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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덤프버전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장편 연출 작품
,(TV영화 제외),





쉰들러 리스트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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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I 선정 100대 영화 (2007년)
파일:미국영화연구소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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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시민 케인
2위대부
3위카사블랑카
4위레이징 불
5위사랑은 비를 타고
6위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7위아라비아의 로렌스
8위쉰들러 리스트
9위현기증
10위오즈의 마법사
11위시티 라이트
12위수색자
13위스타워즈
14위싸이코
15위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6위선셋 대로
17위졸업
18위제너럴
19위워터프론트
20위멋진 인생
21위차이나타운
22위뜨거운 것이 좋아
23위분노의 포도
24위E.T.
25위앵무새 죽이기
26위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27위하이 눈
28위이브의 모든 것
29위이중 배상
30위지옥의 묵시록
31위몰타의 매
32위대부 2
33위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34위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35위애니 홀
36위콰이 강의 다리
37위우리 생애 최고의 해
38위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39위닥터 스트레인지러브
40위사운드 오브 뮤직
41위킹콩
42위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43위미드나잇 카우보이
44위필라델피아 스토리
45위셰인
46위어느 날 밤에 생긴 일
47위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48위이창
49위인톨러런스
50위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51위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52위택시 드라이버
53위디어 헌터
54위M.A.S.H.
55위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56위죠스
57위록키
58위황금광 시대
59위내슈빌
60위인 더 수프
61위설리반의 여행
62위청춘낙서
63위카바레
64위네트워크
65위아프리카의 여왕
66위레이더스
67위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68위용서받지 못한 자
69위투씨
70위시계태엽 오렌지
71위라이언 일병 구하기
72위쇼생크 탈출
73위내일을 향해 쏴라
74위양들의 침묵
75위밤의 열기 속에서
76위포레스트 검프
77위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78위모던 타임즈
79위와일드 번치
80위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81위스파르타쿠스
82위선라이즈
83위타이타닉
84위이지 라이더
85위오페라의 밤
86위플래툰
87위12인의 성난 사람들
88위베이비 길들이기
89위식스 센스
90위스윙 타임
91위소피의 선택
92위좋은 친구들
93위프렌치 커넥션
94위펄프 픽션
95위마지막 영화관
96위똑바로 살아라
97위블레이드 러너
98위양키 두들 댄디
99위토이 스토리
100위벤허
같이 보기: 영화, 사랑 영화, 뮤지컬 영화, 영감을 주는 영화, 배우, 영화 음악, 명대사




