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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캘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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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1세
초대
로버트 월폴
조지 2세
초대제2대제3대제4대
로버트 월폴스펜서 컴프턴헨리 펠럼토머스 펠럼홀스
제5대제6대
윌리엄 캐번디시토머스 펠럼홀스
조지 3세
제6대제7대제8대제9대
토머스 펠럼홀스존 스튜어트조지 그렌빌찰스 왓슨웬트워스
제10대제11대제12대제13대
대 윌리엄 피트오거스터스 피츠로이프레더릭 노스찰스 왓슨웬트워스
제14대제15대제16대제17대
윌리엄 페티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소 윌리엄 피트헨리 애딩턴
제18대제19대제20대제21대
소 윌리엄 피트윌리엄 그렌빌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스펜서 퍼시벌
제22대
로버트 젠킨슨
조지 4세
제22대제23대제24대제25대
로버트 젠킨슨조지 캐닝F. J. 로빈슨아서 웰즐리
윌리엄 4세
제25대제26대제27대제28대
아서 웰즐리찰스 그레이윌리엄 램아서 웰즐리
제29대제30대
로버트 필윌리엄 램
빅토리아
제30대제31대제32대제33대
윌리엄 램로버트 필존 러셀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제34대제35대제36대제37대
조지 해밀턴고든헨리 존 템플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헨리 존 템플
제38대제39대제40대제41대
존 러셀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벤저민 디즈레일리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제42대제43대제44대제45대
벤저민 디즈레일리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로버트 개스코인세실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제46대제47대제48대제49대
로버트 개스코인세실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아치볼드 프림로즈로버트 개스코인세실
에드워드 7세
제49대제50대제51대제52대
로버트 개스코인세실아서 밸푸어헨리 캠벨배너먼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조지 5세
제52대제53대제54대제55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앤드루 보너 로스탠리 볼드윈
제56대제57대제58대제59대
램지 맥도널드스탠리 볼드윈램지 맥도널드스탠리 볼드윈
에드워드 8세
제59대
스탠리 볼드윈
조지 6세
제59대제60대제61대제62대
스탠리 볼드윈네빌 체임벌린윈스턴 처칠클레멘트 애틀리
제63대
윈스턴 처칠
엘리자베스 2세
제63대제64대제65대제66대
윈스턴 처칠앤서니 이든해럴드 맥밀런알렉 더글러스흄
제67대제68대제69대제70대
해럴드 윌슨에드워드 히스해럴드 윌슨제임스 캘러헌
제71대제72대제73대제74대
마거릿 대처존 메이저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제75대제76대제77대제78대
데이비드 캐머런테레사 메이보리스 존슨리즈 트러스
찰스 3세
제78대제79대
리즈 트러스리시 수낙




