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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민주당(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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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憲民主党 )은 일본의 제1야당이자 사회자유주의 빅텐트 성향의 정당이다.
2020년 9월 15일, 구 입헌민주당과 구 국민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前 내각총리대신을 중심으로 하는 무소속 교섭 단체였던 사회보장 재건을 위한 국민회의(社会保障を立て直す国民会議)가 신설 합당하여 출범했다.
입헌민주당은 입헌주의와, 숙의제 민주주의를 중요시하는 민주정치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국민이 주역인 정당으로서,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념 속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생사회'를 구축하고 국제적인 협력의 틀 속에 '미래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그래서 위 원칙을 바탕으로 개개인의 일상생활과 일터, 지역의 목소리를 강조하여 내일을 위한 준비를 중요시함으로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집권당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철학을 구현하겠다는 강한 결단으로서 '입헌민주당'을 창당하였다.
당의 목표
창당 직전 신당의 당명과 대표를 선거했는데, 각각 舊 입헌민주당의 당명이었던 입헌민주당과 에다노 유키오 舊 입헌민주당 대표가 결정되어 신설 합당이지만, 舊 입헌민주당이 흡수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또한 기관지 역시 구 입헌민주당의 기관지인 입헌 민주를 그대로 따와 사실상 흡수 합당으로 취급 받고 있다. 그리고 舊 국민민주당의 합당 반대파들이 新 국민민주당을 창당할 예정이라 일본 정계에서도 새롭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초에 양당이 민진당에서 분당한 것이기도 하므로. 당의 크기는 2009년 이전 민주당과 비견될만큼 커졌지만 여러모로 머쓱한 통합이 되었다는 평가다.[19]
게다가 2020년 8월 28일, 통합 절차 진행 중 아베 신조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직 사퇴를 선언해 자민당 총재 선거 및 새 총리 선출 선거가 치러져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통합신당 대표 선출 및 당명 결정 절차가 빛을 바랜 감이 있다. 사실 이는 오랜 야당 생활을 한 만년 야당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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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민주당은 개헌에 긍정적[28] 인 현 당 대표 이즈미 겐타의 신정권연구회, 노다 요시히코의 화제회가 당 내 보수파를 맡고 있고, 개헌에 부정적인 호헌파 에다노 유키오, 간 나오토 등의 나라의 모습 연구회, 구 일본사회당 출신 인사로 구성된 생추어리가 당 내 진보파를 맡고 있다.
한편, 비주류 계파로는 완전히 좌익적 성향을 띄는 사회민주주의 포럼, 구 호소노 고시 계파였고 현재는 집단지도체제 비슷하게 운영되는 중도 성향의 자서회, 마에하라 세이지의 구 료운카이 소속, 오자와 이치로 그룹이 있다.[29]
입헌민주당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원들은 에다 겐지, 와타나베 슈, 류 히로후미, 겐바 고이치로 등이 있는데 이들은 당 주류는 아니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중도 내지 중도우파라 본다. 반면, 쓰지모토 기요미, 요시다 다다토모 등 중도좌파 ~ 좌익 성향으로 평가받는 의원들도 있다.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하위 조직인 아시아자유민주연맹의 옵저버로 참여할 정도로 자유주의 스탠스를 분명히 하고 있는 정당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30]
사회자유주의 정당답게 성소수자 권리 문제에서도 친화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LGBT 권리 단체들과 적극 연대하고 있으며 동성결혼 제도화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또한 부부별성을 지지하는 의원들도 많으며, 자민당에 비해 보다 친 여성, 친 환경적 사회 정책을 표방한다.
한편, 외교적으로는 자유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둘기파에 가까운 스텐스를 취하고 있으나 이것도 파벌에 따라 케바케라서 자민당 강경파와 별 다를바 없는 대외관을 가지는 의원들도 생각보다 꽤 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입헌민주당은 하토야마 유키오의 아시아주의 성향도 있고, 또 더 이전 20세기 시절에는 소련, 중국 등에 대한 친공 노선을 취한 일본사회당에서 온 세력도 일부 있어서인지[31] 친중, 친한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일본사회당, 자민당, 국민신당, 일본신당, 신당 사키가케, 신생당 등 여러 정당 출신의 인사들로 구성되어있고 계파도 다양하기 때문에 한국, 그리고 기타 국제 외교 노선도 다양한 편이다.
