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성문화

덤프버전 :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대한민국/문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대한민국
관련 문서

[ 역사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10%, 5em); min-height: 2em"
[ 지리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10%, 5em); min-height: 2em"
[ 군사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10%, 5em); min-height: 2em"
[ 정치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10%, 5em); min-height: 2em"
[ 경제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10%, 5em); min-height: 2em"
[ 사회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10%, 5em); min-height: 2em"
[ 외교 ]
일반
한국의 외교 · 남북통일 · 대통령 해외순방 일지 · OECD · G20 · IPEF · MIKTA · 동아시아 국제정세 · 한반도 주변 4대 강국 · 혐한 · 반한 · 지한 · 친한 · 한빠
6자​회담
남북관계 · 한미관계 · 한중관계 · 한러관계 · 한일관계
다자
한중일관계 · 한미일관계 · 남북러관계 · 한중러관계 · 한대일관계
순서는 가나다순 정렬, 이하 국명만 있는 링크는 한국과 해당 국가의 관계 문서임.
##
예: 네팔 → 한국-네팔 관계
>
아시아
네팔 · 대만 · 동티모르 · 라오스 · 마카오 · 말레이시아 · 몰디브 · 몽골 · 미얀마 · 방글라데시 · 베트남 · 부탄 · 브루나이 · 스리랑카 · 싱가포르 · 아프가니스탄 · 우즈베키스탄 · 위구르 · 인도 · 인도네시아 · 카자흐스탄 · 캄보디아 · 키르기스스탄 · 타지키스탄 · 태국 · 투르크메니스탄 · 티베트 · 파키스탄 · 필리핀 · 홍콩
중동
레바논 · 리비아 · 모로코 · 바레인 · 사우디아라비아 · 수단 공화국 · 시리아 · 아랍에미리트 · 알제리 · 예멘 · 오만 · 요르단 · 이라크 · 이란 · 이스라엘 · 이집트 · 카타르 · 쿠웨이트 · 튀니지 · 팔레스타인
유럽
그리스 · 네덜란드 · 노르웨이 · 덴마크 · 독일 · 라트비아 · 루마니아 · 룩셈부르크 · 리투아니아 · 리히텐슈타인 · 모나코 · 몬테네그로 · 몰도바 · 몰타 · 바티칸 · 벨기에 · 벨라루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북마케도니아 · 불가리아 · 산마리노 · 세르비아 · 스웨덴 · 스위스 · 스페인 · 슬로바키아 · 슬로베니아 · 아르메니아 · 아이슬란드 · 아일랜드 · 아제르바이잔 · 안도라 · 알바니아 · 에스토니아 · 영국 · 오스트리아 · 우크라이나 · 이탈리아 · 조지아 · 체코 · 코소보 · 크로아티아 · 키프로스 · 튀르키예 · 포르투갈 · 폴란드 · 프랑스 · 핀란드 · 헝가리
