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경상도 지역이다. 이천시율면의 맨 끝에서 문경시 가은읍 또는 문경읍의 극초입까지 최단 직선거리가 약 48km이다. 물론 실제 도로는 직선거리가 아니므로 실제 이동 시 거리는 약 75km이다.
문경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문경새재가 떠오르는데 이 관문은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영남을 잇는 영남대로의 주요 관문이었고 그만큼 문경은 교통의 요지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경부고속도로나 경부선 등 각종 도로, 철도망이 생기면서 이러한 교통 기능을 상실했지만 대신 영화와 사극 촬영지, 트레킹 코스 등으로 각광받고 있다.
경제개발 시기에는 석탄개발이 활발한 곳이었으며 이때는 여느 광산도시와 마찬가지로 번성하던 곳이었으나 석탄사업의 몰락과 함께 크게 쇠락한 곳으로 경상북도 유일의 폐광지역진흥지구이다. 석탄이 많이 나던 곳답게 지질이 복잡하다.
'M'은 유려한 산세와 무구한 역사를 품은 문경 주흘산의 능선을 담아 찬란한 기품과 무한한 가치를 표현했으며, 'G'는 역사와 문화, 현재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문경새재의 굽이치는 옛길 위, 새 걸음으로 도약할 문경의 긍지를 담아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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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width=33%><colbgcolor=#ffffff,#1f2023> 2002년 ~ 2023년 ||자연과 인간, 전통이라는 컨셉 하에 문경의 영문 첫글자'M'을 형상화하였음. 녹색은 문경의 산과 자연을, 주홍색은 인간 또는 시민을, 청색은 문경관문으로서 전통을 상징함. ||
문경시의 BI
긍정의 힘! Yes문경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문경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자신감과 강한 의지를 상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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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width=33%><colbgcolor=#ffffff,#1f2023> 2002년 ~ 2023년 ||문경의 특성과 비젼을 담은 역동적 이미지의 브랜드를 통한 지역의 정체성 확립 - 마케팅 시민화합을 도모하여 경북북부의 중심도시 조성의 한단계 높은 미래 지향적인 도시 이미지 구현 ||
문경시의 마스코트
기쁜 소식을 듣고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는 뜻인 “문희경서”의 ‘문희'와 '경서'는 도시의 상징마크와 일체감을 주면서도 다정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문경시의 메신저를 표현함. '문희'는 문경 이니셜 'M'의 모티브로 긍정과 열정을 상징하며, '경서'는 문경 이니셜 'G'의 모티브로 자연과 건강함을 상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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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width=33%><colbgcolor=#ffffff,#1f2023> 2002년 ~ 2023년 ||출사동이는 과거에 급제한 후 임금님이 내려준 어사화를 꽂고 환하게 웃는 선비의 모습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여 기쁜 소식을 듣는 고장, 희망에 찬 문경의 모습을 상징함. ||
진한 사벌국의 영역이었다가 사벌국이 해체된 이후에는 신라의 간접 지배 기간을 거쳤고, 눌지 마립간 때부터는 신라왕들이 추풍령 일대를 왕실 직할지로 편성하여 진골들을 억누르고 왕실한테만 충성하는 정예병을 양성하는 지역으로 지역 특성화를 실시하면서, 신라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로 신라 왕궁 근위대는 문경을 포함한 충북 동부 ~ 경북 서부에서만 배타적으로 지원을 받아 편성되는 인원들로만 구성된다.
고대 신라어로 '고시갈이(곳갈이)'라 불렸는데, 오늘날 말로 고깔을 뜻한다. 이후 경덕왕의 지명 한화 정책 때 고깔을 '관'자로 훈차해 '관산'이 된 것.
