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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요시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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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現 내각관방장관으로, 1995년부터 2021년까지 약 26년 동안 야마구치현 선거구[1] 의 5선 참의원 의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야마구치현 제3구 중의원 의원으로 전업. 방위대신, 경제재정정책담당대신, 농림수산대신, 문부과학대신, 외무대신을 지냈다.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 출신이라 친중파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외무대신 취임 이후에는 세이와 정책연구회를 인식한 탓인지 비교적 친한, 친중의 색채는 내지 않고 있다.
2. 생애[편집]
1961년 도쿄도에서 통상산업성 관료 하야시 요시로의 장남으로 출생. 정치인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서깊은 시모노세키의 지역 재벌이자 세습 정치가이다. 그의 집안은 1700년대부터 지역에서 부를 축적했으며 특히 고조부 대부터는 지역을 대표하는 실업가 집안이 되었다.
1970년 아버지의 중의원 의원 선거 출마에 따라 본적지인 시모노세키시로 귀향하여 시모노세키시립 분칸 초등학교와 닛신 중학교, 지역 명문고인 야마구치현립 시모노세키니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80년 도쿄대학에 진학, 1984년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쓰이물산에 입사하였다. 물자부 담배과에 배속되어 외국의 산업 현장을 여럿 다녔다. 이후 1989년 미쓰이를 퇴사하고 가문 소유의 버스회사인 산덴 교통 총무과에 입사하여 사장 비서를 지냈다.
1990년 역시 가문 소유 회사인 야마구치합동가스로 옮겨, 공무과에서 가스 공사에 종사했다. 그 해 배우자인 유코와 결혼하였고 이듬해에 하버드 대학교 특별연구생으로 도미하여 스티브 닐(Stephen L. Neal) 연방하원의원의 은행위원회 스태프, 윌리엄 로스(William V. Roth Jr.) 연방상원의원의 국제문제 어시스턴트로 근무했다.
1992년 9월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의 경력자 전용 행정학 석사과정(MC/MPA, 1년 과정)에 입학하였으나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가 대장대신에 임명됨에 따라 1993년 2월 일시 휴학후 귀국하여 대신 정무비서관을 지내고 1994년 2월 하버드대에 복학, 이 해 5월에 장녀 아츠코가 태어났다. 이후 1994년 6월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계에 케네디스쿨 동문으로 모테기 도시미쓰, 가미카와 요코, 미야자와 요이치, 다마키 유이치로, 고바야시 다카유키 등이 있다.
일본으로 귀국하여 1994년 8월부터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의 비서를 맡았으며 1995년 7월 치러진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야마구치현 지역구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9년 10월 오부치 제2차 개조내각 하에 대장성 정무차관이 되었고, 2001년 7월 재선에 성공, 2004년 10월부터 참의원 외교방위위원장을 지냈다. 2006년 9월부턴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의 내각부 부대신을 지냈다.
2007년 7월 3선에 성공하였고 참의원 예산위원회 필두이사를 맡는다. 2008년 8월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입각[2] 하나 후쿠다 야스오 퇴진으로 한 달만에 하마다 야스카즈에게 대신직을 인계하고 물러난다. 2009년 7월 아소 내각에선 경제재정정책담당대신으로 입각하나 이번엔 정권 교체로 한 달만에 물러난다.
자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는 2009년 10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대리 겸 참의원 정책심의회장, 2010년 참의원 의원회 부회장, 그림자 내각의 재무대신 겸 당 재무금융부회장, 그림자 내각 내각관방장관 등을 맡는다.
2012년 9월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나 참의원 의원이라는 한계로 당선 가능성이 애초에 적었고 최하위로 낙선한다.[3]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에 따라 농림수산대신에 취임하였다.
2013년 7월 4선에 성공하였고 2015년 2월 제3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다시 농림수산대신에 임명된다. 이후 10월에 모리야마 히로시에게 인계하고 물러났다. 2017년 8월 제3차 아베 신조 제3차 개조내각에선 문부과학대신에 임명되었다. 이처럼 외무대신 이전에도 방위대신, 경제재정정책담당대신, 농림수산대신(2회), 문부과학대신 등 무려 5회나 입각하는 등 중용되었다.
2019년 10월엔 참의원 헌법심사회장을 맡는다.