아메​리카
가이아나 · 과테말라 · 도미니카 공화국 · 도미니카 연방 · 멕시코 · 베네수엘라 · 벨리즈 · 볼리비아 · 브라질 · 세인트키츠 네비스 · 수리남 · 아르헨티나 · 아이티 · 에콰도르 · 엘살바도르 · 온두라스 · 우루과이 · 자메이카 · 칠레 · 캐나다 · 코스타리카 · 콜롬비아 · 쿠바 · 트리니다드 토바고 · 파나마 · 파라과이 · 페루
아프​리카
가나 · 가봉 · 감비아 · 기니 · 기니비사우 · 나미비아 · 나이지리아 · 남수단 · 남아프리카 공화국 · 니제르 · 라이베리아 · 레소토 · 르완다 · 마다가스카르 · 말라위 · 말리 · 모리셔스 · 모리타니 · 모잠비크 · 베냉 · 보츠와나 · 부룬디 · 부르키나파소 · 상투메 프린시페 · 세네갈 · 세이셸 · 소말리아 · 시에라리온 · 앙골라 · 에리트레아 · 에스와티니 · 에티오피아 · 우간다 · 잠비아 · 적도 기니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 지부티 · 짐바브웨 · 차드 · 카메룬 · 카보베르데 · 케냐 · 코모로 · 코트디부아르 · 콩고 공화국 · 콩고민주공화국 · 탄자니아 · 토고
오세​아니아
나우루 · 뉴질랜드 · 마셜 제도 · 미크로네시아 연방 · 바누아투 · 사모아 · 솔로몬 제도 · 키리바시 · 통가 · 투발루 · 파푸아뉴기니 · 팔라우 · 피지 · 호주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10%, 5em); min-height: 2em">
[ 문화 ]
일반
한국의 문화 · 한류 · 콘텐츠 · 전통문화 · 민속놀이 · 신화 · 요괴 · 명절#한국의 명절 (설날 · 추석) · 성씨 · 대한민국 표준시 · 세는나이 · 예절 · 문화 검열 · 성문화
관광
한국의 관광 · 축제 · 국립공원 · 문화재 · 국보 · 보물 · 무형문화재 · 사적 · 명승 · 천연기념물 · 민속문화재 · 등록문화재 · 세계유산 · 세계기록유산 · 인류무형문화유산
언어 · 문자
한국어 (표준어 · 방언) · 한국어의 높임법 · 한글 · 한글만능론 · 한자 (정체자 · 약자 · 한국의 한자 사용)
건축
건축 · 한옥 · 궁궐 · · 무덤 · 사당 · 서원 · 향교 · 사찰 · 마천루 · 서낭당 · 신사
의복 · 무기
한복 · 백의민족 · 갑옷 · 무기 · 한선
음식
음식 · 한정식 · 한과 · 전통음료 · 전통주 · 지리적 표시제 · 한민족의 식사량
스포츠
스포츠 · 태권도 · 씨름 · 택견 · 수박 · 국궁 · 족구 · e스포츠
문예 · 출판
문학 · 베스트셀러 · 웹소설 · 판타지 소설
미술 · 만화
현대미술 · 한국화 · 고화 · 만화 · 웹툰 · 애니메이션 · 만화 검열
게임
비디오 게임 · 온라인 게임 · MMORPG · 게임계의 문제 · 게임규제
음악
음악 · K-POP · 힙합 · 트로트 · 국악 · 판소리 · 사물놀이 · 아리랑 ·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영화 · 연극
영화 · 천만 관객 돌파 영화 · 뮤지컬
방송
방송 · 드라마 · 예능 프로그램 · 웹드라마 · 웹예능 · 인터넷 방송
기타
한국형 · 한국적 · K- · 고요한 아침의 나라 · 변질된 유교적 전통 · 명절증후군 · 한국기원설






