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기후 1구) |
선거제도 개편 | → | 제41~44대 노다 세이코 | → | 제45대 시바하시 마사나오 |
제45대 시바하시 마사나오 | → | 제46~49대 노다 세이코 | → | 현직 |
역임한 직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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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bgcolor=#f0f0f0,#000> || ||<-1><width=20%><bgcolor=#3CA324> ||<-4><width=80%><bgcolor=#3CA324> || ||<width=40%><-2> 1·2대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width=60%><-3> 3-5대 아소 다로 || ||<-1><width=20%><bgcolor=#3CA324> ||<-2><width=40%><bgcolor=#3CA324> ||<-1><width=20%><bgcolor=#3CA324> ||<-1><width=20%><bgcolor=#3CA324> || ||<width=20%> 6대 다케나카 헤이조 ||<width=20%> 7대 스가 요시히데 ||<width=40%><-2> 8·9대 마스다 히로야 ||<width=20%> 10대 하토야마 구니오 || ||<-1><width=20%><bgcolor=#3CA324> ||<-1><width=20%><bgcolor=#EC1C24> ||<-2><width=40%><bgcolor=#EC1C24> ||<-1><width=20%><bgcolor=#EC1C24> || ||<width=20%> 11대 사토 쓰토무 ||<width=40%><-2> 12·13대 하라구치 가즈히로 ||<width=20%> 14대 가타야마 요시히로 ||<width=20%> 15대 가와바타 다쓰오 || ||<-1><width=20%><bgcolor=#EC1C24> ||<-4><width=80%><bgcolor=#3CA324> || ||<width=20%> 16대 다루토코 신지 ||<width=20%> 17대 신도 요시타카 ||<width=40%><-2> 18·19·23대 다카이치 사나에 ||<width=20%> 20·21대 노다 세이코 || ||<-3><width=60%><bgcolor=#E50038> ||<-1><width=20%><bgcolor=#E50038> ||<-1><width=20%><bgcolor=#E50038> || ||<width=20%> 20·21대 노다 세이코 ||<width=20%> 22대 이시다 마사토시 ||<width=20%> 18·19·23대 다카이치 사나에 ||<width=20%> 24대 다케다 료타 ||<width=20%> 25·26대 가네코 야스시 || ||<-5><bgcolor=#E50038> || ||<width=20%> 25·26대 가네코 야스시 ||<width=20%> 27대 테라다 미노루 ||<width=20%> 28·30대 마쓰모토 다케아키 ||<width=20%> 29대 스즈키 준지 ||<width=20%> 28·30대 마쓰모토 다케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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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20·21대 총무대신 |
일본국 제40-49대 중의원 의원 노다 세이코 野田聖子 | Noda Seik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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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0년 9월 3일 (63세) |
후쿠오카현 키타큐슈시 |
현직 | 제49대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정보통신전략조사회장 |
재임기간 | 제64대 우정대신 |
1998년 7월 30일 ~ 1999년 10월 5일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소비자·식품안전·과학기술정책) |
2008년 8월 2일 ~ 2009년 9월 16일 |
제20-21대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마이넘버 제도) |
2017년 8월 3일 ~ 2018년 10월 2일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남녀공동참획) |
2017년 11월 1일 ~ 2018년 10월 2일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저출산대책·남녀공동참획·지방창생) |
2021년 10월 4일 ~ 2022년 8월 10일 |
SNS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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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진외조부 시마 도쿠조[1] 일본휘발유 회장, 한신전철 사장, 도요쿠니 화재보험 사장, 오사카 증권거래소 이사장 등 수많은 기업을 당대에 일궈낸 실업가로 당시 오사카 최고의 자산가. 말년에는 대공황의 여파로 재산이 감소일로를 걷고 자신은 증권거래법 위반 및 배임, 횡령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중 병사하였다. 노다 세이코의 아버지인 노다 미노루는 본래 외손자이지만 양자로 받아들여 시마 미노루가 되었다. 할아버지 노다 우이치[2]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출신, 대장성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대장성 차관, 일본전매공사 부총재를 역임하고 기후현 참의원, 구 기후현 제1구 9선 중의원, 건설대신, 경제기획청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79년 제35회 중의원 총선 낙선을 끝으로 정계를 떠났다. 시마 도쿠조의 차녀 시마 히카루와 결혼했다. 부인이 사망한 뒤 자신의 손녀인 시마 세이코를 양자로 받아들여 노다 세이코가 되었다. 가문 족보가 조금 복잡하다. 아버지 시마 미노루[3] 노다 우이치의 장남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외조부인 시마 도쿠조의 양자가 되어 성을 시마로 갈았다.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후 야와타제철과 그 후신인 신일본제철에서 근무하였다. 배우자 노다 후미노부[4], 아들[5] 2011년생(13세). 불임 치료를 받다가 체외수정으로 얻은 아이인데, 장애가 있다고 한다. | 학력 | 덴엔쵸후 후타바 여자고등학교 (자퇴) 미시간주 존스빌 하이스쿨 (졸업) 조치대학 외국어학부 (비교문화학 / 학사) | 정당 |
