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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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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f0000> 파일:대한민국 육군 및 해병대 중장.svg ||
||<width=20%><rowbgcolor=#dcffed,#003318> 초대
이형근 ||<width=20%> 2대
원용덕 ||<width=20%> 3대
정일권 ||<width=20%> 4대
송호성 ||<width=20%> 5대
김백일 ||
||<rowbgcolor=#dcffed,#003318> 6대
최덕신 || 7대
김홍일 || 8대
이준식 || 9대
안춘생 || 10대
김종오 ||
||<bgcolor=#dcffed,#003318> 11대
박병권 ||<bgcolor=#dcffed,#003318> 12대
장창국 ||<bgcolor=#dcffed,#003318> 13대
백남권 || 14대
이한림 || 15대
강영훈 ||
|| 16대
김용배 ||<bgcolor=#dcffed,#003318> 17대
박중윤 || 18대
정래혁 ||<bgcolor=#dcffed,#003318> 19대
이세호 || 20대
김희덕 ||
|| 21대
심흥선 || 22대
최세인 || 23대
최우근 || 24대
정승화 || 25대
백석주 ||
|| 26대
차규헌 || 27대
김복동 || 28대
최연식 || 29대
황인수 || 30대
지일환 ||
|| 31대
최문규 || 32대
장준익 || 33대
민병돈 || 34대
이필섭 || 35대
임인조 ||
|| 36대
김정헌 || 37대
장성 || 38대
김정남 || 39대
장창규 || 40대
한승의 ||
|| 41대
오남영 || 42대
박준근 || 43대
김충배 || 44대
김선홍 || 45대
임충빈 ||
|| 46대
김현석 || 47대
정승조 || 48대
이봉원 || 49대
박종선 || 50대
박남수 ||
||<bgcolor=#dcffed,#003318> 51대
고성균 || 52대
양종수 || 53대
최병로 || 54대
김완태 || 55대
정진경 ||
|| 56대
김정수 || 57대
강창구 ||<bgcolor=#dcffed,#003318> 58대
전성대 || 59대
권영호 ||
||<-5><bgcolor=#008940> ※ 초대~13대, 17대, 19대, 51대, 58대 : 대령, 준장, 소장 / 14대~현임 : 중장 ||
||<-5><bgcolor=#008940> ※ 관련 직위 둘러보기 ||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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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제2작전사령부 부대마크.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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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f0000> 파일:대한민국 육군 및 해병대 소장.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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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대
박신원 || 00대
김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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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 || 00대
박안수 || 00대
이계철 ||
|| 00대
김동수 ||
||<-5><bgcolor=#2e3192> ※ 초대~현재: 소장 ||
||<-5><bgcolor=#2e3192> ※ 관련 직위 둘러보기 ||




파일:육군훈련소 부대마크.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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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f0000> 파일:대한민국 육군 및 해병대 소장.svg ||
||<-5><#334782> 육군제2훈련소장 ||
||<width=20%> 제1대
김종갑 ||<width=20%> 제2대
이성가 ||<width=20%> 제3대
심언봉 ||<width=20%> 제4대
함병선 ||<width=20%> 제5대
백인엽 ||
|| 제6대
양국진 || 제7대
백남권 || 제8대
박병권 || 제9대
한신 || 제10대
임충식 ||
|| 제11대
최홍희 || 제12대
김동빈 || 제13대
장춘권 || 제14대
김상복 || 제15대
김병휘 ||
|| 제16대
김진위 || 제17대
전부일 || 제18대
박남표 || 제19대
김재명 || 제20대
정봉욱 ||
|| 제21대
한무협 || 제22대
김영선 || 제23대
곽응철 || 제24대
이필조 || 제25대
배정도 ||
|| 제26대
이광노 || 제27대
김기석 || 제28대
김원태 || 제29대
김을권 || 제30대
임병화 ||
|| 제31대
김충식 || 제32대
김광석 || 제33대
이기룡 || 제34대
오영우 || 제35대
이태우 ||
|| 제36대
이종완 || 제37대
정화언 || 제38대
정남기 || || ||
||<-5><#334782> 육군훈련소장 ||
|| 제39대
문판생 || 제40대
이광희 || 제41대
김문범 || 제42대
허평환 || 제43대
정두근 ||
|| 제44대
장종대 || 제45대
이태우 || 제46대
박성우 || 제47대
김정호 || 제48대
고성균 ||
|| 제49대
고현수 || 제50대
김규하 || 제51대
서상국 || 제52대
구재서 || 제53대
김인건 ||
|| 제54대
박원호 || 제55대
이용환 || || ||
||<-5><#334782> 관련 직위 둘러보기 ||