, 호계현(虎溪縣, 호계면), 가선현(嘉善縣, 가은읍)이 있었다. 이렇게 이 당시에는 문경이 상주(사벌주) 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문경 지역 사람이던 견훤과 아자개가 상주 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906년에 궁예의 태봉 영역이 되지만 907년에는 후백제의 영역이 되었다가, 927년도에 흥달이 고려로 귀부하면서 문경은 상주와 마찬가지로 고려의 영역이 된다. 문경 지역 입장에서는 이것이 왕건의 고려와 첫 인연이 되는데 그러나 이는 흥달의 큰 판단 착오였다. 서라벌 기습과 공산 전투가 그 직후에 벌어졌고 고려의 영향력이 경북에서 거의 사라진 시기에 후백제군이 상주와 문경에 들이닥쳐 문경 일대는 상주와 함께 후백제의 영역이 된다. 그전까진 고려든 후백제든 그 일대를 장악한 호족의 귀부 여부로 귀속이 결정되었으나, 다름아닌 자기 고향인 문경과 원소속 가족들의 세력권인 상주가 이런 식으로 고려와 후백제를 왔다갔다하는 것을 견훤이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 그 이후로는 후백제가 아예 군사력을 상주시켜 후백제로의 귀속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29년 문경시 가은읍 일대 호족인 선필이 후백제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성을 지켜낸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보면 927년 견훤의 문경 장악 후 929년 사이 어느 시점에서 가은읍 호족 선필이 고려에게 귀부하면서 적어도 오늘날 문경시 중 가은읍은 고려의 판도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후백제는 고려가 경북 일대에서 고창 전투로 반격에 성공한 이후에도 936년도에 멸망하기 직전까지 가은읍을 제외한 문경과 상주는 판도로 유지하지만, 견훤과 아자개의 출생지인 가은읍만은 또 다시 후백제에게서 벗어났기에 견훤 입장에서는 대단히 뼈아픈 일이었다.[8]
그렇게 따지면 내내 고려를 지지했던 옛 침미다례 영역 중에서 통일신라 정규군단 현웅정(=미다부리정) 소재지인 나주 남평읍만은 기이하게도 견훤을 내내 지지했기에 유독 그 지역만은 일관되게 후백제 판도였지만. 견훤의 출생지는 이렇게 견훤에게 부정적이었으나, 견훤이 통일신라 장교로서 젊은 시절 커리어를 이어갔던 지역들은 견훤에 대한 지지도가 기이할 정도로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문경현이었다가 1895년23부제가 실시되어 안동부 문경군이 되었다. 1896년 23부 체제가 다시 13도로 개편되어 경상북도 문경군이 되었다.
1906년 예천군의 동로면과 화장면이 문경군에 편입되었고, 상주군의 산서·산남·산동·산북·영순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용궁군의 서면, 함창군의 동면 일부를 편입하였고, 1933년 신북면이 문경면에 통합되었다. 1956년 7월 8일 호서남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호서남면의 중심 마을인 점촌리의 이름을 따라 점촌읍으로 개칭되었고, 1963년 1월 농암면 삼송리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에는 문경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가은면과 상주군 이안면 저음리를 합쳐 가은읍이 되었다. 1986년 1월 점촌읍과 문경군 호계면 별암리 일부가 합쳐져 점촌시로 승격, 분리되었고, 1989년에는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1995년1월 1일자로 점촌시와 문경군이 합쳐져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1996년 산북면 거산출장소, 동로면 수평출장소를 폐지하였다.
1986년 문경군의 일부였던 점촌읍이 시로 승격되어 점촌시로 설치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과거 문경군청은 문경읍 상리에 있었으나 1949년 점촌읍으로 이전하면서 문경군의 중심지가 점촌으로 바뀌었다.
1995년도농복합시 도입으로 인한 행정구역 대개편 당시 본래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던 점촌시와 문경군도 통합하게 되면서 통합시의 명칭을 문경시로 하느냐 점촌시로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으며, 이 문제가 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상당한 진통 끝에 원래 이름인 '문경시'가 되었지만 문경시 안에 시청이 있는 구 점촌 지역과 문경읍이 공존하는 상황이 혼란을 가져왔다. 현재 점촌은 문경시 점촌동이다.[9]
파주읍(당시 주내면)이 구한말까지 파주의 중심지였으나, 문산읍(당시 임진면)을 거쳐 금촌읍(당시 아동면)으로 중심지를 이전한 이후 시로 승격이 되었는데 시청이 있는 금촌동과 파주읍이 같이 존재하여 혼란을 주고 있다(당장 파주역은 파주읍에 있으며, 파주시청이 있는 금촌동에는 금촌역이 있다).
석탄개발이 활발하던 1960~80년대까지는 젊은층 인구도 많고 지역 전체 인구도 10만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으며 약 30여개의 탄광이 있던 1974년에 인구는 16만 1천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후로 탄광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1985년에 본격적으로 산업합리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인구가 가파르게 줄기 시작했다. 1974년 16만 1천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11년간 2만 1천명이 줄어 1985년 인구는 14만명 정도였는데, 1985년부터 10년간은 과거 감소폭의 두 배를 넘는 4만 4천명이나 인구가 감소했다.
2023년 2월 인구가 7만 선이 붕괴되고 말았다.
문경시는 경상도 시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으며 전국 기초자치단체 인구 순위에서 시 중에서는 4번째로 인구가 적다. 계룡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특례로 승격된 계룡시를 제외하면 (뒤에서) 1, 2, 3위인 태백시, 삼척시, 문경시 모두 폐광으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나마 KTX 문경역의 개통과 더불어 문경 역세권 도시개발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이 정도로는 얼마나 크게 효과를 볼지가 미지수이다.
