 야전 평사포가 선택되었다.
그러나 원본 A-19 야전 평사포는 큰 구경과 분리장약이라는 특징 때문에 다른 포에 비해 연사력도 떨어졌고, IS 전차 차체에 탑재할 경우 포탄 적재량도 불과 28발로, 당시 기준으로 매우 소량의 포탄만 적재할 수 있었다. 또한 철갑탄의 관통력도 경쟁자였던 100mm 포에 비해 크게 뛰어나지 않았으나 강력한 화력을 통한 전선돌파라는 주 목적에 매우 적합했던지라 IS 전차에 탑재될때는 A-19을 전차포로 개량한 D-25T 강선포를 사용하였고, 후계 차량인 IS-3과 IS-4, 그리고 소련의 최후의 중전차인 T-10까지 이 122mm D-25T 계열 포를 개량해가며 사용하게 된다. 주포를 122mm D-25T[12] 로 바꾸어서 재장전 속도를 분당 3~4발로 끌어올렸고 주포 정확도를 크게 개선했으며[13][14] 조준기의 위치를 바꾸고 외장 연료탱크를 전차 뒤에 증설하는 등의 개선이 행해졌다.
IS-2의 시초는 IS-1에 53구경장 D-5T 85mm 강선포가 전선 돌파 목적을 달성하는데 위력 부족으로 판명나자 첼라빈스크 키로프 설계국이 시험적으로 T자형 머즐 브레이크를 장착한 A-19 평사포를 IS-85/1 전차 포탑의 주포로 장착하여 제작한 "IS-122"였다. 그러나 T자형 머즐 브레이크를 장착한 A-19 평사포가 사격 시 머즐 브레이크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때문에 개량을 진행하기로 한다.
이미 완성된 전차를 머즐 브레이크 없이 전장에 투입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급한대로 노획한 독일 전차에서 회수한 독일제 머즐브레이크를 부착하여 임시방편으로 전장에 투입시켰다.
이후 신형 머즐 브레이크를 제작하여 현재 알려진 IS-2의 형상으로 제작되어, 사용되기에 이른다.
5. 형식[편집]
5.1. 초기형[편집]
흔히 IS-2 1943년형이나 초기형 IS-2로 알려져 있다. 밀려드는 적 기갑세력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는 아군의 뒤에 남아 최후의 최후까지 방어전을 펼치는 후퇴 지연전에 투입되어 소모 되어가야 했던 독일군의 중전차와는 달리, 일관적으로 공격자의 입장에 설 수 있었던 스탈린 시리즈는 비교적 취약한 측면에서 날아드는 7,5cm PaK 40 대전차포 마저 조건이 좋다면 견뎌낼 수도 있을 정도의 중장갑과 비록 관통력이 구경에 비해 부족했지만 48구경장 122mm D-25T 강선포에서 나오는 무식한 고폭탄과 철갑탄의 화력을 살려 적의 방어선을 돌파해 우군의 진격로를 개척한다는 중전차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수 있었다.
대기갑전에서도 독일군의 중전차들마저 일격에 침묵시킬 수 있는 공격력과 경우에 따라 71구경장 8,8cm KwK 43 전차포는 무리여도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나 8,8cm FlaK 대공포의 철갑탄을 방어하는 방어력은 확실히 이점으로 작용했다. 대기갑전은 T-34-85 말고도 SU-85, SU-100 등의 자주포들이 주로 활약했고 스탈린 전차의 1차 임무는 뛰어난 중장갑과 대구경 강선포를 내세운 대건물, 대보병용이고 기갑전은 2차적 임무였다. 그렇다고 해서 IS-2의 대전차 능력이 T-34나 SU-85에 비해 밀렸다는건 아니고 IS-2의 대구경 강선포는 강력한 화력으로 전선돌파중에 마주치는 적 중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성능은 가지고 있었다.