간 담화를 발표한 간 나오토와 같이 한국과 원만한 관계를 추구하는 계파인 나라의 모습 연구회도 있고, 더 나아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진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일본사회당 출신의 혁신 계열 인사들이 주축이 된 생추어리라는 계파도 있다.[32] 그런가하면 류 히로후미, 하라구치 가즈히로, 노다 요시히코처럼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긍정적이고 과거사 인식이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이는 우익 계열의 인사들도 있다.[33] 심지어 겐바 고이치로처럼 한국을 원색적으로 비난[34] 하는 인물도 있다.[35]
그래도 일단 자민당에 비하면 헌법 9조 개정반대에 적극적이고 평화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는 반한적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반한은 영향력이 적은 민주당 보수파들이 주로 보이고 있다. 또 그 보수파도 자민당 보수방류 강경파들에 비하면 반한 성향은 약한 편이다. 이즈미 겐타 대표, 아즈미 준 국회대책위원장, 에다 겐지 前 대표대행 등 입민 보수파 의원들 대다수는 친한은 아니지만, 최소한 혐한이라기보다는 한국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에 가깝고, 류 히로후미 같은 우익 ~ 극우 성향 의원들도 2020년대에 들어서는 중도화되는 추세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에서는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외교를 악용한다며 아베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주류였다.
반면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진보, 리버럴 성향에 가깝다고 알려진 에다노 유키오 전 대표도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한국 입장을 대변하는 식의 개념에는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36] 그래서 일본의 정치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우익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은 입헌민주당보다 일본공산당을 더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확실히 일본 사회가 21세기 들어 넷우익 등이 설치며[37] 역사수정주의 사관이 심해지긴 했는지, 비록 입헌민주당이 민주당-민진당의 '당내 좌파' 계열이 주축이 된 정당이라 사회경제적으로 좌경화 되었다고는 해도, 이 부분에선 하토야마 유키오 시절 민주당 시기보단 훨씬 우경화된 경향이 있다.[38] 가령 2023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입헌민주당 당 대표 이즈미 겐타는 초계기 문제와 평화의 소녀상 관련한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입헌민주당은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고 한다.#[39] 심지어는 강원도 평창에 민간에서 아베 전 총리로 연상된다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남성이 소녀상에 무릎 꿇는 동상을 세웠는데, 당시 입헌민주당 측에서[40] 조형물을 설치한 한국 정부가 식물원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거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일본 언론에서도 지적하듯이 2015년 위안부 합의에서 소녀상에 대한 해결은[41] 일본 대사관 근처의 소녀상에 국한된 것으로 상이 설치된 곳은 사립 식물원이기 때문에 정부에 철거 운운할 사안도 아니다.# 어쨌든 분명히 정도 차는 있지만, 마쓰바라 진같이 강제징용 등 역사적 사실을 공개 부정하는 의원들도 있으므로# 비자민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역사 수정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착각은 하지 말자.
한편, 일본 내 리버럴 진영에서 반한 내지 혐한 정서가 강해진 계기 중 하나가 2022년 통일교 게이트인데, 넷우익들이 반한이라고 떠받들던(?) 자민당 아베 세력이 정작 알고보니 한국 (사이비, 이단 취급도 제법 받는) 종교단체인 통일교와 과거부터 제법 깊게 연계되어 있었는데다가, 통일교가 일부 일본인들에게 접근해서 종교에 심취시켜 사회와 분리시키거나 갈취 행위를 했다는[42] 정황도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통일교 문제로만 퉁치기엔 일본 리버럴들의 대한민국 외교관의 변화를 다 설명할 수는 없고, 통일교 게이트 이전부터 일본 사회에서 점점 패권적 내셔널리즘 정서가 심해진 문제도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통일교 게이트가 일본 리버럴 진영의 반한 정서를 키운 것도 부분적으로 사실이긴 하다.
1. 개요[편집]
입헌민주당(일본어:
2020년 9월 15일, 구 입헌민주당과 구 국민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前 내각총리대신을 중심으로 하는 무소속 교섭 단체였던 사회보장 재건을 위한 국민회의(社会保障を立て直す国民会議)가 신설 합당하여 출범했다.