문경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부터 석탄을 캐던 곳으로 이때 만들어진 대성탄좌는 남한 최초의 석탄광산이다. 한때 국내 제2의 탄전지대였으며 1960~80년대에는 석탄산업이 활발한 곳이었다. 그러나 석탄이 사양산업이 된 이후 석탄을 캐던 광산들은 줄줄이 폐광되기 시작하고 한때 73개에 달했던 문경의 광산은 1994년 7월 최후의 광산인 은성광업소마저 폐광하면서 석탄산업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및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에 있는 문경새재 드라마 세트장, 고모산성, 문경 종합온천, 문경 오미자 테마터널, 가은읍에 위치한 가은 오픈세트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위치해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문경새재 드라마 세트장이다. 2016년 육룡이 나르샤에서부터 2022년 환혼: 빛과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다. 문경 종합온천 역시 칼슘 중탄산 온천수와 알칼리성 온천수를 사용하여 수질이 상당히 좋기로 유명하므로 문경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라면 한 번씩은 방문하는 것을 권장한다.
문경읍과 점촌 쪽에는 사격장과 집라인 등 레저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 잘 찾아보고 이용하자.
특산물로는 대한민국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받는 오미자가 유명하다. 그래서 오미자 축제를 열지만 2011년의 경우 농민들이 원하는 가격과 농협의 가격이 맞지 않아서 축제기간에 오미자 출하를 꺼려 축제에서 오미자를 싸게 사려고 왔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구에서 유명했던 사과의 생산지가 문경까지 올라왔다. 매년 가을에 하는 사과 축제도 유명한 편이다.[16]
문경새재 1관문 주차장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사과 노점들이 많이 보이는데 사과뿐만 아니라 사과로 만든 증류주를 같이 팔기도 한다. 덧붙여 '애플버드' 라는 업체에서 만드는 사과파이, 문경새재 옛날찹쌀떡도 꽤 괜찮으니 기회가 되면 사서 맛보는 것도 좋다.
또한 도예가 유명한데, 특히 문경전통 발물레, 망댕이 가마를 바탕으로 한 문경 전통도자기가 유명하다고 한다. 이를 통한 찻사발 축제도 1999년부터 이어져 왔는데, 2017년에는 대한민국 4대 축제로 선정될 정도로 성대히 열린다.[17]
다만 한우, 돼지고기 등은 이미 경북 다른 지역에서도 특산물인 경우가 많으므로 사과, 오미자와 달리 크게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
2020년 이후에는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문경 활공랜드, 문경 단산모노레일이 각광받고 있다. 정확히는 2020년 6월부터 8월까지 TVN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인 바퀴 달린 집 8회분에서 아이유, 피오가 등장하여 문경 활공랜드, 문경 단산모노레일을 시승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왕복 3.6km로 대한민국 최장거리 산악 왕복 모노레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참조할 것.[19]
관내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문경제일병원(720병상)이 있다. 이 병원은 지역에 비해 상당히 큰 병원이긴 한데, 이 중 정신과 병상이 1/4에 해당하는 180병상일 정도로 정신과의 규모가 크다. 또한 진폐증 환자들을 위한 진폐전문요양병동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는 상술했듯 문경에서 석탄산업이 활발했던 탓에 진폐증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 성남시에 있던 국군체육부대를 유치하여 2013년 9월 26일에 이전되었다. 상무야구단도 문경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상무 축구단은 아랫동네인 상주시에서 홈 경기를 치렀지만 2021년에 김천시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2023년 충북 보은군과의 연고지 협약이 불발된 상무 여자 축구단을 유치했다.
2015년 3월 들어서 배우 안성기를 세계군인체육대회 홍보대사로 삼고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군인대회라는 한계상 방송 지상파라도 탈 수 있을지 의문이다.[20]
KBS에서 중계하긴 했으나 지상파에서는 중계가 없었다.
참고로 대회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열렸는데 한국이 역대 최고성적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도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도도 되지 않았고 고작 위에 서술한 캐러반 선수촌으로 예산을 아낀게 평창동계올림픽이라든지 차후 국제대회 개최지들이 참고하자는 투로 보도된 수준이었다. 10조 이상 수익이라는 홍보는 그야말로 헛소리가 되었다. 정작 대회 예산 지원도 제대로 되지 않아 시의 부담이 가중되었고, 최근 선수촌을 카라반으로 대체하여 8백억의 세금을 아꼈다. 카라반을 대회기간 동안 임대하는 방식이며 이후 카라반은 일반인에게 판매될 예정이다. 대회 이후 모두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회 최종예산은 1,653억원이었다.
정구(테니스)가 유명한데 전국대회에 나가면 상을 거저 탄다고 한다. 학교별로 정구부가 있다.
스프링캠프(전지훈련)장으로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이를테면 2023년 5월 8~12일에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이 문경시에서 전지 훈련 및 유소년 배구 교실을 진행했다. 박민범(1994) 코치가 전지 훈련의 총괄을 맡았고, 선수들은 점촌중학교에서 '페퍼저축은행 배구 선수단과 함께하는 배구 교실'을 열었다.
