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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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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제12, 13대 국회의원 및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45년 경상남도 통영군 장목면(현 거제시 장목면) 율천리에서 태어났다. 동아고등학교(12회), 부산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하던 중 박정희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구속되었다.
당시 구속적부심으로 석방결정이 내려져 석방되었는데, 그 구속적부심 판결을 내린 사람이 정치인 유승민의 아버지 유수호 판사였다. 이 판결로 유수호 판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이후 1973년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게 된다.
2.1. 정계 활동[편집]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부산직할시 중구-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예춘호 후보와 신민당 김상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중구-동구-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왕상은 후보와 민주한국당 안건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찬종에게 신한민주당 공천에서 밀리자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중선거구제 하에서 신한민주당 박찬종 후보와의 동반 당선을 위해 아빠는 신한민주당, 엄마는 민주한국당이라는 선거 구호를 사용하여 자신은 1등 당선되고 박찬종은 2등 당선되었다. 민주정의당 윤석순 후보는 당연히 낙선.[1] 당선 직후 다시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복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에 몸담으면서 그와 행동을 같이 하였다. 따라서 3당 합당에 따라가지 않은 1990년 이후에는 부산광역시에서 출마한 선거마다 계속 낙선하였다.
3당 합당 이후로 출마한 선거만 재보궐 포함 국회의원 선거 6번, 시장 선거 1번이다. 그만큼 진정성과 인지도는 있었지만 오직 지역정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매번 눈물을 삼켰다. 특히 14~17대 총선에서 3번을 한나라당 후보인 김형오에게 깨졌고, 중간에 지역구를 바꾼 93년 재보궐선거와 15대 총선에서는 정치신인인 박종웅과 정의화에게 석패했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며 김대중 정부 때는 행정자치부 장관과 정무수석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대한체육회장과 대한태권도협회장[2] 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공직사회의 개혁을 주도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장관과의 대화방을 개설하여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최초로 시도한 장관이기도 하다.
그래도 17대 총선에서는 현직 의원인 김형오를 맹추격해서 45%의 고무적인 성과를 올렸으며, 2010년 시장 선거에선 역대 부산시장 야권 후보 최다득표율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영도를 양보하고[3] 부산진으로 선거구를 옮긴 게 패착이 되었다. 영도에서 당선된 이재균이 의원직을 상실하자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였지만 불출마했다.
2013년 6월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2.2. 정계은퇴 이후[편집]
한때 부산 서면역 근처에서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우동집 간판 요리사 중 하나가 전일본공수의 쉐프 출신이라 미칠듯한 고퀄리티의 맛집으로 호평이 자자했다.
2015년부터 우동집에 대한 글이 없는 것을 보아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는 건물이 위치한 빌딩의 소유권을 두고 김 장관의 형제들끼리 분쟁이 붙어(...) 자리를 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사단법인 재난안전드론협회 회장을 지내고 있으며, 자이툰 부대 파병으로 유명했던 아들 김창희 씨와 함께 서면 '경성여관'을 운영중이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당연한 낙선이 아니었다. 실제 야권1명 여권1명 대부분이 당선되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였지만 이 윤석순 후보란 사람의 부친이 일제강점기 때의 악질친일파로 독립운동가들을 무수히 고문하고 죽인 사람으로 조선인 최초 종로경찰서서장으로 부임하고, 이후 황해도 경찰부장(지금 지방경찰청장임)을 역임한 윤종화로 알려지는 바람에 떨어진 것. 더 웃긴 건 그의 5촌 조카가 윤상현으로 전두환의 사위였다. 그러다 보니 어마어마한 금권선거를 하였으나 사람들이 전부 안찍어서 떨어진 것.[2] 후임자로 온 사람은 홍준표.[3] 이후 들어온 사람은 김비오. 그 역시 영도에서 정치적 기반을 쌓은 인물이다.[4]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5] 신한민주당 복당을 위한 탈당.[6]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7] 3당 합당에 대한 반발로 탈당.[8]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9]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1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신한국당-통합민주당 합당 반대)[11]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2]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13]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4]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15]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6] 중구 및 영도구[17] 신한민주당 박찬종 후보와 동반 당선
1985년 탈당, 신한민주당 입당
1987년 탈당, 통일민주당 입당[18] 1990년 탈당(3당합당 반대)
민주당 합류[19] 전임자 서석재 피선거권 상실
(신한국당-통합민주당 합당 반대)[11]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2]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13]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4]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15]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6] 중구 및 영도구[17] 신한민주당 박찬종 후보와 동반 당선
1985년 탈당, 신한민주당 입당
1987년 탈당, 통일민주당 입당[18] 1990년 탈당(3당합당 반대)
민주당 합류[19] 전임자 서석재 피선거권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