2. 강령[편집]
입헌민주당은 입헌주의와, 숙의제 민주주의를 중요시하는 민주정치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국민이 주역인 정당으로서,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념 속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생사회'를 구축하고 국제적인 협력의 틀 속에 '미래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그래서 위 원칙을 바탕으로 개개인의 일상생활과 일터, 지역의 목소리를 강조하여 내일을 위한 준비를 중요시함으로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집권당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철학을 구현하겠다는 강한 결단으로서 '입헌민주당'을 창당하였다.
당의 목표
- 입헌주의에 기초한 민주정치
- 인권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사회 구현
-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공생사회 구축
- 개인의 행복이 존중받는 경제 체제 구현
- 지속 가능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보장
- 위기대처를 잘 할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정부
-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
3. 로고[편집]
현재 로고는 2020년 9월 30일부터 사용한 새 로고다. 2017년부터 써온 기존의 로고도 병용한다고 한다.
4. 당사[편집]
5. 역사[편집]
5.1. 창당 전[편집]
창당 직전 신당의 당명과 대표를 선거했는데, 각각 舊 입헌민주당의 당명이었던 입헌민주당과 에다노 유키오 舊 입헌민주당 대표가 결정되어 신설 합당이지만, 舊 입헌민주당이 흡수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또한 기관지 역시 구 입헌민주당의 기관지인 입헌 민주를 그대로 따와 사실상 흡수 합당으로 취급 받고 있다. 그리고 舊 국민민주당의 합당 반대파들이 新 국민민주당을 창당할 예정이라 일본 정계에서도 새롭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초에 양당이 민진당에서 분당한 것이기도 하므로. 당의 크기는 2009년 이전 민주당과 비견될만큼 커졌지만 여러모로 머쓱한 통합이 되었다는 평가다.[19]
게다가 2020년 8월 28일, 통합 절차 진행 중 아베 신조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직 사퇴를 선언해 자민당 총재 선거 및 새 총리 선출 선거가 치러져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통합신당 대표 선출 및 당명 결정 절차가 빛을 바랜 감이 있다. 사실 이는 오랜 야당 생활을 한 만년 야당의 문제이기도 하다.
5.2. 2020년[편집]
- 9월 16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 지명 선거에서 입헌민주당 외에도 일본공산당이 에다노 유키오 대표에게 투표할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자유민주당의 스가 요시히데는 314표로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을 더한 것에 1표를 더한 수치인데 아마도 부인의 비리 의혹으로 당을 탈당한 前 법무대신 가와이 가쓰유키가 스가 요시히데를 지지한듯 하다.
주목할만한 것은 에다노 유키오가 134표를 받았다는 것인데, 이는 입헌민주당과 공조하고 있는 일본공산당(12석)과 사회민주당(2석)의 표를 합친 121표보다 13표 더 많은 수치이다.[20] 정황상 국민민주당이 에다노를 지지한 것으로 보이는데 민진당 시절부터 사이가 안좋았던 료운카이파(마에하라 세이지의 분파)와 에다노 유키오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의외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다른 정당에서 무려 6명이나 에다노 유키오를 지지했다는 결과가 나오는데, 무소속 후루모토 신이치로, 류 히로후미, 호소노 고시[21] 외 3명이 에다노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도쿄 15구의 아키모토 쓰카사는 자민당 출신이라서 에다노를 지지했을 가능성이 적으니, 자유민주당 의원 3~5명 정도가 스가 요시히데가 아닌 에다노 유키오를 지지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여러모로 야권 단합이 잘 된 모양.
이 간극은 참의원에서 더 잘 벌어져, 입헌민주당(43석) + 일본공산당(13석) + 사회민주당(2석)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1석)을 합치면 59표가 입헌민주당과 연대하고 있는 정당들의 득표 총합인데, 정작 에다노는 78표를 득표해 기본 표보다 19표의 표를 더 받았다. 국민민주당 8석, 레이와 신센구미 2석, 그리고 무소속 9석 정도로 추정된다. 민진당 시절 계파 갈등으로 당론 정리도 안되던 시절과 대비하면 단합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상황이다.
