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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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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中國系韓國人. Chinese Korean.
역사상 중국 대륙에서 혼란기에 접어들때마다 한민족계 국가를 포함한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기득권층들도 상당수 있었다. 예를 들면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 유민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마지막 통일왕조인 청나라의 지배민족이었던 만주족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사례의 마지막 사례는 청말민초에 대한제국/일본령 조선으로 이주한 중국인들로, 여기까지는 재한화교라 한다. 물론 비단 도망쳐온 사례뿐만 아니라 무역일을 하거나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서 한반도에 눌러앉는 경우도 많기는 했다.
본 문서에서는 국공내전 이후 1992년 한중수교까지 한-중간 인적 교류가 거의 중단되었다가, 이후 넘어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다룬다.
2. 중국 유래 본관[편집]
한국은 어느 지역 무슨 씨로 집안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1] 본관의 시조가 중국에서 유래된 경우를 정리한다(본관 가나다순). 다만 성씨의 중국계 시조들은 고려시대때 호족들이 허위로 만든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시조가 정확히 어떤 인물이었는지 불분명하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고려나 조선시대에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려 지어낸 가짜 시조이다. 설령 시조가 실제로 존재하고 시조의 진짜 후손이어도 시조의 후손들이 대대로 한국인들과 결혼했기 때문에 시조라면 모를까 본관 전체를 중국계 한국인으로 보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본관의 시조가 중국계 한국인에 해당하는 셈.
- 강릉 유씨: 북송시대에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내던 유전(劉筌)이 고려에 귀화했다.[2] 시조는 유승비(劉承備)[3] 인데, 족보의 대시조는 한고제 유방이고 중간엔 광무제 유수도 있다고 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로 건너온 유전이라는 사람이 광무제 유수의 증손이고 동한 3대 황제인 효장황제의 아들이며, 안제의 부친인 청하효왕 유경의 28세손이다. 한고제 유방을 기준으로 치면 유방의 40세손이다.
고려로 귀화하고 처음에 정착한 곳은 각주에 전술했듯 강릉이 아닌 현 포항시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유승비의 증손 유창(劉敞)이 조선개국2등공신에 책록되어 옥천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강릉으로 삼게 되었다.
유재석, 유옥우, 유대운, 유정복, 유남규, 유민상[4] , 유지태, 스티브 유, 에반, 유지애, 유상무, 유승민, 유극량[5] , 데프콘(유대준), 유준상, 유인나, 유영재 등이 이 성씨를 쓴다.
유재석, 유옥우, 유대운, 유정복, 유남규, 유민상[4] , 유지태, 스티브 유, 에반, 유지애, 유상무, 유승민, 유극량[5] , 데프콘(유대준), 유준상, 유인나, 유영재 등이 이 성씨를 쓴다.
- 거제 반씨: 분파인 광주 반씨, 남평 반씨 포함. 남송 시절 가사도가 원나라 사신으로 보낸 반부의 후손. 유명인으로는 전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있다.
- 곡부 공씨: 그 유명한 공자의 가문. 유명인으로 배우 공유(배우), 인간문화재 공옥진 여사, 작가 공지영, 2NE1의 전 멤버 공민지, 스티리머 공혁준이 있다.
- 광동 진씨: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였던 진린의 자손들. 명나라가 망한 후 조선으로 와서 귀화했다.
- 광주 노씨: 시조는 당나라에서 벼슬하다 건너왔는데 그 이전에는 무엇을 하였는지 상세한 것은 불명이다. 이 본관에서 나온 유명인물로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있다. 조선 인목왕후의 외가이기도 하다.
- 남양 방씨: 당태종 때 고구려에 초청온 시조가 눌러앉으면서 유래된 성씨. 유명인으로 엠블랙의 미르가 있다.
- 남양 제갈씨: 제갈규를 시조로 삼고 아들인 제갈량으로 유명한 성씨. 5세손인 제갈충(諸葛忠)이 이주해왔다. 남양 갈씨와 칠원 제씨는 제갈씨에서 갈라져나왔다. 유명인으로 제갈성렬이 있다.