| 파벌 | 번촌정책연구소 → 무파벌 | 지역구 | 기후 1구 | 의원 선수 | 10 (중) | 의원 대수 | 40, 41, 42, 43, 44, 45[A], 46, 47, 48, 49 | 약력 | 테이코쿠 호텔 직원 기후현의회 의원 기후현 제1구 중의원 의원 제64대 우정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제21~22대 총무대신 중의원 예산위원장 자유민주당 간사장대행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분야] 저출산대책담당, 남녀공동참가담당, 지방창생담당 자유민주당 정보통신전략조사회장 |
|
일본의 정치인. 건설대신, 경제기획청 장관을 역임한 노다 우이치의 손녀다.
후쿠오카현 키타큐슈시, 야와타 제철 직원의 사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야와타 제철이
신일본제철로 합병되며 유치원 시절 도쿄로 오게 되어 덴엔쵸후 후타바학원
[1] 덴엔초후에 위치한 명문 가톨릭계 사립여학교로, 마사코 황후, 미치코 상황후도 다닌 학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 고등학교는 중퇴. 이때 동급생을 이지메를 시켜서 중퇴했다는 괴문서가 돈 적이
있다. 학교에 허락받지 않은 원동기 면허가 있었다고도 하고, 이외 여성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본인은 나름 "발산하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많아 미국으로 떠났다"고 밝히는 등,
오죠사마[2] 유복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귀하고 곱게 자라난 여자.
학교와 맞지 않는 기질이었던 듯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미시간주 존스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에
조치대학 외국어학부 비교문화학과를 졸업한 뒤,
테이코쿠 호텔에 입사해 프론트, 해외영업 업무 등에 종사했다.
1984년 조모 히카루의 사망 이후 조부 노다 우이치의 양자가 되어, 원래의 성씨였던 '시마(島)'에서 조부의 성씨인 '노다(野田)'로 성씨를 바꾸었다. 왜 조부와 성이 다르냐고 하면, 아버지인 시마 미노루가 노다 우이치의 장남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외조부인 시마 도쿠조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기후현의회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해 최연소 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정치경력이 전무했던 그녀가 현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은 기후현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꼽힌다. 할아버지 노다 우이치는
이케다 하야토,
후쿠다 다케오와 함께 대장성의 3다(田)로 묶일 정도의 위계였다.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할아버지의 지반이었던 舊 기후현 1구에 출마했지만 자민당의 공천도 받지 못하고 낙선했다. 그러나
1993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재출마해 '중의원에도 자민당 여성의원을!'을 공약으로 내걸어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6년 제2차 하시모토 내각에서 우정정무차관이 되었고,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제46대 우정대신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나이 37세로 남녀 통틀어 역대 최연소로 임명된 것이었다.
1999년에는 자민당 국회대책 부위원장에 취임했으며,
2000년에는 자민당 정무조사부회장, 자민당 필두 부간사장에 취임하는 등 당의 여러 직책을 맡았다.
2005년에는 우정 민영화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으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공천한
사토 유카리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5선에 성공했다. 당선 이후에는 우정 민영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얼마 안 가 자민당을 탈당했다. 하지만
2006년 아베 신조의 뜻에 따라 우정 민영화 반대파 의원들의 복당이 이루어지면서 자민당에 복당했다.
2007년 후쿠다 야스오가 자민당 총재로 취임하면서 당의 홍보국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다가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에 임명되었고
아소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낙선했으나
석패율제로 구제되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기후 1구에서 다시 당선되어 7선에 성공했으며, 같은해 자민당 총무회장에 임명되었다.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8선에 성공했다.