이 간극은 참의원에서 더 잘 벌어져, 입헌민주당(43석) + 일본공산당(13석) + 사회민주당(2석)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1석)을 합치면 59표가 입헌민주당과 연대하고 있는 정당들의 득표 총합인데, 정작 에다노는 78표를 득표해 기본 표보다 19표의 표를 더 받았다. 국민민주당 8석, 레이와 신센구미 2석, 그리고 무소속 9석 정도로 추정된다. 민진당 시절 계파 갈등으로 당론 정리도 안되던 시절과 대비하면 단합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상황이다.
- 9월 17일, 마이니치 신문 및 사회조사연구센터가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다음 중의원 선거의 비례대표를 어느 당에 줄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15%를 받았다. 국민민주당과 비교해도 엄청난 격차로 제1야당 지위를 굳건히 했다.# 같은 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약칭 '연합')도 차기 중원선에서는 입헌민주당을 적극 지원하기로 의사를 굳혔다.##
- 9월 23일, 일본 외국 특파원 협회에서 기자회견으로 공산당과의 선거 협력에 관한 질문이 오자 천황제와 미일 동맹의 기본 인식에 양당 간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양측이 최대한 노력한다는 인식이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당간 연대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 되었다.
- 10월 26일, 중의원 도쿄도 비례대표 권역으로 당선됐던 하쓰시카 아키히로(初鹿明博)가 강제추행 혐의로 탈당한 후 한동안 무소속 지내다가 결국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마쓰오 아키히로(松尾明弘)가 의원직을 승계받았다. 공식 활동은 11월 5일 시작하였다.
- 12월 13일, 마이니치신문과 사회조사연구센터가 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이 12%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자민당 외 정당들은 실제 득표율과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꽤 차이나는 다수의 일본 여론조사 특성상 실제 지지율은 약 10% 내외 정도는 더 얹혀줘야 할 것이다.[23] 또 코로나 방역에 실패한 자민당과 스가 총리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있어 상대적 이점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3. 2021년[편집]
- 1월 12일, 마지막으로 니가타 6구의 당 내 후보를 단일화하면서 합당 이후 지역구별 후보 중복 문제를 최종 해결했다. 이후 후쿠야마 간사장은 국민, 사민, 공산당과의 후보 단일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1월 17일,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 시장선거에서 공산당, 사민당, 사회대중당과 연립추천한 자기미 후보가 현직 시장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보수적인 오키나와 4구 내의 최대도시에서 보수계 현직 시장을 낙선시키고 혁신계 후보를 당선시킨 것으로, 호헌파 연합이 2021년 첫 선거를 기분좋게 시작하게 되었다.
- 1월 20일, 제3차 보정예산 심의와 관련하여, 정부안에서 고투 트레블 예산으로 배정된 6억엔을 삭감하는 대신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영세 사업자를 지원을 늘리고, 추가롤 8조원 가량의 국채를 발행해 추가 예산을 확보, 의료기관과 궁핍 세대 지원하자는 당 자체 개편안을 마련하여 제시하였다.#
- 2월 24일, 코로나19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계층에 한정하여 1인당 10만엔씩 지원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당 자체 계산으로는 전국 약 2,700만명 대상으로 2조 7천억엔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가을에 있을 49회 중원선을 대비해 당원 수를 현재 4만명의 2배 이상인 10만명으로 늘리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국회의원은 1인당 300명, 지방의원은 1인당 30여명 모집을 목표로 하기로 했는데, 여전히 당 지지율이 침체된 상황에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대외 활동이 제약되어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3월 21일, 치바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추천한 구마가이 도시히토 후보가 자민당의 추천을 받은 세키 마사유키 후보를 압도적인 격차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당 통합의 효과를 보았다. 2021년 들어 각종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의 부진과 입민당 등 호헌파 야당 연합의 약진이 반복되고 있다.
- 4월 25일, 2021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중의원 홋카이도 2구에 공천한 마쓰키 겐코 후보와 참의원 나가노현 선거구에 공천한 하타 지로 후보[24] , 참의원 히로시마현 선거구에서 지지를 표명한 미야구치 하루코 호헌파 단일 후보가 각각 자유민주당 공천 혹은 지지 후보를 꺾고 당선에 성공했다. 이로서 보궐선거를 압승으로 끝낸 입헌민주당은 곧 있을 49회 중원선에 있어 유리한 입지를 확보한 상태가 됐다.
