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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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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대한민국의 주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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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선거
제5대
1960년 3월 15일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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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제6차
1987년 10월 27일
시행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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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제3차 국민투표
제2차
1972년 11월 21일
제3차

1975년 2월 12일
제4차

사유
유신헌법 개헌을 위한 헌법상 절차
투표율
91.9%
개표
91.5%
7.7%
결과

유신헌법 공포



당시 국방뉴우스 보도 [1]
1. 개요
2. 배경
3. 결과



1. 개요[편집]


1972년 11월 21일에 치러진 대한민국의 국민투표. 14,410,714명의 유권자가 참여했으며 91.9%의 투표율을 기록하고 91.5% 찬성으로 집계되었다.[2]


2. 배경[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의 [[10월 유신#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972년 10월 17일 19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며 계엄사령부는 대학 휴교 및 신문/통신의 검열을 시행하였다. 대통령은 헌법의 일부 조항을 효력 중지시키는 동시에 국회해산 및, 정당과 정치단체들의 활동을 중지시키는 초법적 조치를 단행했다. 이른바 10월 유신이다.[3] 헌정 중단의 초유 상태에서 국정은 비상국무회의가 수행하였으며, 10월 27일에 정부는 헌법 개정안을 공고하며 1개월 이내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이는 10.17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3. 결과[편집]


국민투표 결과 찬성 91.5%, 반대 7.7%로 집계되었다.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4]가 투표 참관단을 구성하였으며# 참관단은 '투표가 평화적 분위기에서 질서정연하게 실시'되었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불과 1년전에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40대 기수론이라는 신선한 구호를 내건 김대중에게 45.25% 득표를 주었으나, 불과 1년 후의 국민투표 결과는 매우 달랐다. 1972년휴전선 방위를 담당하는 주한미군 2만명이 철수하는 등 안보 위기가 고조되었던 시기였기에 국민들이 정부의 선전에 공감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안타까운 일도 있었는데 당시 선거관리위원 이 모 씨는 부정투표함을 발견하고 선관위원장에게 보고했는데, 이후 사퇴압력을 받다가 결국 해직당했으며 12월에 청량리정신병원[5]에 끌려가 강제 입원을 당했다가 3월에 퇴원했다. 연합뉴스, "불법저항 명예직도 민주화관련자 인정" <법원> 뉴스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인정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거부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파일:49fadae305332c5ec9c97fcaeec896f2.jpg

1972년 국민투표
찬성
91.5%
반대
7.7%

파일:external/www.pa.go.kr/img_revision0407.jpg

1972년 11월 21일 실시한 국민투표
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
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된
헌법개정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이
에 공포한다.

대통령 박정희

1972년 12월 27일

국무총리 김종필

국무위원 경제기획원장관 태완선

국무위원 외무부장관 김용식



[1]국방TV. 원본은 아니다. 국민투표가 이루어진 이날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이 쓰러진 것을 배경으로 야인시대의 BGM 전설의 영웅을 삽입한 것으로 추정된다.[2] 공교롭게도 박정희와 척을 뒀던 조직폭력배 출신 정치인 김두한이 이날 지병으로 사망한다.[3] '국가비상사태'는 1971년 12월 6일의 삼선개헌 정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엔 3공화국 헌법에서 규정되지 않아 12월 7일 소급하여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12월에 뒤늦게 제정하였다.[4] 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5] 1945년 광복 직후에 생긴 국내 최초의 정신병원이다. 이중섭, 천상병이 입원한 곳으로도 유명한 정신병원인데, 2018년에 폐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