1. 개요
2. 시대별 변천사
2.1. 삼국시대
2.2. 고려시대
2.3. 조선시대
2.4. 일제강점기
2.5. 광복 이후
2.5.1. 1940~1950년대
2.5.2. 1960~1970년대
2.5.3. 1980~1990년대
2.5.4. 2000년대~
2.5.5. 어두운 그림자
3. 현황 및 전망
4. 타국과의 비교


1. 개요[편집]


대한민국성문화[1]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다.


2. 시대별 변천사[편집]


현재 대한민국은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성에 다소 보수적인 나라로 여겨지곤 하지만, 과거부터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래는 시대에 따른 한국 성문화의 변천사에 대해 다룬다.


2.1. 삼국시대[편집]


삼국 중 가장 마지막까지 존속했던 신라(기원전 57년~서기 935년)가 멸망하고 1,000년 이상 지난 만큼 현대인들에겐 아득한 과거로 취급되는 게 삼국시대지만, 현대 여느 나라 못지 않게 개방적인 성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시대였다.


2.2. 고려시대[편집]


고려시대에도 개방적인 성문화는 여전했는데, 이는 유명한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잘 나타난다. 쌍화점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 여인이 무슬림 상인에서부터 승려, 심지어 (왕족의 은유)에게도 손목을 잡혔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이런 높은 수위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남녀상열지사'(), 즉 '음사'()라 하여 배척받았다고 하지만, 소실되지 않고 현대까지 남아있는 걸 보아 당시에는 이보다 더 높은 수위의 성적 묘사를 한 작품들도 많았을 것이다.

송나라 휘종대에 사신으로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이 개경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곁들여 기록한 <고려도경>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 '여름철에 시냇물에서 남녀 구별 없이 옷을 벗고 목욕하였다'는 대목이 있으며,[2] 고려인들의 남녀관계를 경합이리(), 즉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진다'고 표현하며 성진국으로 취급했다. 또한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는 '곳곳의 절에서 여자들이 술 먹고 춤추며 놀아 풍기가 문란하다'고 고려의 성풍속을 묘사했다. 이러한 인식은 유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송나라와 조선과는 달리,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는 상대적으로 유교의 영향력이 약했기에 성적 개방성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적 유희에서의 개방성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사회적 지위도 후대에 비해 훨씬 평등했다. 과거 원나라에서는 축첩이 인정되었는데, 충렬왕박유라는 신하가 이를 보고 '고려도 축첩제도를 도입하자'고 국왕에게 건의했다가 온 고려 여성들의 비난을 산 일이 있을 정도였다. 부모의 사후 유산 상속장남을 제외한 모든 아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었고, 조선시대와 달리 과부재혼도 가능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동성애는 상당히 터부시되는 일이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 와카슈도라는 미소년과의 남색이 유행했고[3], 고대 그리스에선 군대에서 사기 진작 목적으로 동성애가 장려되었던 것과는 대비된다.[4] 그럼에도 많은 고려국왕들이 동성애를 즐겼고 목종,[5] 충선왕, 공민왕은 사서()에 그 행각이 기록되어 있기까지 하다.


2.3. 조선시대[편집]


유교(성리학)를 신봉하는 신진사대부 세력이 건국한 조선에서는 이전 시대에 비해 성 관념이 보수적으로 변하였다. 그래도 조선 전기엔 고려의 영향으로 나름 개방적이었으나 16세기일본과의 임진왜란, 17세기청나라와의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은 후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했다. 즉, 고려시대까지는 여성의 성적인 선택에 제약이 덜하여 한반도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다면, 여성 인권이 떨어져 여성의 성적인 선택권에 상당한 제약이 걸린 이후에는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결혼 문화에 있어선 연애 결혼이 가능했던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와는 달리 중매 결혼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삼국·고려시대에도 상류층 간의 중매 결혼(정략결혼)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남녀의 만남이 자유로워 일반적으로는 연애 결혼을 더 선호하였고 혼례 과정도 매우 간소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 중매 결혼이 주류가 되며 과도한 혼수 문제가 발생했고, '성인이 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관념이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윤회 사상을 믿는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삼국·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혈연을 중시하여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효 중 하나로 여겨졌기에 대를 이어야 된다는 강박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심했다. <맹자>에서도 나이가 차도록 결혼하지 못한 남자는 광부(),[6] 여자는 원녀()[7] 로 표현하였고, 당시 조선 정부에서도 노총각·노처녀홀아비·과부 등과 함께 구제해줘야 할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여 혼기를 넘긴 전국의 미혼자들을 조사하여 결혼시켜 주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참고로 이전 시대와는 달리 이 시대엔 동성동본 결혼도 완전히 금지되었다. 이 문단을 읽다 보면 느꼈겠지만, 조선의 결혼 문화는 현대 한국의 결혼 문화에도 깊이 뿌리내려 있다.