- 7월 4일, 2021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여론조사에서의 20석 넘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5석에 그쳤지만, 공산당과의 야권 연대를 통해서 일부 의석을 도민F, 자민으로부터 빼앗았다는 점에서 야권 연대는 유지 될 것이라 보인다.
- 8월 22일, 2021년 요코하마시장 선거에서 입헌민주당, 사회민주당, 공산당에서 추천한 야마나카 다케하루 후보가 스가 총리의 측근인 오코노기 하치로 후보와 자민당 시의원들의 추천을 받은 현 시장 하야시 후미코 시장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호헌야당은 또 한번의 승리로 차기 중의원 선거의 유리한 입지를 다시 한번 확실히 했다.
-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인기 하락과 함께 선거에서 연승을 거두며 기세를 높여가고 있었지만, 9월 17일부터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로 국민들의 관심이 갑자기 몰리면서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그전까지 의석수 확대를 장담하던 지도부들도 일단은 총선 공약을 선제적으로 발표하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자신감이 떨어진 상황이다.
- 10월 31일, 결국 49회 중원선에서 입헌민주당은 참패했다. 출구조사 예측치 평균이 120-130석 수준인 것도 목표치인 160석에 크게 미달하는데, 개표 결과는 100석에도 못 미치는 96석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단 상기했듯 낮은 지지율을 보였던 스가 요시히데가 임기만료로 퇴임하고 기시다 후미오가 새 총리가 되면서 자민당이 허니문 효과를 얻었고, 그 외 공산당, 사민당, 무소속 후보 등과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단일화 대상에 공산당이 합류해 공산당에 반대하는 도요타, 혼다, 닌텐도, 미쓰비시, 교세라, 소니, 일본금융노조 등 일본 대형 노동조합들이 입헌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기 때문도 커보이며 이들 대형 노동조합은 대부분 일본 유신회나 국민민주당, 심지어 자유민주당에 투표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 결국 에다노 유키오 대표와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이 11월 2일 사퇴 의사를 밝히며 지도부 총사퇴가 이루어졌다. 에다노 대표는 11월 10일, 총리지명투표를 위해 열리는 특별국회 종료후에 사임하기로 했으며 이후 새 대표를 선출하기위한 선거 체제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 차기 대표 선거와 관련하여 당원들도 선거에 참가하는 형태[25] 로 11월 19일 고시하고 30일에 투·개표하는 일정으로 최종 조정에 들어갔으며 12일에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 중원선 패배 후 지지율 급락이 우려되었으나 에다노 유키오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가 과거 민주당 지도부와 달리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깔끔하게 사퇴하고 빠르게 후임 대표 선거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지지율이 오르고 모처럼만에 미디어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저널리스트 타자키 시로는 이런 현상을 두고 "자민당 총재 선거가 축제 준비, 중의원 선거가 축제라면 입헌민주당의 대표선거는 축제 후 불꽃놀이"라고 평론하기도 했다.
- 전당대회에서 결선 투표 끝에 오사카 세이지 의원을 누르고 이즈미 겐타 의원이 신임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이즈미 대표는 자신과 대표 선거에서 싸웠던 오사카 세이지 의원을 대표대행으로, 니시무라 지나미 의원을 간사장으로, 오가와 준야 의원을 정무조사회장 및 국회대책부위원장으로 임명하며 계파를 안배했다.#
- 이즈미 겐타 대표는 같이 대표 선거에서 싸웠던 후보들을 당 지도부에 임명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전면에 내세우면서 당내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각종 연설회, 동영상에서 같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2021년 12월 24일 새로 발표한 포스터에도 3명의 후보가 같이 등장할 정도다. 포스터의 슬로건도 "자, 힘을 합쳐서"로 당내 화합을 중요시하려는 이즈미 대표의 모습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5.4. 2022년[편집]
- 제49회 총선에서 진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총괄안에서 공산당과의 제휴가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해 향후 전체적인 전략의 재검토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6월 2일, 입헌민주당이 참원선 패배 이후에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나가츠마 아키라 前 후생노동대신이 오카다 가쓰야, 노다 요시히코 등 민주당 칠봉행(民主党七奉行)[26] 의 지지를 받고 차기 당대표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계속 나온다.#
- 6월 8일, 저녁 호소다 히로유키 중의원 의장 불신임안과 제2차 기시다 내각에 대한 내각 불신임안도 제출했다.