- 단양 우씨: 하나라 우임금의 후예라고 전해지는 우현을 시조로 삼으며, 늦어도 송나라 때 고려로 이주했음이 확인되었다. 유명인으로는 과학자 우장춘, 야구선수 우동균, 우규민, 검사 우병우 등이 있다.
- 서산 정씨: 신안 주씨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때 몽골의 침입을 피해 건너온 정신보를 시조로 하는 가문. 대표적 인물로 정인홍이 있다.
- 신안 주씨: 송나라 때 원나라의 침입을 피해 고려에 건너온 주잠(주자의 증손)을 시조로 하는 가문. 참고로 이 '신안'은 전남 신안군이 아니라 중국의 지명이다. 전남 신안군은 무안군에서 도서지역이 분리신설되면서 최근에 만들어진 지명이기에 본관에 붙을 수 없다.
- 여흥 민씨: 시조인 민칭도가 공자의 제자로서 공문십철 중 하나인 민자건의 후손이 송나라 때 고려에 귀화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민칭도 이전에도 여흥 민씨를 칭하는 민씨 인물들이 각종 금석문과 삼국사기, 고려사 등에 등장하며 민씨의 시조가 여주를 관통하는 남한강의 마암굴에서 솟아나왔다는 다른 시조설화도 존재하므로, 여흥 민씨를 귀화 성씨로 분류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 연안 이씨: 당나라 때 신라로 귀화한 이무를 시조로 하는 가문
- 영산 신씨, 영월 신씨: 고려 중엽 제 17대 국왕인 인종이 재임하던 시기, 중국에서 건너와 문과에 급제한 뒤에 다섯 재상 중의 하나인 정2품 관직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신경(辛鏡)을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 영양 천씨: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였던 천만리의 자손들. 종전 후 조선으로 귀화했다.
- 원주 원씨
- 절강 편씨
- 진주 강씨: 강이식의 자손들.
- 해주 오씨
- 홍천 피씨: 송나라 때 고려에 건너온 피위종을 시조로 하는 가문. 유명인으로 피천득 시인이 있다.
- 회산 감씨: 고려 공민왕의 왕후인 노국대장공주가 시집올 때 원나라 측에서 파견한 한림학사 감둥리가 시조로 공민왕에게서 규(揆) 이름을 하사받아 이후에는 감규로 불리웠으나 이후 부정부패가 발각되어 이름을 회수당하고 천민으로 강등당한 뒤 다시 이전 이름인 감둥리로 돌아갔다.[6] 조선이 개국하고 나서 태조 이성계가 인재발굴을 윌해 추진한 사면령에 가까스로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이후 16세손 감철(甘喆)이 북벌을 중지시킨 공으로 금자광록대부에 오르고 회산군(檜山君)에 봉함받은 뒤로 본관을 회산으로 한다고 하지만 이게 회산 감씨 문중에서 조상의 공을 위작한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7] 조선이 망하고 나서 신분제도가 폐지되는 시기에 조상들의 족보를 회산 감씨 후손들이 위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목록[편집]
3.1. 역사적 인물[편집]
- 강이식[8]
- 동수: 전연의 인물로, 모용인의 쿠데타가 실패하자 고구려로 망명했다.
- 두사충: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가한 명나라의 장수. 전쟁이 끝난 후 귀화했다.
- 박암: 오월국 출신으로 고려에 귀순하였다.
- 변안열
- 순덕후
- 시문용
- 쌍기: 후주의 사신단으로 고려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고려로 귀화했다. 광종의 총애를 받아 광종의 개혁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 사람이 한국사에서 중요한 이유가 한국 최초의 과거 제도를 시행을 건의, 과거 제도가 고려에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쌍철(雙哲): 쌍기의 아버지. 후주에서 시어(侍御) 청주수(淸州守)를 지내다가 귀화했다.
- 왕삼석(?): 고려 말의 간신. 남만 출신의 원나라인으로 고려에 귀화했다. 운남성 혹은 동남아시아 지역 출신으로 추정된다.