2021년 야마구치현 제3구 중의원 의원으로의 전업을 천명하여 가와무라 다케오 의원과 갈등이 있었지만 하야시 의원은 지역 기반이 아주 강한 편이었기에 지역 조직을 모두 가와무라 의원에게 등돌리게 만들고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어 가와무라 의원의 지역구를 뺏는데에 성공했다. 물론, 굉지회 회장인 기시다 후미오가 총재가 된 것이 결정타였다.
허나, 야마구치현은 제50회 중의원 총선에서 선출 정수가 한 명 줄어드는 것이 확정되었고 현재 야마구치 3구와 야마구치 4구가 인구 하한선에 근접해있어 사실상 두 선거구가 합쳐지는 방향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질 것이 유력하다.
그래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차기 총선 선거구를 갖고 경쟁할 것처럼 보였다. 아베 신조의 지역 기반이 나가토이고 아베 신조 개인의 지지세가 강하고 하야시 외무상은 중의원 기준 초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야시 가문과 아베 가문의 경쟁 구도도 주목을 받았다.[4]
그러나 아베 신조가 피살을 당해 사망함으로써 야마구치현 제4구 의원이 공석이 되었고, 아베 가문의 정치도 끝을 맞았기에 지역구 경쟁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다. 아베 신조는 자식이 없고, 아베 신조의 남동생인 기시 노부오는 이미 야마구치현 제2구[5] 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기시 노부오나 아베 히로노부의 아들, 즉 아베 신조의 조카들은 현재 정치에 입문한 적이 없고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 물론 아베 신조의 모친인 아베 요코는 아베 히로노부의 아들이 후계자가 될 거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만약 아베 히로노부의 아들이 나온다면 하야시 외무상에게 압박이 될 수 있지만 아베 신조보다는 부담이 적다.
하반기에 치러질 2022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야마구치 4구 후보로 나서는 게 아베 가문 일원일지, 아님 그냥 마지막 땜빵을 할 국회의원 수준일지를 보면 향후 하야시에게 예정된 경쟁을 예상할 수 있다.[6]
2.1. 외무대신 시절[편집]
2021년 11월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마리 아키라가 현직 자민당 간사장으로서 최초로 소선거구에서 낙선하는 망신을 당하여 사임 의사를 밝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후임 간사장에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을 지명하였다. 그리고 모테기 외무대신의 후임에 본인 파벌 굉지회의 2인자인 하야시를 기용할 의사를 밝혔다.
2021년 11월 10일 제2차 기시다 내각 발족에 따라 정식으로 임명되었다. 기시다 총리가 외무대신으로 기용하면서 몸값을 높여준터라 하야시로서는 그야말로 '지는 해'인 아베 전 총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얻은 셈. 반면 아베 전 총리는 이런 결정에 노발대발하면서 그간의 태도를 바꿔 직접 파벌 영수로 취임하는 등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 간의 갈등이 하야시 외무상을 통해 폭발할 가능성도 크다.[7]
우선 전임 외무상이기도 한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이 아베 전 총리와 아소 전 총리에게 전화를 해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하야시 외무상이 2017년부터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8] 을 맡고 있는 점 때문에 중일관계에 대하여 국제사회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결국 중국 정부에 외무대신으로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직을 사임할 의사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사절로 첫 방한이 결정되었으며,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2022년 12월 25일, TV도쿄와의 인터뷰에서 "(총리가 되고 싶다는) 내 의지를 계속 갖고 나갈 것"이라며 차기 총리직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그런데 2023년 9월 개각을 통해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내각이 출범하면서 직에서 물러났다. 후임은 가미카와 요코 전 법무대신. 원래 개각 직전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고, 곧 뉴욕 UN 총회 등 외교 행사도 잇달아 있어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거기다 다른 주요 보직으로 이임되지도 않으면서 굉장히 이례적으로 내각에서 방출되었는데, 니혼게이자이 신문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과거 총재 선거 출마 경력이 있는 하야시 전 외무상을 주목받는 자리에서 제외하고 싶었다는 분석이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일본 소식통 역시 "하야시 전 외무상이 총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하면서 기시다 총리가 그를 라이벌로 여겼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2023년 하반기 들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소위 '위험수역'으로 분류되는 20%대까지 다시 추락한 상황이라 내년에 있을 총재 선거에서 경쟁 상대로서의 위기감이 앞섰을 것이란 것.
