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BF2C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BF2C"는 전간기 커티스-라이트에서 개발된 단좌형 복엽전투기이며, 함재기이자, 전폭기로, 본국인 미국에서는 악평을 받고 도입이 취소된 기종이었으나 중화민국 국민정부 및 태국에서는 호평을 받는 등, 극과 극의 평을 받은 비행기이다.
"세계 최초로 랜딩기어가 접히는 복엽합재기"라는 독특한 타이틀과 더불어, 당시 기술로는 범접하기 힘들었던 여러 혁신적인 구조가 적용된 함재기라고 볼 수 있다.
본국에서의 악평 탓에, 약 166기만이 생산되었으며, 그마저도 이 중 90기는 중화민국이, 50기는 태국이 라이센스 생산한 것으로, 실상 생산된 기체는 고작 36기 남짓밖에 되질 않았다. 그러나 이 작은 수량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수출된 BF2C들은 자신보다 더욱 강력한 저익단엽기들과의 공중전에서 밀리지 않고 대활약하였으며, 제공권을 사수하는데에 큰 공을 세웠다. 태국에 수출된 BF2C의 경우,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태국 공군의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평을 받는다.
2. 제원[편집]
3. 내부[편집]
"BF2C""의 내부 상세도는 상단의 사진과 같다.
우선, BF2C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단연 접이식 랜딩기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상술하였듯, "세계 최초로 수납식 랜딩기어를 장착한 함재전투기"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정도로 진보적인 기술이라 볼 수 있다. 이 덕에 공기저항계수를 낮출 수 있어, 실전에서 저익단엽기를 상대로도 기동성에서 밀리지 않고 외려 압도할 수 있도록 했으며, 후대 항공기들에도 해당 설계가 적용되어 항공 및 전투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라 볼 수 있다.
구동계에 대해 논하자면, BF2C가 사용하는 엔진은 라이트제 사이클론 R-1820-84 9기통 성형엔진으로, 해당 엔진은 기존 사이클론 R-1820-04 엔진의 개량형으로 R-1820-04 엔진에 비해 100마력이 증가하여 고출력을 통해 이전, 미 해군이 사용하던 BF2C와 비교하면 더 높은 최고속력과, 상승률을 낼 수 있었다.
프로펠러의 경우, 미 해군이 사용하던 BF2C은 2엽식 프로펠러를 사용했다가, 개선점을 적용한 호크 III에 와서는 3엽식 프로펠러를 사용해 더 높은 효율을 내었다.
무장의 경우, 7.62mm 브라우닝 기관총 2정을 장비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무장 증강의 일환으로 호크 III에 와서는 좌현 기관총을 12.7mm M2 중기관총을 장비하였다. 이는 중일전쟁 당시 7.62mm 빅커스 기관총의 라이센스형인 89식 기관총을 무장으로 하고 있던 일본군과의 공중전에서 화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원본이 함재전투기였기에 테일후크가 달려있어 항모에서의 이착함이 매우 용이했으며, 추가적으로 지상타격 임무 수행을 위해 500파운드 폭탄 1개, 100파운드 폭탄 4개를 장비할 수 있었다.
4. 개발사[편집]
1927년에 들어서면서, 미 해군에는 중대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신형 항공모함인 CV-3 새러토가와, CV-2 렉싱턴이 신규 취임하게 되었던 것으로, 이 시기 전세계적으로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허점을 노려 많은 국가에서 신형 항공모함과 함재기를 제작하고 있었기에 미 해군 항공대에서도 신형 함재기의 필요성을 의회에 어필하였다.
이것이 통과가 되면서, 커티스-라이트 社와, 보잉 社에서 서로 경합을 펼쳤으나, 당시 보잉 社에서는 F4B 함재기를 개발하며 커티스 社를 몰아내고 함재기를 지속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이 되었다.
이후, 1932년이 되며, 혁신적인 설계가 그루먼 社에서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FF-1"이라는 이름의 신형 시제 함재기로, 해당 함재기는 랜딩기어를 기체 내로 수납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본 커티스 社에서도 자사 설계에 해당 방식을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커티스에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F11C 고스호크를 개조하여, 해당 방식을 적용한 신형 함재기를 "XF11C-3"이라는 명칭으로 칭하게 되는데, 이후 해당 항공기의 개발이 통과되며 "BF2C"라는 이름으로 재지정되었다.
