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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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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197대 교황. 아비뇽 시대의 세 번째 교황이다.
2. 생애[편집]
베네딕토 12세는 전임자였던 요한 22세가 남기고 간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에 힘을 쏟아부었다. 교황은 요한 22세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신성 로마 제국의 루트비히 4세와 의견을 좁히지는 못했지만 우선 화해를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또한 요한 22세와의 논쟁으로 마찰을 빚은 프란치스코회와 타협을 이루어냈다. 아울러 교회 내에 만연했던 족벌주의를 타파하고 사치를 일삼고 있던 수도회를 개혁하는 데에 노력했다.
베네딕토 12세는 로마나 볼로냐로 거처를 옮기려는 계획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교황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아비뇽에 새로운 거처인 교황궁을 건설하도록 지시했다.
베네딕토 12세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 간의 통합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다.
교황이 되기 전, 민속학자이자 주교로서 프랑스 남부 지방의 카타리파를 연구하고 이단을 색출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아날학파 역사가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가 쓴 책이 바로 <몽타이유>다.
3. 지복직관 논쟁 종결[편집]
베네딕토 12세는 재위 기간 동안 신학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그중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전임 교황 요한 22세의 주장에서 비롯된 지복직관 논쟁을 종결시켰다는 것이다.
지복직관이란 쉽게 말해서 하느님을 직접 보게 되어 행복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 22세는 죄 없이 죽은 영혼은 최후의 심판을 받기 전까지 지복직관을 누릴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당시 여러 신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전임 교황과 생각이 달랐던 베네딕토 12세는 충분한 신학 탐구와 여러 신학자들과의 논의 끝에 1336년 교황 헌장 <찬양하올 하느님(Benedictus Deus)>을 반포함으로써 죄 없이 죽은 영혼은 심판 같은 절차는 필요 없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 지복직관을 누릴 수 있다고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