- 6월 9일, 호소다, 기시다 불신임안이 자민, 공명의 반대 다수로 부결되었다. 입헌민주당 입장에서도 실제 가결을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참원선을 앞두고 선명 야당을 강조하며 야권 지지층의 단결을 호소할 목적으로 불신임안을 연속으로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 7월 10일, NHK가 발표한 참원선 출구조사에서 30석을 획득하는 것으로 나타나 선거 전보다 의석수가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개선 의석 17석으로 이전 대비 6석이 감소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이번 선거의 승부처였던 1인 선거구에서 2석 확보(아오모리현, 나가노현)에 그친 것이 패인으로 꼽힌다. 또한 그간 야당의 방파제 역할을 해줬던 도호쿠에서도 야당 분열의 영향으로 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 선거 패배 후 이즈미 겐타 대표는 최선을 다했다고 발언한 뒤 당의 재건에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을 나타냈는데, 사실상 사퇴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 7월 14일,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이 주관한 회의에 참석해 “국민에게 알기 쉬운 여당과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야당 측의 사명이다”며 앞으로의 선거에서 야당 후보자 단일화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8월 26일, 이즈미 겐타 대표는 집행부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에 집행부 경험이 있는 베테랑 의원들을 중심으로 요직에 기용했다.#
- 간사장을 니시무라 지나미에서 오카다 가쓰야 전 부총리로 교체하고, 니시무라 지나미 의원은 대표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 기존 대표대행이었던 오사카 세이지는 유임되어, 대표대행은 니시무라 지나미와 오사카 세이지의 2인 체제로 정해졌다.
- 국회대책위원장은 마부치 스미오 전 국토교통대신에서 아즈미 준 전 재무대신으로 교체되었다. 아즈미 준 신임 국회대책위원장은 에다노 유키오 지도부 시절에도 국대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는 인물로 이즈미 겐타 2기 지도부에서도 재기용되었다.
- 정무조사회장은 나가츠마 아키라 전 후생노동대신이 맡게 되었다. 나가츠마 아키라 신임 정조회장도 구 입헌민주당 시절에 정무조사회장을 맡은 적이 있어, 이번에 재기용되었다.
- 8월 31일, 2023년 통일지방선거에서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連合)와 협력하기로 했다.#
- 9월 13일,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은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에게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한 법적 근거와 비용을 묻는 질문서를 제출하고 9월 15일까지 답변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회의 관계에 대한) 조사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장을 행하려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즈미 겐타 대표는 "정부의 방침에 변화가 없다면 (국장) 출석은 어렵다"고 밝혀, 제1야당 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국장이 진행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12월 1일, 히라카와초에 위치한 기존 당 본부를 민주당 시절부터 사용해왔던 미야케자카 빌딩으로 주소지를 완전히 이전했다.
5.5. 2023년[편집]
- 2월 19일, 도쿄도 내에서 신년 당대회를 열고 다가올 통일지방선거에서 45세 이하 청년 의원 50명 증가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요시노 토모코 회장도 내빈으로 참석했다.#
- 3월 22일, 집권 자민당이 주도하는 일한의원연맹과는 별개로 '일한우호의원연맹'을 설립했다. 이외에도 2023년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에 대한 독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 4월 9일·4월 23일, 제20회 통일지방선거와 2023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당의 향후 행보에 빨간불이 커졌다. 現 이즈미 집행부 체제가 유지될 경우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이 일본유신회로 교체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언론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 5월 15일, NHK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일본유신회에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유신회는 6.7%, 입헌민주당은 4.2%가 나와 2.5%나 밀리는 것으로 나왔다. 다음 선거에서 제1야당의 지위를 뺏길 위기가 더 높아졌다.
- 6월 9일, 당내 보수파 의원인 마쓰바라 진 前 국가공안위원장이 입헌민주당을 탈당했다.#
- 6월 12일, NHK 여론조사에서 지난 달에 이어 또 일본유신회에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유신회는 6.2%, 입헌민주당은 4.1%로 격차는 좁혀졌으나, 지지율 자체는 떨어졌다.