[1] 2023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주민등록인구현황[2] 문경시 가선거구 (문경읍, 가은읍, 마성면, 농암면): 김경환, 황재용 문경시 나선거구 (점촌2동, 점촌4동, 점촌5동): 진후진, 서정식, 신성호 문경시 다선거구 (영순면, 산양면, 산북면, 동로면): 고상범, 남기호 문경시 라선거구 (호계면, 점촌1동, 점촌3동): 박춘남, 이정걸 비례대표: 김영숙[3] 문경시 제1선거구 (문경읍, 가은읍, 마성면, 농암면, 점촌2동, 점촌4동, 점촌5동): 박영서 (3선) 문경시 제2선거구 (영순면, 산양면, 호계면, 산북면, 동로면, 점촌1동, 점촌3동): 김창기 (초선)[4] 모전 터미널 근처가 함창읍이며, 문경시 점촌과 상주시 함창읍은 아예 붙어 있다.[5] 차로는 괴산군 연풍면을 경유해야 하며 도보로는 미륵세계사 옆 산길로 올 수 있다.[6] 충주, 제천에서는 바로 갈 수 없다.[7] 고대 신라어로 '고시갈이(곳갈이)'라 불렸는데, 오늘날 말로 고깔을 뜻한다. 이후 경덕왕의 지명 한화 정책 때 고깔을 '관'자로 훈차해 '관산'이 된 것.[8] 그렇게 따지면 내내 고려를 지지했던 옛 침미다례 영역 중에서 통일신라 정규군단 현웅정(=미다부리정) 소재지인 나주 남평읍만은 기이하게도 견훤을 내내 지지했기에 유독 그 지역만은 일관되게 후백제 판도였지만. 견훤의 출생지는 이렇게 견훤에게 부정적이었으나, 견훤이 통일신라 장교로서 젊은 시절 커리어를 이어갔던 지역들은 견훤에 대한 지지도가 기이할 정도로 높았음을 알 수 있다.[9]경산시에도 점촌동이 있다. 이쪽은 대구한의대학교와 평산동 사이에 있다.[10] 문경 시민 대부분과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현지 주민들은(특히 농촌 지역 주민들) 아직도 시내를 '점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고속버스도 "서울 - 점촌"으로 표기하지 "서울 - 문경"으로 표기하지 않는다.[11] 종종 괄호를 쳐 '(점촌)'을 병기하는 지도도 있다.[12] 서부의 광양읍과 동부의 동광양시가 분리됨[13] 사천시는 도농통합 전후로 사천읍(옛 사천군의 중심지)과 삼천포시가 하도 싸우다 보니 아예 사천읍과 삼천포의 중간 지점인 사천시 용현면에 사천시청을 세워 버렸다.[14]파주읍(당시 주내면)이 구한말까지 파주의 중심지였으나, 문산읍(당시 임진면)을 거쳐 금촌읍(당시 아동면)으로 중심지를 이전한 이후 시로 승격이 되었는데 시청이 있는 금촌동과 파주읍이 같이 존재하여 혼란을 주고 있다(당장 파주역은 파주읍에 있으며, 파주시청이 있는 금촌동에는 금촌역이 있다).[15]함안군청 소재지가 함안면에서 가야면으로 옮겨갔고 1970년대 가야읍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함안면이 쩌리가 되었다가 함안역이 다시 함안면으로 이설되었다.[괄호] AB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6] 문경새재 1관문 주차장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사과 노점들이 많이 보이는데 사과뿐만 아니라 사과로 만든 증류주를 같이 팔기도 한다. 덧붙여 '애플버드' 라는 업체에서 만드는 사과파이, 문경새재 옛날찹쌀떡도 꽤 괜찮으니 기회가 되면 사서 맛보는 것도 좋다.[17]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을 통째로 써서 9일~10일 가까이 열린다.[18] 다만 한우, 돼지고기 등은 이미 경북 다른 지역에서도 특산물인 경우가 많으므로 사과, 오미자와 달리 크게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19] 단, 문경 단산모노레일은 시설상의 문제로 2024년 8월까지 잠정 운영 중단 상태이다.[20] KBS에서 중계하긴 했으나 지상파에서는 중계가 없었다.[21] 오류가 있는데, 여주시 부분은 주황색, 광주시(경기도) 부분은 초록색이 되어야 맞는데, 반대로 되었다는 거다. 어차피 4군데 이상을 거쳐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22] 본래 출생지는 전라북도 전주시이고 문경은 아버지 이상수의 고향이지만 과거에는 부계의 근거지를 고향으로 보기도 했으므로 문경이 고향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23] 지역구는 문경시·예천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