2.2. 관방장관 시절[편집]
2023년 12월 14일 전임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자민당 아베파 내에서 불거진 정치자금 문제로 교체되면서, 외무대신에서 물러난지 3개월 만에 내각에 복귀했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바닥을 찍는 위기 상황에서의 개각이기도 하고 하마다 야스카즈 등 여러 사람이 고사한 끝에 돌아온 자리라 길게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관방장관에 관방부장관(정무) 2명까지 싹 다 굉지회 출신으로 채워졌음에도 그에 대한 견제보단 침몰하는 기시다 내각과 엮이지 않고 싶다는 의견이 주류인 듯. 그래서 기시다도 고육지책으로 잠재적 라이벌인 하야시를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풍부한 각료 경험으로 위기 상황에서의 답변 능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3. 기타[편집]
-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와 비슷한 자민당 내 대표적인 정책통으로 꼽혀 여러 차례 대신직으로 입각했다. 경제재정정책담당대신 시절에도 관료들에게 '보고서의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몇 안되는 대신'이라는 매우 좋은 평판을 얻었다고 한다. 부친과 동일하게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 취미는 악기 연주(기타, 피아노 등), 골프, 테니스, 노래방이다. 2021년 G7 외무장관 회담에서 즉석으로 실력을 보여줬다.#
- 기타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다. 노래도 원래의 직업을 생각해보면 꽤 잘 부르는 편이다.
- 문부과학대신 재직중 업무시간에 관용차로 '섹시 요가'에 다녀왔다. #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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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년 임기의 참의원 의원 2명을 3년 주기로 1명씩 뽑는다.[2] 당시 47세로 역대 최연소 방위대신이다. 다만 방위청 장관으로서는 나카타니 겐이 44세에 임명되어 최연소이다.[3] 하야시가 다른 후보보다 못해서라기보다는 참의원 의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낙선한 것이다. 당시 당 내부는 "총재는 중의원 의원이 해야지. 참의원 의원이 왜 총재 선거에 나오는거임?"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이를 계기로 하야시는 중의원으로 전업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4] 아베 신조 친가도 아베 간 - 아베 신타로 외무상으로 지역 내 유지 가문이지만 외가도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형제가 있는 야마구치 내 정치인 가문이다. 그렇다보니 사실상 아베 가문과 기시 가문은 하나로 취급되기 때문에 하야시 가문보다 규모가 더 크다.[5] 이 쪽은 기시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의 지역구였다.[6] 일단 아베 전 총리의 어머니이자 정계에서 '갓 마더'라고 불리는 94세의 아베 요코 여사는 아베 가문의 간판을 내릴 수 없다는 마음이 강해 아베 전 총리의 형인 히로노부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려 한다는 소문이지만, 히로노부의 자식들 중 장남 히로토와 장녀 마리코는 정치를 할 마음이 없다는 의견이 강하다고 한다. 한편 기시 노부오도 건강이 워낙 나빠 은퇴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쪽은 장남 노부치요가 후지테레비를 퇴사하고 현재 비서로 근무 중이기에 후계도 확실하고 기시 노부오의 은퇴 선언 이후 야마구치현 제2구를 이어받게 된다. 현재로서는 요코의 기대에 부응하는 후계자가 딱히 없는 상태인데다, 보궐선거 자체도 현재 최고재판소에서 한 표의 무게에 관한 선거구 획정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기에 이 결과가 나오기 전인 올 하반기에는 없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만약 아베 가문에서 후계를 내지 않으면 야마구치 정계의 구도가 깔끔하게 개편되는 것이고, 후계를 낸다면 차기 중원선에서는 중선거구제 시절 마냥 하야시 가문과 아베 가문의 혈투가 벌어지거나, 혹은 야마구치현 제1구의 고무라 마사히로가 아버지 고무라 마사히코의 영향력도 적어진 데다 선수도 아직 적어서 비례 블럭으로 전출당하며 치워지고, 나머지 지역구를 아베 가문 + 기시 가문과 하야시 가문이 나눠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뭐든 아직은 추측인데다, 그렇게 되면 아베 - 기시 가문에서 야마구치현의 2/3을 지배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해 현재로선 알 수 없다.[7] 실제로 아베가 이 결정을 전후해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 당내 최대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회장으로 취임, 원래 있던 호소다 히로유키 회장을 중의원 의장으로 보내버린다.[8] 참고로 그의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도 해당 의원연맹 회장을 맡은 바 있어 대를 이은 친중파로 분류된다. 해당 의원연맹의 부회장은 일본공산당 위원장 시이 가즈오, 사무국장은 역시 중도파인 오부치 유코 등 전체적으로 대아시아 외교의 유화파들이 속해 있다.[9] 2021.08.16 사직 (49회 중원선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