제임스 캘러헌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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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제2대제3대제4대
윌리엄 페티토머스 타운젠드프레더릭 노스조지 뉴전트템플그렌빌
제5대제6대제7대제8대
토머스 타운젠드윌리엄 그렌빌헨리 던다스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
제9대제10대제11대제12대
토머스 펠럼찰스 필립 요크로버트 젠킨슨조지 스펜서
제13대제14대제15대제16대
로버트 젠킨슨리처드 라이더헨리 애딩턴로버트 필
제17대제18대제19대제20대
윌리엄 스터지스 본헨리 페티피츠모리스로버트 필윌리엄 램
제21대제22대제23대제24대
존 폰슨비아서 웰즐리헨리 골번존 러셀
제25대제26대제27대제28대
콘스탄틴 핍스제임스 그레이엄조지 그레이스펜서 호레이쇼 월폴
제29대제30대제31대제32대
헨리 존 템플조지 그레이스펜서 호레이쇼 월폴토머스 소더론에스트코트
제33대제34대제35대제36대
조지 콘월 루이스조지 그레이스펜서 호레이쇼 월폴개손 개손하디
제37대제38대제39대제40대
헨리 브루스로버트 로우R. A. 크로스윌리엄 하코트
제41대제42대제43대제44대
R. A. 크로스휴 칠더스헨리 매튜스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제45대제46대제47대제48대
매튜 화이트 리들리찰스 리치아레터스 아커스더글러스허버트 글래드스턴
제49대제50대제51대제52대
윈스턴 처칠레지널드 맥케나존 시먼허버트 새뮤얼
제53대제54대제55대제56대
조지 케이브에드워드 쇼트윌리엄 브리지먼아서 헨더슨
제57대제58대제59대제60대
윌리엄 조인슨힉스존 로버트 클라인즈허버트 새뮤얼존 길모어
제61대제62대제63대제64대
존 시먼새뮤얼 호어존 앤더슨허버트 모리슨
제65대제66대제67대제68대
도널드 소머벨제임스 처터 에데데이비드 맥스웰 파이프그윌림 로이드 조지
제69대제70대제71대제72대
랩 벌터헨리 브루크프랭크 소스키스로이 젠킨스
제73대제74대제75대제76대
제임스 캘러헌레지널드 머들링로버트 카로이 젠킨스
제77대제78대제79대제80대
멀린 리스윌리엄 화이트로레온 브리탠더글러스 허드
제81대제82대제83대제84대
데이비드 워딩턴케네스 베이커케네스 클라크마이클 하워드
제85대제86대제87대제88대
잭 스트로데이비드 블런켓찰스 클라크존 리드
제89대제90대제91대제92대
재키 스미스앨런 존슨테레사 메이앰버 루드
제93대제94대제95대제96대
사지드 자비드프리티 파텔수엘라 브레이버먼그랜트 섑스
제97대제98대
수엘라 브레이버먼제임스 클레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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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제2대제3대제4대
존 스미스로버트 할리로버트 벤슨윌리엄 윈덤
제5대제6대제7대제8대
리처드 언슬로로버트 월폴제임스 스탠호프존 애이슬래비
제9대제10대제11대제12대
존 프래트로버트 월폴새뮤얼 샌디스헨리 펠럼
제13대제14대제15대제16대
윌리엄 리헨리 빌슨리그조지 리텔턴헨리 빌슨리그
제17대제18대제19대제20대
윌리엄 머리헨리 빌슨리그윌리엄 배링턴프랜시스 데시우드
제21대제22대제23대제24대
조지 그렌빌윌리엄 도데스웰찰스 타운젠드프레더릭 노스
제25대제26대제27대제28대
존 캐번디시소 윌리엄 피트존 캐번디시소 윌리엄 피트
제29대제30대제31대제32대
헨리 애딩턴소 윌리엄 피트에드워드 로헨리 페티피츠모리스
제33대제34대제35대제36대
스펜서 퍼시벌니콜라스 밴시터트F. J. 로빈슨조지 캐닝
제37대제38대제39대제40대
찰스 애버트존 찰스 해리스헨리 골번존 스펜서
제41대제42대제43대제44대
토머스 덴먼로버트 필토머스 스프링 라이스프랜시스 베링
제45대제46대제47대제48대
헨리 골번찰스 우드벤저민 디즈레일리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제49대제50대제51대제52대
조지 콘월 루이스벤저민 디즈레일리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벤저민 디즈레일리
제53대제54대제55대제56대
조지 워드 헌트로버트 로우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스태퍼드 노스코트
제57대제58대제59대제60대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휴 칠더스마이클 힉스 비치윌리엄 하코트
