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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칠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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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계 칠레인(스페인어: Japonés Chileno, Nipo-chileno)은 일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칠레 시민이다.
2. 이민사[편집]
칠레에 이주한 일본인의 수는 1875년 인구조사에서 2명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처음이지만,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1910년부터 1940년까지 이주한 일본인 는 900명을 만족시키지 않았다. 입국해 칠레에 살기 시작 일본인이 된 일본으로부터의 이주자는 페루 등의 인근 국가에서 재이민한 노동자부터 사업가까지 그 직종은 폭넓게 다양했다. 일본계인은 질산염이 풍부한 북부에서는 인구가 적게 고립될 가능성도 있었고, 대부분은 중남부 지역의 도시인 산티아고 데 칠레와 발파라이소에 끌려갔다. 그래서 일본인은 급여노동자로서 다양한 직업을 발견했다. 특히 소규모 사업 관계자나 이발사가 된 사람이 많았다. 덧붙여 초기 칠레의 일본계 커뮤니티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대다수의 일세는 칠레인 여성과 결혼했다. 그들의 아이인 2세는 “만약 칠레에서 살면 칠레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조를 분발하게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것은 반일 감정을 자극해 일본계의 칠레 사회에의 통합을 방해했다. 1943년 초에 많은 일본계 칠레인들이 전략적 요지(구리광산 등)에서 내륙부로 이동되었다. 동시에 일본계 커뮤니티는 강력한 통합과 전시 중 반일 감정에 직면했을 때 상호부조를 했다. 이러한 제휴는 전후 일본계 자선사회조직(Sociedad Japonesa de Beneficencia)으로 되살아났다.
2.1. 발파라이소 일본 축제[편집]
전후, 1990년대까지의 사이에 일본계 칠레인은 중류 계급이 되어, 높은 교육 수준과 화이트 칼라 노동자가 되어 갔다. 칠레의 모노컬처적이지만 안정된 경제도 반영하고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일본계인의 경향에 반하여 칠레에서는 일본계인의 불과 5% 이하가 일본에 벌어들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계의 커뮤니티가 단결이 부족한 소규모라는 점과 타인종과의 혼인의 추가 증가가 일본계 칠레인의 미래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00년대부터는 칠레의 제5주 발파라이소에서 발파라이소 일계인 협회(Corporación Nikkei Región de Valparaíso)가 설립되어 차세대 일본인을 메인으로 일본과 칠레의 가교가 되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매년 항례의 발파라이소 일본 축제(참가자 4000명 초과), 국립정원에서의 꽃놀이(참가자 5000명 초과)는, 일본계인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 흥미를 가지는 칠레인도 섞어 성대하게 접대된다.
3. 종교[편집]
대부분의 일본계 칠레인은 가톨릭교도이며 나머지는 불교도나 신토주의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