남녀 간의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조선의 결혼제도는 공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였으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양반들 사이에서 축첩이 매우 성행했기에 실질적으로는 '남자는 일부다처제, 여자는 일부일처제'가 적용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능력만 있다면 여러 여자를 거느리며 살 수 있었던 반면, 여자는 무조건 평생 한 남자만을 모시고 살아야만 했던 처지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되어도 재혼이 금지되었고, 심지어 주변으로부터 남편을 따라 자살할 것을 강요받는 경우도 있었다. 축첩으로 인해 처첩 갈등이 생겨나기도 했다.[8] 또한 부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는 걸 미덕으로 보아 이혼도 불가능했으며, 여자들 사이에서 악명높은 시집살이도 조선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여 남녀의 자유로운 만남을 차단하고, 칠거지악을 내세워 여성을 억압하며 피지배층에 엄격한 성 윤리를 강조해온 것과는 상반되게 양반 남성들은 쾌락적인 성생활을 누렸다. 풍류를 즐긴답시고 기생과 놀아나며 잠자리를 가졌고,[9] 여비()[10]겁탈하여 사생아를 만드는 일도 잦았다. 오죽하면 '여비와의 잠자리는 누운 위에 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 여비는 기생과는 달리 돈이 들지도 않으니 그만큼 자주 범해졌다. 18세기~19세기에는 춘화와 성애소설 등 오늘날로 치면 야짤, 야설에 해당되는 성인물이 유행하기도 했다.


2.4. 일제강점기[편집]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개항한 조선에 온갖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며 그 영향을 받은 일부 사람들의 성 관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여성'()이라 불리는 수준 높은 근대 교육을 받은 여자들은 개방적인 남녀 관계를 추구하게 되었지만[11], 농촌에 거주하는 절대다수의 저학력 여자들은 조선 후기와 별반 다를 게 없었고 이는 남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1916년 조선총독부공창제를 도입하며 창녀등록제/성병검진제/영업구역제를 실시했다. 호주제도 실시했는데, 아버지에게 딸의 '공창 취업 승낙권'을 부여해서 아버지가 팔아버린 딸 또는 가난한 집에서 도망쳐 나온 여성 등이 성매매 여성이 되었다.

아직 유교적인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았기에 민간에선 부모나 친척이 이어지는 게 기본이였으며, 이는 아동청소년도 마찬가지여서 현재의 중학교,고등학교인 고등보통학교 중에서 남녀공학은 하나도 없었으며, 초등학교에 해당되는 보통학교조차도 남녀분반이였다.

2.5. 광복 이후[편집]



2.5.1. 1940~1950년대[편집]


1945년 이승만 정부는 '공창제도 폐지령'을 내려 명목상 공창제를 폐지했지만,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모방한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하였다. 휴전 이후에도 이른바 '기지촌'이라 하여 주한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는 매춘부(양공주)들이 많았다. 의외로 1950년대까지 한국에서 매춘은 불법이 아니었다. 물론 도덕적인 문제는 있긴 했지만 고관대작들이 요릿집[12]에 드나드는 것은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당시는 초등학교는 어느정도 남녀공학이 되었으나, 중고등학교는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남중남고 혹은 여중여고였다.

2.5.2. 1960~1970년대[편집]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당시 만연해 있던 지하경제를 뿌리 뽑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매춘에 규제를 가하며 불법화되었다. 하지만 판매자 및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가벼운 벌금 또는 구류에 그쳤고, 정부가 법이 면제되는 지역을 설정해 한국정부의 위안부를 운영했다. 1970년대~1980년대에는 일본인 남성들이 한국으로 기생관광을 많이 왔는데,[13] 당시 일본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이었지만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불과했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성매매를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당시 한국을 통치했던 군사정권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외화 벌이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는데, 정부 지정 유흥업소 종사자는 무려 야간통행금지가 면제되는 혜택을 부여받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에 의해 '외화벌이 유공자'라 칭해지기도 했다.

