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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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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연호를 기술하는 문서이다.
연호를 일본에서는 원호(
2. 사용 역사[편집]
일본은 645년 고토쿠 천황이 즉위하며 처음으로 다이카(大化)라는 연호를 채택했다.[1] 650년에는 하쿠치(白雉)라고 개원했지만 654년에 연호 사용을 중지했다. 686년 덴무 천황이 죽음을 앞두고 잠깐 슈초(朱鳥)라는 연호를 사용했지만 사용기간은 고작해야 한 달 보름에 불과했다. 701년 몬무 천황이 다이호(大宝) 연호를 채택한 이후로는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연호를 사용한다.
3. 변경 원칙[편집]
3.1. 혁명개원[편집]
일본에는 새 천황이 즉위할 때, 나라에 자연재해가 계속될 때 개원(연호변경)하는 관례가 있었다.[2]
신유(辛酉)년과 갑자(甲子)년에 개원하는 관례도 있었는데 이를 '혁명개원(革命改元)'이라 부른다. 두 해가 역학적으로 큰 변화의 때라 '역성혁명의 변화'가 일어날까 봐 미리 연호를 바꾸어 차단하겠다는 주술적인 의도였다.[3] 이 관습은 <역위(易緯)>[4] 라는 중국 도참설 서적에 근거한 것이다. <역위>에는 "辛酉爲革命, 甲子爲革令"(신유년에는 혁명, 갑자년에는 혁령이 된다.) 하는 구절이 있다. 일본 조정은 혁명의 해를 앞두고 여러 학자들에게 연호를 무엇으로 바꾸면 좋을지 생각을 적어 올리라고 하였는데, 이때 학자들이 올린 글을 혁명감문(革命勘文) 또는 혁령감문(革令勘文)이라고 불렀다.[5]
헤이안 시대의 학자 미요시 키요유키(三善清行, 847-918)가 주장하여 신유년이 되는 901년을 엔기(延喜) 원년으로 개원한 데서 혁명개원이 시작했다.[6] 원래 혁명과 혁령은 동의어지만, <역위>의 표현에 따라 신유혁명, 갑자혁령이라고 쓴다. 혁령보단 혁명이 더 대중적인 단어이므로 '갑자혁명'이라고 쓰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신유혁령'이라고 쓰는 경우는 없다.[7] 신유년으로부터 3년 뒤면 갑자년이다. 따라서 혁명개원 관습을 철저히 지킨다면, 신유년에 개원하여도 연호를 최대 3년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또 바꿔야 한다.
혁명개원이 처음 실시된 이후 개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신유년 중에는 1561년, 1621년, 갑자년 중에서는 1564년이었다. 이중 1561년, 1564년에는 당시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개원에 소극적이었기에 이루어지지 않았다.[8]
이러한 관습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세일원제[9] 가 확립되어 사라졌다.
3.2. 즉일 개원[편집]
유신 이후로 일본은 군주가 사망하면 즉일개원(即日改元)한다. 선왕이 죽은 뒤 새 연호에 관한 포고령을 내려, 포고령을 내린 그날부터 새 연호를 사용함을 가리킨다. 포고령이 발표되는 날은 선왕이 죽은 날, 혹은 그 다음 날이다. 중국식으로는 훙월칭원법(薨月稱元法)에 해당한다. 군주가 죽음을 훙薨이라 한다. 군주가 죽은 그 달에 연호를 바꾸는 것. 군주가 죽은 다음 달부터 새 연호를 사용하면 유월칭원법(踰月稱元法)이라 부른다.
한반도에서는 고려시대의 원 간섭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즉위년칭원법을 사용하였으나 이후부터는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을 사용했다. 이는 선왕이 죽은 해에는 그대로 선왕의 연호를 사용하고 그 다음 해부터 새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따른다면 후계왕이 즉위한 해는 새 연호의 원년이 아니라 구 연호의 마지막 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흔히 즉위년과 새 연호의 원년을 구분하여 말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유년칭원법이 유교의 전통적인 예법이었다. 선왕이 죽은 날 바로 새 연호를 반포, 시행함은 유교식 원칙에 어긋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안 되지만 편의상 구 연호의 마지막 해와 새 연호의 원년을 서로 혼용하여 사용하곤 한다. 즉 헤이세이 1년(원년) 7월 1일을 쇼와 64년 7월 1일이라고도 한다는 것.