제51대 육군사관학교장
고성균
高聖均 | Ko Sung-kyun
파일:고성균.jpg
출생1958년 3월 20일 (66세)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1]
거주지경기도 용인시
본관제주 고씨[2]
복무대한민국 육군
1982년 ~ 2016년
외부 링크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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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아버지 고광선, 어머니 지금선
형제자매남동생 2명
학력도암국민학교[1] (전학)
임계국민학교[2] (전학)
강릉국민학교 (졸업)
경포중학교 (졸업)
강릉고등학교 (14회 / 졸업)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3] / 석사[4])
광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박사[5])
서울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대학 (성악과 / 재학[6])
임관육군사관학교[7] (38기)
최종 계급소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주요 보직육군사관학교장
육군훈련소장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제31보병사단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육군본부 선발관리실장
육군본부 인사근무과장
제17보병사단 제101보병연대
수도군단 인사참모
제11보병사단 인사참모
육군사관학교 훈육관

[1] 現 대관령초등학교[2] 現 임계초등학교[3] 인사관리 전공[4] 석사 학위 논문 : 軍 리더쉽 效率性향상에 관한 연구(군 리더쉽 효율성향상에 관한 연구).[5] 박사 학위 논문 : 변혁적 리더십과 거래적 리더십이 리더십 효과성에 미치는 영향.[6] 현재 열심히 다니면서 배우고 있다고 한다.[7] 전공은 전쟁사학과.

1. 개요
2. 생애
3. 방송 출연
4. 유튜버 활동
5. 군 생활 중 일화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군인. 최종 계급은 소장이며, 제31보병사단장육군사관학교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58년 3월 20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6.25 전쟁 참전용사[3]인 아버지[4]와 어머니[5]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릉초등학교[6]와 경포중학교, 강릉고등학교[7]을 졸업했고, 1978년 육군사관학교(38기)[8]에 입교하여 1982년 전쟁사학과 학사로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9] 현재는 유튜버를 하고 있는 그에게 한 유튜버가 3군 중에 육군, 여러 병과 중 보병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본 적 있는데, "기계를 만지는 것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한 적이 있다. 군 복무 중이던 1993년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인사관리 전공으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전역 이후에는 2017년 2월에 광주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역 이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의 안보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3. 방송 출연[편집]




4. 유튜버 활동[편집]


군대 관련 콘텐츠를 다루던 유튜브 TV러셀 채널에 출연한 것이 그 계기가 되어서,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11] 당시 조리 있는 언변들로 군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냈는데, 이를 본 TV러셀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후 2021년 5월 31일에, 《고성균의 장군!멍군!》이라는 채널명으로 군 시절의 각종 경험들과 각종 지식들을 이야기하는 군튜버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과거 교수를 했었던 경험과, 군 시절 교육 기관에 많이 있었던 경험으로 인해 비교적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능숙한 편이다. 실제 유튜브 《BODA》 채널에 출연해서, 자신이 출연한 해당 방송이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평소 접할 일이 거의 없었던 장성급 장교에 대해서 자신도 알고 있는 얘기를 소상히 푼 점이 작용한 듯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도, 여러 채널들에 출연하면서 유튜브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군 관련 유튜버들과의 합방도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예비역 병장인 군튜버 효자손과도, 사단장이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에 벌어지는 상황을 가장한 콩트 합방을 한 적이 있었다. 또한 타 군과의 소통도 비교적 잘 되는 편인데, 아무래도 본인이 군 복무 시절에 장성급 장교까지 되었었고, 사단장 직책을 해안가였던 부대에서 했었던 점이 그 원인인 듯하다.