AFI 선정 100대 영감을 주는 영화
파일:미국영화연구소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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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미국영화연구소는 역대 미국 영화 중 가장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또 그들의 정신을 고양시킨 100개의 영화를 선정했다.
1위멋진 인생
2위앵무새 죽이기
3위쉰들러 리스트
4위록키
5위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6위E.T.
7위분노의 포도
8위브레이킹 어웨이
9위34번가의 기적
10위라이언 일병 구하기
11위우리 생애 최고의 해
12위아폴로 13
13위후지어
14위콰이 강의 다리
15위미라클 워커
16위노마 레이
17위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8위안네의 일기
19위필사의 도전
20위필라델피아
21위밤의 열기 속으로
22위야구왕 루 게릭
23위쇼생크 탈출
24위녹원의 천사
25위설리반의 여행
26위오즈의 마법사
27위하이 눈
28위꿈의 구장
29위간디
30위아라비아의 로렌스
31위영광의 깃발
32위카사블랑카
33위시티 라이트
34위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35위초대받지 않은 손님
36위워터프론트
37위포레스트 검프
38위피노키오
39위스타워즈
40위미니버 부인
41위사운드 오브 뮤직
42위12인의 성난 사람들
43위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44위스파르타쿠스
45위황금 연못
46위들백합
47위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48위아프리카의 여왕
49위게리 쿠퍼의 재회
50위씨비스킷
51위컬러 퍼플
52위죽은 시인의 사회
53위셰인
54위루디 이야기
55위흑과 백
56위벤허
57위요크 상사
58위미지와의 조우
59위늑대와 춤을
60위킬링필드
61위사운더
62위브레이브 하트
63위레인 맨
64위검은 종마
65위태양속의 건포도
66위실크우드
67위지구 최후의 날
68위사관과 신사
69위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70위광부의 딸
71위폭력 탈옥
72위어두운 승리
73위에린 브로코비치
74위강가딘
75위심판
76위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
77위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78위델마와 루이스
79위십계
80위꼬마 돼지 베이브
81위소년의 거리
82위지붕 위의 바이올린
83위디즈씨 도시에 가다 :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84위형사 서피코
85위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86위스탠드 업
87위워킹 걸
88위성조기의 행진
89위해롤드와 모드
90위호텔 르완다
91위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92위페임
93위뷰티풀 마인드
94위굿바이 마이 라이프
95위마음의 고향
96위위대한 승부
97위마담 퀴리
98위베스트 키드
99위레이
100위불의 전차
2006년 발표 / 출처
같이 보기: 영화, 사랑 영화, 뮤지컬 영화, 영감을 주는 영화, 배우, 영화 음악,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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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BBC는 62명의 국제 영화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사상 최고의 미국 영화 100편을 선정했다.
1위시민 케인
2위대부
3위현기증
4위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5위수색자
6위선라이즈
7위사랑은 비를 타고
8위싸이코
9위카사블랑카
10위대부 2
11위위대한 앰버슨가
12위차이나타운
13위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14위내쉬빌
15위우리 생애 최고의 해
16위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17위황금광 시대
18위시티 라이트
19위택시 드라이버
20위좋은 친구들
21위멀홀랜드 드라이브
22위탐욕
23위애니 홀
24위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25위똑바로 살아라
26위양 도살자
27위배리 린든
28위펄프 픽션
29위레이징 불
30위뜨거운 것이 좋아
31위영향 아래 있는 여자
32위레이디 이브
33위컨버세이션
34위오즈의 마법사
35위이중 배상
36위스타워즈
37위슬픔은 그대 가슴에
38위죠스
39위국가의 탄생
40위오후의 올가미
41위리오 브라보
42위닥터 스트레인지러브
43위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44위셜록 주니어
45위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46위멋진 인생
47위마니
48위젊은이의 양지
49위천국의 나날들
50위그의 연인 프라이데이
51위악의 손길
52위와일드 번치
53위그레이 가든스
54위선셋 대로
55위졸업
56위백 투 더 퓨처
57위범죄와 비행
58위모퉁이 가게
59위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60위블루 벨벳
61위아이즈 와이드 셧
62위샤이닝
63위사랑의 행로
64위쟈니 기타
65위필사의 도전
66위레드 리버
67위모던 타임즈
68위오명
69위코야니스카시
70위밴드 웨곤
71위사랑의 블랙홀
72위상하이 제스처
73위네트워크
74위포레스트 검프
75위미지와의 조우
76위제국의 역습
77위역마차
78위쉰들러 리스트
79위트리 오브 라이프
80위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
81위델마와 루이스
82위레이더스
83위베이비 길들이기
84위서바이벌 게임
85위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86위라이온 킹
87위이터널 선샤인
88위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89위고독한 영혼
90위지옥의 묵시록
91위E.T.
92위사냥꾼의 밤
93위비열한 거리
94위25시
95위식은 죽 먹기
96위다크 나이트
97위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98위천국의 문
99위노예 12년
100위비장의 술수
같이 보기: 미국 영화, 21세기 영화, 코미디 영화, 비영어권 영화, 21세기 TV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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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없음, 알파벳 순)
아귀레, 신의 분노아푸 트릴로지이혼 소동베이비 페이스
국외자들배리 린든베를린 알렉산더 광장블레이드 러너
보니 앤 클라이드브라질프랑켄슈타인의 신부춘희
카사블랑카샤레이드천국의 아이들차이나타운
중경삼림시민 케인시티 라이트시티 오브 갓
가까이서 본 기차랑주씨의 범죄군중아메리카의 밤
십계우회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공작 부인
이중 배상닥터 스트레인지러브취권2E.T.
8과 1/2400번의 구타패왕별희니모를 찾아서
플라이대부 1편, 2편석양의 무법자좋은 친구들
하드 데이즈 나이트그의 연인 프라이데이살다고독한 영혼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것이 선물멋진 인생칸다하르
친절한 마음과 화관킹콩레이디 이브최후의 명령
아라비아의 로렌스레올로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카메라를 든 사나이
맨츄리안 켄디데이트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메트로폴리스밀러스 크로싱
내 미국 삼촌무쉐뜨나야칸니노치카
오명올림피아워터프론트옛날 옛적 서부에서
과거로부터페르소나피노키오싸이코
펄프 픽션카이로의 붉은 장미갈증레이징 불
쉰들러 리스트수색자셜록 주니어모퉁이 가게
사랑은 비를 타고더 싱잉 디텍티브한 여름밤의 미소뜨거운 것이 좋아
스타워즈한 여름밤의 미소선라이즈성공의 달콤한 향기
스윙 타임택시 드라이버동경이야기협녀
우게쓰 이야기그녀에게율리시즈의 시선움베르토 디
용서받지 못한 자화이트 히트베를린 천사의 시요짐보
출처