- 7월 10일, NHK 여론조사에서 세 달째 일본유신회에 밀리는 결과가 나왔으나 격차는 더 좁혀 유신회 5.6%, 입헌민주당 5.1%로 지지율도 1% 올랐다. 이는 마이넘버카드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결과라 할 수 있다.
- 8월 14일, NHK 여론조사에서 네 달째 일본유신회에 밀리는 결과과 나왔으나 유신회에서 온갖 사건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유신회 4.8%, 입헌민주당 4.7%로 격차가 0.1%로 좁혀졌다.
- 9월 11일, NHK 여론조사에서 다섯 달째 일본유신회에 밀리는 결과가 나왔으며, 이번엔 다시 지지율 격차가 벌어져, 유신회 5.8%, 입헌민주당 4.0%로 집계됐다. 다만 한가지 유의할 점은, 애초에 다수의 일본 여론조사는 자민당을 제외하면 샤이층이 많기 때문에 여론조사상 부동층으로 잡히는 유권자가 어느 당에 투표할지는 선거 가보기 전까진 정확히 알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당장 유신회나 입민당이나 이 여론조사에선 5% 내외로 찍히지만 실제로 선거날이 오면 기본 10~20% 이상은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 10월 10일, NHK 여론조사에서 오랜만에 일본유신회에 앞서는 지지율이 나왔다. 입헌민주당 5.3%, 일본유신회 4.9%로 집계됐다.
- 12월 11일, 이즈미 겐타 대표가 자민당의 정치자금 문제를 두고 오는 12일에 국회에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 12월 11일, NHK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7.4%를 기록하며 반등했다. 이는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추락하며 제1야당으로서 반사이익을 어느 정도 얻은 것으로 보인다.[27]
- 또한 FNN조사 여론조사에서 차기총리 여론조사에서 이즈미대표가 0.1%의 지지를 얻은 바바 유신회 대표와 비교되는 1.4%를 얻어 체면치레를 했다.
- 12월 13일 기시다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중의원에 제출을 결의했고 국민민주당과 유신회도 찬성의 입장을 보였다.기시다 총리는 중의원 해산에 명확한 답을 내지 않고 여지를 남겨뒀다.
6. 계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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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 성향[편집]
입헌민주당은 개헌에 긍정적[28] 인 현 당 대표 이즈미 겐타의 신정권연구회, 노다 요시히코의 화제회가 당 내 보수파를 맡고 있고, 개헌에 부정적인 호헌파 에다노 유키오, 간 나오토 등의 나라의 모습 연구회, 구 일본사회당 출신 인사로 구성된 생추어리가 당 내 진보파를 맡고 있다.
한편, 비주류 계파로는 완전히 좌익적 성향을 띄는 사회민주주의 포럼, 구 호소노 고시 계파였고 현재는 집단지도체제 비슷하게 운영되는 중도 성향의 자서회, 마에하라 세이지의 구 료운카이 소속, 오자와 이치로 그룹이 있다.[29]
입헌민주당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원들은 에다 겐지, 와타나베 슈, 류 히로후미, 겐바 고이치로 등이 있는데 이들은 당 주류는 아니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중도 내지 중도우파라 본다. 반면, 쓰지모토 기요미, 요시다 다다토모 등 중도좌파 ~ 좌익 성향으로 평가받는 의원들도 있다.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하위 조직인 아시아자유민주연맹의 옵저버로 참여할 정도로 자유주의 스탠스를 분명히 하고 있는 정당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30]
사회자유주의 정당답게 성소수자 권리 문제에서도 친화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LGBT 권리 단체들과 적극 연대하고 있으며 동성결혼 제도화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또한 부부별성을 지지하는 의원들도 많으며, 자민당에 비해 보다 친 여성, 친 환경적 사회 정책을 표방한다.