한편 민간은 40년대~50년대와 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매우 보수적이였으며, 자유연애가 아닌 친척,가족 등의 소개로 만나는 중매결혼이 대부분이였다. 또한 당시엔 남중/남고, 여중/여고 등 단성학교가 대부분이였고, 이는 2020년대인 현재도 전통이 깊은 학교, 특히 대구광역시,경상북도 같이 보수적인 지역에 단성학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2.5.3. 1980~1990년대[편집]


1980년대에 12.12 사건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일명 3S 정책을 통해 사회 분위기를 어느 정도 자유화시켰으며,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도 이때 폐지되었다. 그리고 1982년 1월 5일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고 정부가 사창가에 대한 단속을 느슨하게 함에 따라 전국에 유흥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애마부인을 필두로 에로 영화도 역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만 1992년 마광수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했다가 음란물로 몰려 구속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3S 정책으로 성적 콘텐츠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이전의 군사정부에 비해선 완화되었긴 하나,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려웠고 이는 2020년대 현재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엔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되고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동유럽에서 경제난이 일어나자, 러시아/동유럽 출신 여성들이 대한민국의 성매매 업소로 유입이 되기 시작하고, 정반대로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일본의 성매매 업소에 유입되는 일명 원정 성매매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민의 평균소득이 상승하면서 1970~80년대에 당시 대한민국에 비해 선진국이였던 일본 사람에서 한국으로 온 것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엔 한국 사람이 중국동남아시아 등으로 성매매 관광, 즉 일명 "기생관광"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때부터 남녀공학이 많이 세워졌고, 특히 서울특별시, 경기도, 대전광역시 등에선 이 이후 세워진 학교들이 모두 남녀공학인 건 물론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학교가 어느 정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2.5.4. 2000년대~[편집]


비록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세가 꺾이긴 하였으나,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시기 다시 경제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또한 국민의 교육수준도 1990년대에 비해서도 상당히 성장하면서 국민의 인권 의식은 물론 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한 외환위기의 여파로 가장 한 사람의 수입만으론 생계를 꾸리기 어렵게 되어 맞벌이가 불가피해지면서 여성도 가정 내에서 일정한 경제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2008년 세계금융위기,대봉쇄 등의 경제위기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코로나 팬데믹과 부동산 시장 과열까지 겹치면서 신세대 중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으며, 남녀갈등 및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면서 이는 저출산 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2000년대에 들어 개인주의·자유주의가 대한민국에 확산되면서 가치관 자체가 꽤 많이 변화하였으며, 이로 인해 중매가 대부분이였던 20세기 때와 달리 21세기엔 자유연애로 결혼하는 케이스가 주류가 되었다.


2.5.5. 어두운 그림자[편집]


다만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선 어두운 면도 있었는데 위에 언급된 한국군 위안부, 양공주 문제 뿐만 아니라 1980년대~19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성매매 특별법 문서에서 보듯이 막 상경을 한 여성을 취업시킨다고 속여서 성매매 업소로 넘기는 경우와 심한 경우 길을 가던 여성을 납치하거나 등하교 하던, 혹은 시내에서 놀던 여중고생을 납치해서 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기는 등의 범죄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14][15] 그러다가 2000년, 2002년에 일어난 군산 화재 참사를 계기로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매매에 대한 처벌이 강화가 되면서 발생하는 건수가 줄어들긴 했다. 다만 이와 동시에 풍선 효과가 나타나면서 키스방 등 변종 성매매 업소가 우후죽순 생겨 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이는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와 동시에 2000년대에 들어선 IT 기기의 발달과 일부 남녀의 왜곡된 성적 관념의 결합으로 인해 n번방 사건, 온라인 그루밍 등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도 생겨나는 중이다.


3. 현황 및 전망[편집]


현대 한국의 성문화는 개방과 억압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물론 1950~70년대에 비해 개방적으로 바뀌긴 했으나, 아직 서유럽, 북유럽이나 미국의 진보적인 주와 비교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도 2000년대 이후로는 서구의 개방적인 성문화가 퍼지면서 국내 성인물 시장도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음지에선 이미 퍼질대로 퍼져 있고, 풍선효과로 인해 단속을 해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포르노다운로드를 하거나 시청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지만[16], 업로드공유를 막거나, 크게 제한을 걸어 세대간에 논란이 크다.