파일: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jpg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000,#fff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최우수 작품상
제65회
(1993년)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용서받지 못한 자쉰들러 리스트포레스트 검프

역대 골든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작품상 - 드라마
제50회
(1993년)
제51회
(1994년)
제52회
(1995년)
여인의 향기쉰들러 리스트포레스트 검프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파일:japan-academy-prize.png
최우수 외국작품상
제17회
(1994년)
제18회
(1995년)
제19회
(1996년)
쥬라기 공원쉰들러 리스트쇼생크 탈출


쉰들러 리스트 (1993)
Schindler's List
파일:쉰들러 리스트.jpg
▼ 25주년 재개봉 포스터
파일:25th anniversary poster.jpg
장르드라마, 전쟁
원작토머스 케닐리 - 소설 《쉰들러의 방주》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출연리암 니슨
벤 킹슬리
레이프 파인스
캐롤라인 구덜
조나단 샤갈
엠베스 데이비츠
각본스티븐 제일리언
제작어빙 글로빈
캐슬린 케네디
브랑코 러스틱[1]
제럴드 R. 몰렌
로버트 레이몬드
류 리윈
스티븐 스필버그
촬영야누스 카민스키
편집마이클 칸
음악존 윌리엄스
제공사파일:미국 국기.svg 유니버설 픽처스
제작사파일:미국 국기.svg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수입사파일:대한민국 국기.svg UIP 코리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UPI 코리아[재개봉]
배급사파일:미국 국기.svg 유니버설 픽처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UIP 코리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UPI 코리아[재개봉]
개봉일파일:미국 국기.svg 1993년 12월 15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년 3월 5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년 1월 24일[재개봉]
상영 시간194분
제작비2,200만 달러
월드 박스오피스$321,306,305
북미 박스오피스$96,065,768
서울 관객수847,259명
국내 등급파일:영등위_15세이상_2021.svg 15세 이상 관람가
북미 등급파일:R등급 로고.svg

1. 개요
2. 예고편
3. 제작기
3.1. 원작
3.2. 판권 구매부터 제작까지
3.3. 제작 과정
4. 등장인물
5. 평가
5.1. 유대인의 피해의식?
6. 흥행
7. 수상
8. 논란
9. 기타



1. 개요[편집]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 리암 니슨 주연의 전쟁 드라마 영화로 1993년에 개봉했다.

제목 "쉰들러 리스트"는 주인공 쉰들러가 유대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작성했다는 명단 아홉 개에서 따왔으며, 자기 이익을 위해 유대인들을 고용한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1,100여 명[2]의 유대인들을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2. 예고편[편집]



25주년 예고편

재개봉 30초 예고편

재개봉 메인 예고편


3. 제작기[편집]



3.1. 원작[편집]


원작은 호주 작가 토머스 케닐리(Thomas Keneally)가 쉰들러의 일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이다.[3]

로스엔젤레스 베벌리힐스에서 가죽 제품 사업을 하던 리어폴드 페퍼버그(Leopold Pfefferberg)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도록 소재를 제공했다. 페퍼버그는 쉰들러가 구해낸 유대인들을 통칭하는 '쉰들러 유대인(Schindlerjuden)' 중 한 사람으로, 쉰들러의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 그에 대해 알리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1980년에 페퍼버그는 가게에 온 토머스 케닐리에게 쉰들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케닐리는 쉰들러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소설화 작업에 착수했다. 소설은 1982년에 출간했다.

한국에는 영화가 개봉한 1994년경에 영화 제목과 동일한 "쉰들러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해 나왔고, 현재는 모든 판본이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다.[4]


3.2. 판권 구매부터 제작까지[편집]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연히 '쉰들러의 방주'를 읽고 큰 감명을 받는다. 스필버그는 1983년에 바로 유니버설을 통해 판권을 사들여, 리어폴드 패퍼버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당시 언제 영화를 만들 것이냐는 페퍼버그의 질문에 스필버그는 10년 후에 만들겠다고 했는데 영화는 10년 뒤인 1993년에 개봉했다.

