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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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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사상의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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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한민족 내셔널리즘(Korean Nationalism)
2.1. 역사
2.1.1. 조선 말 이전
2.1.2. 조선 말 ~ 2000년대
2.1.3. 2010년대 ~ 2020년대
2.2. 재외동포의 경우
3. 국가 기반 내셔널리즘
3.1. 북한의 내셔널리즘
3.2. 대한민국 내셔널리즘(ROK Nationalism)
4. 같이 보기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남한) 내에서 한국 내셔널리즘, 한국 민족주의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닐 후 있다. 남북한을 모두 아우르는 한민족 내셔널리즘(Korea nationalism)을 의미할 수도 있고, 조선이라는 국명을 쓰는 북한을 제외한 남한만의 내셔널리즘 즉 대한민국 내셔널리즘(ROK nationalism)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이 둘을 크게 나누어 설명한다.


2. 한민족 내셔널리즘(Korean Nationalism)[편집]


파일:한반도기.svg
한반도기(통일기)[1]

흔히 한국에서 민족주의라고 지칭하는 사상이다. 한민족이라는 혈통적 정체성을 강조할 경우 Korean ethnic nationalism이라고도 한다.

2000년대 초반의 과도기를 거쳐 2010년대 중반부터서는 소위 통일운동에 적극적인 한민족 내셔널리즘은 좌익 계열에서 더 두드러지는 흐름을 보인다. 특히 NLPDR 등은 강경 좌익 내셔널리즘을 내세우기도 한다. 인터넷 진보 세력의 경우 이슬람 계열 난민 문제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극좌 스탈린주의를 표방해왔던 북한도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다만 소위 신좌파 계통의 세력의 경우 다문화, 이민, 난민, 인종, 국적, 국경 등의 이슈에서 안티내셔널리즘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좌우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일반적 민족주의: 좌우구분이 힘든 민족주의 단체나 대중적으로 보여지는 민족주의의 형태이다. 주로 반일, 반중 정서로 대표되며 우익 민족주의처럼 북한에 대한 반공적 태도나 좌익 민족주의처럼 반미적 태도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또한 나이가 많은 세대일수록 순수혈통주의적 태도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 좌익 민족주의: 한국의 좌파는 식민주의와 분단의 역사로 인해 저항적 민족주의의 성격이 강하다. NL이 대표적이다. 우익 민족주의보다 반미적 성격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미국의 존재 때문에 제대로 반일을 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 우익 민족주의: 이승만, 김구 등이 우익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같은 민족이라고 보지만 북한 정권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며, 김씨왕조의 독재자로부터 억압받는 국민들을 해방시키는 북진통일을 추구한다.


2.1. 역사[편집]



2.1.1. 조선 말 이전[편집]


일각에서는 한국의 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이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제론 그렇지 않다. 가령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삼한일통이라는 표현을 쓴 것, 고려가 국호를 고구려에서 그대로 가져온 점[2], 조선이 국호를 단군이 세운 조선에서 그대로 가져온 점만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민족"이라는 단어적 표현이 근대에 생긴 것과는 별개로 삼국에서 고려, 조선, 현대로 이어지는 정체성과 동질감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수적으로 잡아서 고려부터 계산해도 최소 천년 이상 이어져온 것이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아족류我族類라는 민족의 한국적 원개념에 해당하는 단어가 수십회 이상 등장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 교수도 한국에서 '하나의 nation'이라는 개념은 현대 nation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오래되었으며 중국과도 매우 다르고 일본에서 발견되는 것보다도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고 분석했다.


2.1.2. 조선 말 ~ 2000년대[편집]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외세에 의한 큰 흔들림으로 저항적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조선 사람은 하나의 동포라는 논리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실제로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절에도 외국에 대해 격렬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으며, 청나라, 일본, 서양 모두에게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다. 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저항적 민족주의 경향은 더 강해져 일본 및 친일파에 대한 반감이 커졌으며, 타국 의존성을 줄이고 독자노선을 고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져 3.1 운동 같은 저항운동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외세'를 '궁극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3][4]