그러나 BF2C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미 해군 항공대에 납품되었지만 주 특징인 수납형 랜딩기어와, 날개의 금속 프레임이 함재기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게되어 고작 몇 달만에 도입이 취소되고 만다.
커티스 社에서는 잉여로 남은 재고 비행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다, 반품된 기체들을 공장에서 엔진을 변경하고, 금속제 프레임의 날개를 목재 프레임과, 클라크 Y 방식 날개로 변경한 뒤, 테일후크를 제거하고, 폭탄 장착용 조인트를 장착하는 개수를 거쳐 마침내 "호크 III"라는 명칭으로 개발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이를 판매할 판매처가 없어 커티스는 난항을 겪었는데, 마침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중국 국민당 측에서 전투기가 매우 필요해져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민당에 BF2C를 판매하게 되었다.
실전에 투입된 BF2C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매우 대등하게 맞서 싸웠으며, 좋은 전투기임을 증명해내었다.
비록 본래 목적인 함재기로는 사용되지 못하였으나, 타국에서 빛을 발한 비행기로 평가받고 있다.
5. 형식[편집]
5.1. BF2C-1[편집]
"BF2C-1"은 최초로 개발된 BF2C로, 1934년 초도생산을 시작하였다.
당시 BF2C-1은 금속 프레임의 날개와, 2엽식 프로펠러, 라이트제 사이클론 R-1820-04 엔진, 2엽식 프로펠러를 채용하고 있었으며, 해당 금속 프레임의 날개와, 접이식 랜딩기어의 수납 및 개방 문제로 몇 달만에 도입이 취소되었으며, 이후 해당 단점을 보완한 "호크 III"로 전량 개수되었다.
5.2. 호크 III[편집]
"호크 III"는 기존의 BF2C-1의 개량형으로, 미 해군 항공대에서 운용되던 BF2C-1의 문제점을 개량하한 모델로, 기존의 R-1820-04 엔진을 더 강력한 R-1820-84 엔진으로 교체하여 최고속력을 50km/h 더 늘렸으며, 지상 공격을 위해 폭탄창을 개수하여 500파운드 폭탄을 추가 장비할 수 있도록 하였고, 기존의 무거운 금속제 프레임 대신 목재 프레임과 효율적인 클라크 Y 방식의 익면 구조를 채택하여 양력과 상승률을 증가시켰다.
커티스 사에서 해외에 판매한 BF2C는 전부 이 개수형인 호크 III이며, 중일전쟁 당시 국민당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구국의 영웅으로 대우받는 항공기이기도 하다.
6. 파생형[편집]
6.1. 미국[편집]
6.1.1. 현대화 개수형[편집]
6.1.1.1. 호크 IV[편집]
"호크 IV"는 기존 호크 III의 현대화 개수형으로, 원래 개방형이었던 조종석을 여압식 캐노피를 장착하여 고고도에서의 전투 능률을 올리려 꾀하였고, 엔진도 더욱 강력한 라이트제 R-1820-F56 엔진으로 교체하여 성능을 극대화한 개수형이라 할 수 있다.
커티스 사에서는 아르헨티나에 이를 어필하였으나, 호크 III 및 호크 II를 운용하고 있었던 아르헨티나 공군은 이에 대해 시큰둥하였으며, 결국 해당 시제기는 1기만 만들어져 아르헨티나군에 판매되었다.
7. 실전[편집]
7.1. 대전기[편집]
7.1.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7.1.1.1. 중일전쟁[편집]
중일전쟁 초기 중화민국 공군의 주력 항공기로 사용되었으며, 1938년 소련-중국 불가침조약 체결 이후 소련기가 도입되면서 점차 퇴역하였다.
중일전쟁 중, 호크 III가 활약한 대표적인 전장은 난징과 상하이가 있다.
특히, 상하이 전투 이후 벌어졌던 난징 전투에서도 가오지항이 이끄는 호크 III 편대가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각지에서 활약하였다.
7.1.1.1.1. 상하이 전투[편집]
1937년 8월 14일에 있었던 제2차 상하이 사변 당시, 중화민국 공군 산하 제4대대 21중대, 22중대, 23중대 소속의 호크 III들이 다수 동원되어 일본 공군의 G3M 폭격기 편대를 상대로 요격 임무에 나섰다.