스필버그를 중심으로 이 책을 영화로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다. 영화 제작을 위해 여러 사람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스필버그 본인은 감독직에는 아무래도 부담감을 느꼈는지 처음에는 다른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려 했다. 고심 끝에 스필버그는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연출을 맡기려 했으나, 스코세이지는 이탈리아계인 자신보다 유대계 감독이 연출해야 할 프로젝트라며 거절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스필버그가 케이프 피어의 판권을 보유했고, 스코세이지가 쉰들러 리스트의 판권을 보유했는데 서로 바꿨다고 한다.

이후 실제 홀로코스트 피해자 유족인 로만 폴란스키에게 연출을 부탁했지만, 폴란스키는 스필버그와는 달리 본인이 직접 홀로코스트를 겪고 어머니를 잃는 일을 당한 사람이라서[5]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내게는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라며 객관적인 연출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거부했다. 그리고 폴란스키는 후에 '피아니스트'로 자기 버전의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스필버그는 빌리 와일더를 찾아가고, 와일더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원했다. 빌리 와일더 역시 유대계로, 실제로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다 나치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도망쳐왔다. 하지만 와일더는 스필버그에게 직접 메가폰을 잡으라고 독려했다.

이리하여 쉰들러 리스트는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했다. 무엇보다 스필버그가 직접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짓을 저지르는 네오 나치들에 대해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그걸 보고 누군가가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결국 스스로 영화를 만든 것이다.


3.3. 제작 과정[편집]


감독과 배급사 양쪽에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일단 스필버그 본인이 촬영 기간 내내 멘탈이 남아나질 않았다.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6] 그전까지 문서상으로만 홀로코스트를 알던 스필버그는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사건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작중에서 그려지는 온갖 충격적인 광경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그려내 오히려 충격이 더 배가 된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시달려온 유대인으로서의 위치와 정체성 문제가 겹치면서 이성을 유지한 상태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당시에 엑스트라 중 누군가 밤 10시 30분에 칼퇴근해야겠다고 투덜거리자 뛰쳐나와 누가 그랬냐고 불같이 화를 냈을 정도로 히스테릭해지고, 절친한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해서 날마다 나를 좀 즐겁게 해주게! 제발...이라는 식으로 하소연했다고 한다.

스필버그의 아내 케이트 캡쇼[7]와 아이들, 부모까지 촬영장에 함께 있었고 심지어는 랍비까지 한 명 대동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트콤 '사인펠드' 방영분 VHS를 미국에서 폴란드로 수시로 배송했다고 한다.

진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낀 배급사 유니버설은 이 영화를 제작하는 조건으로 딱 한 가지를 내걸었다. 쉰들러 리스트 찍기 전에 쥬라기 공원부터 끝내라. 사장은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면 쥬라기 공원은 못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1992년 8월 쥬라기 공원의 촬영을 시작해 11월에 촬영을 끝냈고, 임시 편집본은 촬영이 끝난 지 1주 만에 나왔다. 이게 다 끝나고 나서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은 다음 해 3월에 시작되었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상당히 바뀐 것을 보면 선견지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배급사에 문제가 된 또 하나는 바로 흑백 촬영. 컬러 영화가 당연해진 시기에 흑백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희한한 요청이었다. 일단 흑백으로 극장 개봉까지는 받아준 것 같은데, 사장이 돈을 더 벌어볼 생각으로 '영화를 컬러로 찍어 나중에 VHS 발매할 때 컬러 버전도 내보자'는 식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거절하려 했는데, 현장에서 아무도 흑백 영화 촬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고생길이 뻔한 것을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컬러 영화를 찍던 식으로 세트를 만들면 면과 면의 명암차가 크지 않아서 화면이 뭉개진다든지 하는 문제들을 사전에 발견한 제작진은 인위적으로 페인트를 칠해 세트의 명암을 조절하는 등의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 영화는 총 다섯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이다.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유대교 예배, 후반에 나오는 쉰들러 묘소 참배 장면, 그리고 쉰들러가 안식일(토요일) 유대교 예배를 허용할 때 나오는 촛불,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장면인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Girl in the Red Coat, 두 군데에 걸쳐서 등장). 끝내 희생되는 이 소녀는 개봉 후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8]

또한 첫 장면이 컬러로 진행되다 흑백으로 바뀌며 본 내용이 시작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시점이 현재로 바뀌며 다시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기법은 고전적인 기법으로 이미 오래전인 1939년에 오즈의 마법사가 사용한 기법을 반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관객에게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다.