2015년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추천인 20명을 모으지 못해 포기했다. 이후
히라누마 다케오가 복당을 시도하자
다니가키 사다카즈 간사장에게 복당요청서를 제출했다.
2017년 다카이치 사나에의 후임으로
제3차 아베 신조 제3차 개조내각에서
총무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마이넘버제도 담당)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9선을 기록했다. 선거 이후
제4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도 총무대신으로 유임되었다.
2018년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도전했으나 이번에도 추천인 20명을 모으지 못해 출마가 좌절됐다. 이후
제4차 아베 신조 제1차 개조내각이 출범하면서 총무대신에서 물러났다. 이후 여성 최초로 중의원 예산위원장을 맡았다.
아베 신조 총리의 사퇴 선언에 따라 실시되는 2020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도전을 하려했지만 불출마하였으며
스가 요시히데 총재로부터 간사당 대행으로 임명되었다.
2021년 3월 11일 통신 대기업
NTT로부터 과거 2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의 폭로가
터져나왔다.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하였다. 개표 결과 국회의원 표 34표, 당원표 29표, 총 63표로 최하위로 낙선하였다.
2015년과 2018년 2차례에 걸쳐 총재 선거 추천의원 20명을 모으지 못 해 출마조차 못 했었던 것에 비하면 선전했다는 평이지만 앞으로 또 출마할 때 얼마나 회파를 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강경 우파 성향 의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기시다 후미오가 당선되는 것을 보면 많이 힘들 것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2021년 10월
제1차 기시다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인 저출산담당대신으로 기용되어
제2차 기시다 내각에서도 유임되었으나, 2022년 8월 10일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 출범으로 물러났다.
아사히 신문 · 도쿄대 다니구치 연구실 공동 조사 2021년 중의원 선거 후보자 정보 - 노다 세이코 |
이슈 | 질문 | 답변 |
개헌 | 헌법 개정에 | <colcolor#000> 찬성[3] 4년 전과는 다르게 어떤 부분을 개정해야 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
|
정부 | 사회복지 등 정부의 서비스가 나빠져도 예산이 들지 않는 작은 정부가 더 낫다. | 조금 반대 |
일자리 확충 | 공공 사업을 통한 일자리 확충은 필요하다. | 조금 찬성 |
소비세 | 한시적이거나 영구적으로 소비세율을 낮춰야 한다. | 조금 반대 |
재정 지출 | 당장은 재정 재건을 위한 세출의 억제보다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 조금 찬성 |
격차 해소 | A: 사회적 격차가 다소 있더라도 경제 경쟁력 향상을 우선해야 한다. B: 경제 경쟁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격차 시정을 우선해야 한다. | 중립 |
제정 적자 | A: 국채는 안정적으로 소화되고 있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B: 재정적자는 위기 수준이기 때문에, 국채 발행을 억제해야 한다. | 조금 B |
부자 증세 | 소득이나 자산이 많은 사람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 중립 |
법인세 증세 |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율을 인상해야 한다. | 중립 |
산업 | A.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B: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 중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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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처리수의 해양 방출은 어쩔 수 없다. | 조금 찬성 |
치안·인권 |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정보 보호 및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 | 중립 |
동성혼 | 동성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 조금 찬성 |
동성애 법안 | LGBT 등 성 소수자를 둘러싼 '이해 증진' 법안을 즉시 통과시켜야 한다. | 조금 찬성 |
외국인 노동 |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을 추진해야 한다. | 중립 |
탈원전 | A: 지금 바로 원자력 발전을 폐지해야 한다. B: 앞으로도 원자력 발전을 에너지 원의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 | 중립 |
부부별성 | 부부가 원하는 경우,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각각 혼전 성을 유지하는 것을 법률로서 인정해야 한다. | 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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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발 | 비핵 3원칙[4]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을 견지해야 한다. | 찬성 |
국방 | 일본의 방위력은 더 강화해야 한다. | 조금 찬성 |
선제 공격 |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 선제 공격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 무응답 |
대북관계 | 북한에 대해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 | 찬성 |
후텐마 기지 | 오키나와현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매립지 이전은 부득이한 일이다. | 조금 찬성 |
미일안보조약 | A: 위기 때 미국과의 협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미일 안보조약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B: 일본과 관계없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미일 안보조약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 | A |