4. 역대 연호[편집]
4.1. 아스카 시대[편집]
4.2. 나라 시대[편집]
4.3. 헤이안 시대[편집]
4.4. 가마쿠라 시대[편집]
4.5. 남북조시대[편집]
4.5.1. 남조[편집]
4.5.2. 북조[편집]
4.6. 무로마치 시대[편집]
4.7. 센고쿠 시대[편집]
4.8. 아즈치모모야마 시대[편집]
4.9. 에도 시대[편집]
4.10. 일세일원제[편집]
5. 현황[편집]
-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본 국내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어 공문서 등은 서기가 아닌 연호를 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재일 외국인이거나 외국어로 작성하는 문서 등에는 대체로 서기를 많이 쓴다. 그 예로 법무성 산하 출입국재류관리청이나 일본의 재외공관이 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은 일본의 사증심사와 재일 외국인의 재류관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재류카드는 물론이고, 전부야 아니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발표나 발급하는 문서 등은 웬만하면 서기로 쓴다.
일본의 재외공관은 외국에서 연호로 표기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니 당연히 서기로 표기한다. 정부기관 등이 외국을 상대로 작성하는 공문서는 일본어판에서는 연호, 외국어판에서는 서기로 표기한다.
일본의 재외공관은 외국에서 연호로 표기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니 당연히 서기로 표기한다. 정부기관 등이 외국을 상대로 작성하는 공문서는 일본어판에서는 연호, 외국어판에서는 서기로 표기한다.
일본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신분증 등은 두 가지로 나뉜다.
- 서기
- 연호
- 애매한 것
마이넘버카드는 상기한 두 가지 경우에 속하지 않는다. 일본인과 외국인은 연도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1980년이어도 일본인이라면 昭和55年, 외국인이라면 1980年으로 표기된다. 그런데 유효기간은 운전면허증마냥 서기로 표기된다.
발급처에 이유를 물어본 결과, 정부의 시스템이 등록된 개인번호 카드에 관련된 정보가, 일본인은 연호이고 외국인은 서기여서 그렇다고 한다.
발급처에 이유를 물어본 결과, 정부의 시스템이 등록된 개인번호 카드에 관련된 정보가, 일본인은 연호이고 외국인은 서기여서 그렇다고 한다.
일본사 교과서에는 연호가 많이 나오는 편이지만, 수학, 영어, 국어, 지리, 세계사, 공민, 과학[14] 등 타 과목의 교과서에는 서기표기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특히 외국어 교과서는 얄짤없이 서기로만 나온다.
- 일반 사회
서기를 쓰는 곳과 연호를 쓰는 곳이 비등비등해서 그야말로 짬뽕이지만, 레이와 시대(2019년) 들어서 서기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15]
병원의 진료 차트는 연호로 표기하는 곳이 많다.
병원의 진료 차트는 연호로 표기하는 곳이 많다.
- 단점 및 앞으로의 전망
연호와 서기를 변환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불필요한 일이 일어나거나, 천황이 새로 즉위할 때마다 연호를 쓰는 시스템은 싸그리 갈아 엎고 새 연호를 추가해야 하는 등 연호 개원 때문에 사회적 손실이 있다. 일본의 IT 종사자에게 물어보면 그 빡침 등을 알 수 있다.
6. 여담[편집]
앞으로 연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일본인들 간에도 의견이 매우 엇갈린다. 일본의 전통이므로 고수해야 한다는 보수파, 의미도 없고 비실용적이므로 폐지하고 서기만 써야 한다는 급진파, 공문서 등에는 서기를 쓰되 일상생활에서는 연호를 쓰든 서기를 쓰든 내두자는 절충파가 비등비등하다. 일본 정부도 2019년부터 컴퓨터 행정시스템에서는 서기로 점차 통일하지만 지류 문서에는 여전히 연호를 쓴다고.
