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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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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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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3. 결과 및 의의


1. 개요[편집]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이란 북한의 1차 5개년계획(1957~1961) 과정에서 기계 제작공업을 발전시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기존의 공작기계를 본래 업무에 추가해 사용하여 새로운 공작기계를 생산하자는 것을 핵심으로 한 대중운동이다.


2. 설명[편집]


1958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것으로 김일성의 요구에 따라 ‘주을 아마공장’에서 만능선반을 견본으로 잡고 1959년 한 해 동안에 50여대의 공작 기계를 추가 생산하고 이것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룡성기계공장’, '덕천자동차 공장’, ‘기약기계공장’ 등에서 곳곳마다 기계가 기계를 새끼치고 공장이 공장을 낳는 기적이 창조되었다고 자기들은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이후 결과가 시원찮았는지 1960년대 중반부터 공식적인 발표에서도 사라지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그라들어버렸다.

이후 1985년 6월 김일성이 함경북도를 현지 지도하는 과정에서 이걸 다시 꺼내들어 기계공업육성의 주요 방법으로 추진했다. 재추진된 운동은 이전 것과 구별하여 ‘85년 6월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으로 명명했고, ‘80년대 속도창조운동’과 엮어서 과학기술발전에 주안점을 두고 전국적으로 전개했다. 이런지라 1988년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4차 전원회에서 추진된 '공작기계공업과 전자자동화공업 발전대책', '생산공정의 자동화, 로봇 45화, 전산화를 통한 공작기계의 양산 및 품종확대’, ‘수치조종 공작기계, 집적회로, 전자자동화계기 양산 및 품종확대’와 같은 전자자동화공업화와 같이 추진하려 들었다. 하지만 이조차 결국 기술력 부족과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흐지부지되었다.


3. 결과 및 의의[편집]


사실상 토법고로에서도 나타나는 것이지만, 공산주의 하에서 전문 지식이 동반되지 않은, 그냥 한대가 한대를 찍어 양을 불린다는 무식하게 짝이 없는 사고방식 하의 주먹구구적인 민간 동원 대량 생산은 기본적인 기술, 자원적인 역량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그 결과물이라는 것이 형편없어지는 것이 기본이고, 특히나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고 속도전을 강조하는 풍조는 그것을 더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잘 포장해 줘도 이 운동은 결국 수많은 위성국가 및 개발도상국에서 행해지던 해적판 장비 복제 내지는 역공학일 뿐이다. 그것도 어떻게든 적당한 가격에 총알만 나가면 된다는 마인드인 총기와 다르게, 이쪽은 정밀공작기계다. 두번이나 망한 걸 보면 그 한계는 명확.

하지만 아주 성과가 없는건 아니라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공작기계를 생산하려는 노력이 그나마 빛을 발해서 한참 늦었지만 2009년에 CNC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1] 동남아, 아프리카 같은 국가들에 수출하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자세한 것은 CNC 항목 참조. 그리고 북한이 CNC로 도당체 무엇을 하려는지 의심할수 있는 심증도 충분하다.

다만 공작기계는 어떻게 늘리고 자체 생산까지 갔지만, 북한의 고질적인 전력난, 자원난으로 인해서 시도때도 없이 정전, 정비불량과 마모로 인해서 허구한 날 고장나는 환경인지라 기껏 늘린 공작기계가 온전히 못 굴러가고있다. 관련기사

[1] 북한의 주장 및 몇몇 서적에서는 이 새끼치기운동 시기에 북한공작기계의 기본인 련하기계의 원형인 구성-105라는 것이 만들어졌고, 이를 발전시켜 2009년도의 CNC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운동의 한계를 고려하면 단순한 해적판 내지 역공학 복제품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