이런 흐름은 광복 이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40년대에도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충돌했을지 몰라도 내셔널리즘 성향만큼은 이승만, 김구, 김규식 같은 우익과 여운형 같은 좌익 구분없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광복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영과 무관하게 내셔널리즘 성향 자체는 계속 이어졌다. 한국이 겪었던 근현대사적 경험과 열강에 둘러싸인 입지를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가 이런 성향을 보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때문인지 여전히 한국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고 교육계나 사학계, 정치계에서도 내셔널리즘이 크게 두드러진다. 위인전만 펴봐도 민족 얘기가 안 나오는 한국 위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내셔널리즘 성향 자체는 쭉 이어졌더라도 그 세부적인 성격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들어 이승만 정부 시기인 1950년대에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반감에다가 한국전쟁까지 일어나면서 중국이나 소련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지면서 매우 강한 내셔널리즘 성향이 있었으나 미국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이 큰 호감을 가졌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미국의 식량 원조 등이 당시 굶주림에 허덕이던 한국 대중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이어지던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기류는 운동권들이 득세하는 1980년대에 들어서 크게 변했으며 반미가 성장하게 된다. 이런 운동권 사람들 중 NL 계열과, 1990년대 통신 세대를 기점으로 성장한 진보 세력의 좌익 내셔널리즘은 참여정부 시기에 제대로 힘을 얻었고, 반미주의는 2000년대 초중반에 정점을 찍는다. 2000년대에는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과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깔려 죽은 사건에 대한 반감, 광우병 사태, 위안부 문제의 대두가 이루어졌고, 이는 못 믿을 외세인 미국/일본에 대한 반감과, 일부는 '미워도 우리 민족'인 북한에 대한 호의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2.1.3. 2010년대 ~ 2020년대[편집]


그 전까지는 학술 주제로는 다뤄지더라도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관심 안 가지던 건국절 논란이나 '건국' 또는 '정부수립'과 같은 단어들이 2000년대 후반 및 2010년대 들어 운동권에서 전향한 뉴라이트의 등장[5]으로 큰 분쟁의 중심이 되었다.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에 들어, 1990 ~ 2000년대 출생자인 10대 ~ 20대 사이에선 부모 세대와 비교하여 내셔널리즘이 많이 약해진 모습을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같은 민족이라면서 행패를 부리는 북한의 모습 및 특히 1970년대 출생자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간 광우병/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건 등에 대한 반미정서에 대한 반감 및 위안부 문제 등의 반일정서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나이키 신고 반미' 혹은 '마일드 세븐 피우면서 반일' 등의 운동권들의 이중성도 반감에 한몫 했다. 사실 한편으론 당대의 가혹한 군사정권 탓은 안하면서 국가적 책임으로 돌리려고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헬조선론과 함께 더욱 심화되었고 특히 젊은 세대들에서는 내셔널리즘이 많이 없어졌다는 관측이 있다. 다만, 정작 이 헬조선이라는 용어는 일본 민족주의를 추종하는 혐한 일뽕 커뮤니티인 역갤에서 만들어 퍼뜨린 용어라는 아이러니가 있다.[6]

그러나 과거 운동권 세대가 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내셔널리즘이었다면 전향한 뉴라이트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중국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내셔널리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과거 세대와 그 성격이 조금 달라졌을 뿐 강한 내셔널리즘 성향을 가지는 것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나 중국이 본격적으로 팽창주의적 행보를 하면서 한국에 대한 문화침탈역사침탈에 나섬에 따라 10 ~ 20대들은 강한 대(對)중 민족주의적 경향을 띄게 되었다.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과 국적법 개정에 대한 강한 반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방향성만 다를 뿐 과거 서구 열강이나 현대 강대국들의 '패권적 민족주의'와는 다른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동시에 혐중 문제에 대해서 중국 내 콘텐츠나 생산품을 이용하면서 반중을 하는 이중성을 역으로 지적 받기도 하고 문화적/상품적 요소에서 일본은 호의적인 대상이지만 역사적/정치적/사회적 문제에서는 반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현재 한국에서 그나마 토론되고 있는 것은 '내셔널리즘'이지, 그 기반이 되는 '민족'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되지 못해,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이에 대한 합의 없이는 민족 담론에 대한 논의에 해를 끼친다. 예컨데, 과거 한반도에는 서로 다른 씨족이 섞여왔으며,[7]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고려시대를 거치며 지금의 공동의식[8]이 완성된 것이다. 즉, 옛날에는 서로 남남이었던 사람이 하나의 민족이 된 것인데, 그렇다면 왜 현재는 불가능한지에 의문을 품고 국제주의(internationalism[9])나 세계주의[10]에 투신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족 내에서도 지역감정으로 인해 분열해 새로이 배타적 집단을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논쟁의 중심이 되는 민족의 기준에 대해서 혈통인지, 문화인지, 종교인지, 언어인지에 대해 제각각의 기준을 세우고 논쟁에 임하기에, 서로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11]