- 천만리
- 최비: 모용선비에게 패배한 뒤 고구려로 망명한다.
- 추언규 : 위의 박암과 동일.
- 호종단
3.2. 현대 중국계 한국인[편집]
탈북자가 중국에서 중국 국적인 사이에 낳아 같이 들어온 자녀들이 수천명에 달한다. 2018년 기준으로 약 1,400여명.#
그리고 스포츠 선수들 중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중국 내에서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한국으로 건너온 탁구선수들이 많다.
- 곽방방: 탁구선수.
- 김철욱: 농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우띠롱(吳迪龍).
- 김태민: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Clid'. 어머니가 중국인이다.
- 당예서: 탁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탕나(唐娜).
- 석하정: 탁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스레이(石磊).
- 안병훈: 골프선수. 어머니가 중국 탁구선수인 자오즈민(焦志敏).
- 윤영선
- 이강: 축구선수.
- 이영: 배구선수.
- 전지희: 탁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톈민후이(田民惠)
- 주권: 야구선수. 아버지가 중국인.
- 주학년: 더보이즈의 멤버. 아버지가 홍콩인이다.
- 최효주: 탁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야오야오.
- 탕준상: 아버지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 이신(2001)
3.3. 대만(중화민국)계 한국인[편집]
- 공상정: 여자 쇼트트랙 선수
- 담철곤
- 여경옥
- 왕건명
- 유상빈
- 이연복: 요리사
- 주현미: 가수
- 진안
- 진윤성: 남자 역도 선수.
- 하희라: 배우
- 후인정: 대만계 前 배구선수. 수원 후씨의 시조가 되었고, V리그 남녀부 통틀어 최초의 귀화 선수
4. 둘러보기[편집]
[1] ex - 김해 김씨, 경주 김씨, 전주 이씨, 덕수 이씨, 밀양 박씨 등등등.[2] 1082년(문종 36)에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현 포항시)에 정착.[3] 유전의 9세손이고, 고려 말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복야로 치사(致仕)했다.[4] 1921~2000. 前 법제처장이자 前 유신정우회 국회의원.[5] 단, 유극량은 연안 유씨다.[6] 감둥리에게 공민왕이 하사한 이름을 풀어보면 임금 왕(王)+ 북방 계(癸)가 합쳐진 것으로 '북쪽의 왕'으로 풀이되는데, 당시 시대상황으로 고려는 거의 반쯤 원나라 방계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고려 왕족은 원나라 황가의 일부에 불과했고 이미 상당한 수준의 통혼이 서로 이루어져 사실상 방계 가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방계의 득세를 경계하고자 일종의 감시를 위한 인물로 감둥리가 파견되었기에 공민왕이 원나라 측의 경계를 풀고 감둥리의 환심을 사고자 원나라인인 감둥리에게 북방의 왕이라는 뜻을 지닌 규(揆)라는 이름을 하사한 것으로 사학계에서 보고있다.[7] 첫째, 감철이 올랐다고 하는 금자광록대부는 고려시대의 종1품∼종2품 문산계로서 이후 1356년(공민왕 5년) 금자광록대부로 바뀌면서 종1품 상계가 되었으며, 1362년에 폐지되었다. 둘째, 회산 감씨 문중에서 주장하는 16세손인 감철이 공을 세웠을 수도 있으나 조선시대에 되어서야 가능했을 텐데, 조선에는 없는 벼슬을 준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셋째, 엄연히 다른 회산군(檜山君)이 존재하는데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이염(李恬), 시호는 정간(貞簡)이며 성종의 5남으로, 어머니는 숙의 홍씨인 조선시대 왕족으로 그것도 중종의 친동생인데, 회산 감씨 문중에서 조선시대에 자신들의 문중에 회산군(檜山君)이 있다고 했다면 당장에 역모죄로 일족이 멸족되었을 것이다.[8] 진주 강씨 족보에서는 일단 그렇게 밝히고 있으나 아닐 가능성이 크다.