특히, 군 내부의 여러 사안과 관련해서도 제시하는 해결 방향 등이 젊은 세대들의 것과 일치하는 편이다. 《D.P.》가 나온 이후 각종 병영부조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동영상 세 개에 걸쳐서 피력한 바 있었는데, 여타 다른 일부 장성들과 다르게 병영부조리 등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12]

이와 같은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1년 만에 구독자를 5만까지 늘렸다. 보통의 군튜버들이 군사, 국방 , 안보 이슈, 정치사안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본인만의 영역들을 구축한 셈이라고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본인의 군 복무 시절과 관련하여 각종 썰들을 풀거나, 구독자들과 소소한 소통, 혹은 사연들을 받아서 이에 관한 썰들을 푸는 등[13]의 가벼운 콘텐츠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다만 라이브 방송 등지에서, 간혹 구독자들이 군 현안들에 대해 질문하거나 하면 꽤 묵직한 얘기들도 하는 편이다.

PD는 연대장 시절 사진병이라 하며(걸어서 세계속으로 피디 출신) 라이브 방송 시 채팅 창을 관리하는 전속 부관이 존재한다.


5. 군 생활 중 일화[편집]


소장까지 진급을 모두 1차로 했을 정도로 엘리트였다. 다만 소장 진급 이후 31사단장[14], 육군훈련소장을 맡았고[15] 소장 계급에 맞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장을 맡으면서[16] 경력이 꼬였던지 중장 진급은 하지 못했다. Boda의 영상에서 진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본인도 정말 중장 진급을 하고 싶었으나 장성 진급은 운이 절대적이며, 인사 직능으로 관련 실무를 해본 입장으로 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17] 본인은 중장까지 못 간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인사 업무를 많이 하면서 여러 사례를 많이 접해 소장까지 간 것만 해도 굉장한 행운이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병사들 복지에도 꽤 신경을 쓴 편이다. 육군 본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반 병사들도 선글라스를 사용 할 수 있게 규정을 바꾸었다고 한다. 보급에 필요한 구매 예산 등의 여러 장벽이 있었지만, 당시 한 사단장이 부대운영비로 일단 운전병 등 꼭 필요한 인력들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선글라스를 도입하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규정변경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후 육군에서만 규정되어 있었던 선글라스 착용 규정을 국직 부대들까지 확대하면서 현재는 전 군에서 선글라스 착용이 가능해졌고, 2020년 하반기부터는 아예 초도 보급품에 군용 선글라스도 같이 지급한다.

군 내부에 있을 때 입바른 소리를 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도군단 인사참모(당시 대령) 시절에 중장 이하 관사 난방비 징수 문제가 터지자 이걸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에게 메일을 보내서 징수에 문제가 있음을 밝혔는데, 당시 육본 00참모부장[18]이던 OOO 소장과 그 밑의 00처장인 OOO 준장이 전화를 걸어서 욕설을 했다고 한다.[19][20] 부장과 처장 뿐만 아니라 육본에서 유류 담당하는 과장까지도 전화해서 뭐라 했다고 한다. 후일담으로 해당 건의는 후임 육참총장에게 인수인계되어 해결되었다고 한다.영상