다만 85mm M1939 52-K[16] 대공포나 100mm 강선포 같이 대전차전에 훨신 더 써먹기 좋은 포가 있었음[17] 에도 고폭탄 화력이 뛰어나 전선돌파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122mm이 선택된건 맞으며 100mm포가 대전차전에서 더 유연하게 쓸만하다는게 입증된 이후이자 100mm 강선포의 포탄도 충분히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22mm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하였다. 전선돌파중 이전에 비해 방어력이 상승한 서방전차(M47 패튼, M48 패튼)와 마주치는 경우 이 서방전차들을 손쉽게 상대하기 위해 주포가 변경되었다.
2차대전 시기 나치독일과 냉전시기 서방은 KV-1과 IS-2, IS-3를 잡기위해 자국 중전차의 대전차전 성능을 매우 중시했으나 소련 중전차는 2차대전 시기든 냉전시기든 자체교리에 맞게 전선돌파 목적을 먼저 충족하도록 설계되었다.
5.2. 후기형[편집]
흔히 IS-2 1944년형이나 후기형 IS-2로 알려져 있고 일부 매체에서 IS-2m으로 쓰여있기도 하지만 실제 소련/러시아에서 형식명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초기 IS-2의 실적은 소련군 그들의 기대보다 좋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IS-2의 참상을 본 소련군은 대폭 개량을 해서 실전에 투입했다. 이것이 바로 IS-2 1944년형이다.
초기형 IS-2들은 전투에서 제 역할을 잘 맡곤 했지만, KV-1부터 존재했던 차체 전면의 조종수 관측용 해치와 해치를 넣기 위한 각진 전면 장갑 설계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여전히 있었다. 1943년형 IS-2의 조종수 관측창은 전면장갑의 한 가운데에 위치했기 때문에 지붕에 조종수 탑승구가 없는 전차에서 조종수의 시야 확보에는 도움이 됐지만 동시에 전면부 방어력이 크게 저하되는 원인이자 큰 약점이 되었다.[18]
소련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어 1944년 봄부터 IS-2의 부분변경 설계가 시작되어, 차체 전면을 비롯한 일부 설계가 바뀐 1944년형 IS-2가 등장했다. IS-2 1944년형의 개량점으로선 기존의 120mm 계단형 정면장갑을 폐지하고 120mm 경사판으로 교체하면서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개폐식 조종수 관측창을 제거하였다는 점이 있다[19] . 이것으로도 전면부의 방어력의 강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새롭게 변경된 전면장갑은 주조장갑과 용접장갑 버전이 모두 존재했다.[20]참고
그러나 44년형에서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장갑부를 개량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면장갑에 불과했기에, 시가전이나 참호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이 시기즈음부터 독일군이 대량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성형작약탄두 대전차 화기, 즉 판처파우스트를 상대로는 취약한 약점부위들이 관통되면서 적지 않은 수가 보병과의 근접전에서 파괴되게 된다.[21] 덤으로 전면 장갑의 변경과 개폐식 관측창의 삭제로 조종수 시야는 희생될 수 밖에 없었고, 아직 차체 전면에 노면에서 튀는 물과 흙먼지 등을 막아주는 스플래시 보드도 없어서 조종수의 시야는 영 좋지 않았다.
하지만 D-25T 주포의 성능과 소련군 물량은 독일군 장병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하고 소련군 입장에서 IS와 같은 중전차의 주 임무는 적 보병진지를 돌파할때 확실하게 선두 대열을 맡아줄 존재의 필요였기에 임무는 충분히 수행했다고 볼수있다. 단지 또 다른 임무로서 전선에서 어쩔 수 없이 부여된[22] 독일 중전차와의 교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건 결국 활용방법이 달랐던 전차들의 맞붙음에서 벌어졌던 손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5.3. IS-2M[편집]
1950년대 중반에 소련군은 실전 경험을 토대로 IS-2에 대한 현대화 개량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이 개량을 거친 전후 개량형 차량들을 IS-2M으로 명명했다.