전통적인 유교적 보수주의기독교적 엄숙주의가 21세기부터 퍼지는 자유주의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으며, 여전히 성생활에 대해 숨기고 부끄러워하고 가리는데 급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거부감이 적은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급작스런 도약을 해버린 나머지 전체적으로 세대 차가 많이 나며 보수적 장년층은 그 문화충격을 극복 못하고 규제와 검열로 탄압을 가하기도 한다. 젊은층은 이러한 문화적 보수주의에 반감이 크며 성적 억압성적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동성애 역시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나 동성애자들의 연대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으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그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대에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주요 이슈화되고 인해 현재까지도 젠더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포르노를 성적대상화로 보는 여성계와 기존 성적 보수주의와 결합되어 대한민국에서는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이 강화되어 성에 대해 언급하는게 힘들어지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17] 다만 이러한 분위기에 반발하여 국내 검열이 약한 유튜브에서는 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일본 AV배우가 한국 유튜버 방송에 출연하는 등의 모습이 보여지긴 하지만 아직은 여성계와 기성세대 위주로 성적 보수주의가 여전히 강하기에 완전히 개방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전반적인 인식으로는 보수적인 부분도 남아있고, 깊이 빠져들수록 기성세대의 검열로 인해 문화 향유에는 불편한 점이 많지만 주로 젊은 층에서 인식과 사회 자체는 예전보다 개방적이다.[18]

물론 아직은 청년층도 아무리 예전보다 개방적이라도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개방적인 서유럽과 북유럽, 중남미 그리고 미국의 서부 해안이나 동북부[19] 정도는 아니라 여기 해당되는 외국에 나갔다가 문화충격을 받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기성세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문화충격적 요소가 줄었기 때문에 이에 적응하기도 좀 더 쉬울 것이다.


4. 타국과의 비교[편집]


  • [[일본|{{{#!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일본}}}{{{#!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성문화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고 비교되는 나라다. 한국과 달리 포르노 산업이 존재하는 점,[20] 성행위뿐만 아니라 유사 성행위조차 불법 성매매로 처벌하는 한국과 달리 유사 성행위 업소가 버젓이 운영되는 점, 방송에서 성적 요소가 쉽게 등장하는 점, 사촌간 혼인이 가능한 점[21] 등으로 인해 한국에선 대표적인 성진국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일본의 성인물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22] 하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일본도 성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에 속한다. 위에 언급된 특징은 어디까지나 '한국에 비해서' 또는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것이지, 대부분의 구미 선진국에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며 이보다 더한 나라도 많다. 일본에서도 성인물은 엄연히 음지에서 제작 및 소비되는 콘텐츠이기에 철저히 음지에만 머무르고 있다.[23] 일본도 결국 동아시아 문화권이기 때문에 양지, 즉 민간사회에선 성 관념에 있어 한국과 비슷하며 한국보다 더 보수적인 면, 더 개방적인 면이 혼재하고 있다.[24]
  • [[중국|{{{#!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중국}}}{{{#!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중국"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고려시대까진 한국이 중국보다 확실히 압도적으로 더 개방적이었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인들의 혼욕 문화를 특이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이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조선시대에 가서야 유교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내렸다는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14세기 말 유교를 신봉하는 신진사대부 세력이 조선을 건국하며 한국도 중국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었고, 17세기 이후론 조선이 유교 근본주의에 빠지며 중국(당시 청나라)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하였다. 20세기 중후반 중국은 공산주의, 한국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교적 보수주의 등의 영향으로 성적 보수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으나, 이후 양국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21세기 들어선 점차 개방적인 사회로 향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워낙 넓은 나라다 보니 여전히 동부 해안의 도시 지역과 서부 내륙의 농촌 지역 간 성문화 차이가 크긴 하다. 전자는 대체로 한국만큼 개방적이지만, 후자는 아직도 혼전순결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 [[북한|{{{#!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북한}}}{{{#!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북한"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답게 아직도 성문화가 전근대 수준에 멈춰 있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이다. 북한 당국은 포르노에로 영화를 '부르주아 사상이 가득찬 것'으로 간주해 이를 제작 또는 시청했을 경우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 성교육 또한 존재하지 않기에 북한 주민들 대부분은 피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인해 매춘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많은데, 북한 당국에서 관련자들을 공개처형하는 등 초강경 대응을 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마하기 위한 뇌물이 만연하여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동성애자는 사형에 처한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조선로동당 고위간부들은 여기서 예외이며, 실제로 기쁨조 등 여러 성 관련 이슈가 터지기도 했다.