한편, 외교적으로는 자유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둘기파에 가까운 스텐스를 취하고 있으나 이것도 파벌에 따라 케바케라서 자민당 강경파와 별 다를바 없는 대외관을 가지는 의원들도 생각보다 꽤 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입헌민주당은 하토야마 유키오의 아시아주의 성향도 있고, 또 더 이전 20세기 시절에는 소련, 중국 등에 대한 친공 노선을 취한 일본사회당에서 온 세력도 일부 있어서인지[31] 친중, 친한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8. 한국에 대한 시각[편집]
일본사회당, 자민당, 국민신당, 일본신당, 신당 사키가케, 신생당 등 여러 정당 출신의 인사들로 구성되어있고 계파도 다양하기 때문에 한국, 그리고 기타 국제 외교 노선도 다양한 편이다.
간 담화를 발표한 간 나오토와 같이 한국과 원만한 관계를 추구하는 계파인 나라의 모습 연구회도 있고, 더 나아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진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일본사회당 출신의 혁신 계열 인사들이 주축이 된 생추어리라는 계파도 있다.[32] 그런가하면 류 히로후미, 하라구치 가즈히로, 노다 요시히코처럼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긍정적이고 과거사 인식이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이는 우익 계열의 인사들도 있다.[33] 심지어 겐바 고이치로처럼 한국을 원색적으로 비난[34] 하는 인물도 있다.[35]
그래도 일단 자민당에 비하면 헌법 9조 개정반대에 적극적이고 평화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는 반한적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반한은 영향력이 적은 민주당 보수파들이 주로 보이고 있다. 또 그 보수파도 자민당 보수방류 강경파들에 비하면 반한 성향은 약한 편이다. 이즈미 겐타 대표, 아즈미 준 국회대책위원장, 에다 겐지 前 대표대행 등 입민 보수파 의원들 대다수는 친한은 아니지만, 최소한 혐한이라기보다는 한국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에 가깝고, 류 히로후미 같은 우익 ~ 극우 성향 의원들도 2020년대에 들어서는 중도화되는 추세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에서는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외교를 악용한다며 아베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주류였다.
반면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진보, 리버럴 성향에 가깝다고 알려진 에다노 유키오 전 대표도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한국 입장을 대변하는 식의 개념에는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36] 그래서 일본의 정치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우익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은 입헌민주당보다 일본공산당을 더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확실히 일본 사회가 21세기 들어 넷우익 등이 설치며[37] 역사수정주의 사관이 심해지긴 했는지, 비록 입헌민주당이 민주당-민진당의 '당내 좌파' 계열이 주축이 된 정당이라 사회경제적으로 좌경화 되었다고는 해도, 이 부분에선 하토야마 유키오 시절 민주당 시기보단 훨씬 우경화된 경향이 있다.[38] 가령 2023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입헌민주당 당 대표 이즈미 겐타는 초계기 문제와 평화의 소녀상 관련한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입헌민주당은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고 한다.#[39] 심지어는 강원도 평창에 민간에서 아베 전 총리로 연상된다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남성이 소녀상에 무릎 꿇는 동상을 세웠는데, 당시 입헌민주당 측에서[40] 조형물을 설치한 한국 정부가 식물원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거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일본 언론에서도 지적하듯이 2015년 위안부 합의에서 소녀상에 대한 해결은[41] 일본 대사관 근처의 소녀상에 국한된 것으로 상이 설치된 곳은 사립 식물원이기 때문에 정부에 철거 운운할 사안도 아니다.# 어쨌든 분명히 정도 차는 있지만, 마쓰바라 진같이 강제징용 등 역사적 사실을 공개 부정하는 의원들도 있으므로# 비자민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역사 수정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착각은 하지 말자.
한편, 일본 내 리버럴 진영에서 반한 내지 혐한 정서가 강해진 계기 중 하나가 2022년 통일교 게이트인데, 넷우익들이 반한이라고 떠받들던(?) 자민당 아베 세력이 정작 알고보니 한국 (사이비, 이단 취급도 제법 받는) 종교단체인 통일교와 과거부터 제법 깊게 연계되어 있었는데다가, 통일교가 일부 일본인들에게 접근해서 종교에 심취시켜 사회와 분리시키거나 갈취 행위를 했다는[42] 정황도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통일교 문제로만 퉁치기엔 일본 리버럴들의 대한민국 외교관의 변화를 다 설명할 수는 없고, 통일교 게이트 이전부터 일본 사회에서 점점 패권적 내셔널리즘 정서가 심해진 문제도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통일교 게이트가 일본 리버럴 진영의 반한 정서를 키운 것도 부분적으로 사실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