이런 갖가지 고생을 하면서 희한한 흑백 영상을 함께 만들어낸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Janusz Kamiński)[9]는 이후 나온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일한다.

당시 뉴스위크지 보도에 따르면 촬영은 전부 폴란드에서 했다고 하는데 촬영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스필버그를 알아본 폴란드 노인이 촬영 현장에 다가오더니만 스필버그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마구 폭언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나는 히틀러 자식이 싫지만, 유대인은 더 싫어. 왜냐면 네놈들은 히틀러는 악마, 유대인은 불쌍한 버러지. 이 따위로 떠벌리는 영화나 찍고 자빠졌잖아? 그렇게 너희는 언제나 자기들 유대인만 가엾다고 생각한다고! 당장 나가! 구역질 나는 놈들아!"

이 말에 스필버그는 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주연 배우 리암 니슨이 화를 내면서 반론했지만 끝내 노인을 억지로 떼어내야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노인도 거들어 스필버그에게 목매달아 죽으라는 손짓까지 하여 스필버그는 창백해져 고민해야 했다.[10][11]


4. 등장인물[편집]


  • 오스카 쉰들러 역 - 리암 니슨 (양지운)
  • 이자크 슈테른 역 - 벤 킹슬리 (이완호)
  • 아몬 괴트 역 - 레이프 파인스 (강구한)
  • 에밀리 쉰들러 역 - 캐롤라인 구덜 (강희선)
  • 리어폴드 페퍼버그[12] 역 - 조나단 샤갈 (김수중)
  • 헬렌 히르시 역 - 엠베스 데이비츠[13] (윤소라)

  • 율리안 셰르너 역 - 안제이 서린 (장승길)
파일:슈츠슈타펠 상급대령.jpg
슈츠슈타펠상급대령으로, 실존 인물이다. 작중에서는 단정하고 신사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역시 유대인은 살아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며, 아무 의미도 없다고 유대인에 대한 혐오심을 가진 인간말종이다. 오스카 쉰들러와는 영화 초반에 레스토랑에서 만나 친분을 쌓으며, 이후에도 쉰들러가 유대인 소녀에게 키스한 죄로 감옥에 들어가자 자신의 권한으로 석방시키는 등, 뒷배를 봐준다.

  • 루트비히 한 역 - 마이클 Z. 호프만 (문영래)
파일:슈츠슈타펠 대령.jpg
슈츠슈타펠의 대령질서경찰 대령으로 실존 인물이다. 중반에 쉰들러를 변호하는 괴트와 대화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와중에 괴트가 돈으로 자신을 꾀어내려는 낌새가 보이자, 무표정을 유지하며 "나를 매수하려는 겐가?"라며 단칼에 거부한다. 이후 율리안 셰르너가 들어오자 자리를 비켜준다.

파일:요제프 1.jpg
실존 인물로 일명 죽음의 천사(Death of Angel)라고 불린 잔혹한 인간이다. 계급은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위. 영화 속에서는 아우슈비츠로 잘못 이송된 유대인 여성들을 골라내기 위해 직접 나타난다. 참고로 배우와 실제 인물의 외모가 꽤 많이 비슷한 편이다.


5.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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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유대인의 피해의식?[편집]


네오나치들이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는 식의 주장을 펼쳤으나 이는 논리가 없다. 홀로코스트휴머니즘, 나치의 폭력을 주제로 영화는 울림을 준다.

실제로 비평가에 따라서는 이 영화는 유대인보다는 나치의 폭력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도 말한다. 영화 안에서 쉰들러는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느꼈다기보다는, 나치에게 사악함을 느꼈을 뿐이라는 것.

실제로 쉰들러는 후반까지 공장의 유대인들과는 그다지 교류를 하지 않고, 나치의 고위층과 더 교류를 한다. 그리고 유대인=피해자=선하다는 식의 묘사는 딱히 없다. 영화는 그보다는 나치가 저지르는 온갖 만행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쉰들러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비정하기까지 한 사업가였다. 특별히 나치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아는 사람들을 죽게 둘 수 없다"는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고자 한 것.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것만 해도 넘치도록 대단한 것이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면서까지 1,100여 명의 사람들을 살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폴란드를 떠나기 직전에는 유대인들에게 옷과 식량을 주는 등 자기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온정을 베풀던 다른 독일인 공장주에게 '자기와 같이 공장을 모라비아로 옮겨서 유대인들을 살려내자'[14]고 설득하다 거절당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이 그나마 양심적이라 자기만 발을 빼는 데서 끝냈으니 망정이지, 쉰들러의 의도를 게슈타포에 밀고하기라도 했으면 쉰들러는 절대로 무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유대인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알고 있었다지만, "외부인"에게 쉰들러가 본의를 드러낸 건 정말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미국 영화들이 유대인에 유리한 것도 사실이고 너무 유대인의 피해만 많이 영화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홀로코스트를 다뤘다고 해서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똑같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라도 나치의 악행을 이 영화만큼 그대로 다룬 작품도 그리 흔하지 않다. 영화로는 피아니스트, 만화로는 정도뿐.