  • [[미국|{{{#!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미국}}}{{{#!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한국에는 미국인들이 성적으로 굉장히 개방적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부나 동북부로 갈 수록 진보적이고, 반대로 남부로 갈 수록 보수적인 편.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 세속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한 동북부/서부 해안 도시에선 한국보다 확실히 더 개방적이지만, 바이블 벨트를 비롯한 기독교세가 강한 농촌 지역에선 한국의 1990년대 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상당히 보수적이다. 참고로 미국은 포르노 산업 자체가 전무한 한국과 달리 세계에서 가장 큰 포르노 시장을 보유한 나라다.
  • 파일:유럽위치.png 유럽
: 대체로 서유럽,북유럽으로 갈 수록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동유럽으로 갈 수록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이는 서유럽,북유럽은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큰 반면, 동유럽인 경우는 가톨릭정교회의 영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 [[러시아|{{{#!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러시아}}}{{{#!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많은 러시아 출신 매춘부가 활동하고 있고,[25] 인터넷상에도 러시아산 포르노[26]가 범람하고 있기에 개방적인 나라로 생각하기 쉬우나 대체로 마냥 개방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사실 여기는 공산주의가 도입된 소련 시기만 해도 여성인권이 상당히 보장되었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스탈린 시기에 조금 배타적으로 바뀌었을 뿐 현대보다 인권이 보장되었었다.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인데,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가부장제도 다시 강해져서 가정폭력이 비일비재한 상황이 왔다. 저 두 요소를 제외하면 한국과 비슷하거나 좀 더 개방적인 정도다.
  • [[독일|{{{#!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독일}}}{{{#!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 [[프랑스|{{{#!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프랑스}}}{{{#!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 [[스웨덴|{{{#!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스웨덴}}}{{{#!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스웨덴"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 [[이탈리아|{{{#!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이탈리아}}}{{{#!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 [[영국|{{{#!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영국}}}{{{#!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 [[폴란드|{{{#!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폴란드}}}{{{#!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폴란드"
    행정구}}}{{{#!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
    ]]
    :