예로 한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같은 '혈통'이므로 같은 민족이자 동포로 맞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서적인 '문화'가 워낙 이질적이어서 한국에 돈 벌러 온 한국말 좀 쓰는 중국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소속감은 제각각이기에, 이 경우에는 두 주장 모두 내셔널리즘에 의해 나온 것이고, 민족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나온 다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한국에 귀화한 외국인, 외국에 귀화한 한국인 등에 대해, 때로는 이중잣대까지 써가며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 등은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내셔널리즘을 인식하는 사회 전체에 많이 존재한다. 민족(ethnic group, nation 두 단어 각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몹시 넓은 영역을 일컫는 말이므로 이러한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2.2. 재외동포의 경우[편집]


재외 한국인들을 보더라도 한민족의 한국에 대한 내셔널리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의 경우 민족적 기원이 다르더라도 그 나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가는 경우들이 있지만, 한인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러시아, 쿠바 등 지난날 국외로 이주한 수많은 재외 한국인들이 2대, 3대를 거치며 한국어한글도 제대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것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미국과 같이 발달한 국가에서 그것도 도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 2세 이상들은 앞서 말한 러시아, 쿠바 등의 동포들에 비해 혈통적 정체성을 중시하지 않는 편이다. 실제로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대를 이어서도 유지해 나가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활 환경이 도시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재외 동포들의 강한 민족 의식은 단순히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민족 의식이 강한 게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생활 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게 적합할 수도 있다.


3. 국가 기반 내셔널리즘[편집]



3.1. 북한의 내셔널리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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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홍색공화국기(인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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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내셔널리즘은 남한의 내셔널리즘보다 한민족 내셔널리즘(Korean nationalism)적 성격이 훨씬 더 강하다. 따라서 남한에서 통일반대론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반면, 북한 주민들은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주체사상은 극단적인 종족적 한민족주의(Korean ethnic nationalism)으로 분류된다.


3.2. 대한민국 내셔널리즘(ROK Nationalism)[편집]



한민족이 아닌 대한민국(남한)만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시민 내셔널리즘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한민족 내셔널리즘을 기반으로 하기에 크게 구별할 필요가 없었던 반면, 현대에 들어서는 전통적인 반일 정서나 혈통 기반 민족주의보다 반북[13], 반중,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자체 핵무장론, 반이민 등을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지속된 저출산과 인구감소로 이민에 대해서는 지지 여론이 생겼으나 다문화주의가 아닌 동화주의에 가까운 견해가 주류이다.


3.2.1. 일민주의[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의 [[일민주의#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같이 보기[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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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깃발은 울릉도, 독도까지 있는 깃발이다. 초기 한반도기에는 울릉도, 독도가 표기되지 않았다.[2]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국호를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꿨다.[3] 내셔널리즘이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는 집단과 타 집단을 구별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그 본질 때문에 배타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은 아니다.[4] 다만 이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도 발견되는 인식으로 민족주의에만 배타적으로 해당하는 인식은 아니다.[5] 성향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오리지널 뉴라이트인 신보수주의에도 전향자들이 많았다. 특히 공격적인 이념전파국제주의는 쉽게 말해 좌우반전 트로츠키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6] 역갤에서 만들어져서 이후 역갤러들이 주갤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널리 퍼졌다.[7] 엄밀히 따지면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예맥과 관련이 있다.[8] 현재 민족(民族)이라는 단어로 부르는 것.[9] 명칭에서 보듯, 민족을 초월해 소통하겠다고 하는 주장.[10] cosmopolitanism, 세계의 모든 사람은 동포로서, 같은 공동체를 이룬다는 주장.[11] EAI·성균관대 EACC·중앙일보의 2020년 한국인 정체성 조사에 따르면 (링크) 한국인들은 혈통과 문화 양자를 '모두' 만족시켜야 한국인으로 본다는 응답이 80프로에 달해 거의 대다수였다. 즉 단일기준에 의거하여 판단하지 않고 복수기준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국인으로 인식하는 형태다. 많이 언급되는 조선족 케이스의 경우 혈통은 만족시키되 문화를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해' 중국인 취급하는 행동이 관찰되는 것이다.[12] 물론 북한의 일반적인 주민들 한정이다. 김돼지 일가에 부역하는 기득권 세력은 통일을 바라지 않거나 해도 적화통일을 주장한다.[13] 다만 반북은 북한 정권을 문제로 보는 경향이 대부분일 뿐 남북통일에 대해 반대하는 경향은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