제61대제62대제63대제64대
랜돌프 처칠조지 고셴윌리엄 하코트마이클 힉스 비치
제65대제66대제67대제68대
찰스 리치오스틴 체임벌린허버트 헨리 애스퀴스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제69대제70대제71대제72대
레지널드 맥케나앤드루 보너 로오스틴 체임벌린로버트 혼
제73대제74대제75대제76대
스탠리 볼드윈네빌 체임벌린필립 스노우덴윈스턴 처칠
제77대제78대제79대제80대
필립 스노우덴네빌 체임벌린존 시먼킹슬리 우드
제81대제82대제83대제84대
존 앤더슨휴 달튼스태퍼드 크립스휴 게이츠컬
제85대제86대제87대제88대
랩 벌터해럴드 맥밀런피터 소니크로프트데릭 히스코트어모리
제89대제90대제91대제92대
셀윈 로이드레지널드 모들링제임스 캘러헌로이 젠킨스
제93대제94대제95대제96대
이언 매클라우드앤서니 바버데니스 힐리제프리 하우
제97대제98대제99대제100대
나이젤 로슨존 메이저노먼 라몬트케네스 클라크
제101대제102대제103대제104대
고든 브라운앨리스터 달링조지 오스번필립 해먼드
제105대제106대제107대제108대
사지드 자비드리시 수낙나딤 자하위쿼지 콰텡
제109대
제러미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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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외무부장관 (1782~1968)
초대제2대제3대제4대
찰스 제임스 폭스토머스 로빈슨찰스 제임스 폭스조지 뉴전트템플그렌빌
제5대제6대제7대제8대
프랜시스 오스번윌리엄 그렌빌로버트 젠킨슨더들리 라이더
제9대제10대제11대제12대
헨리 핍스찰스 제임스 폭스찰스 그레이조지 캐닝
제13대제14대제15대제16대
헨리 배스러스트리처드 웰즐리로버트 스튜어트조지 캐닝
제17대제18대제19대제20대
존 워드조지 해밀턴고든헨리 존 템플아서 웰즐리
제21대제22대제23대제24대
헨리 존 템플조지 해밀턴고든헨리 존 템플그렌빌 레베슨고어
제25대제26대제27대제28대
제임스 해리스존 러셀조지 빌리어스제임스 해리스
제29대제30대제31대제32대
존 러셀조지 빌리어스에드워드 스탠리조지 빌리어스
제33대제34대제35대제36대
그렌빌 레베슨고어에드워드 스탠리로버트 개스코인세실그렌빌 레베슨고어
제37대제38대제39대제40대
로버트 개스코인세실아치볼드 프림로드스태퍼드 노스코트로버트 개스코인세실
제41대제42대제43대제44대
아치볼드 프림로즈존 우드하우스로버트 개스코인세실헨리 페티피츠모리스
제45대제46대제47대제48대
에드워드 그레이아서 밸푸어조지 커즌램지 맥도널드
제49대제50대제51대제52대
오스틴 체임벌린아서 헨더슨루처스 아이작스존 시먼
제53대제54대제55대제56대
새뮤얼 호어앤서니 이든에드워드 우드앤서니 이든
제57대제58대제59대제60대
어니스트 베빈허버트 모리슨앤서니 이든해럴드 맥밀런
제61대제62대제63대제64대
셀윈 로이드알렉 더글러스흄랩 벌터패트릭 고든 워커
제65대제66대제67대
마이클 스튜어트조지 브라운마이클 스튜어트
영국 외무·영연방부 장관 (1968~2020)
제67대제68대제69대제70대
마이클 스튜어트알렉 더글러스흄제임스 캘러헌앤서니 크로스랜드
제71대제72대제73대제74대
데이비드 오언피터 캐링턴프랜시스 핌제프리 하우
제75대제76대제77대제78대
존 메이저더글러스 허드맬컴 리프킨드로빈 쿡
제79대제80대제81대제82대
잭 스트로마거릿 베케트데이비드 밀리밴드윌리엄 헤이그
제83대제84대제85대제86대
필립 해먼드보리스 존슨제러미 헌트도미닉 랍
영국 외무·영연방 및 개발부 장관 (2020~현재)
제86대제87대제88대제89대
도미닉 랍리즈 트러스제임스 클레벌리데이비드 캐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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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제2대제3대제4대제2대*
키어 하디아서 핸더슨조지 반스램지 맥도널드아서 핸더슨
제5대제6대제4대*제2대**제7대
윌리엄 애덤슨존 클라인즈램지 맥도널드아서 핸더슨조지 랜스베리
제8대임시제9대임시제10대
클레멘트 애틀리허버트 모리슨휴 게이츠컬조지 브라운해럴드 윌슨
제11대제12대제13대제14대대행
제임스 캘러헌마이클 풋닐 키녹존 스미스마거릿 베케트
제15대제16대대행제17대대행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해리엇 하먼에드 밀리밴드해리엇 하먼
제18대제19대
제러미 코빈키어 스타머
*표시는 대수를 건너뛰어 중임한 횟수를 의미한다.

