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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지역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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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스위스와 우루과이는 각각 개최국과 전 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예선을 치르지 않고 본선에 직행했다. 이 두 팀을 제외한 나머지 본선 진출 14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의 본선 진출권 배당은 아래와 같았다.
지난 대회 예선에 이어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이 통째로 예선의 한 조가 되었다.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은 1884년부터 1984년까지 열렸던 영국 홈네이션 4개국 간의 축구 대회로 원래는 순수한 자기네들끼리의 대회였지만 FIFA의 배려로 인해 여기에서 1, 2위 팀이 1954년 월드컵 본선권을 갖게 되었다. 잉글랜드가 3승으로 조 1위, 스코틀랜드가 1승 1무 1패로 조 2위를 차지하여 본선에 진출했다.
프랑스가 4승으로 쉽게 진출했다. 룩셈부르크는 4패 1득점 19실점으로 광탈하며 승점자판기의 오랜 역사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덴마크가 기권하였다. 오스트리아가 홈에서 포르투갈을 9:1로 떡실신시키고 원정에서 비기며 본선에 합류했다.
네덜란드가 기권하였다.
당시에는 골득실 규정[3] 이 없어 중립 지역인 로마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70년대 이후였다면 골득실로 스페인이 본선에 올랐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개념이 없던 관계로 중립국 이탈리아에서 3차전을 치뤘는데 2:2 무승부를 기록, 동전 던지기(…)로 터키가 승리했다.
폴란드는 내부사정으로 기권, 헝가리가 한 경기도 안치루고 본선에 진출했다. 사실 폴란드로서는 하필 세계최강 헝가리와 같은 조에 걸렸으니 본선 가능성이 낮은 편이었다.
1950년 월드컵을 자기네들이 아닌 브라질이 개최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아르헨티나는 이번에도 불참을 선언했다. 페루가 기권하여 나머지 3개국간 리그가 치러졌고, 지난 대회 준우승한 브라질이 나머지 팀들을 압살하며 본선에 진출했다.
세계축구선수권대회라 칭하고 '쥘 리메 컵 1954' 라고 명명하였다.
중화민국이 내부사정으로 기권, 한국과 일본간의 경기만이 치러졌다. 최초의 공식 한일전. 경기는 홈&어웨이가 원칙이었으나, 당시 일본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두 경기를 다 일본 도쿄에서 치러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 이때, 한국 대표팀은 만약 패한다면 귀국하지 않고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결사의 각오로 경기를 치렀고, 결국 2경기에서 1승 1무로 일본을 완파하고 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로서 최초로 아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된다.[4][5]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최초의 한일전이었던 1954년 3월 7일 경기에서 한국이 5:1로 승리는 했으나 후반전 득점선수에 대해 한일 양국, 국내로 좁히면 각 신문사마다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에 출전했던 선수는 모두 세상을 떠났으며 관련 자료도 남아 있는 것이 부족하기에 당시 첫 한일전의 득점자에 대해 정확히 밝히는 일이 상당히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1. 진출권 배당[편집]
스위스와 우루과이는 각각 개최국과 전 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예선을 치르지 않고 본선에 직행했다. 이 두 팀을 제외한 나머지 본선 진출 14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의 본선 진출권 배당은 아래와 같았다.
2. 예선[편집]
- 순위표에서 이름이 굵은 글씨로 적힌 팀은 본선에 진출한 팀을 의미한다.
- 1, 2, 4, 5, 6, 8, 10조는 3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7, 9조는 2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3조는 4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와 조 2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11조는 4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12조는 3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13조는 3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2.1. 1조(유럽)[편집]
서독은 3승 1무 12득점 3실점의 우월한 실력으로 손쉽게 본선에 올랐다. 지난 대회에서는 협회결성이 늦어서 예선조차 치르지 못했던 자를란트는 노르웨이에 1승 1무를 거두며 선전했으나 서독에 탈탈 털리며 탈락. 그리고 이 예선이 자를란트 축구대표팀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이후 자를란트는 2년 뒤 정식으로 서독에 편입되면서 대표팀도 사라졌다.