결정적인 사건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근무과장 시절에 있었다. 3군단 모 부대[21]에서 일어난 A형 간염 집단 발병 사건에 관해 참모총장에게 보고하는 감찰을 나가서는 오히려 현장 지휘관 및 병원장에게 포상을 내려야 한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군에서 이 감찰을 보낸 취지는 말할 것도 없이 이번 사건을 책임지게 만들 희생양. 즉 부대장의 책임 있는 징계사유를 찾으라는 것이었지만, 당시 고 대령이 둘러보니 현장에서는 열악한 여건에서 최선의 조치를 하고 있었고, 깨끗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 심정개발 등을 수년간 건의해왔는데 제1야전군사령부와 3군단, 나아가 육군본부에서 이를 묵살해온 것이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징계는 오히려 상급부대에 해야 한다고 보고서를 올리자, 1차 결재는 그럭저럭 통과하였으나 2차와 3차 결재자는 아연실색해서 결론을 바꿔서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이 2,3차 결재권자들은 해당 부대의 조치 부실로 감염환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결과가 아닌, 현장의 관계자들을 칭찬하면서 육본을 포함한 상급부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내용에 매우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때도 강단이 장난이 아니게 강한 것이, 고 대령은 자신이 본 그대로 쓴 것이어서 조금도 바꿀 수 없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밀고 나갔다고 한다. 특히 3차 결재자는 "야 고성균. 누가 책임질 사람을 확인해서 오라 그랬는데 무슨 보고서가 이러냐? 너 정신이 나갔냐?는 식으로 야단치며 결재를 끝까지 강하게 거부하자 고 대령은 "현장에 나가서 직접 본 것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장교도 직접 확인한 내용이다. 본인을 현장으로 내 보낸건 있는 그대로 보고 올리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자꾸 보고내용을 바꾸라하면 어떻게하는가?" 라고 이야기하며 3차 결재란을 공란으로 두고 최종 결재로 넘어가겠다고 보고하고 실제로 참모총장실로 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당시 고장군이 인사참모부 인사근무과장이었던 것과 참모총장이 4차 결재자인 점을 감안하면 참모총장 이전 1차 결재자는 인사참모부 인사차장(준장), 2차 결재자는 육본 인사참모부장(소장), 3차 결재자는 육군참모차장(중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령으로서는 엄청나게 소신있게 행동한 셈.

3차 결재자에게 거부하면 패스하고 위로 가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3차 결재란이 거부 사유로 비어 있다고 하면서 보고서를 최종 결재자에게 내미는 것이나, 보통 강단이 아니다. 그래도 참모총장이 이건 좀...이라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다시 방효복 당시 육군참모차장한테로 돌아가기는 했다. 결국 참모차장은 "싸인은 내가 하지만 모든 책임은 고성균 네가 지는거다" 라면서 3차 결재를 해주었다.[22] 다행히 박흥렬 참모총장은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해당 부대 지휘관, 철정병원장, 고성균 대령 본인 모두 진급 대상자였는데 진급에 성공했고 셋 모두 장성까지 진급했다.영상

이후 장군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조건적인 보직해임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과거 본인도 억울하게 보직 해임을 당할 뻔 했던 적이 있고[23] 인사업무를 하면서 억울하게 보직 해임을 당해 군 생활을 끝낸 사례를 많이 접해서인 듯. 사단장 시절에 예하 부대장에 대한 보직해임 지시가 위에서 내려온 것을 부당하다고 판단하여 거부하였는데 위에서 압박이 계속되자 본인부터 보직 해임하라면서[24] 매우 강하게 나갔었던 일도 있었다.


