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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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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주는 상이다. 줄여서 ‘영평상’. 1980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 정의[편집]
(사)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영화평론가들과 영화담당 언론인들이 모여 발족하였으며, 국내외 영화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이를 영화사적, 미학적, 산업적으로 자리매김하여 한국영화문화와 한국영화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3. 연원 및 변천[편집]
이 명칭을 가진 단체는 1952년 3월 피난지 부산에서 발족한 영화평론가협회와 1960년에 설립(1965년 재설립)된 영화평론가협회가 있었지만, 현재 협회는 1960년에 만들어진 모임이다. 1960년 7월 6일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이영일, 김정옥, 노만, 김종원, 정우영 등이 모여 조직되었다. 5·16 직후 기존 문화단체 해산 방침에 따라 해체했다가, 1965년 11월 10일 재설립되었다. 1978년에 단체를 재정비해 간사제를 회장제로 바꾸었다.
4. 기능과 역할[편집]
영화연구·세미나·합평회·강좌 개최, 영화평론가상 시상 및 영화제 개최, 해외영화단체와의 교류, 신인영화평론가의 발굴·육성, 학회지·영화평론지 발간, 영화감상회 및 우수 영화에 대한 지원·추천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은 1980년부터 그해의 우수한 영화와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1989년부터 회원들의 평론을 모아 『영화평론』(2013~2014년 제26호)을 발행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는 합평회 씨네톡을 진행해 블로그에 게재하고 있다.
5. 역대 수상[편집]
5.1. 작품상·감독상[편집]
5.2. 주연상[편집]
5.3. 조연상[편집]
5.4. 각본상[편집]
5.5. 신인상[편집]
5.6. 수상 기록[편집]
6. 구 영평상[편집]
현재의 영평상을 주관하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1960년 7월 6일 이영일 등의 발기로 조직된 단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동일한 명칭의 협회가 발족되어 1957년부터 1959년까지 영평상을 시상한 역사가 있다. 이 당시의 영평상은 두 차례 시상 후 단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폐지되었다. 구 영평상 주요 시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제1회(1957년)[11]
- 제2회(1959년)
[1] 홈페이지에는 누락되어 있으나 1986년도판 한국영화연감 및 한국일보 1985년 5월 25일 기사에서 확인.[2] 특별상-신인감독[3] 1986년 길소뜸, 1987년 티켓, 1993년 서편제[4] 2002년 복수는 나의 것, 2004년 올드보이, 2022년 헤어질 결심[5] 2003년 살인의 추억, 2013년 설국열차, 2019년 기생충[6] 1983년 오염된 녀석들, 1984년 안개마을, 1994년 투캅스, 1995년 영원한 제국, 1996년 축제, 2006년 라디오 스타, 2012년 부러진 화살[7] 1984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5년 뽕, 1999년 정사, 2003년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8] 1981년 피막, 1985년 사약, 1994년 살어리랏다[9] 1997년 초록물고기, 2000년 오아시스, 2010년 시[10] 유현목 감독은 1980년 제1회 신 영평상에서도 감독상을 받아, 신·구 영평상 모두 첫 수상자가 되었다.[11] 1957년 12월에 선정작이 결정되어 발표되고 시상식은 수차례 연기 끝에 1958년 4월에 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