2.2. 2조(유럽)[편집]
2.3. 3조(유럽)[편집]
지난 대회 예선에 이어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이 통째로 예선의 한 조가 되었다.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은 1884년부터 1984년까지 열렸던 영국 홈네이션 4개국 간의 축구 대회로 원래는 순수한 자기네들끼리의 대회였지만 FIFA의 배려로 인해 여기에서 1, 2위 팀이 1954년 월드컵 본선권을 갖게 되었다. 잉글랜드가 3승으로 조 1위, 스코틀랜드가 1승 1무 1패로 조 2위를 차지하여 본선에 진출했다.
2.4. 4조(유럽)[편집]
프랑스가 4승으로 쉽게 진출했다. 룩셈부르크는 4패 1득점 19실점으로 광탈하며 승점자판기의 오랜 역사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2.5. 5조(유럽)[편집]
덴마크가 기권하였다. 오스트리아가 홈에서 포르투갈을 9:1로 떡실신시키고 원정에서 비기며 본선에 합류했다.
2.6. 6조(유럽)[편집]
네덜란드가 기권하였다.
당시에는 골득실 규정[3] 이 없어 중립 지역인 로마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70년대 이후였다면 골득실로 스페인이 본선에 올랐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개념이 없던 관계로 중립국 이탈리아에서 3차전을 치뤘는데 2:2 무승부를 기록, 동전 던지기(…)로 터키가 승리했다.
2.7. 7조(유럽)[편집]
폴란드는 내부사정으로 기권, 헝가리가 한 경기도 안치루고 본선에 진출했다. 사실 폴란드로서는 하필 세계최강 헝가리와 같은 조에 걸렸으니 본선 가능성이 낮은 편이었다.
2.8. 8조(유럽)[편집]
2.9. 9조(유럽)[편집]
이집트는 처음으로 유럽 예선에 나왔다. 시리아나 레바논도 그렇고 이집트도 유로바스켓 같은 대회에 참가하던 적도 있듯이 아프리카 및 아랍지역 나라로서 당시 유럽 대회나 예선에 나올 수 있었다.(정확하게 당시에는 아프리카 축구협회나 지역 스포츠 협회가 없었기에) 그리고 1:2, 1:5로 털리며 탈락했다.
2.10. 10조(유럽)[편집]
2.11. 11조(남아메리카)[편집]
1950년 월드컵을 자기네들이 아닌 브라질이 개최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아르헨티나는 이번에도 불참을 선언했다. 페루가 기권하여 나머지 3개국간 리그가 치러졌고, 지난 대회 준우승한 브라질이 나머지 팀들을 압살하며 본선에 진출했다.
2.12. 12조(북아메리카)[편집]
2.13. 13조(아시아)[편집]
세계축구선수권대회라 칭하고 '쥘 리메 컵 1954' 라고 명명하였다.
중화민국이 내부사정으로 기권, 한국과 일본간의 경기만이 치러졌다. 최초의 공식 한일전. 경기는 홈&어웨이가 원칙이었으나, 당시 일본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두 경기를 다 일본 도쿄에서 치러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 이때, 한국 대표팀은 만약 패한다면 귀국하지 않고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결사의 각오로 경기를 치렀고, 결국 2경기에서 1승 1무로 일본을 완파하고 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로서 최초로 아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된다.[4][5]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최초의 한일전이었던 1954년 3월 7일 경기에서 한국이 5:1로 승리는 했으나 후반전 득점선수에 대해 한일 양국, 국내로 좁히면 각 신문사마다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에 출전했던 선수는 모두 세상을 떠났으며 관련 자료도 남아 있는 것이 부족하기에 당시 첫 한일전의 득점자에 대해 정확히 밝히는 일이 상당히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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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키와 이스라엘, 시리아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지만 거리상으로는 유럽과 더 가깝기 때문에 유럽 지역 예선에 집어넣었다. 당시 시리아를 제외한 중동 국가들이 월드컵 예선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더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터키와 이스라엘은 현재에도 유럽 지역 예선을 통해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다.[2] 1. FC 뉘른베르크의 홈구장 막스 몰록 슈타디온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3] 1974 FIFA 월드컵 서독에 가서야 이 규정이 도입되었다.[4] 주권 국가라는 것을 명기한 이유는 193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가 본선 진출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전 대회인 1950년 월드컵에는 인도가 진출할 예정이었으나 대회 전에 기권하였다.[5] 1938년에는 아시아 예선 그룹에 동인도와 일본만 포함되었지만 일본이 기권해 동인도가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한 관계로, 아시아 예선에서 경기를 치러 통과한 것도 역시 대한민국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