세계화의 진전 등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연호 사용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마이니치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쇼와 시대였던 1975년에는 연호와 서력기원 중 연호를 주로 쓰는 사람이 82%에 달했고 서력기원은 4%, 둘 다가 13%에 불과해 연호 사용이 압도적이었으나, 레이와 연호가 정해질 즈음인 2019년에는 연호 34%, 서력기원 23%, 둘 다 34%로 연호와 서력기원의 사용률이 비슷해졌다. 연령대별로는 40대 이하는 서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50대와 60대는 같은 비율, 70대 이상은 연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또 서구화와 함께 골치아픈 관례가 하나 생겨버렸는데, 연호의 약칭을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3년(쇼와 58년)은 S58, 2002년(헤이세이 14년)은 H14, 2023년(레이와 5년)은 R5로 표기하는 식인데, 사회적으로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터라 다음 연호를 정할 때 제약이 되어버렸다. 레이와 개원 당시에도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M, T, S, H가 약칭으로 올 수 있는 안은 제외한다는 것이었을 정도. 문제는 일본어의 음가가 그렇게 다양한 편이 아니라는 것. 언젠가는 재활용을 하겠지만 사용되는 한자가 점점 제한되고 있어서 후대로 갈수록 개원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16]
연호를 서기로 변환하는 방법은 각 연호 원년의 서기 연도에 연호의 연수를 더한 뒤 1을 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헤이세이(平成) 10년'을 서기로 환산한다면, 헤이세이 원년은 1989년이므로 1989에 10을 더하고 1을 빼면, 1998이 나온다. 즉, 헤이세이 10년은 서기 1998년이 된다.
일상에서도 많이 쓰다 보니 일본 사회는 한 연호가 끝나감을 이벤트로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한 해가 끝나면 그 해를 회상하는 기사(그 해의 대형사건 등)를 쓰곤 하는데, 일본 언론에서도 헤이세이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일본 정부는 2019년 나루히토 천황 즉위 한 달 전인 4월 1일에 새 연호를 공표하기로 했는데, 보수적인 일부 일본 국회의원들은 연호 공표를 새 천황 즉위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새 연호를 미리 발표하면 아키히토 천황과 새 천황의 권위가 서로 충돌한다는 것. 나루히토가 즉위하는 5월 1일에 새 연호로 갈아타기로 하였는데, 시스템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등 IT업계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연히 1월 1일부터 바꾸는 것이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 어찌 연호를 발표하고 즉위일에 맞추어 개원하였다.
일본에서는 고도로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신 연호로 개원하는 까닭에 밀레니엄 버그가 재래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한다. 신 연호 발표가 얼마 안 남은 2019년 3월 기준으로 민간기업 상당수가 신 연호 발표를 준비하지 않고, MS사도 신연호가 일본판 밀레니엄 버그를 일으킬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물론 일본 정부는 신 연호 발표 후에도 연호 변경이 어려우면 헤이세이 31년 표기를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는 하나...