현대화 개량 과정에서 차체 측면에 공간장갑을 신설하고 엔진과 서스펜션을 개량하고, 관측 및 통신 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등의 개수작업을 거쳤으며, 이러한 특징들은 IS-2과 IS-2M의 주요 차이점이다. 일부 초기형(1943년형) IS-2들도 IS-2M 사양으로 개수되었는데, 다른 부분은 모두 개량되었지만 차체 전면의 계단형 장갑과 조종수 해치는 어쩔 수 없었는지 그대로 나뒀다.
- 포방패 틈 사이로 빗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방수포 걸이가 용접으로 신설되었다.
- T-34-85의 포탑 양쪽 측면에도 존재하는 권총 총구[23] 가 폐지되어 용접됐다. 애시당초 대전기에도 있어봤자 독가스나 화염병, 최루탄등에 약해지고 빗물만 샐 뿐[24] 별 쓸모가 없었다.
- 차체 측면에 IS-3와 동일한 형태의 공간장갑이 신설되었다. 공간장갑 안의 빈 공간은 공구함 등으로 사용되었다. 기존의 연료탱크가 설치된 부분은 연료탱크를 달아두는 대신에 개수하지 않았다.
- 내부 구조 변경으로 포탄 적재량이 기존의 28발에서 35발로 늘어났다.
- 엔진룸 덮개에 외부연료탱크를 적재할 수 있도록 하여 기존의 항속거리인 240km에서 400km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차체 전면에도 T-62와 동일한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 엔진을 T-54에 적용된 V-54 기반의 신형 V-54K-IS로 교체하였다.
- 증가장갑 압쪽 양 옆에 부착되는 운행등과 라이트 가이드를 설치했다.
- 포탑 후방기총이 제거되었다. 단순히 기총을 제거하고서 그 부분을 용접 처리한 것이기에 마운트의 돌출된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다.
- 보기륜의 캡이 5개 볼트 조임에서 10개 볼트 조임 형태로 교체되었다.
- 흙탕물이 조종수의 관측창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차체 전면에 스플래시 보드를 추가했다.
IS-2와 IS-2M을 외형으로 구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후방기총이 있으면 IS-2지만 IS-2M은 개수되면서 제거했기에 돌출부가 용접되어 막혀있다.
- 보기륜의 캡이 10개 볼트 조임 형태다.
- 차체 측면에 IS-3와 동일한 형태의 공간장갑이 신설되어 있다.
- T-10에 먼저 적용된 부품과 유사한 신형 궤도 보호 커버/흙받이와 궤도 상단을 가리는 사이드 스커트가 추가 되었다.
- 차체 전면에 스플래시 보드/스플래시 가드가 있다.
일부 IS-2M 차량들은 현대화 개량 과정에서 포탄 관통력을 높여서 대전차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포를 100mm D-10T로 교체하기도 했다사진.
6. 파생형[편집]
6.1. 소련[편집]
6.1.1. ISU-152[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6.1.2. ISU-122[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6.1.3. IS-2U[편집]
1944년형 IS-2를 기반으로 전면 장갑을 쐐기형 형상으로 바꾸고 포탑을 재설계한 개량형. 동시기에 개발중이던 키로베츠-1(Object 703)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였으나, 소련 군부는 IS-2U의 독특한 쐐기형 전면 장갑에 관심을 가져서 양산될 키로베츠-1에는 IS-2U와 동일한 쐐기형 전면장갑 설계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IS-2U에서 선보여진 쐐기형 전면 경사 장갑 설계가 키로베츠-1에 적용되면서 현재의 IS-3가 완성되었다.
이후 IS-2U 설계는 대중 기술공여 대상이 되어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전해진다.[25]
6.1.4. IS-2 (2A26)[편집]
1960년대에 제작된 테스트 차량으로 T-64에 사용된 125mm 구경의 2A26 계열 활강포를 장착하였다.