또한,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 뮌헨을 보면 스필버그는 적어도 피해의식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명작 피아니스트와 비교하자면 쉰들러 리스트는 주인공 쉰들러의 행적을 중심에 놓고 그와 대척점에 있는 아몬 괴트를 비롯한 나치의 잔혹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피아니스트는 물론 나치의 잔혹성도 그리긴 했지만 좀 더 전쟁 속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다룬 편이다. 피아니스트에는 나치측 인물뿐 아니라 같은 유대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유대인,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인 유대인 경찰 이츠학을 비롯해 주인공을 이용해 사기 행위를 저지르는 안텍 등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나온다.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학살 증거 인멸을 위해 유대인들을 시켜 소각장에 썩어가는 시신들을 던져 넣는 작업을 하다 반쯤 미쳐서 소리를 지르고 시체 더미에 발터 P38 권총을 난사하는 SS 하사(노르베르트 바이저[15] 분)의 모습이 나온다.(1분 30초 무렵) 이를 두고 죄책감에 미쳐버린 또 한 사람의 피해자를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으나, 해당 인물은 100% 창작으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인 알베르트 후야르(Albert Hujar)를 바탕으로 한 인물이다. 후야르는 정신이 불안정한 사이코패스로, 학살 행위를 매우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자제심을 잃고 아무에게나 총질을 하는 광적인 행동까지 보인 바 있다. 그가 학살을 자행 및 감독한 폴란드의 한 장소는 아예 그의 이름을 따 후요바 언덕(Hujowa górka)로 명명되었다.[16] 실존 모델의 이런 행보를 생각할 때, 해당 장면이 학살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 미쳐 기행을 벌인 것을 묘사한 장면이라기 보다는 그저 학살의 흥분에 미쳐서 날뛰는 장면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휴야르는 쉰들러가 열차에 수용된 유대인들에게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장면에서도 나오는데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다가 쉰들러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서서 먹다가 쉰들러의 제안에 괴트가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라는 명령을 내리자 "어디 불났어요?" 라는 대사를 해서 쉰들러와 괴트가 폭소를 한다.


6. 흥행[편집]


스필버그는 이 영화가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단한 호평 속에서 제작비 대비 10배 수익을 거둬들이며 스필버그에게 마침내 아카데미를 안겨준 영화가 되었다. 그전까지 스필버그를 상업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 낮춰 보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시작으로 스필버그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개봉 첫날 표가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 배급을 맡은 UIP 한국지사에 의하면 쥬라기 공원보다 이 영화가 성공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확실치 않다. 당시 서울 관객 집계에서 쥬라기 공원은 106만명 관객이 관람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847,000명으로 나온다. 전국 관객에서 앞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2000년 초반부터야 전국 관객 집계가 이뤄진 탓에 자세한 전국 관객 집계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는 배급사가 멋대로 국내 관객 수를 부풀리는 것도 허다했으므로 이게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물론 두 작품 다 한국, 월드와이드 모두 크게 흥행한 작품들인 것은 맞다.

극장 개봉 당시, 영화 앞뒤의 나레이션 자막(번역 자막 말고)을 모조리 한국어로 바꿔 넣을 정도로 배급에 공을 많이 들였다. VHS 출시본까지는 이 한국어화가 살아있었지만 TV 방영 시에는 원래의 영어 자막 버전으로 나왔다.