중국 위협론 | A: 중국은 일본에 위협이 된다. B: 일본에 있어서 중국은 파트너이다. | 중립 |
|
참의원 선거 | A: 한 표 격차 시정을 위해서도 참의원 선거구의 합구는 허용돼야 한다. B: 참의원 선거구의 합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일정 범위 내의 한 표 격차는 허용되어야 한다. | 중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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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책 | 치료제, 백신 개발 및 확보, 치료 체제 확충, 물가 대책 강화 |
'조금'의 답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どちらかと言えば)'이며 '중립'은 '어느쪽도 아니다(どちらとも言えない)'이다. |
소속 | 기간 | 비고 |
| 1987 - 2005 | 정계 입문 |
무소속
| 2005 - 2006 | 탈당[5] 고이즈미 내각의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하면서 탈당. |
| 2006 - | 복당 |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7 | 제11회 통일지방선거 | 기후현의회 |
| ? (?%) | 당선 (?위) | 초선[6] |
1990 |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기후 1구 |
무소속 [7] | 58,587 (8.2%) | 낙선 (9위) | |
1993 |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 95,734 (13.7%) | 당선 (3위) | 초선[8] |
1996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기후 1구 | 70,799 (37.10%) | 당선 (1위) | 재선 |
2000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0,425 (52.35%) | 3선 |
2003 |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2,717 (51.42%) | 4선 |
2005 |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무소속
| 96,985 (42.82%) | 5선 |
2009 |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 99,500 (44.45%) | 낙선 (2위) 석패율제 당선 | 6선 |
2012 |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0,164 (49.93%) | 당선 (1위) | 7선 |
2014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82,434 (57.45%) | 8선 |
2017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3,453 (64.51%) | 9선 |
2021 |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3,805 (62.54%) | 10선 |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찬성한다.
- 참의원의원인 츠루호 요스케(鶴保庸介)와 사실혼 관계였으나 2007년에 이별했다.
- 현재 남편이 재일 한국인 3세인데 전직 야쿠자다. 2017년 주간문춘이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자마자 논란이 일었고, 노다 본인이 "사생활에 관련된 부분인데... 뭐 맞습니다."라고 흔쾌히 인정해버려서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남편의 이름은 김문신=기무라 후미노부(文信)로 교토의 아이즈코테츠카이 산하의 마사야마구미 출신이다. 조직에서 빠져나와 한국음식점을 운영하던 중 이 음식점에 노다가 자주 방문하며 연이 맺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노다 세이코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자 다시 남편의 과거가 들먹여졌고, 이에 남편이 주간문춘과 주간신쵸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했지만 법원이 오히려 남편의 과거 경력을 대체로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다. 다만 주간문춘을 상대로는 일부승소하여 110만엔의 배상명령을 받았지만, 주간신쵸를 상대로는 패소했다.
- 2009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
- 젊은 시절에 테이코쿠 호텔 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이때 화장실 청소를 하다 화장실 변기물을 마시며 일했다는 일화가 인터넷에서 나돈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기계발서같은 서적에서도 작은 일부터 충실하자라는 이야기를 하겠답시고 이 이야기를 묘사하기도 하는 등 사실인 것처럼 미화하고 있다. 애초에 사실이라 하더라도 화장실 변기물을 마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가장 위생이 안 좋은 장소가 화장실인데 거기 물을 마신다는 것은 대놓고 병에 걸리려고 하는 자살행위에 가깝다. 실제로 화장실의 깨끗함을 증명하기 위해 변기물을 먹었다가 난리난 사건이 중국에서도 있었을 정도이다.
- 2021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투표 당일 새벽에 자민당 후보에게 투표를 호소한 것에 대한 선거법 위반이 나왔다.[9]
일본 공직선거법상 투표 당일에는 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
이에 비서가 잘못 게시했다고 사과했다.# - 부동산 부자다. 일본 최고의 부촌 중 하나인 도쿄 덴엔초후와 휴양지이자 일본 상류층들의 별장지로 유명한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각각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구인 기후현 기후시에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해변 근처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한일여성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지한파고 한국에 우호적인 편이다. 조부 노다 우이치는 한일의원연맹 창립자 가운데 한사람이라고.#
- 과거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젊은 시절 선거운동을 할 때에도 성희롱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이 성차별이 심하다고 하지만 조부가 기후현의 거물이었던 명문가 출신 여성 정치인도 성추행을 당할 정도로, 그만큼 일본의 여성 인권은 선진국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뒤떨어졌다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