6.2. 폴란드[편집]
6.2.1. IS-2 제독차량[편집]
1960년대 초에 화생방 제독부대를 위해 치장창고에 있던 IS-2를 꺼내 포탑과 무장, 엔진 등 필수 부품을 모두 제거한 차량이다. 사실 차량이라 볼 수 없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T-54/55, T-62가 뒤집힌 IS-2 제독 차량 위에 IS-2의 궤도를 밟고 올라서면, 화생방 부대원들이 제독 호스를 들고 화생방 물질이 뭍은 전차 차체 하부와 궤도를 씻어주기 위한 용도이다.
7. 성능[편집]
7.1. 장점[편집]
122mm OF-471 고폭파편탄은 적 보병이나 대전차포 진지나 건물 등의 상대로는 사신 수준의 위력을 발휘했다. 당대 운용하던 T-34-85의 포탄 무게가 10kg 정도인데, IS-2는 20kg 이상으로 이를 2배 웃돌았다. 152mm 전차포를 장착한 (포탄 무게 40kg 이상) 소련의 자주포보다는 위력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122 ㎜ 고폭탄의 위력은 충분했다. 오죽하면 파편이 20m 까지 퍼질 정도이다. 일례로 IS-2가 활약하고나서 BR-471 철갑탄이나 BR-471B 철갑예광탄보다는 차라리 고폭탄으로 판터를 명중시키는게 더 효율적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철갑탄의 관통력이 낮거나 그러진 않고 탄종에 따라 관통력이 130~200mm 수준에 머물렀으며 이 정도면 차체를 틀지 않은 티거와 판터를 격파하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IS-2M의 차체 정면장갑은 120mm 60° 경사장갑을 지니고 있어 차체 상단만은 티거와 판터의 주포는 물론이고 당대 최강의 대전차포인 88/71 PaK 43마저도 방호할 수 있었다. 차체 전면 상단의 조종수용 직시형 관측창은 면적은 훨씬 작아졌지만, 맞출 수 있다면 장거리에서도 독일군의 대전차포에 관통될 수 있는 약점으로 남았다. 이런 전차가 보병진지에 돌입할 때 가장 위협이 되는 사단 대전차포 대대의 7,5cm PaK 40 대전차포에 대해 측면조차 지근거리 방호가 가능한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다. 다만 PaK 40은 입사각이 좋다면 근거리에서 IS-2의 측면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다. 방어력 확보에도 한계는 있어서 모든 적 대전차화기로부터의 생존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소련의 IS-2는 독일제 48구경장 7,5cm KwK 40 전차포에 대해 영거리를 제외한 전 거리에서의 측면 주요 부위 방호 확보가 목표였고 독일의 티거와 티거 2는 소련제 76mm ZiS-3에 대해 확고한 측면 방호를 요구받았다. 티거 3대를 수송할 때 IS-2 4대를 수송 가능했다. 게다가 장갑은 티거와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우세였다. 소련군의 전차답게 가격과 생산성에서 엄청난 장점이 있어서 가격이 4호 전차 후기형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고 티거의 ¼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IS-2가 판터와 비슷한 수준의 전차전을 할 수가 있었고 전선 충격력 면에서는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장점이다.
방어력과 기동성이 크게 발전된 소련의 중전차인 IS-2의 중량은 46톤에 지나지 않으며, 티거의 주포로는 정면에서 IS-2 후기형의 차체 하단이나 차체 상단의 포탑의 평평한 부분을 맞추거나 차체 상단의 약점인 관측창을 맞추면 IS-2 후기형을 격파할 수 있었지만, IS-2의 차체 상단의 경사장갑을 뚫기 힘들었다. 그러나 티거의 주포는 대공포를 원본으로 두고 있어 연사력이 빨랐고 상대적으로 넓은 포탑 용적 덕분에 재장전이 용이하였으며, 높은 광학 기술로 만들어진 조준경 덕택에 IS-2보다 훨씬 장거리에서도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다.