7. 수상[편집]




8. 논란[편집]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쉰들러의 유대인들이 행정 착오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일 자체는 진짜로 있었고, 이들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쉰들러가 협상을 통해 구해냈다. 단, 이들은 처음부터 노동자로 분류되어 아우슈비츠로 갔기에 가스실에 들어간 게 아니라 진짜로 소독 처리를 받고 막사에 수용됐으며, 영화에서처럼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과 교차하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영화에서는 끌려간 쉰들러의 유대인들만 구해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들 외에도 노동 수용소에 있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유대인 150명 정도를 노동자 파견 명목으로 더 구해냈다. 예루살렘의 쉰들러 묘비에 적힌 1,200명은 이때 추가된 유대인까지 합친 인원수다. 그러나 이렇게 추가로 구한 유대인들은 쉰들러의 유대인들보다 영양 상태가 매우 나쁜 탓에, 아우슈비츠에서 쉰들러의 공장으로 오는 동안 열차 안에서 7명이 사망했다.

이전 설명에는 수용소장 아몬 괴트의 최후가 영화에서 "Heil Hitler"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것이 허구라고 서술했으나, 실제로도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17]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아몬 괴트의 처형 영상으로 알려진 동영상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Bloody Tales(2013)에 따르면 이 영상은 루트비히 피셔(Ludwig Fischer)의 처형 영상이라고 한다. 아몬 괴트의 죽음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황금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해당 곡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을 회복한 6일 전쟁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해당 부분을 Halikha LeKesariya로 바꿨다.


9. 기타[편집]