특히, 대대장이었던 가오즈항과, 그의 전용기체, "IV-1번기"의 활약이 유명한데, 가오즈항과 함께 출격한 4대대의 항공기들은 닛타 신이치 (新田 慎一) 소령의 지휘 하에 대만에서 출격해 도양폭격을 해 온 G3M 9기를 발견하고 교전을 벌였으며 이 교전에서 가오즈항은 1기를 격추, 1기를 반파시켰다.
다음날인 8월 15일에는 항공모함 카가에서 발진한 89식 함상공격기 대대와 교전을 벌여 1기를 격추시키고 두번째 기체를 공격하던 중 총탄에 피격당해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분전하여 적기들을 모두 퇴각시키는 대활약을 했다.
7.1.2. 프랑스-태국 전쟁[편집]
프랑스-태국 전쟁 당시 타이 왕립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었다.
당시 수적 열세에 몰려있던 프랑스 공군 측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야간 기습 폭격을 감행하였는데, 이를 막기 위해 타이 공군 측에서는 호크 III들이 투입되었으며, 동년 11월 21일에는 프랑스 공군과 타이 공군과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새벽 시간, M.S.406 5기가 태국 나콘파놈을 선제 타격했으며, 태국군은 이에 대응하여 호크 III 2기와 콜세어 1기가 파견되었어 전투를 치렀으며, 그 결과 M.S.406 1기가 격추되었다.
1941년 1월에야 전쟁이 선포되었고, 같은 달 일본의 중재로 휴전이 이루어졌다. 태국군의 주장에 따르면 호크 III 3기를 잃은 데 반하여, 프랑스 항공기 5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8. 사용 국가[편집]
8.1. 아메리카[편집]
8.1.1. 북아메리카[편집]
8.1.1.1. 미국[편집]
원 개발국이자, 사용국으로, 1934년 USS 레인저등의 신형 항공모함에 탑재할 전투기로 BF2C-1 27기를 채택하였으나, 금속 프레임의 날개 및 느린 랜딩기어의 개폐가 문제가 되어 몇 달만에 전량 반품처리하였다.
8.1.2. 남아메리카[편집]
8.1.2.1. 아르헨티나[편집]
1930년대, 커티스 사에서는 미 해군 항공대에서 반품처리된 호크 III의 재고처리를 위해 아르헨티나 공군에 접촉하여 도합 10기의 호크 III와 프로토타입이었던 호크 IV 1기를 판매하였다.
아르헨티나에 판매된 호크 III들은 같은 시기 판매된 타사의 미제 항공기와 비교하여 크게 나은 점이 없었기에 후방 병력으로만 편제되었으며, 이후 1947년 9월 11일 전량 퇴역하였다고 한다.
8.2. 아시아[편집]
8.2.1. 동아시아[편집]
8.2.1.1. 중화민국[편집]
최대 사용국으로, 미국으로부터 12기를 구매하여 운용하다 커티스-라이트 사의 라이센스를 받아 추가로 90기를 OEM 방식으로 생산한 뒤, 도합 102기를 중일전쟁 초기 주력 항공기로 이용하였다.
중일전쟁 당시 다수의 개체가 일본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국공내전 시기까지도 몇몇 기체가 살아남아 국부천대 이후 타이완 섬에 몇몇 기체가 같이 실려갔으며, 현재는 항일역사박물관에 중화민국 공군 에이스 가오즈항이 사용하던 1기가 정태보존되어 의장용으로 운용 중에 있다.[3]
2015년 항일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도 해당 호크 III가 등장하여 잠시 화제를 부르기도 하였다.
8.2.2. 동남아시아[편집]
8.2.2.1. 태국[편집]
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개당 63,900바트를 지불하여 생산 라이센스와 총 12기의 BF2C를 도입하여 "10식 전투기"라는 이름으로 제식화 해, 50기를 자국 내에서 제작한 뒤 도합 60기를 훈련용으로 배치해 사용했으며, 1949년에 전 기체 모두 퇴역하였다. 현재는 방콕 왕립 태국 공군 박물관에 1기가 전시되어 있다.
9. 미디어[편집]
9.1. 영화/드라마[편집]
9.1.1. 8.14 항공전[편집]
2015년작 중국 대하영화 "8.14 항공전" (원제: 八一四空戰)에서 가오즈항과 IV-1번기의 활약을 다뤘다.
비단 IV-1번기 뿐만 아니라, 가오즈항과 같이 출격한 22중대의 유이친의 "2204번기"도 96식 지상공격기의 시선을 분산시켜 가오즈항이 96식을 격추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대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