반면에 IS-2의 46.3구경장 122mm D-25T 강선포의 122mm 포탄은 탄두와 금속재질의 약협을 결합하는 분리장약식이었는데, 이는 장전수의 피로도 상승과 장전 효율 저하를 불러왔을 뿐 아니라 작은 차체에 대구경 포를 탑재한 데다 곡면 장갑 설계까지 무식하게 우겨넣은 덕분에 포탑 내부의 용적이 너무 비좁아져 재장전 속도가 분당 최대 3발, 평균적으로 분당 2발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하게 느렸기 때문에 대전차전에 부적합했다. 일단 포 자체만 놓고 보면 IS-2의 주포인 46.3구경장 122mm D-25T 강선포의 명중률은 티거의 주포인 56구경장 8,8cm KwK 36 강선포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의외로 제법 좋아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전차들은 원시적인 거리 계산 방법과 원시적인 탄도 계산 능력으로 인해 적과 처음 조우했을 경우에는 특히나 더 초탄 명중률이 심각하게 낮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차탄 싸움으로 흘러갔는데 여기서 연사력이 낮다는 것은 대전차전에서 엄청난 약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말은 곧 IS-2가 20~30초라는 긴 시간을 재장전하는데 허비하는 동안 티거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2~4발의 포탄을 IS-2에 아주 여유롭게 맞출 수 있고 티거 승무원들이 숙련되었다면 3~5발도 맞출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IS-2가 장전 속도를 희생한 만큼 주포 자체의 화력은 높아 대전차전은 부업 수준의 역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티거가 티타임 각도를 주지 않은 상태일 경우 먼저 맞출 수만 있다면 무식한 탄두의 운동에너지로 격파가 가능했다.[26] 물론 사격장이 아닌 실전에서는 IS-2가 티거를 먼저 발견하더라도 사격 → 탄착 확인 → 사격 제원 수정 → 재사격 사이클 없이 확실하게 한 발에 맞출 수 있는 근거리가 아닐 경우 선제 사격을 가했다가 아무 타격도 못 주고 위치만 노출하여 일방적으로 난타당할 확률이 너무 높았기에 기본적으로 IS-2에게는 대전차전 임무를 맡기지 않았고 122mm 주포는 그다지 잘 안 맞는 포로 기억되고 있다.
46.3구경장 122mm D-25T 강선포 자체는 독일의 56구경장 8,8cm KwK 36 강선포의 명중률에 크게 밀리지 않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월드 오브 탱크의 영향인지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속설이 퍼져 있는데 기밀해제된 소련 측 문서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쿠빈카에서 노획한 티거의 8,8cm 전차포를 떼어내 D-25T 주포와 비교한 결과 포 분산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 관통력 측면에서도 충분히 티거와 겨룰 수 있었다. 주포 이외의 광학장비 등의 문제로 인하여 실전에서 대전차능력 자체는 티거나 판터보다 많이 떨어지기는 했다.
이처럼 IS-2와 티거를 비교하면 여전히 티거가 우세하긴 했지만, 후기형인 IS-2 Obr. 1944부터는 대전차전을 제외한 면에서만큼은 티거와 비교해야 할 정도로 강력해졌으며, 전면 관측창도 뚫기 더 어려워지고, 생산성도 IS-2가 더 좋았다.
실전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티거에 적어도 70발을 철갑탄으로 채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APCR 같은 탄은[27] 게임안에서나 관통이 되니 안되니 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특수탄은 연합군 / 추축군 공통으로 게임처럼 그냥 막 쏘는 탄이 아닌 한 차량에 몇 발 없는 필살 탄종으로, 아껴뒀다가 중전차 상대로나 쓰는 탄이다. 텅스텐이 워낙 귀하다보니 경심철갑탄이 가장 보급이 잘 된 소련군조차도 전차당 몇발 수준으로밖에 지급할 수 없었다(소련은 전차마다 3-4발은 싣었다곤 하지만, 소련 전차에 비해 포탄을 훨씬 많이 싣을 수 있는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HVAP/APCR의 부족으로 한발도 싣을까 말까 했다).