또한 초반 씬에서 쉰들러가 장교들과 '즐거운 방랑자'(Mein Vater war ein Wandersmann)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18], 이 역시 고증 오류다. 실제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가요로, 독일 전통 민요로 종종 오인되다 보니 영화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1] 영화 초반 파티 장면에서 지배인으로 카메오 출연 하며, 이 사람도 홀로코스트 생존자다.[재개봉] A B C [2] 정확히 명단에는 1,098명이 기록되었고 150여 명을 더 구해 1,200여 명이 된다. 이로 인해 쉰들러의 묘비에도 1,200명이라고 적혀 있다.[3] 영화의 제목이 원작 소설과 다른 이유는 방주(Ark)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보니 쉰들러 리스트가 종교 영화로 취급받고, 종교적으로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하여 쉰들러 리스트로 제목을 정하였다고 한다.[4] 가끔씩 인터넷 중고서점에 물량이 풀리기는 한다.[5] 폴란스키는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그가 10살이 되던 해인 1943년, 본인은 유대인 집단 거주구역인 게토의 폐쇄 과정에서 간신히 게토를 빠져나가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으나, 어머니는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살해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전후 살아남아 아들과 상봉했다.[6] 스필버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 유대인이며 16~20명의 친척을 홀로코스트로 잃었다.[7]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의 여주인공이다. 스필버그에게는 두 번째 아내로, 영화 제작이 끝나자마자 결혼하여 현재까지 같이 살고 있다.[8] 이 소녀를 연기한 배우는 지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구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9]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폴란드계 미국인.[10] 위 폴란드 노인의 반유대주의적 폭언은 저 사람이 네오 나치여서가 아니라 좀 복잡한 사연이 있다. 반유대주의는 원래 독일뿐만 아니라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발트 3국 등 동유럽에서도 팽배했는데, 그 이유는 1차 대전의 패전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린 나치 독일과는 좀 다른 이유였다. 수백년 전 동유럽을 지배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 정권을 장악한 폴란드인 귀족들은 독일인유대인 상인들을 들여와 경제권을 넘겨주었고, 자국 농민들이 부르주아로 성장하지 못하게끔 막았다. 반면 연방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폴란드인우크라이나인 농노들은 이들 폴란드 귀족과 독일, 유대 상인들의 밑에서 오랜 기간 착취당해야 했다. 이때 들어온 유대인들은 농노제가 없어진 이후에도, 그리고 나치가 쳐들어오기 직전까지도 폴란드 사회의 상류층에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 그 중에서도 서민들은 자국을 갈라먹고 식민 지배하면서 학살을 일삼은 독일(+러시아)뿐만 아니라 연방 시절에 폴란드 귀족에 빌붙은 유대인들도 싫어한다. 거기다 나치 독일에게 유대인만 학살당한 게 아님에도 유대인 홀로코스트만 유명하니, 저 노인처럼 히틀러의 학살에서 유대인만 강조되는 것을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11] 물론 저 노인이 스필버그에게 품은 불만처럼 독일의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학살 또한 유대인 학살과 동등하게 재조명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서방 연합군과 소련의 공적에 가려진, 자유 폴란드군 및 기타 레지스탕스들이 바르샤바리비우 등지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끈덕지게 독일에 영웅적으로 항전한 기록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짚고 넘어갈 점은 동시에 역사적인 반유대주의 때문에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옹호하거나 적극적으로 돕는 이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도 18분 43초~54초에 폴란드인들이 게토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흙덩이를 던지면서 폭언을 퍼붓는 장면이 묘사된다. 하지만 현재 폴란드 정부는 과도한 민족주의와 '독일에 저항한 폴란드' 담론 활성화에 치우쳐 자신들의 유대인 학살을 망각하며, 심지어 일부는 전술한 적대감 때문에 폴란드인 학살을 띄우면서 유대인 학살을 폄훼하기도 한다. 폴란드인 학살, 우크라이나인 학살, 유대인 학살 모두 각각 동등하게 발굴되고 알려져야 하지만, 수백 년간 수많은 민족들이 흩어져 살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집어지고, 중층되고, 얽히고 설킨 동유럽의 상황은 이를 힘들게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치에게 억압받던 폴란드-우크라이나-유대 세 민족은 서로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지워지지 않은 역사적인 적대감과 결합한 생존 본능,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독일 때문에 서로에게, 특히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몹쓸 짓도 많이 했다. 나치 독일이라면 학을 떼는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진 이런 복잡한 반유대주의 정서는 매우 유명하고, 현재까지 전쟁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는 사안이다.[12] 상술했듯이 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저술할 때 작가에게 증언을 해준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폴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게토 초창기에는 암시장에서 쉰들러가 주문한 물건들을 암시장을 통해 구해주는 역할을 했으며, 크라코프 수용소에서는 아몬 괴트의 운전기사이자 정비사로 일했다.[13] 마틸다에 허니 선생으로 나온 배우다.[14] 쉰들러의 대사에 따르면 둘이 힘을 합치면 4천 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만약 그 사람이 쉰들러의 설득에 응해 둘 다 성공했다면, 쉰들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해서 역사에 더 위대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쉰들러가 1100명을 구했으니, 3천 명 가까이 구한 그 공장주가 더 주목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하다.[15] 독일 배우로, 24년 뒤 나치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설정의 대체역사물 게임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연기한다. 또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 마드리갈이라는 기업의 수장으로, 마약 사업에 뒷돈을 댄 사실이 밝혀지자 화장실에서 자살하는 역으로도 출연했다.[16] 후요바(hujowa)는 폴란드어로 남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욕설로, 후야르라는 성씨와 비슷하게 들린 점에서 착안해 붙은 이름이다.[17] 출처: Teege, Jennifer; Sellmair, Nikola (2013). Amon: Mein Großvater hätte mich erschossen. Reinbek bei Hamburg: Rowohlt.[스포일러] 다만 이것을 제작할 당시에도 의식했는지, 쉰들러의 유대인들이 다시 열차에 탑승하는 장면과 함께 지하 가스실로 걸어내려가는 듯한 앳되어 보이는 여성과 노인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이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안도하다가 순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는 평이 많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없다고 판단된 아이와 여성, 노인들은 아우슈비츠 도착 즉시 가스실행이라서다. [18] "팔데리, 팔데라(Valderi, valdera)"라는 후렴구로 유명하다.[19] 의미심장하게도 이 부분은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나온다.("Was ist das? Ist bach?" "Nein, Mozart")[20] 노동 불가능으로 분류되는 어린아이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는 즉시 가스실로 보내져 학살된다. 따로 차출되면(=노동 불가능) 어떤 운명이 기다려지는지는 유대인들도 소문으로나마 알았다고 대화를 통해 묘사된다. 대부분 헛소문이라고 치부했으나 이것이 진짜로 눈 앞에서 최악의 형태로 실현된 것.[21]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과 경악하며 달려오는 엄마들의 모습의 대비 때문에 어린 자녀와 시청하는 부모들은 이 장면을 설명하는데 큰 곤란을 느낀다고 한다. 애초에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다.[22] 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단편 만화로, 정신이 불안정한 어머니의 죽음과 그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을 다룬다. 쥐 단행본에도 전체 내용이 삽입되었다.[23] 쉰들러의 공장의 회계를 담당한 이자크 슈테른은 1969년에 이미 사망해 당시 생존해 있던 이자크 슈테른의 아내 소피아 베켄로트와 극중 이자크 슈테른 역할을 맡은 벤 킹슬리가 참배 장면에 대신 등장한다.[24] 그 해에 피츠버그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여 해당 발언을 하였다.[25] 김길선 기자는 국방과학원 근무 시절에 이러한 시야 넓히기의 일환으로 007 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