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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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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게이머로서의 행보[편집]
자세한 내용은 서지훈/프로게이머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팀 GO 시절부터 활동한 올드 게이머 중 한 명. 참고로 클랜 사이트답지 않은 광범위한 규모 확장을 통해 와이고수로까지 서비스를 확대한 YG클랜의 일원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김정민과 강민의 추천으로 GO에 입단하였다.[8]
챌린지리그 우승을 통해 스타리그 시드를 얻은 최초의 게이머이기도 하다.[9] 그렇게 처음 진출한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는 8강에서 이윤열과 조용호에게 각각 패하여 1승 2패로 탈락하지만, 두 번째로 진출한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며 돌아온 황제 임요환을 4강에서 3: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 결승 상대인 홍진호를 상대로 3:2로 역전승하여 우승을 거뒀고, 동시에 홍진호의 준우승 경력을 늘리게 된다. 이 때 우승 소감으로 현장에 와 계시던 어머니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외친 장면은 명장면. 또다시 맞이한 준우승에 상당히 짜증내던 홍진호의 팬들마저 뭉클하게 만들었다.[10][11] 더불어 그의 팬들은 이후 그가 그 어떤 삽질을 하더라도 그 장면을 돌려보며 그에 대한 빠심을 다시 불타게 했다고...
이 시절 보여줬던 레이스 산개는 게임의 백미. 그 후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둘다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특히 팀리그에서는 테란 최초 올킬러가 되었고 올킬은 2번씩이나 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당시 좋은 활약을 보였던 테란 플레이어인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과 함께 4대 테란으로 불리우기도 했는데, 당시 프로게이머들은 모든 면이 상향 평준화 된 요즘과는 달리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어 개개인의 특징이 있었는데, 마이크로 컨트롤과 전략으로 대표되는 임요환, 탄탄한 기본기와 운영에 강점이 있는 이윤열, 그리고 무시무시한 물량과 두뇌싸움에서 우세를 보인 최연성과는 다르게 서지훈은 바이오닉과 메카닉, 물량과 컨트롤, 운영, 전략에서 특별한 약점 없이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정석 플레이에 능한, 밸런스가 잘 잡힌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면에 평균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바꿔 말해 특이한 강점도 없단 말도 되듯 다른 선수들을 압도할 강점이 부족했으며, 비정석적인 플레이에 약했다. 다만 안정적인 스타일 덕에 좀 부족한 프로게이머들을 너무 당연하게 이기고 다녔기 때문에 '양민학살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 이미지는 유일하게 챌린지리그 1위를 2번 차지한 것과 공무원 수준으로 8강을 찍는 것도 한 몫 했는데, 서지훈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스타리그 승률 1위였다.[12]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뒤에도 8강은 기본으로 찍고 가끔 4강에도 올라가기도 했지만 그 8강, 4강에서 기세등등한 선수들과 만나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8강, 4강에서 서지훈을 꺾은 선수는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으니 개인리그의 중간보스격 존재랄까.[13][14]
이는 같은 팀 소속이었던 정석테란 김정민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지훈은 김정민의 탄탄한 정석플레이를 기초로 물량과 컨트롤을 강화한 업그레이드판 김정민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15] . 지금에 와서 보자면 나 할 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테란의 마인드를 보여준 테란. 퍼펙트 테란이라는 별명 역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본인은 양산형 테란이 아니지만, 양산형 테란의 롤모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테란이라는 종족 자체의 강함을 가장 잘 보여준 선수. 타 종족으로 꼽자면 시기가 차이나긴 하지만 김준영 같은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사실 약점이 없다는 그 또한 정말 못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바이오닉 운용 시의 사이언스 베슬 관리.[16] 기본적으로 마린이나 벌처, 레이스 컨트롤은 그렇게 안정적일 수가 없을 뿐더러 때로는 임요환, 이윤열 못지않게 화려하고 최연성보다 압도적이었지만, 정작 베슬은 그 관리 잘한다는 임이최와는 다르게 스커지 쓰듯이 조공하는 장면을 잊을 만하면 노출했다.[17]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 홍진호와의 5전제는 전체적으로 명승부로 유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베슬을 잘 잃는 모습으로 팬들의 혈압을 올렸으며[18] , 전성기 끝물인 2005 시즌까지도 딱히 교정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는 SK테란으로 하이브 저그를 상대하는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형화된 다수 탱크 한타만 고집하는 결과로 나타났으며 바이오닉 테란의 한방이 더 이상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마조작 시대에 들어서는 저그전의 몰락을 겪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저그전이 몰락하게 되면서 서지훈은 개인리그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경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를 마지막으로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 진출하기까지 5번의 대회에 나가지 못했고, MSL의 경우 프링글스 MSL 시즌2부터 곰TV MSL 시즌4까지 꾸준히 본선에 진출했지만 이마저도 사실 저그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은 16강 첫 경기에서 서경종을 꺾은 프링글스 MSL 시즌2가 유일하다.