6. 여담[편집]






















7. 관련 문서[편집]



[1]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임계면 #[2] 화전군파-정선(旌善) 순창(順昌)계 33세 균(均) 항렬.[3] 다부동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4] 고광선(高光善, 1931. 4. 24 ~ )[5] 충주 지씨 지금선(池衿仙, 1938. 7. 29 ~ )[6] 맨 처음 입학은 강원도 대관령에 있는 도암초등학교였으나 1학년 2학기 때 강릉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1년 정도 다니다 정선 임계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5학년 중반 쯤 다시 강릉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고 하며 동창회의 경우 임계초, 강릉초 양쪽에 속해 있다고 한다.[7] 14회 졸업생[8] 육사동기로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최병로 전 육사교장, 정연봉 전 육군참모차장이 있다. 앞 기수인 37기가 일명 박지만 기수로 이들이 대부분 고위직으로 승진한 탓에 바로 아랫 기수였던 38기는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4성장군도 임호영 장군 한 사람뿐이다. 사실 윗 기수인 37기도 유신사무관제도 폐지등의 여파로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한 기수였는데 38기의 경우 대장진급자가 단 한명만 나왔을 정도로 그 여파가 더 심했다.[9] 영관급 장교 시절에 인사 직능을 부여 받았다.[10]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겪기도 했다.[11] 허나, 정작 TV러셀 채널은 그 이후 군튜버에서 방향을 전환하여서 자신의 전역 이후의 직업인 부동산(주택)에 관련한 콘텐츠를 특화했다.[12] 참고로 과거 장성들의 경우에는, 간부들 서로 간에도 자행했던 병영부조리를 그야말로 온 몸으로 겪었던 세대라서 그런지 이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거나 오히려 없어져야 할 부조리들을 정당화하는 의견을 보이는 경우까지도 있다. 괜히 '똥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며, 장성급 장교의 수를 줄이는 것에 대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환영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본인들의 안위는 눈에 불을 켜고 잘 챙기면서 정작 군내 부조리와 비리, 그리고 부하들의 처우 개선에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13] 군 생활을 오래 했고 사단장 직책까지 했었기에, 과거의 이야기들부터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들까지 소통이 원활한 편이다.[14] 광주광역시전라남도를 담당하는 제2작전사령부 예하 후방 사단이다. 다만 후방 사단장 출신임에도 대장 진급자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백군기 장군이 대표적이며 모종화 장군처럼 중장 진급자도 꽤 배출했다.) 사단의 중요성에 따라 경력 대우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독립 사단의 사단장은 어디든 절대 한직이 아니다. 일단 해안 경계라는 막중 임무가 있고 포스코 광양제철소, 여수석유화학단지, 현대삼호중공업 등 산업 시설들이 소재하고 있으며 나로호, 영광 핵발전소 등 국가 A급 주요시설도 존재하며 특히 북괴 간첩선을 기관포로 격침시킨 부대가 31사단이다.[15] 육사 출신들은 한직, 요직간의 차이가 크다고 알려져있다. 육군에서 교육기관장은 상대적으로 한직이며 육군훈련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참고로 육사 교장조차도 대외적 위상과는 별개로 중장 보직 중에서는 대장 진급에 실패한 중장들이 가는 명예직이다.[16] 육사 교장은 원래 중장 보직이다. 마침 교장 부임연도 하반기에 중장 진급 심사 대상자였는데, 임명 당시 기사들을 보면 이를 착각한 것인지 '중장 진급 대상'이라고 오보한 기사도 몇 보인다.[17] 간혹 고성균의 영상 댓글에 왜 육사 교장 중 혼자 소장이시냐? 중장은 왜 못 다셨냐?라는 질문들이 보이는데 부디 자제하자. 