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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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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잉글랜드 버크셔 카운티의 템스강 변에 위치한 영국 왕실 소유의 성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버킹엄 궁전보다 윈저 성을 특히 더 좋아했으며,[1] 주말마다 이곳에 머물렀다. 말년에는 버킹엄 궁전 보수 공사 등의 이유로 인해 윈저 성에서 계속 거주했다. 그러나 현재 찰스 3세는 아직까지 윈저 성에서 살지 않고 왕세자 시절부터 거주하던 클래런스 하우스와 하이그로브 하우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2] 때문에 인근의 애들레이드 코티지에서 거주하고 있는 윌리엄 왕세자가 추후 윈저 성으로 거처를 옮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2. 역사[편집]
11세기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처음 요새를 세웠다. 그가 잉글랜드를 정복했을 당시 잉글랜드 내부는 불안하기 그지없어서, 북쪽으로 쫓겨난 색슨족의 반격 외에도 덴마크 등의 외침의 위협도 있었다. 윈저 성은 템스강의 강폭이 인근에서 가장 좁은 길목에 지어졌다. 상기 언급된 적들이 침공했을 때 도하를 막기 위해서였다. 처음 지어졌을 무렵에는 모트 앤드 베일리 방식의 목성이었는데, 중앙의 원기둥형 구조물이 그 흔적이다.참고
짓기는 왕실이 지었는데 땅 소유권은 윌리엄 1세의 가신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아 왕실에서 임대료를 지불했다. 이후 한참이 지난 헨리 8세 때나 되어서야 왕실이 토지를 매입함으로써 기나긴 임대를 청산했다. 어째서 진작 사지 않았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잉글랜드 왕실이 대대로 그렇게까지 부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후로 여러번의 재건과 증축을 거쳐 현재도 영국 왕실의 공식 거주지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영국 국왕을 기사단장으로 하는 가터 기사단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국왕 조지 5세는 당시 영국과 전쟁 중이던 독일 제국에 대한 국민적 반감 때문에 자신의 왕조명인 독일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란 명칭을 왕실 소유의 이 윈저 성에서 따온 명칭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영국의 왕조인 윈저 왕조이다.
성이 위치한 곳에서 템스 강의 바로 건너편에는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이튼 칼리지가 위치해있다. 이튼 칼리지가 윈저성 근처에 있는 이유는 본래 이튼 칼리지는 국왕 헨리 6세가 설립한 왕립학교를 모태로 하기 때문이다.
1992년 11월 20일 누전으로 큰 화재가 났었던 적이 있다. 예배당 조명에서 튄 전기불꽃이 커튼에 붙으며 불이 시작됐고, 화재 당시 250여 명의 소방관이 15시간 가량을 화마와 싸웠으나, 응접실, 예배당 등 115개의 방이 타버렸다. 다행히 성 내부에 있던 고가의 미술품과 가구들은 불길이 번지기 전에 모두 밖으로 꺼냈기 때문에 큰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복원에는 5년이 걸렸고 당시기준 총 3700만 파운드, 한화 약 548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소요되었다.
복원 당시 반발이 만만치 않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왕실 면세 혜택을 포기함으로써 반대를 잠재웠다고 전해진다. 비용 역시 왕실이 해결했는데, 버킹엄 궁전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버킹엄 궁전을 찾아 윈저 성을 복원할 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왕실 가족이 없는 휴가 기간, 주로 7~9월 경에는 버킹엄 궁전을 개방한다.
매년 6월에는 가터 기사단의 총회인 가터 데이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는데, 왕족을 포함한 모든 기사들이 기사단 예복을 입고 윈저 성에 모인다. 가터 데이 행사가 끝난 후에는 성 밖에서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도 하기 때문에, 매년 가터데이 행사 때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3. 세인트 조지 예배당[편집]
윈저 성 안에 설치된 예배당은 일종의 자치 교회로, 런던교구의 치리 아래에 있기는 하나 예배당에 대한 모든 권한이 주임사제(Dean)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진다.[3] 이는 본 예배당이 왕실 가족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있다는 특수성 때문인데, 캔터베리 대주교가 와도 이 성당 안에서는 주임사제보다 의전서열에서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에든버러 공작의 장례성찬례도 데이비드 코너 주교가 집전을 맡았고[4] ,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강복만 내렸다.[5]
3.1. 왕릉[편집]
윈저 성 내부에 있는 왕실 성당 성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에는 조지 3세 이후 대부분의 영국 왕족들이 안장되어 있다. 다만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에드워드 8세는 유언에 따라 세인트 조지 예배당이 아닌 윈저 성 근처의 프로그모어 영묘에 안장되었다.
이곳에 안장된 왕족들은 다음과 같다.
3.2. 로열 웨딩[편집]
영국(잉글랜드) 왕족은 볼드체로 표시.
[1] 엘리자베스 2세는 윈저 성과 밸모럴 성을 자신의 진짜 집이라고 불렀으며, 버킹엄 궁전은 업무를 위해 잠시 머무르는 거처일 뿐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자녀들 역시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에 버킹엄 궁전에서 살면서도, 그곳을 집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2] 단, 외빈을 접견하는 용도로는 계속 윈저 성을 사용하고 있다.[3] 보통은 관할사제가 본당을 맡는게 대부분이다. 특수하게 주교좌성당에만 주임사제가 있다. 그 이유는 주교좌성당의 관할사제는 교구장 주교이지만, 교구장 주교는 교구 전체를 대상으로 사목해야 하기 때문에, 교구장 주교는 명목상으로만 관할사제이고, 관할사제의 모든 업무는 주임사제가 대리하게 된다.[4] 성 조지 예배당 주임사제. 주임사제가 주교인것이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주교는 꼭 교구장 주교이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따라서 주임사제직을 주교가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5] 근데 이것은 크게 관련이 없는 게, 추모성찬례는 대게 고인이 생전에 다니던 성당의 관할사제가 하는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교구의 교구장 주교나 여타 보좌주교가 집전해도 무방하다. 사실상 성공회 사제라면 누구나 집전해도 교회법상 상관이 없다.[6]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리처드로 추정되고 있다.[7]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으나 유골만 안장되었다.[8] 크리스티안 9세의 장녀.[9] 빅토리아 여왕의 3녀.[10] 빅토리아 여왕의 4녀.[11] 빅토리아 여왕의 3남.[12] 조지 3세의 증손녀이자 게오르크 5세의 장녀.[13] 빅토리아 여왕의 4남.[14]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15]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16]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17] 조지 3세의 증손녀, 메리 왕비의 조카.[18]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녀이자 올버니의 앨리스 공녀 의 손녀.[19] 조지 5세의 증손녀, 켄트 공작 조지 왕자의 손녀.[20] 엘리자베스 2세의 3남.[21] 현직 영국 국왕.[22] 단, 결혼식은 윈저 성 앞에 있는 공회당에서 올리고,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는 감사성찬례만 드렸다.[23] 엘리자베스 2세의 외손자, 앤 공주의 장남.[24] 찰스 3세의 차남.[25] 엘리자베스 2세의 손녀, 앤드루 왕자의 차녀.[26] 조지 5세의 증손녀, 켄트 공작 조지 왕자의 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