보수당 대표 · 노동당 대표 · 자유민주당 대표 · 스코틀랜드 국민당 대표




KG PC
파일:제임스 캘러헌 총리.jpg
본명레너드 제임스 캘러헌
Leonard James Callaghan
출생1912년 3월 27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햄프셔포츠머스
사망2005년 3월 26일 (향년 92세)[1][2]
영국 이스트서식스주 링머
재임기간제70대 총리
1976년 4월 5일 ~ 1979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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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카디프의 캘러헌 남작[1]
가터 기사 (Order of the Garter)
부모제임스 캘러헌(1877-1921)
샬럿 캘러헌(1879-1961)
배우자오드리 캘러헌[2]
자녀마가렛 제이[3] 외 2명
학력메이필드 스쿨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1929년)[4]
종교개신교 (침례회)[5]
정당

의원 선수13
의원 대수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상원 재임the Lord Temporal
1987년 11월 5일2005년 3월 26일

[1] Baron Callaghan of Cardiff, 비세습 작위[2] 풀네임은 오드리 엘리자베스 캘러헌, 결혼 전 성은 몰튼, 1938년 결혼, 2005년 사망[3] 풀네임은 마가렛 앤 제이, 결혼 전 성은 캘러헌, 전 주미 영국 대사 피터 제이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1994년 마이클 애들러와 재혼했다. 패딩턴의 남작 작위를 가지고 있고, 현임 로드 템포럴 귀족원 의원이다.[4] 옥스포드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섰다.[5] 아버지는 본래 가톨릭 신자였고, 어머니는 침례회 신자였는데 당시 가톨릭 교회가 다른 교파 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거부하자 아버지는 침례회로 개종하고 침례회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 개요
2. 생애
2.1. 초기
2.2. 각료 활동
2.3. 총리 시기
2.4. 여생
3. 선거이력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국 제70대 총리.

노동당 출신의 정치인. 1976년부터 1979년까지 3년 동안 영국의 총리를 역임했다. 재무장관, 내무장관, 외무장관, 총리를 모두[3] 역임[4]할 정도로 나름 능력자였지만, 정작 총리로는 경제 문제에 발목을 잡혀 단명하고 만다.[5]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1912년 아일랜드 출신의 하급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추억은 무척 가난했다는 것이 전부이다.'라고 본인이 밝힐 만큼 집안 사정은 불우했고, 고등 학교를 졸업하자마자[6] 바로 세관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1931년 노동당에 가입하였으며 2차대전 시기에는 해군으로 참전하여[7] 종전 직후였던 1945년 총선에 카디프에서 하원직에 출마한다.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은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에게 신승을 거두었고, 캘러헌 역시 하원직에 당선되면서 그의 본격적인 정치 인생이 막을 올린다.

2.2. 각료 활동[편집]


세관으로의 경험을 가졌던 덕인지, 1947년 캘러헌은 애틀리 총리에 의하여 교통수송부 장관으로 발탁된다. 오늘날과 같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하얀색으로 표시된 횡단보도를 도입한 것이 교통부 장관으로 캘러헌이 남긴 업적. 이후 잠깐 동안 유럽의회에 영국 대표로 파견되기도 했지만 1951년 애틀리가 실각함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후 윈스턴 처칠 - 앤서니 이든 - 해럴드 맥밀런으로 이어지는 13년 동안의 보수당 집권 시기에 캘러헌은 노동당의 그림자 내각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해럴드 윌슨과 함께 노동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1963년 휴 게이츠컬 당수의 사망으로 인해 열린 1963년 영국 노동당 지도부 선거에 출마했지만 해럴드 윌슨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1964년에 다시 노동당이 집권하고 해럴드 윌슨이 총리직에 오름에 따라 캘러헌에게는 재무부 장관이라는 요직이 주어진다. 이 시기 영국 경제는 높은 실업률, 높은 인플레이션, 높은 무역 적자 등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캘러헌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한편으로 파운드 화의 평가 절하를 단행한다. 그렇지만 평가 절하로 인하여 통화량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예산 위기가 발생하자, 캘러헌은 법인세를 도입하고[8], 소득세유류세를 인상할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조치에 직격탄을 맞은 계층은 바로 노동당의 지지계층이었던 노동자층과 서민층이었다. 이들이 들고 일어난 끝에 결국 정부는 소득세 인상분을 반환할 것을 약속해야만 했다(...)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캘러헌은 윌슨 총리와 협의 하에 적극적인 긴축재정을 실시하는 한편으로, EU에 가입하고자 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긴축재정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대응한데다가, EEC 가입 문제는 샤를 드 골에 의하여 비토당했던 것.[9]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67년에는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유가가 폭등해버린다. 결국 캘러헌은 다시 한 번 평가 절하를 단행했고 이는 엄청난 논란을 야기한다.[10] 결국 평가 절하를 단행한 직후 캘러헌은 재무부 장관에서 사임하고 만다.

