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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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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 강원도에 위치한 항구도시. 도소재지[1] 이며, 북한 강원도의 최대도시이다.[2] 분단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함경도나 강원도 영동 지방으로 갈 때 원산을 거쳐갔으므로 대표적인 교통거점이었다.
남북분단 이전에는 함경남도 산하였지만, 1946년 소련군정에 의해 강원도에 편입된 후 현재까지 쭉 강원도 산하이다. 다만 한국 정부기관인 이북5도위원회에 따르면 원산은 여전히 함경남도 산하이듯 남한에서는 한동안 함경도의 도시로 인식되었다. 남한에서 남은 원산과의 교류의 흔적을 묘사할 때는 분단 이전의 역사를 다룰 수밖에 없어 함경도의 도시라고 해야 고증에 맞다.
원산이 강원도로 넘어온 이유는 분단 이후 강원도의 주요 도시인 강릉시, 원주시, 춘천시 등이 모두 남한령이 되어 북부에는 딱히 중심도시로 기능할 만한 곳이 남아있지 않았던 데다가 기존 도소재지이던 철원군은 38선 기준으로도 너무 최전방이라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 그나마 가장 인접한 큰 도시인 원산을 끌어들인 것이다.[3] 한편 함경남도 영흥군 이남은 함경도 방언이 아닌 영동 방언권이기는 하나 다른 영동 방언권인 금야군과 고원군도 함경남도에 포함시킨 것으로 미루어 보면 행정의 편의적 성격이 강한 조치로 보인다.
2. 지리[편집]
2.1. 지형[편집]
해안선이 단순한 동해안의 다른 항구도시들과는 달리 원산이 위치한 원산만은 주변이 갈마반도, 호도반도, 그리고 여도(麗島), 신도(新島), 웅도(熊島), 황토도(黃土島) 등의 여러 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선시대에도 천혜의 항구로 평가받았다.
한반도에서 동서 거리가 가장 짧은 구간은 평안남도 평원군과 강원도 문천시(한국 기준 함경남도 문천군)를 잇는 선이다. 대략 북위 39° 15′ 정도.
2.2. 기후[편집]
평양시와 비슷한 위도에 있지만 산맥과 바다의 영향으로 기후는 비교적으로 온화한 편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원산만에서는 이류(移流)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안개일수 자체는 적어서 안개가 끼는 날은 1년 평균 9일에 불과하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항구도시치고는 바람이 약하다. 1월 평균 기온 -1.7도[4] , 8월 평균 기온 23.8도로 겨울은 서울과 비슷하고 여름은 서울보다 시원하다.[5]
2020년 9월 3일, 북한 강원도 원산시에서 3시간 만에 태풍 마이삭의 북상으로 인해 132mm의 폭우가 쏟아져 원산 시내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
여담으로 부산, 인천, 목포와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곳이다.
3. 역사[편집]
옛 이름은 덕원(德源)이었다. 한사군 시대에는 임둔군(臨屯郡) 동이현(東暆縣)이었다.
동예의 일부였고 고구려에 복속, 고구려의 천정군(泉井郡)이었다.
이후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고 이후 남북국시대에는 통일신라의 정천군(井泉郡), 선산현 지역이었고, 9주 5소경 중 삭주에 속했다. 지금의 원산시 세길동인 구 덕원면 지역에는 신라가 탄항관문(炭項關門)을 만들어 발해와의 국경선 관문으로 삼았다.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의하면 발해의 신라도는 동경 용원부가 있던 책성(柵城)부터 신라 정천군까지이며 그 사이에 39개의 역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엔 서쪽 의주군과 한자가 다른 의주(宜州)라고 불렀고 원나라가 점령했다가 공민왕이 되찾았다.
1437년(세종 19년)에 덕원군이 설치되었으며, 8년 후 덕원부로 승격되었다. 조선 후기 상업활동이 이전보다 발전하면서 장이 들어섰고, 덕원의 원산장은 조선의 상업중심지로 떠올랐다. 1880년에 개항했는데 러시아식 명칭은 포트 라자레프(Порт Лазарев)로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