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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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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趙思溫(? ~ 939)
유연(劉燕), 요나라의 인물. 자는 문미(文美)
2. 생애[편집]
노룡 사람으로 젊을 때 날카로우면서 체력이 뛰어났고 연나라 장수인 유인공 휘하에 속했다.
이존욱이 연나라에 죄를 물으면서 투항할 것을 권유했지만 거절했으며, 화살로 인해 눈을 부상입어 옷자락에 피가 묻을 정도였지만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주덕위에게 붙잡혔다. 이존욱에게 부장으로 기용되어 후량과의 싸움에서 신현에서 용맹을 떨쳤으며, 평주자사 겸 평주, 영주, 계주 등 삼주도지휘사가 되었다.
917년에 요나라의 야율아보기가 대장을 보내 연 지역을 공략하자 요나라에 투항했으며, 발해를 정벌하면서 한군도단련사에 임명되어 부여성을 함락했다. 여러 번 부상을 입자 야율아보기가 친히 약을 내려주었다.
927년에 태종이 즉위하자 검교태보, 보정군절도사에 임명되었고 936년에 후당이 태원을 공격하면서 석경당이 사절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자 남주, 헌주의 군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군을 이끌고 돌아와서는 남경유수, 노룡군절도사, 관내관찰처지등사, 개부의동삼사, 시중을 겸임했으며, 협모정란익성공신의 호를 받았고 고쳐서 임해군절도사가 되었다.
938년에는 황후를 책립하기 위한 의식의 부사가 되었고 돌아와서는 검교태사가 되었는데 그의 최후가 참 기가 막히다. 939년에 운나쁘게도 난데없이 떨어진 운석에 맞고 사망[1] 하여 제사를 지내 태사, 위국공에 추증했다.
꽤 유능하고 잘 나가던 인물[2] 이 갑자기 운석을 맞고 죽어버린 게 어처구니없어서 '큰 별이 졌다' 같은 표현을 오역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으나 그런 것치곤 별이 떨어졌다(星隕)는 표현 뒤에 '정원에서'(於庭)라면서 떨어진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나오고 그 뒤에 죽었다(卒)는 표현이 또 나오기에 그냥 운석에 맞고 죽은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두 백과사전 등 다른 출처에서도 조사온이 운석에 맞아죽은 것으로 서술한다.
[1] 사실 중국사에 운석에 맞아 사망한 것은 조사온 뿐만이 아니다. 송나라 시절 인물인 왕신(1137~1194)도 비산한 운석 파편에 맞고 앓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원나라 인물인 왕옥여(~1225) 또한 운석에 맞아 1225년 음력 8월 16일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2] 요태조 야율아보기의 발해 정벌에 기여한 인물이므로 한국사에서도 언급될 여지는 있는 인물이고, 요태조 사후 요태종의 섭정 권한으로 권력을 잡은 술율평이 순장을 논하며 자신의 팔까지 자르면서까지 위협적인 신하들을 숙청할 때도 타당한 논리로 맞서서 살아남는 등 꽤 존재감이 있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