사임 직후 내무부 장관으로 재발탁된[11] 캘러헌은 IRA의 무장테러에 대응하여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 파견을 지시한다. 또한 1968년 영국 내에서 인종에 근거한 취업, 교육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내무부 장관으로 캘러헌이 남긴 업적. 하지만 1970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에게 두 석 차이로 패배함에 따라 캘러헌은 내무부 장관에서도 물러나야만 했다. 이후 1974년 다시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둠에 따라 캘러헌은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1975년 영국의 유럽 연합 가입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2.3. 총리 시기[편집]


그러던 중 1976년 해럴드 윌슨 총리가 뜬금없이 사임을 선언해 버린다.[12] 그리고 윌슨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에서 마침내 캘러헌이 영국의 70대 총리로 선출된다.

하지만 총리가 된 기쁨은 잠시, 캘러헌에게는 해결해야 할 온갖 난제가 쌓여있었다. 영국병이라고 불리던 고 인플레이션, 고 실업률의 상황은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으며 노조들은 기득권화되어서 툭하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반발하는 파업을 일으켜 국가 경제를 마비 상태로 몰아넣었다. 다른 서유럽도 노조의 규모가 엄청나서 노동자들이 마음 먹고 파업을 일으키면 국가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었지만, 그래도 중앙노총이 있고 이들과 협상을 하면 됐다. 반면 영국에는 직종별로 세분화된 노조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앙노총이 없었고, 정부가 개별 노조 하나 하나와 다 협상을 해야 했다. 미션 임파서블

한편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잉글랜드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였으며[13] 웨일스에서도 분리 운동이 일어나 의회에 처음으로 분리주의 정당들이 진출하기에 이른다. 북아일랜드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북아일랜드 분쟁이 격화되어 1970년대 후반 IRA의 테러 등으로 인하여 한 해에만 수백 명의 영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캘러헌 내각은 북아일랜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의 신망을 잃게 된다.

그리고 1978년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 캘러헌의 정치적 생명을 끝장내 버린다. 불황으로 인하여 캘러헌 내각이 임금 동결 또는 소규모의 인상을 지시하자 노조 측에서 반발하여 대규모 파업을 일으킨 것. 이로 인해 1979년 3월에 단 1표 차이로 내각불신임결의가 통과되어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1979년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Labours don't work"라는 성공적인 캠페인을 펼친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참패를 당하였고 캘러헌은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한편 당시 불신임결의안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게 SNP인데 정작 총선에서는 의석들을 거의 잃었다. 당시 정가에 "사상 처음으로 칠면조들이 추수감사절을 앞당기도록 투표했다"는 농담이 돌정도로 어이없는 일이였다.

2.4. 여생[편집]


마가렛 대처에게 총리직을 넘겨준 이후에도 한동안 캘러헌 총리는 의석은 유지하였지만 두드러지는 정치 활동을 보이지는 않았고, 1987년을 끝으로 작위를 수여받아 일대귀족이 됨에 따라 정계에서 은퇴한다.

딸인 페딩턴의 제이 남작 부인 (Baroness Jay of Paddington)[14] 또한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여성장관, 상원 원내대표 등을 지냈다.

이후 2005년 93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타계했다. 캘러헌의 유해는 화장되어 런던에 위치한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의 피터팬 동상의 화단에 뿌려졌다.

