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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현 제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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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현의 욧카이치시 일부, 쿠와나시, 이나베시, 쿠와나군(키소사키초), 이나베군(토인초), 미에군(아사히초, 카와고에초, 코모노초)을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前 민주당, 민진당 대표이자 입헌민주당의 간사장인 오카다 가쓰야이다.
미에현의 북쪽 끝에 있으며, 아이치현, 기후현. 시가현 등과 맞닿아있다. 다른 현에 속해있지만 나고야시와 가깝기 때문에 나고야에 통근하는 인구도 상당히 많다.
옆 지역구인 미에현 제2구와 함께 ‘민주왕국’이라고 불리던, 민주당 초강세 지역구였고, 현재는 입헌민주당 초강세 지역구이다. 워낙 민주당이 강세인 이유는 오카다 가쓰야 전 대표의 지역기반이 매우 탄탄해서이다. 물론 중선거구제 시절부터 야당 강세지역[1] 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선거구제 당시에는 자민당 다케시타파[2] 소속의 야마모토 유키오 前 자치대신이 두꺼운 지반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의 후계자로서 지역구를 이어받은 3구 의원인 오카다 가쓰야와 前 2구 의원[3] 나카가와 마사하루 모두 자민당 출신인데, 1990년대 야권 재편 당시 자유민주당을 탈당하여 신생당을 창당하였고 이후 신진당 - 국민의 목소리 - 민정당을 거쳐 최종적으로 제1야당 민주당으로 옮기면서 매우 강력한 지역기반을 유지하는데 성공했기에 현재까지도 입헌민주당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물론 자민당도 이 선거구를 탈환하기 위해 욧카이치시 출신 참의원 의원이었던 히라타 고이치를 옹립하여 비례순위에서 우대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오카다 가쓰야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어서 전부 실패했다. 특히 정권교대 총선에서는 11만 표 이상의 차이로 압승한 바 있다.
1996년 중의원에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단 한번도 자유민주당 후보가 소선거구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선거구이다.[4]
현역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재출마한다.
자민당은 지난 중원선에서 낙선한 시마다 요시카즈가 선거패배 직후 정계 은퇴했다. 이번 선거에는 이시하라 마사타카 전 코모노초 정장을 공천했다.
오카다 의원의 경쟁력이 강해 자민당 이외의 다른 정당은 공천하지 않았다. 자민당 이시하라 후보도 지역구 당선보다는 득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려 비례부활 당선을 노릴 것이 전망된다.
개표 결과, 입헌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자민당의 이시하라 마사타카 후보를 압살하고 11선 고지에 올랐다. 세대교체 바람에 입헌민주당 중진들이 연이어 고전[5] 하거나 지역구에서 낙선[6] 하거나 석패율제 구제도 못 받고 완전 낙선[7] 한 가운데에도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함께 가장 선전한 후보가 되었다.
자민당 이시하라 마사타카 후보는 지역구에서 큰 표차로 패배했으나, 자민당이 도카이 지역에서 압승하는 덕분에 지역구 패배 후보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현역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재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민주당에서도 이시하라 마사타카 의원이 재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유신회에서는 이토 마사시 후보를 공천했다. 참정당에서는 주부인 니와 마사미 후보가 출마한다.
1. 개요[편집]
미에현의 욧카이치시 일부, 쿠와나시, 이나베시, 쿠와나군(키소사키초), 이나베군(토인초), 미에군(아사히초, 카와고에초, 코모노초)을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前 민주당, 민진당 대표이자 입헌민주당의 간사장인 오카다 가쓰야이다.
2. 상세[편집]
미에현의 북쪽 끝에 있으며, 아이치현, 기후현. 시가현 등과 맞닿아있다. 다른 현에 속해있지만 나고야시와 가깝기 때문에 나고야에 통근하는 인구도 상당히 많다.
옆 지역구인 미에현 제2구와 함께 ‘민주왕국’이라고 불리던, 민주당 초강세 지역구였고, 현재는 입헌민주당 초강세 지역구이다. 워낙 민주당이 강세인 이유는 오카다 가쓰야 전 대표의 지역기반이 매우 탄탄해서이다. 물론 중선거구제 시절부터 야당 강세지역[1] 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선거구제 당시에는 자민당 다케시타파[2] 소속의 야마모토 유키오 前 자치대신이 두꺼운 지반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의 후계자로서 지역구를 이어받은 3구 의원인 오카다 가쓰야와 前 2구 의원[3] 나카가와 마사하루 모두 자민당 출신인데, 1990년대 야권 재편 당시 자유민주당을 탈당하여 신생당을 창당하였고 이후 신진당 - 국민의 목소리 - 민정당을 거쳐 최종적으로 제1야당 민주당으로 옮기면서 매우 강력한 지역기반을 유지하는데 성공했기에 현재까지도 입헌민주당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물론 자민당도 이 선거구를 탈환하기 위해 욧카이치시 출신 참의원 의원이었던 히라타 고이치를 옹립하여 비례순위에서 우대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오카다 가쓰야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어서 전부 실패했다. 특히 정권교대 총선에서는 11만 표 이상의 차이로 압승한 바 있다.
1996년 중의원에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단 한번도 자유민주당 후보가 소선거구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선거구이다.[4]
3. 역대 국회의원[편집]
4. 역대 선거 결과[편집]
4.1.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2.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4.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5.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6.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7.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8.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9.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현역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재출마한다.
자민당은 지난 중원선에서 낙선한 시마다 요시카즈가 선거패배 직후 정계 은퇴했다. 이번 선거에는 이시하라 마사타카 전 코모노초 정장을 공천했다.
오카다 의원의 경쟁력이 강해 자민당 이외의 다른 정당은 공천하지 않았다. 자민당 이시하라 후보도 지역구 당선보다는 득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려 비례부활 당선을 노릴 것이 전망된다.
개표 결과, 입헌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자민당의 이시하라 마사타카 후보를 압살하고 11선 고지에 올랐다. 세대교체 바람에 입헌민주당 중진들이 연이어 고전[5] 하거나 지역구에서 낙선[6] 하거나 석패율제 구제도 못 받고 완전 낙선[7] 한 가운데에도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함께 가장 선전한 후보가 되었다.
자민당 이시하라 마사타카 후보는 지역구에서 큰 표차로 패배했으나, 자민당이 도카이 지역에서 압승하는 덕분에 지역구 패배 후보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4.10.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현역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재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민주당에서도 이시하라 마사타카 의원이 재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유신회에서는 이토 마사시 후보를 공천했다. 참정당에서는 주부인 니와 마사미 후보가 출마한다.
[1] 즉, 55년 체제 당시 舊 일본사회당, 민사당, 사회민주연합, 일본공산당 등 혁신정당의 강세지역을 말하는 것이다.[2] 당시 파벌의 정식 명칭은 경세회[3] 현재는 도카이 권역 비례대표 중의원 의원이다.[4] 이렇게 소위 민주왕국으로 불리는 선거구에는 이외에도 이와테현 제1구, 미야기현 제5구, 가나가와현 제8구, 그리고 아이치현 제2구가 있다.[공] 추천[5] 간 나오토, 에다노 유키오 등[6] 가이에다 반리, 오자와 이치로 등[7] 히라노 히로후미, 쓰지모토 기요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