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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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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188대 교황.
2. 생애[편집]
13세기 중반부터 교황령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팽창주의 정책을 추진해 상당히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 과정에 프리드리히 2세는 이전 교황들과 직접적인 마찰을 빚었는데, 이로 인해 그는 교황들에게 두 차례나 파문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프리드리히 2세의 대자(代子)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가 독일왕으로 선출되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는 오랜 협상 끝에 그를 왕으로 인정했지만 황제 칭호 부여와 대관식 일정은 보류했고, 니콜라오 3세도 전임 교황의 뜻을 이행할 의향이 있었지만, 루돌프 1세가 먼저 교황청 측의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하기 전까지는 그를 황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구실로 자신이 우위를 점했다. 이에 루돌프 1세는 니콜라오 3세와 논의해 이탈리아 반도의 롬바르디아, 투시아 지역[1] 을 신성 로마 제국의 영역으로, 볼로냐, 에밀리아로마냐, 라벤나 지역은 교황령으로 귀속되는 것으로 합의했고, 니콜라오 3세는 그에 상응하여 루돌프 1세를 황제로 정식 승인했다.[2] 이로써 니콜라오 3세는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위협을 잠재우고 화친을 도모한 것과 동시에 교황권의 확립까지 이루었다.
이처럼 니콜라오 3세는 대외적으로는 외교적인 능력을 지녔고 신학적 지식이 풍부한 인물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족벌주의에 사로잡혀 여러모로 물의를 빚었다. 교황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척 세 명을 추기경으로 서임했고, 그 밖의 친족들에게도 한 명씩 중요한 보직을 부여했다. 이에 단테 알리기에리는 신곡 지옥편에서 족벌주의를 남용한 죄로 니콜라오 3세가 여덟 번째 지옥 말레볼제의 제3원으로 추락한 것으로 묘사했다.
니콜라오 3세는 휴식을 취하고자 비테르보에 머물다가 돌연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뇌졸중에 걸려 중태에 빠지다가 1280년 8월 22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