알다시피 육사 교장 부임은 매우 특수한 경우였고, 본인이 원해서 진급하지 않은 것도 아닐뿐더러, 임기제 진급이든 통틀어 장군 인사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대통령실에서 결정나기 때문에 이분이 답변해 줄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아무리 엘리트라 하더라도 저 정도 고위직이면 진급에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 괜히 관운이니 운칠복삼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장성 진급은 형평성을 고려하여 능력, 근무부대, 병과, 직능 외에 출신 지역, 종교,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조차도 암암리에 영향을 미친다. 참고로 장군은 여러 병과를 총괄해야 하는 자리이므로 장군부터는 병과 마크를 떼기도 한다. 사실 소장도 국가직 2급 공무원에 해당되는 굉장히 높은 계급이다.[18] 아마 군수참모부장으로 추정됨[19] 쌍욕을 시전한 건 00부장이었고, 처장은 욕설은 안 했으나 대단히 고압적으로 말했다고 한다.[20] 방송에서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건 시점과 당사자들의 직책을 슬쩍 흘렸기에 사실상 실명을 투척한 것이나 다름 없다. 군문에 있으면서 웬만큼 험한 처우는 워낙 많이 겪어서인지 부정적인 에피소드들은 철저히 익명화해서 말하는 편인데도, 이 건만큼은 앙금이 깊이 남았을 정도로 모독이 심했던 모양이다.[21] 내린천 상류지역인 인제 상남에 있는 부대이다.[22] 참고로 이 보고서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시를 받고 고성균 당시 대령이 직접 작성했기에 결재가 총 네 단계였고 통상적으로 참모총장까지 올라가는 서류는 인사근무과 예하 실무자가 보고서를 작성하기에 결재단계는 총 5단계다. 상술한 4단계 앞에 과장이 첫 결재자로 추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당 보고서를 고 대령이 아닌 예하 실무장교가 작성했다면 당시 인사근무과장이었던 고 대령이 첫 결재자가 된다.[23] 본인이 대대장 시절 병사가 외박 중에 범죄를 저지른 건으로 뉴스를 타자 3군사령관이 사단장에게 대대장 보직 해임을 지시했으나 사단장이 월권행위라며 반발하여 막아준 건 # 군 인사법상 대대장과 연대장 인사, 징계는 사단장의 고유 권한이기에 사단장이 보직 해임을 충분히 막아줄 수 있었다. 참고로 월권 행위는 관련 권한이 없거나 권한을 넘어선 행동뿐만 아니라 하급자 고유의 권한을 상급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침해하는 행위도 충분히 될 수 있다.[24] 장성급의 인사는 상급지휘관이 즉석에서 할 수 없고 국방부와 대통령실에서 주관하기에 어느 정도는 가능한 행동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장성급은 보직 해임 즉시 전역이라 꽤 강단있는 행동을 한 셈이다.[25] 재미있게도, 비교대상이 된 할랜드 샌더스도 인자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실제 성격은 매우 매서웠다.[26] 당시에는 검문소마다 헌병들이 검문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살펴볼 수는 없으므로 젊은 남자(특히 짧은 머리인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걸렸다. 탈영병이 아닌지 확인해야했기 때문.) 위주로 검문이 이루어졌다.[27] 현재 대통령경호처장인 예비역 중장 김용현과 육사 동기이다.[28] 예비역 장성들이 현재처럼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자유롭게 표출하게 된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진보정당은 고사하고 민주당 계열의 성향만 보여도 집단 내에서 눈총을 보낼 지경이었다.[29] 실제 육사 이전에 관한 질문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반대지만 정치권에서 밀어붙이면 방법이 있겠냐는 식으로 답하기도 했다. 통상 육사 출신들이 육사 이전을 결사반대하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현실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30] 자력을 서로 비교해보면 전인범 장군은 작전, 전략기획, 대외협력(한미연합사) 보직을 주로 역임했고, 고성균 장군은 인사, 교육훈련 보직을 주로 역임했다.[31] 당연하게도, 일면식도 없는 육사 출신 장교를 찾으러 무작정 군부대로 돌격한 이 학생들의 패기를 고 장군은 아주 기특하게 여겼다고 밝혔다. 다만 그 당시 학생들을 PX로 데려가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는지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32] 실제 고성균 본인도 육군 본부에 있을 때 여러 혁신적인 제안들이 있었고 이를 참모 총장에게 보고해 긍정적인 답을 받았던 적이 있었으나 결국 임기 문제로 무산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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