원래 전차가 더 많은 쪽은 전차가 많은 만큼 대전차전보다는 대보병전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특히 IS-2 같이 중기갑차량이 없거나 부족한, 이른바 약점을 확인한 뒤 그곳으로 냅다 돌입해서 방어선을 개박살내는게 교리로 정해진 전차는 더더욱이다) 몇몇 전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IS-2뿐 아니라 각국의 전차들이 원래 철갑탄 계열보다 고폭탄 계열을 더 많이 적재했으며 그나마 소련의 엄청난 전차 물량을 막아내야 했던 나치의 대전차용 전차조차 HE-AP 비율이 5:5 수준이었다.[28] 소련 혼자서만 나치보다 기갑차량을 2배를 생산하고[29] 미국과 영국을 합쳐 또 소련만큼 기갑차량을 생산한 연합군은 워낙 추축국의 전차가 적다 보니 영국의 마틸다 II만 제외하면 소련-미국 할 것 없이 철갑탄 비율이 상당히 낮았으며 심지어는 대전차 임무를 상정하고 제작되어 배치된 미제 대전차 자주포들도 AP만큼 HE를 들고 다녔다.[30]
IS-2의 경우 보통 HE 18발 AP 10발, 또는 HE 20발 AP 8발을 적재했으며 철갑탄은 특화점을 격파할 때나 사용하고 대전차전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고폭탄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탄약의 비율 자체보다는 애초에 탄약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 되었다. 또한 소련 전차병들은 짬이 찰 새도 없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에 숙련도의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대신 화력의 경우엔 그 이상이었기에 이런 점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토 카리우스도 전투에서 마주쳤을 때 처음 본 주포 덕분에 위협을 느끼고 즉시 제거 시도를 했다. 기밀해제된 소련군의 문서를 확인하면 D-25T 강선포의 탄착군이 의외로 괜찮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어차피 시대의 한계상 근거리가 아니면 IS-2가 티거를 먼저 발견하더라도 초탄 한 발에 맞추기는 상당히 어려웠고 연사력이 심각하게 느린 IS-2는 한 발에 티거를 맞추지 못하거나 제압에 실패했을 경우 영락없이 20~30초 동안 재장전하며 일방적으로 난타당해야 했다.
7.2. 단점[편집]
- 작은 크기로 인해 비좁은 내부 용적
후술할 단점들은 근본적으로 모두 이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IS-2는 직계 선조인 KV-1와 비슷한 중량을 가지고 있지만, 차체의 크기가 확연히 더 왜소하다. 이것은 당시 소련제 엔진 출력의 기술적 한계로 인한 동일 중량이라는 제한 내에서 독일의 신형 전차들에 맞설 수 있는 화력과 방어력을 달성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종수 해치를 아예 폐지해버리는 극단적인 디자인을 채택하였고, 포탑 역시 122mm 포 탑재에 맞춰 대형화할 수 없었다. 실제로 IS-2의 크기는 중형전차인 T-34-85보다 살짝 더 큰 정도이다.
- 매우 느린 연사력
장전시간은 발당 평균 30초, 최소 20초로 매우 느렸는데 이는 당시 기술적 한계를 포함한 복합적인 문제점으로 발생한 것으로 주된 원인은 이 포탄이 분리장약식인 것과 작은 차체에 비해 매우 큰 주포와 과도한 경사장갑 설계로 가지게 된 비좁은 포탑 내부 용적으로 인한 제한된 승무원 활동 공간과 피로도 증가 부채질 때문이다. 우선 IS-2 전차의 주포로 개발된 46.3구경장 122mm D-25T 강선포는 원래 보병사단 포병연대의 사단 지원용 야포로 쓰이던 46.3구경장 122mm A-19 평사포를 개수하였기 때문에 분리장약식의 포탄 역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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