# 이 사이트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아베 신조 총리의 사진과 함께 원하는 한자를 넣어 가짜 연호를 만들 수 있다. 아베가 들어간 이유는 새 연호 발표자가 총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만, 전례에 따라 당시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가 하면서 스가와 아베를 선택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의외의 사실은 일본 연호가 아직도 한국 정부가 공식 발급하는 문서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제적등본은 1945년 이전의 변동 상황에 대해서는 당연히 일자가 일본 연호로 적혔는데, 이를 일일이 정정하지 않고 그대로 효력을 유지케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호적 전산화나 가족관계등록부 개편시 전부 서기로 변환하였기에 담당 공무원이 아닌 이상 볼 일은 거의 없다. 1910년 이전, 1868년에서 1910년 사이 공문서에서는 대한제국의 민적부와 총독부의 호적 편제가 서로 뒤섞여서 개국(혹은 광무나 융희) 연호와 메이지 연호가 혼용되었다. 심지어 1868년 이전 문서에선 텐포, 카에이, 분큐 같은 연호들까지 튀어나온다. 명색이 한국 정부의 공문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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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다이카 2년(646)부터 고토쿠 천황이 실시했다고 하는 일련의 개혁작업을 다이카 개신이라 부른다.[2] 전근대 동양 왕조들은 그야말로 심심하면 연호를 갈아치우는 바람에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이 연호를 외우느라 골이 부서질 정도다. 사실 중국의 복잡함에 비하겠냐마는, 중국은 1차 사료를 제외하면 서력기원 사용이 정착한 반면, 일본에서는 여전히 연호가 꽤나 널리 쓰이기 때문에 더 머리가 아프다.[3] 연호를 바꾸는 것도 분명히 '큰 변화'이다. 따라서 (마치 압력밥솥에서 수증기를 빼듯) 변화의 때에 연호를 바꾸면 변화의 힘이 '정권 전복'이나 '역성혁명' 등으로 번지지 않으리라 여긴 것이다. 일종의 액땜인 셈.[4] 주역을 풀이한 서적인데, 보통 기원전 1세기 말, 전한 애제 시절 무렵에 집필되었다고 추정한다.[5] 여기서 '감문'이란 '알아보고 조사해서(勘) 쓴 글(文)이란 뜻이다. 요새식으로 말하면 '조사보고서' 정도.[6] 일본 사학계는 미요시 키요유키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실각시키려는 밑작업으로 중국의 신유혁명설을 명분 삼아 개원을 주장했다고 여긴다.[7] '갑자혁령'이란 용어는 중국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렸다. 일본서기에서 진무 덴노가 처음 건국했다는 기원전 660년도 신유년이므로 학자들은 일본서기의 저자들이 신유혁명설에 따라 진무의 건국년을 맞추었다고 본다.[8] 때문에 1564년에는 미요시 나가요시가 가신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통하여 개원을 조정에 요청하였으나, 조정은 그것이 요시테루의 권위를 해칠까 염려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9] 군주가 즉위하여 처음 연호를 정하면 중간에 바꾸지 않고 새 군주가 새 연호를 정하기 전까지 사용하는 것. 중국에서 일세일원제는 1368년 명태조 주원장이 홍무(洪武) 연호를 사용하면서 확립되었다.[10] 최초의 존왕론자 탄압사건[11] 재류카드의 전신인 외국인등록증도 서기로 표기되었다.[12] 운전면허증은 2019년 5월 1일 신연호 전환을 기하여 발급 및 갱신시에는 유효기간에 한해서 서기와 연호를 병기한다.[13] 보험증 등에서는 여전히 연호만 사용할 예정이다.[14] 일본에서는 과학 과목을 이과라고 부른다.[15] 만약 서기 표기를 원한다면, 사기업이나 기관 등이 서류 발행을 요청하기 전에 "西暦での表記を希望します。"라고 반드시 언급해둘 것. 요청하지 않으면 연호로 표기된 서류가 발행해줄 수도 있다.[16] 실제 역대 일본 연호에 이 관례를 적용하면 알파벳 17자만이 사용되었고, 그 중에 절반은 K, T, E로 집중된다. 사용 빈도가 높지 않은 한자라고 해도 용례가 한정되어 있어서, 사실상 한 글자만 쓰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M은 明 또는 万, A는 安, N은 仁, O는 応, D는 大 이외에 사용된 글자가 없다. G, B, C도 빈도만 많지 전부 元, 文, 長이다. 그나마 근대 이후 쓰인 M, S, H는 의외로 빈도가 높지 않았던 이니셜이었고, R도 그러한 점이 채택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레이와 개원 당시 K에 해당하는 코시, E에 해당하는 에이코도 제안되었지만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