[1] 성문화의 정의에 대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2] 여담으로 고려인들이 중국인들을 두고 더럽다고 욕한다는 사실도 언급되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더럽다고 인식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걸로 보인다.[3]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하층민 출신이라 남색을 즐기지 않아 풍류를 모른다고 까였을 정도였다. 대신 도요토미는 여색을 굉장히 밝혀 늦둥이를 두기도 했다. 가신들이 "도요토미는 교양도 없는 호색한"이라는 소문을 잠재우려 미동들을 여럿 뽑아 바쳤으나 도요토미는 미동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미동들에게 누나가 있냐고 물었다.[4] 로마 제국도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를 다소 이질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풍속으로 인정했었는데,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후 탄압하기 시작하여 이는 중세 유럽으로 이어졌다.[5] 강조가 반정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옹립하며 내세운 명분 중 하나가 목종의 동성애였다.[6] 장가를 가지 않았으니 집에 들어가 봐야 아무도 없기에 허전한 남자.[7] 시집을 못 가 그 원한이 하늘을 찌르는 여자.[8] 조선 왕실의 사례로는 숙종왕비 인현왕후후궁 희빈 장씨의 대립관계가 있다.[9] 단, 모든 기생=매춘부는 아니었다. 급에 따라 달랐는데, 일패·이패 기생과 달리 삼패 기생만이 매춘을 주업으로 삼았다.[10] 여자 노비. 노비라는 말은 남자 종을 뜻하는 노()와 여자 종을 뜻하는 비()를 아울러 이른다.[11] 다만 이것도 2000년대 현재의 신세대가 보기엔 구시대적인 면이 없진 않았다. 단지 상대적이란 것만 생각하면 된다.[12] 이름만 들으면 단순히 식당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생들이 시중들었던 곳이였다, 물론 그 이후 성매매까지 한 건 덤이다, 현대로 치자면 식당과 성매매 업소가 같이 한 집에 있었던거나 마찬가지, 여담으로 설민석이 이걸 갖고 3.1민족대표 33인이 룸살롱에 갔다고 하다가 크게 논란이 된 적 있다..[13] 1971년 10만 명에 불과했던 일본인 관광객 수가 1979년에는 65만 명으로 늘어났고, 이 중 85%가 남성이었다.[14] 2023년 7월 7일 전두환 정부 - 노태우 정부 당시 인신매매에 대해 취재한 MBC의 과거 영상을 묶어 만든 MBC 한국범죄백서에도 나온 내용이다. #[15] 그래서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할 때 이유로 내세웠던게 조폭들의 인신매매였다.[16] 허용되었다기보단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들지도, 보여주지도 못하면 원칙상으로는 볼 수도 없기 때문.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문호가 뻥 뚫려버린 지금은 옛날 얘기.[17] 2010년대 초반까지도 포르노에 대해서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농담의 소재가 되었을 정도였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n번방 사건과 불법촬영물 사건의 이유를 내세워 포르노에 대해 언급하는게 힘든 정도가 되었다.[18] 다만 젊은층 사이에서도 남녀별로, 그리고 분야별로 차이가 존재한다. 안티포르노 페미니즘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도 많기 때문일 뿐더러, 리얼돌 등 비주류 성인용품을 싫어하는 젊은 남성들도 존재한다.[19] 미국인 경우는 서부 해안가나 동북부인 경우는 서유럽보다 약간만 보수적이지만, 남부나 중부, 그리고 유타주인 경우(특히 도심보다 농촌의 경우 등)는 기독교 보수세가 아직도 있어서 동유럽, 그리스보다 더 보수적이다. 심지어 한국의 1970~1980년대 수준인 곳도 있을 정도이다. 개방적인 지역과 보수적인 지역의 차이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중에 하나가 미국이다.[20] 사실 일본에서 AV는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 영화로 취급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일본도 포르노 산업이 없다.[21] 사실 이건 한중일 중 일본만 가능해서 특이해 보이는 것이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사촌간 혼인이 합법인 나라가 불법인 나라보다 훨씬 더 많다. 특히 OECD 회원국 중 대한민국미국 일부 주를 제외하면 모두 합법이다. 과거 조선통신사 일행이 방일할 때마다 가장 경악했던 일본의 성문화가 이것이었으며, 현대 한국인들도 이웃나라인 일본 문화를 서구권 문화보다 더 많이 접하다보니 일본만이 사촌간 혼인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2005년까지만 해도 동성동본 혼인조차 금지되어 있던 한국인들의 시각에선 꿈도 못 꿀 일이긴 하다. 다만, 합법 여부와는 별개로 일본에서도 사촌간 혼인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22] 왜냐하면 아시아에서 수준 높은 콘텐츠를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중국 정도인데, 두 나라 모두 포르노 산업이 불법이기 때문에 일본의 경쟁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23] AV 배우유튜브 등 양지에서 활동하는 것이 눈에 띄면 일본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성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밑바닥이다.[24] 예를 들어 동성애에 대해 한국보다 더 관대한 개방적인 면도 있지만, 남녀 관계에 있어 한국보다 가부장제 풍조가 강한 보수적인 면도 있다.[25] 사실 이건 러시아 여자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이라 그렇다기보단,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도 끝없는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게 원인이다.[26] 러시아 법률상 합법은 아니지만 개개인에 의해 매우 많이 제작 및 유통되고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045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045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