3. 선거이력[편집]


연도선거 종류선거구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당선 여부비고
1945영국 하원의원 선거카디프 사우스

17,489 (60.2%)당선(1위)초선
1950카디프 사우스이스트26,254 (51.8%)재선
195128,112 (54.35%)3선
195525,712 (53.36%)4선
195926,915 (50.80%)5선
196430,129 (57.48%)6선
196629,313 (56.80%)7선
197026,226 (51.90%)8선
1974.220,641 (49.0%)9선
1974.1021,047 (52.0%)10선
197923,871 (59.3%)11선
1983카디프 사우스이스트-페너스17,448 (41.3%)12선


4. 여담[편집]


  • 거의 유일하게 엘리자베스 2세에게 질책을 당한 총리이다. 캘러헌 총리가 1978년에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좋은 사회주의자라며 런던에 초대한 것. 엘리자베스 2세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에게 차우셰스쿠의 기행을 낱낱이 전해듣고 철저히 대비했으며, 그럼에도 차우셰스쿠가 자신과 악수하자마자 여왕 자신의 면전에서 손을 소독하거나 숙소에서 좀도둑질을 하는 등의 외교적 결례들을 저질러놓고 태연히 루마니아로 귀국하자, 캘러헌과 오언 외무장관을 호출해서 "어떻게 초대해도 저런 인간을 초대할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캘러헌이 알았다면야 당연히 초대 안했겠지만 , 즉위 직후부터 가급적이면 총리와 내각의 정책에 대해 언급을 사양하며 정치적 행보를 최소화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이처럼 총리에게 분노한 사례는 이때가 거의 유일했다.

  • 역대 영국 총리 중 93세에 가까운 나이로 가장 장수한 총리이기도 한다. 바로 아래 나오는 알렉 더글러스흄(92세) 를 넘어 장수한 것.

  • 더 크라운에서 알렉 더글러스흄과 함께 출연이 없는 총리중 한명이다. 그나마 흄은 시즌 3 1화에서 조금이라도 언급되는데 캘러헌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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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2년 364일[2] 역대 영국 총리 중 가장 장수한 총리이다.[3] 이 네 자리는 영국 정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로 여겨진다. 아예 이 네 자리만을 따로 묶어 Great Offices of State라고 부를 정도.[4] 이 사례는 캘러헌 본인이 지금까지 유일하다.[5] 심지어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문제 그거 다 내 탓임 ㅇㅇ 내가 지난 200년 동안 최악의 총리로 꼽혀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듯?'이라며 셀프디스를 시전하기도(...)[6] 옥스퍼드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집이 학비를 댈 형편이 못되어 입학을 포기했다.[7] 역대 영국 총리 가운데 해군 사병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캘러헌이 유일하다고 한다. 나중에 소위로 승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훈련을 받다가 결핵에 걸려서 개고생을 했다고 전해진다.[8] 그 전까진 기업들도 개인 납세자에게 부과되는 것과 동일한 세율로 이익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 받았다.[9] 드 골은 영국을 미국의 하수인, 트로이 목마 정도로 여기고 있었고(...) 그래서 영국이 EEC에 가입하는 것을 굉장히 꺼렸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프랑스가 브렉시트하지 말라고 빌고 있는 판국[10] 특히나 캘러헌이 평가 절하 직전에 '이번엔 진짜로 평가 절하 없어요'라고 언론에다가 말해놓고는 이를 뒤집은 거여서 문제가 더더욱 커졌다.[11] 정확히 말하자면 재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이 서로 자리를 스위칭했다.[12] 공식적인 이유로는 '60세 때 은퇴하리라 마음먹고 있었고 정신적으로 지쳤기 때문이다'이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적다. 세간에서는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경제 문제에 질려서 탈주해버린 거 아닐까'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치매 징후를 받은 것이 원인이라고도 한다. 더 크라운에서도 여왕과 접견 때 치매 때문에 사임하는 것으로 나온다.[13] 스코틀랜드 입장에서는 이 시기 막 북해에서 채굴되기 시작한 유전이 자신들보다도 잉글랜드를 먹여살리는 현실이 못마땅했다.[14] 본명은 Margaret Ann Callaghan이나 피터 제이 전 주미 영국 대사와 결혼해 성을 Jay로 바꿨다. 이후 남작 작위를 받으며 현재 칭호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