이겨도 져도 변하지 않는 시크한 표정과 수려한 외모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한때 디씨에 우후죽순 인물갤이 난립하기 전에도 이윤열, 박정석, 임요환, 홍진호와 더불어 개인 갤러리를 갖고 있던 몇 안되는 게이머.
당시 소속팀이였던 GO가 가진 커리어에 비해 창단 작업이 늦어지게 되어 강민, 박태민, 전상욱 등과 같은 주력 선수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나게 되나 서지훈만은 꿋꿋하게 떠나지 않는 대인배스런 행보에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도 했다. 하지만 결국 2006년 4월, 팀이 CJ 엔투스로 창단되어 그간의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 조규남 감독은 팀내 최고 연봉[19] 자리를 주며 서지훈의 기다림에 보답했다. 게다가 은퇴 후에는 CJ 정직원 채용까지 되었으니 잘 됐다.
이후 기량이 하락, 2009년 3월 9일 공군 ACE에 입대한다[20] . 그리고 2009년 5월 31일, 황혼의 그림자에서 펼쳐진 고강민과의 경기에서 승리해 입대 후 첫 승과 동시에 개인전 360일만에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이뤘다. 이 승리는 참고로, 한해 전 6월 3일에 한때 팀동료이기도 했던 이재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후 11개월만에 거둔 프로리그 승리였다. 쿨하게 GG를 치던 예전 모습과는 달리, 저그에게 3가스를 주고 시작하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버텨 승리를 따냈다. 다만, 경기 자체는 고강민의 삽질이 빚어낸 일이다. 대체로 서지훈은 열심히(...)는 했다는 평. 고강민의 체제 자체가 히럴(...)이라 경기 양상이 심히 올드스러운 점도 한몫했다. 그리고 6월 8일 eSTRO전에서 김성대를 상대로 승리를 하여 근 1년만에 연승을 이어갔으나, 6월 14일 神상문에게 패배하여 연승이 끊겼다. 그리고 이 경기 이후로는 거의 제대로 출전 기회도 잡지 못했다.[21]
전역이 임박한 상황에서 팬들은 서지훈이 선수 생활을 지속할지 코치로 전향할지 아니면 해설로 전향할지 궁금해하며 서지훈의 진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2011년 4월 8일자로 전역했으며, 10일 팬미팅 자리에서 진로를 밝힐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서지훈은 자기 몫을 잘 해낼 거라고 믿는 팬들이 많았다. 서지훈이 입담이 좋은 게이머로 평가받았기에 해설자로 전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팬들도 있었다.
후에 알려진 바로는 공군 ACE 시절에 손목 부상 때문에 자주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2011년 4월 10일, 하이트 엔투스 팬미팅 현장에 나타나 친정 복귀를 선언하였다. 공군 ACE 복무 막판에 좋은 경기력을 보였던데다 선수생활의 의지도 강한 듯하니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의 선수생활 지속만으로도 올드팬들은 대환호를 하였다.
일단은 하이트 엔투스에 합류하였고, 일단 4월 프로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